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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이웃 사랑의 진위를 밝혀야 구원에 가까워질 수 있다.
레 19:18
(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제가 국민학생이었던 시절 교회 부흥회에서
부흥강사 목사님이 설교 중에 이런 얘기를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성경을 쭉~ 짜면 나오는 것은 단 하나의 단어, [사랑] 입니다.”
성경 전체를 요약하여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피조물인 인간을 향한 창조주 하나님의 신비한 사랑,
그 사랑의 가장 큰 증거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구속사”이기에
딱 한 단어만 말해야 한다면 ‘사랑’이 맞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많은 이들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에만 집중한 나머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인간, 사랑 받는 인간으로서의 행복과 기본권,
그것을 위한 돈과 건강이나 평등과 인권 등 인본주의적 신앙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기에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과 같은
비기독교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가 교회 안팎에서 크게 인기를 얻고,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사업성패, 질병, 자녀문제 등
여러분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모든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라는 식의
기복주의적인 설교에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여드리기 위해,
하나님의 가족이 될 자격을 갖춰 천국에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서로 사랑하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이전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아온 이유는
우리가 사랑 받을 만해서도 아니고,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사 43:21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성경 말씀이 가리키는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올바로 깨닫기 위해서는
성경을 부분적으로 보지 말고, 전체적인 문맥을 살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신앙의 방향성을 올바로 설정하여 구원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그 사랑과 은혜의 가장 큰 증거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님,
하나님의 그 엄청난 사랑을 깨달은 인간의 회개에 이어지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과 마음이 합해져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내 이웃을) 나도 사랑하게 되는 예수님을 닮은 사랑.
‘사랑’이라는 단어에 이 모든 사랑이 다 포함되어야
비로소 성경 말씀이 가리키는 온전한 의미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이기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며, 회개하여 돌이키기를 기다려주고 계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 우리가 사랑할 대상은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이라는 사실이 기본전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장 큰 계명에 관해 설명해주실 때에
하나님을 사랑함에 뒤이어 이웃 사랑도 같이 말씀해주신 겁니다.
마 22:35-40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성경 말씀이 제시하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논할 때
하나님의 사랑만을 강조해서는 부족함이 있으며,
무엇보다 ‘기복주의’와 ‘자기애’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큰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율법, 그리고 구원의 모든 전제조건은
하나님을 사랑함과 더불어 이웃을 사랑함에 함축적으로 포함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가장 큰 두 계명’인 것입니다.
갈 5:14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롬 13:8-10
(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그렇다면 성경 말씀이 가리키고 있는 ‘그 사랑’이 과연 우리 각 사람에게 있는지,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신 이웃 사랑의 방법은 무엇인지가 중요해집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설교는 ‘이웃 사랑’에 초점을 맞춥니다.
우리가 이 부분에서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이웃 사랑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에 이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최고의 법’이라는 사실입니다.
약 2:8-9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이웃 사랑의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물질적으로 돕는 것뿐만 아니라
조금 전 말씀을 통해 보신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도 포함이 됩니다.
간음(불륜), 살인(폭언/폭행/증오), 도둑질, 거짓말, 업신여김,
임금체불, 횡령(남의 돈을 떼먹음), 사기 등
죄를 범하여 이웃에게 악을 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각 사람의 재산이나 학력이나 외모 등으로 사람의 등급을 매겨 차별하여 대하면
하나님 앞에서 이웃 사랑의 계명을 어기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동성애자(성 소수자)를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이 부분에서 다뤄질 수 없습니다.
동성애는 하나님께서 정의 내리신 가증한 죄이기 때문에 논의의 필요성조차 없습니다.
레 18:22, 레 20:13, 롬 1:27, 고전 6:9, 딤전 1:10]
렘 22:13
(13)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엡 4:25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잠 14:21
(21)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해를 끼치는 것은 죄가 아니고,
물질적인 피해가 있어야만 죄라고 잘못 생각하는 이들이 꽤 많지만
다른 사람을 업신여겨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도 역시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씀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 61:8
(8) 무릇 나 여호와는 정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을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정의를 사랑하시며, 불의를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가 되고 싶다면, 하나님을 닮고 싶다면,
그리고 참된 이웃 사랑을 실천하여 순종하고 싶다면
정의를 사랑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 앞에 한 명씩 서서 자기가 행한 대로 선악간에 심판 받을 것을
준비하고 있는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각자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회개하여 마음과 행위를 돌이켜야 하는지
스스로의 모습을 진지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반드시 짚어봐야 할 중요한 부분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이 실천하고 있는 사랑과
그리스도인인 나의 사랑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이웃 사랑을 실천한다며 가난한 이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깨끗한 삶을 살아가며,
아무도 차별하지 않고 상냥하게 대하는 것에서만 멈춘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 중의 착한 이들도
현재 실천하고 있는 수준의 이웃 사랑이며,
이것은 박애정신을 가진 인본주의자들이 누구보다 더 잘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신 이웃 사랑은,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키고 있는 진정한 사랑은
우리의 이웃들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구원을 받게끔 도와주는 것이 핵심이며,
그것을 위해 내가 어떤 손해를 보더라도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성실히 감당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반드시 이것이 최우선 되어야 합니다.
즉 예수님을 닮은 참 사랑이란
단순히 ‘육신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과 관련된 ‘영적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고전 10:33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우리가 다음으로 고민해봐야 할 것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금전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물질적으로 도와주거나
가난한 사역자들에게 남몰래 연보를 하여 사역의 동역자가 되거나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고, 업신여기지 않는 등
여러 가지 모양으로 사랑을 베풀 때의 그 마음의 근원에 관한 내용입니다.
자신이 의로워지고 싶어서 (영적 자존감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뭔가 불안해서,
천국에 들어가고 싶어서,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고 소문이 났으면 해서,
“하나님 저 잘했죠? 그러면 이 문제 해결 좀...(사업, 건강, 자녀 등)”하며
하나님께로부터 뭔가를 얻어내고자, 즉 자신의 육신적인 행복이나 미래의 안전을 위해서
솔직히 이웃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사랑의 겉모습만 흉내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이웃 사랑을 실천해도 아무런 보상이 없을 거라고 하면
이웃 사랑하는 것을 멈출 사람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다른 어떤 이유들로 인하여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시작했을 때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옅어지다가 좋은 명분이(핑계가) 생기면 즉시 그만두기 일쑤이지만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지금껏 어떤 사랑을 받아왔는지 기억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부디 예수님을 닮고 싶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다른 이들의 영혼자체를 진심으로 사랑하여 그 이웃이 함께 구원을 받았으면 하여
아무 조건 없이, 바라는 것 없이 사랑을 베풀고, 그를 위해 중보기도하며,
인내할 부분은 인내하고, 감내할 것은 감내하는 모습으로 꾸준하게 살아간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라,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직접 돌보시며,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모든 것들을 풍성히 채워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일 3:1, 10
(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그대로 닮아 예수님처럼 온전히 사랑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분명히 할 수 있는 것만을 명하시는 신실한 분이기에,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사랑과 용서를 받은 것처럼(탕감 받은 것처럼)
우리도 사랑과 용서를 품으라고 명하시는 분이기에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 사랑에 이은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 전제됩니다.
뭔가 대단한 인물들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들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눅 6:32-36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우리가 살아오면서 이미 많이 경험해 본 것처럼
우리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예수님께선 그런 우리에게 이웃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지
예화로 자세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말씀을 보겠습니다.
눅 10:25-37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 등장하는 사마리아인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긍휼의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강도를 만나 폭행을 당하여 쓰러져 죽어가고 있는 그 사람의 신분을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사마리아인에 대해서만 출신을 특정하여 설명하신 것으로 미루어보아
청중들은 자연스럽게 강도를 만나 죽어가던 이가 유대인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민족적 구분을 초월하시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강도를 만나 죽어가던 사람은 사마리아인들을 향해 배교자들이라며
개만도 못하게 취급하던 유대인들 중의 하나였지만
선한 마음을 가진 그 사마리아인은 “허허, 우리를 개만도 못하다며 멸시하던
유대인들 중의 한 놈이렷다? 아주 꼴좋다. 그렇게 피를 철철 흘리며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면서
네 죄를 달게 받아라(신나는 발걸음으로 퇴장).“하지 않고,
불쌍히 여기며 자신의 귀한 시간과 많은 돈과 정성을 들여 그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강도 만난 유대인과 선한 사마리아인이 나중에 서로 친해진다거나
선한 사마리아인이 그 선행을 인정받아 유대인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등의 내용은 없습니다.
중요한 부분이 아니기에 예수님께선 그런 내용을 말씀하실 필요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과연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진짜 이웃이냐?” 입니다.
율법교사의 질문,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구원 받는 방법이 뭔가요?)라는 물음에
예수님께선 선한 사마리아인이 한 행동을 자세히 설명하신 후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라고 말씀해주신 겁니다.
(그러므로 믿음구원, 행위구원을 따로 구분하여 요상한 주장을 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그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이웃 사랑은 구원의 필수 조건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구원을 받고자 한다면
우리도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행동을 해야 합니다.
(각자 자신의 능력과 환경 안에서 가능한 사랑을 최대한 실천하면 됩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이웃은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을 닮으려는 의지가 있는지,
또는 자신의 영적 자존감, 즉 자신은 선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안심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혹은 사람들로부터 뭔가를 얻어내기 위해 사랑의 모양만 내는
빈껍데기와 같은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을 점검해보십시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있고,
그 둘이서 어떤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풀기 위해 같은 장소에서 함께 선행을 하고 있을 때
겉으로 보기에는 두 사람이 완전히 똑같을지라도
한 명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실 참 사랑이 될 수도 있고,
한 명의 사랑은 큰 의미가 없는 고생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요일 2:9-11
(9)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지 아니하면, 도저히 진심으로는 그들을 사랑하지 못하겠다면
안타깝게도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려운 이들에게 억만금을 베풀고 있어도
그 마음의 중심이 오로지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의도로 가득하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신 가장 큰 두 계명,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과는 거리가 있는 행동입니다.
인간적으로 착하게 살고 있는 자들은 세상에 많지만
그 중에 하나님께 속한 자는 극소수인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요 19:30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우리를 위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주셨기에 ‘회개와 돌이킴’ 외에
더 이상은 우리가 자신을 위해서 할 것이 없는데도
아직도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뭔가를 하고 있다면
그는 스스로 예수님과 관계가 없는 자가 되기로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웃 사랑을 실천하든지, 어떤 선행들을 하든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이루어주신
예수님을 위해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꾸만 자기 자신을 위해, 혹은 내 가족을 위해 살아갑니다.
자기만족을 위한 구제와 자신의 찝찝한 기분을 없애기 위해서 하는 용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징계를 받을까봐 억지로 하는 마음과 형식적인 행동,
세상적인 복과 성공, 안정적인 생활을 위한 신앙생활 등
자신의 뭔가를 이루기 위해 움직이는 존재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기준을 바꿔야 합니다.
아직 이 땅에 살고는 있지만 이미 이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앞으로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을 위해서 하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용서와 사랑을 거저 받은) 우리를 향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도
우리의 마음은 도무지 움직이질 않고, 원통하고 울분만 차며,
나를 미워하고 있는 자를 나만 사랑하면 지는 것 같고,
바보 같은 자가 되는 것 같아서 도저히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가 기억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죄악 가운데 있을 때에도, 우리가 이기적이고 어리석었을 때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이 사랑해주시며, 기다려주시고 계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나의 순종으로 인해 웃으실 것을 생각하면
지금 잠시 내가 바보처럼 보이는 것도 괘념치 않게 되고,
오히려 웃게 해드릴 절호의 기회가 왔다는 사실에 즐거운 마음까지 생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앞의 상황에만 집중하면서 내 감정에만 몰입하면 진정한 사랑이 더욱 어려우며,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넓은 시야를 가지고,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지혜롭게 생각해본다면 한결 쉬워질 겁니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행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부분을 놓고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도와주심을 계속 간구하면서
‘예수님을 위해서’라는 가장 큰 명분을 우리 마음에 크게 새기고,
그 명분을 항상 기억하면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 어떤 취급을 받게 되어도 개의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 이 땅에 머물곤 있지만 이미 천국에 가까운 자,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진 자로 살아가는 원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덕분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불가능해보이던 이웃 사랑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 우리 모두
자신이 가진 이웃 사랑에 관해 깊이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십시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는 그 고백의 진위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랑을 그대로 닮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의 진위 여부,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자신의 사랑이 과연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순수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의 여부,
이웃 사랑을 육신적인 방법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영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올바르게 행하고 있는지,
무엇보다 ‘예수님을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등등
우리 자신이 품고 있는 이웃 사랑에 관해 깊이 고민해보십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것들을 이미 다 이루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꾸만 자신의 의로움으로, 자신을 위해서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보십시다.
지금은 설 명절 연휴 기간이기에 현재 가족, 친지들과 함께 하고 계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또 허탄한 세상 것들을 자랑하면서 교만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시기/질투의 마음도 오갈 것이며, 서로를 미워하거나 업신여기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언제나 마귀의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예수님을 닮고자 모든 노력을 다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 말씀의 핵심인 사랑,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이웃 사랑을 품기로 작정하여
‘어휴~ 저 마귀 종놈의 새끼가 잠잠히 평안한 나를 또 건드리고 들쑤시는 구나...’하며 미워하지 말고,
마음으로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이럴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 걸 예수님께서 기뻐하실까?
내가 예수님을 닮아서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구나.‘라고 지혜롭게 생각하여
‘예수님을 위해’ 우리의 이웃 사랑을 완성하십시다.
또한 ‘나의 어떠함을 드러내 줄, 내 속에 숨겨져 있던 악한 모습을 밝혀줄 감사한 상황이구나.
그러므로 이 분은 나에게 오히려 고마운 분이시다.‘하는 마음에 이어서
‘지금 이 분은 비록 교만하지만 영혼이 마귀와 연합한 고통 중에 있는 것 같으니
내가 이 분을 위해서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해야겠구나.’하면서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악을 선으로, 말씀의 진리로, 이웃 사랑으로 이기십시다.
영의 눈으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여 마귀의 덫에 걸리지 마십시다.
그렇게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 성장하십시다.
롬 12:21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즉시 삶에 적용함으로서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에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며 스스로를 점검하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날, 그 시에 갑자기 다시 와주실 예수님을
공중에서 기쁘게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 13:34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4.02.11. 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260장 새벽부터 우리
1. 새벽부터 우리 사랑함으로써 저녁까지 씨를 뿌려 봅시다
열매 차차 익어 곡식 거둘 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2. 비가 오는 것과 바람 부는 것을 겁을 내지 말고 뿌려 봅시다
일을 마쳐 놓고 곡식 거둘 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3. 씨를 뿌릴 때에 나지 아니할까 슬퍼하며 심히 애탈지라도
나중 예수께서 칭찬하시리니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후렴]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아멘
첫댓글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롬10:11
예수님과 연합되어 오직 그분의 마음으로만 사랑이 되어지는 날을 소망합니다.
아멘.
이 복잡한 세상에서 말씀의 진리로 간단하게 순종하시며
늘 구원의 길 걸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말씀을 듣기만하는 자가 되지않고 실천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발란스를
잘 맞추며 살겠습니다.
앞으로도 예수님을 매일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한 인생을 살아가시며,
세상과 구별되어 성경말씀에 기록된 사랑으로
아름다운 열매들을 많이 맺으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