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림 민속박물관을 찾아가다.
송하 전명수
손재림민속박물관은 경주시 황오동 341-1번지인 쬭샘 큰 길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다. 이 민속박물관은 영천에서 손한방병원을 운영하는 손재림원장이 개인적으로 수집한 문화유산 5,0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한옥에 청기와를 올린 박물관은 경주의 도심지 한가운데에 위치하며 주변에 천마총, 오릉, 첨성대, 안압지, 반월성, 국립경주박물관 등이 위치하고 있어 이들 문화재와 연계하여 살펴볼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을 듯하다. 이곳에는 우리가 어릴 적에 사용하였으며 눈에 익혀왔던 각종 생활용구를 비롯한 민속자료를 모아놓은 민속전시관과 한방 의료전시관, 화폐전시관이 마련되어 있으며 성인들에게만 개방되는 성문화전시관을 갖추어 놓았고 야외전시장에는 첨성대, 다보탑, 석가탑의 모형을 실물 크기로 재현해 놓았으며 희귀한 암석을 전시해 놓았다.
한방 의료전시관에는 과학적인 의료장비와 기구들이 등장하기 이전에 순전히 의원의 진맥과 약물, 침으로 환자를 검진, 치료한 한의학의 역사적인 자료를 비롯하여 근대 의료장비와 기구가 전시되어 있다. 대표적인 기구로 약연(藥硯) 한 점이 보였다. 약연은 가운데 홈이 파인 그릇에 약재를 넣고 축을 끼운 연알을 앞뒤로 굴려서 가루를 빻거나 즙을 내는 의료기구이다. 약연의 받침은 여성의 성기를 뜻하며 주판알과 같이 생긴 연알과 공이는 남성의 성기를 본떠 음양법칙에 부합되도록 만들어졌다. 궁궐이나 큰 한약방, 식구가 많은 부잣집에서는 은이나 옥으로 만든 것을 사용하였다고 설명해 놓았다.
민속전시관에는 산업화가 이루어지기 이전 시대에 사용하였던 생활용구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에도 많은 공간을 차지하며 전세해 놓은 것이 직조기와 그 보조기구들이다. 목화를 채집하여 솜을 만드는 활, 실을 뽑아내는 물레, 베틀과 북, 바디들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금방 아낙네가 베를 짜다가 잠시 쉬기 위하여 베틀에서 내려온 것 같이 베 짜는 모습을 전시해 놓았다. 어릴 적에 어머니가 밤새 물레를 돌리며 실을 뽑아내고 베틀에서 베를 짜던 모습이 눈앞에 가물가물 다가오기도 하였다.
안중근의사가 소장하였던 태극기가 눈에 뜨인다. 이 태극기는 안중근의사가 만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직후 꺼내 흔들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태극기 왼편 위쪽에 그의 어릴 적에 사용하였던 안응칠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다. 여러 가지 민속자료 중에서도 쌍용석 벼루 한 점에 눈길이 모아진다. 이 벼루는 이태백이 한 친구를 황하로 떠나보내면서 선물로 주었다는 것인데 크기나 모양과 조각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귀한 벼루임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이 벼루의 조각문양은 쌍용이 금방이라도 꿈틀대며 날아올라 승천이라도 할 듯이 생동감 있게 돋을새김 되어있는 작품이다. 한 코너에는 많은 비녀가 전시되어 있는데 비녀는 머리에 쪽을 진 다음 풀어지지 않도록 그 모양을 고정시켜주는 수식용구이다. 비녀는 원래 남녀 공용이었다가 조선 정조 시대부터 부녀자 발제개혁과 더불어 쪽머리가 일반화되면서 여성의 전유물이 된 것이다. 비녀는 한쪽 끝이 뭉툭하여 빠지지 않도록 되어 있으며 이 뭉툭한 머리 부분을 잠두(蠶頭)라 한다. 신분의 차이에 따라 잠두의 모양과 재질이 달리 나타난다. 금, 은, 옥으로 된 비녀는 상류층 여인을 상징하게 되며 봉황잠, 용잠, 원앙잠, 매죽잠, 모란잠, 석류잠, 국화잠 등 여러 종류의 비녀를 만나볼 수 있다. 이러한 잠두의 장식은 길상을 상징하며 주로 부귀, 다남,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술국치메달이 전시된 진열장 앞에서는 가슴이 멍멍 해져 왔다. 1910년 즉 경술년 8월 22일 일제는 한일합병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8월 29일 이를 공포하여 대한제국은 일본제국에 통합되었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국가적인 치욕의 날로 경술국치라 일컫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는 조선의 국권을 침탈한 것에 대하여 자기들의 행위가 정당함을 주장하며 한일합병이라 하였다. 그들은 기념메달을 만들어 달고 다니면서 자랑을 하며 우리 국민들을 조롱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그 메달을 경술국치메달이라 이름을 붙였는데 그 메달 여러 점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국치의 그날이 자꾸만 마음에서 맴돌아 더욱 가슴이 아픈 순간이었다.
화폐전시관에는 조선시대에 사용하였던 상평통보를 비롯하여 건국 이후에 통용하였던 각종 지폐와 동전이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으며 세계의 각 나라에서 사용하는 화폐도 선보이고 있다. 상평통보는 동전 또는 엽전으로 불리어졌는데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 사용되었다. 조선 인조 때에 주조되었으나 유통되지 못하다가 숙종 때에 다시 주조되어 조선 말기까지 통용된 화폐이다. 둥근 모양의 동전 가운데에 정사각형의 구멍을 뚫고 상하좌우에 常(상), 平(평), 通(통), 寶(보)라 새기고 뒷면에는 주조한 관청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는 아주 귀한 화폐유물 한 점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호조통화태환권이다. 이 태환권은 1893년 고종임금이 대한제국의 경제근대화를 위하여 화폐개혁을 추진하면서 구 화폐 회수용으로 발행하였던 일종의 화폐교환표이지만 실제로 시중에 유통되지는 아니하였다고 한다. 이 호조통화태환권은 국내에 단 3점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그중에 한 점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이 태환권의 원판은 덕수궁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6.25 전쟁 중에 미군이 밀반출해간 상태였다가 한 경매장에서 고미술 수집가인 어느 재미 동포가 낙찰 받았으나 장물취득혐의로 체포되어 있고 지금은 반환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고 전해 주었다. 당연히 우리의 품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고 조속히 우리 유물 전시장이나 박물관에 전시되기를 기대해 본다.
성문화박물관에는 성과 관련한 각종 조각품과 춘화, 병풍 등이 전시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남녀가 적나라하게 펼치는 섹스의 장면을 그린 춘화첩을 감상할 수 있으며 미성년자는 출입금지 전시관이다. 야외전시장에는 참으로 희귀한 암석을 전시해 놓았다. 백두산 천지석, 거북이가 단군을 낳은 웅녀를 등에 업고 세계를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는 형상을 한 웅귀암, 한번 앉으면 10년을 더 살고 한번 누우면 20년을 더 살게 된다는 천수암 등 여러 점의 암석을 만나 볼 수 있다. 그리고 첨성대의 모형에는 목재로 계단을 설치해 놓아 내부에 올라가서 천체를 관찰,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그리고 전통 한옥에 청기와를 이은 박물관 건물 자체도 하나의 민속자료라 할만하다.
우리의 문화유적과 유물이 널리 산재해 있는 천년고도 경주의 중심지 한 복판에 이렇게 알차고 귀중한 우리 민속자료를 전시해 놓은 점은 대단히 높이 평가하고 싶은 마음이다. 비록 한 개인의 열정과 재산으로 사설 박물관으로 개관하였지만 우리민족 모두의 재산이며 우리의 후손 대대로 물려 주어야할 귀중한 문화유산이라 하겠다. 귀중한 유물과 어릴 때의 추억이 아련한 생활용품들을 대하니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기도 하였으며 정겨운 우리 민속자료를 관람하는 시간 내내 행복감에 젖어 들었고 대단히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2013. 5. 4, 토)
첫댓글 손재림 민속박물관을 찾아가다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개인이 만든 민속 박물관이라고 하니 대단하신 분이네요. 민속박물관에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는 것 같네요. 가까운 거리니 한번 찾아가서 구경을 하고 싶네요. 송하님, 행복하세요.
경주에 이런 곳도 있었군요.정말 뜻이 깊은 여러가지 유물들이 있네요.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선생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손재림 민속박물관이 경주에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으며 여러가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네요 특히 한의학에 관한 많은 정보를 주셔서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한번 가보고 싶네요, 송하님, 좋은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경주의 손재림 민속박물관을 소상히 설명하여 주셔서 잘읽고 갑니다 늘 건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