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개비 인생
도반 동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인생을 잘사는 것일까요? 나름대로 각자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만 바람개비 인생도 한 번 해볼 만한 삶의 방법인 것 같습니다. 바람개비 인생이란 무얼 말하는 것일까요? 바람개비는 가만히 있으면 돌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사람이 뛰어다니며 바람을 일으켜야 돌아가죠. 바람 부는 대로 바람에 실려 사는 게 아니라, 바람을 만들고 바람에 부딪히며 헤쳐 나가는 것, 한마디로 풍운아(風雲兒)! 그게 바람개비 인생 아닌가요?
도반 동지 여러분!
여기 바람개비 인생 가천(嘉泉) 이길녀(李吉女)의 삶이 있습니다. 가천 이길녀 경원대학교 총장은 1932년 전북 옥구(현 군산시) 출생입니다. 서울대 의대 졸업하고 인천에 이길녀 산부인과로 성공을 했습니다. 그리고 양평길병원, 철원길병원 등 6개의 병원을 설립하고 길병원 이사장이 되었죠. 그리고 경원대 총장, 경인일보 회장, 가천뇌과학연구소, 이길여암당뇨연구원을 설립한 바람개비 같은 돌풍의 인생입니다.
도반 동지 여러분!
중국《삼자경(三字經)》에 보면 효심이 지극한 어린 황향(黃香)이 아버지 이부자리를 자기 몸으로 덥힌다는 고사가 나옵니다. 일본 전국시대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가신으로 있을 때 주군의 신발을 가슴에 품고 지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져 오죠. 그럼 한국에는 그런 인물이 없을까요? “추운 날 환자 몸에 청진기가 닿을 때 선뜩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도록 가슴에 청진기를 품고 지낸 의사가 있다.” 그게 바로 의사 이길녀인 것입니다.
도반 동지 여러분!
이 한 · 중 · 일 세 예화에서 공통적으로 흐르는 메시지는 무엇인지요? 그건 한마디로 배려(配慮)입니다. 상대방의 처지를 헤아리고 배려하라! 그런 사람이 성공한다는 메시지인 것이죠. 그런 인생을 걸어온 이길녀의 성공한 삶을 그녀의 자서전에서 한 번 더듬어 봅니다. 그 바람개비 인생에서 우리들의 인생성공의 비밀을 찾아내면 좋을 것 같아서이죠.
도반 동지 여러분!
이길녀는 정확히 언제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의사놀이를 많이 한 것 같아요. 그때는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당골(무당의 전남 방언)이 와서 됫박에 쌀을 넣고 하얀 천으로 싸서 돌리며 ‘귀신 물러가라’ 하는 식으로 빌곤 했어요. 그걸 보고 내가 친구들에게 똑같이 해줬는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하면 싹 낫더라고요. 하하.” “그러니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을 고쳐줘야지 하는 것은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생각이었어요. 내가 독특한 게 아니라 시대상황이 그랬어요.”
그럼 의사가 되려면 어찌하면 될까요? “나는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의사가 되려면 어떡해? 공부 잘해야 해, 그러니까 1등 해야 해, 이렇게 생각했어요.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가 살던 전북 옥구군 대야면 죽산리에 전깃불이 들어오는 곳은 방앗간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길녀는 저녁밥 먹고 나면 방앗간으로 달려갔죠. 거기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다 깜깜한 길을 혼자 걸어서 돌아오곤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1등을 놓치지 않은 비결 아닌 비결인 이라고 합니다.
도반 동지 여러분!
바람 부는 대로 바람에 실려 사는 게 아니라, 바람을 만들고 바람에 부딪히며 헤쳐 나가는 것, 그게 이길녀식 삶의 방식인 것입니다. 오늘의 그를 있게 한 팔 할은 바람개비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명의라는 소문이 나면서 환자가 줄을 이었어요. 그는 그렇게 20년을 보냈습니다. 오로지 병원 일에만 몰두하던 시기였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환자를 맞으려면 밥 먹다가도 뛰어가고 자다가도 달려가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가슴 깊은 곳에서 답답한 느낌이 밀려왔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마흔셋에 찾아온 우울증이었죠.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고, 일본으로 두 번째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결혼생각은 흥미를 못 느껴 아주 포기를 했습니다. 자서전에는 “다시 태어나도 여자로, 의사로 태어나고,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아마 결혼을 했다면 국가를 위해 큰일은 못했을 것 같다고 하네요.
“나는 성공이라는 말은 쓰지 않습니다. 매 순간 행복했다고 생각하지요. 내 인생의 어느 순간을 잘라놓고 보아도 행복하고 만족하고 후회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행복합니다.” 요즘 그가 가장 신경 쓰는 문제는 경원대와 가천의대의 통합이라고 합니다. 두 대학을 합치면 입학정원 기준으로 수도권 3위 규모의 매머드 급 대학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존의 학교 명칭이 사라질 것을 우려한 동문회 등에서 반대 목소리를 높여 작업이 순탄치 않은 것 같다고 하네요.
도반 동지 여러분!
인생은 평탄한 길을 걷는 게 아니라, 산을 계속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정점이 있는 게 아니어서 계속 올라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가다가 쓰러지면 다시 올라가고. 그러니까 ‘많은 것을 이뤘으니 이제 만족한다.’ 그런 거는 이길녀의 사전에는 없다고 합니다.
이길녀는 죽어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까요? “최선을 다하고 간 사람이죠. 역사는 줄로 이어지는데 거기서 뭔가 반짝거리는 점을 찍고 가야 한다, 젊었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지금은 다 산 인생, 그런 거 없어요. 그저 가천길재단의 설립이념인 ‘박애 봉사 애국’을 철저히 지키고 간사람, 묘비명에 그렇게만 적으면 만족입니다. 열정을 갖고 도전하는 인생은 언제나 멋지다는 것 말이에요.”
도반 동지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길녀의 바람개비 인생에서 느껴지는 것이 없는지요? 한 마디로 인생을 맹렬히 살아 왔습니다. 우리도 저마다 의미 있는 일을 찾아 바람개비 인생을 살고 싶지 않으신지요! 바람 부는 대로 바람에 실려 사는 게 아니라, 바람을 만들고 바람에 부딪히며 헤쳐 나가는 것, 한마디로 풍운아(風雲兒)! 저 또한 세상을 위해 이 한 몸 바쳐 돌개바람을 일으키는 그런 인생이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