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신종 코로나 (COVID-19) 치료제 임상시험을 진행한 종근당의 '나파벨탄'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검증에서 탈락했다. 종근당은 스스로 등록 신청을 포기한 일양약품과 달리, 혈액항응고제및 급성췌장염 치료제인 '나파벨탄(성분명 나파모스타트, нафамостат)'의 러시아 임상 2상 결과를 근거로 식약처에 코로나19 치료제로 조건부 허가를 신청했으나, 허가 당국의 검증 관문을 넘지 못했다.
식약처는 외부 전문가가 다수 포함된 '안전성·효과성 검증 자문단'(검증자문단)의 17일 자문회의 결과, "제출된 2상 임상시험 결과만으로는 이 약의 치료 효과를 인정하기 충분하지 않다"며 "추가 임상(임상 3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종근당은 일단 결과를 받아들이고 다음 임상 단계를 통해 효과를 입증하겠다는 계획이다. 증시 안팎에서는 검증자문단의 이번 결론이 '예상 밖 결과'라는 반응이 나오지만, 종근당의 성급한 등록 신청이 이같은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종근당은 러시아 임상 2상 결과만으로 일단 변경 허가를 받은 뒤, 추후에 임상 3상을 진행하는 조건부 허가를 신청한 상태였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백혈병 치료제'인 '슈펙트'(성분명 라도티닙, радотиниб)의 임상 3상을 진행한 일양약품과 비교하면, 종근당의 신청은 너무 성급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일양약품은 지난 4일 '라도티닙'의 코로나 치료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러시아 유력 생명공학 그룹(제약사)인 알팜(R-PHARM, 러시아어로는 Р-фарм 에르-팜)과 함께 현지 10여개 의료기관에서 임상 3상 시험을 실시한 결과, 기존의 표준 권장 치료보다 우수한 효능을 입증하지 못했다며 '임상 실패' 사실을 발표한 바 있다.
러시아에서 진행된 임상 시험은 그동안 '성공을 전제로 한' 제약사의 홍보 전략에 의해 투자자들에게 비현실적인 환상(?)을 심어준 측면이 적지 않다. 러시아 현지에서 관련 정보를 확인하는 게 쉽지 않다는 현실을 악용한(?) 일방적인 소문이 난무했다.
영국에서 신종 코로나(COVID 19)치료제로 '카모스타트'와 '나파모스타트' 등 2개 약물에 대한 임상시험에 들어갔다는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의 지난해 5월 19일자 기사. 종근당 언급은 없다./웹페이지 캡처
지난 2월 현재, good clinical practice network에 올라 있는 '나파모스타트 메실레이트' 임상 시험 자료. 구글 번역본/캡처
특히 종근당은 지난 1월 중순 ‘나파벨탄’에 대한 러시아 임상 2상 결과를 발표하면서 식약처에 조건부 허가 신청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임상 결과에 대한 어떤 정보도 러시아 포탈 사이트 얀덱스(yandex.ru)에서 찾을 수 없었다. 나파벨탄의 성분인 '나파모스타트'가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 임상(임상 2상, 3상)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만 확인됐다.
국산 코로나 '치료제 2호' 타이틀을 놓고 종근당과 다투는 이뮨메드의 코로나19 항체 치료제 'hzVSF-v13'에 대한 러시아 임상 결과가 현지 언론(얀덱스 검색)에 보도되는 것과는 다른 현상이었다.
이뮨메드의 'hzVSF-v13' 긍정적인 임상 시험에 관한 현지 매체 rbc의 2월 15일자 보도/캡처
**관련기사: 2월 21일자 (분석) 러시아 백신 생산, 치료제 임상 소문을 추적해보니.. 참고
일양약품의 임상 2상은 러시아의 13개 의료기관에서 환자 104명을 공개·무작위배정 방식으로 두 부류(대조군과 시험군)으로 나눠 치료 효과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코로나19 표준 치료를 받는 환자군(대조군)은 51명이고, 표준치료와 시험약(나파벨탄)을 함께 투여하는 환자군(시험군)은 53명이었다.
임상 시험 결과, "1차 유효성 평가 지표인 '임상적 개선까지의 시간' 부문에서 시험군과 대조군 간에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아 치료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게 검증단의 평가다. '나파벨탄주'를 시험군에 10일간 투여했는데, 임상 개선 시간이 시험군과 대조군 모두 11일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바이러스 검사 결과가 양성에서 음성으로 전환되는 시간도 시험군과 대조군 모두 4일로 차이가 없었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신종 코로나 전문 병실 모습/사진출처:모스크바 시 mos.ru
당연한 이야기지만, 종근당 측은 "다국가 임상 3상을 통해 (나파벨탄의) 효능을 입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식약처도 "나파벨탄주의 3상 임상시험 계획을 충실히 설계해 진행되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종근당의 임상 3상 결과가 나오기 전에 영국과 독일 일본 등에서 진행되는 나파모스타트의 임상 결과가 더 먼저 나올 지도 모른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17일 기준 국내 제약사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중 임상 시험을 승인받은 제품은 8개, 치료제는 14개다. 이중 사용이 허가된 백신은 없고 치료제 중에는 셀트리온이 개발한 '렉키로나주'만 사용을 승인 받았다.
식약처는 코로나 백신및 치료제의 유효성과 안전성 검증을 위해 '검증자문단'과 중앙약사심의위원회(중앙약심), 최종점검위원회에 이르는 3단계 외부 전문가의 조언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