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소나무 방정식
오새미 지음|푸른사상 시선 177|128×205×7mm|128쪽|12,000원
ISBN 979-11-308-2040-8 03810 | 2023.5.12
■ 시집 소개
인생의 서사와 서정을 씨줄과 날줄 삼아 직조해낸 시편들
오새미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소나무 방정식』이 <푸른사상 시선 177>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인생이라는 방정식을 풀기 위해 지나온 삶의 여정 속 슬픔과 그리움을 안고 세상 밖으로 나서고 있다. 내밀한 서정의 세계를 정교하게 구축한 이번 시집은 한층 더 깊어진 시적 사유와 섬세한 감각이 돋보인다.
■ 시인 소개
오새미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2018년 『시와 문화』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가로수의 수학 시간』 『곡선을 기르다』가 있다.
■ 목차
제1부
상처를 위하여 / 옹이 / 달을 세일하다 / 소나무 방정식 / 꽃샘 문양 / 국수 말아주는 여자 / 바람의 무게와 질량을 측정하는 저녁 / 햇살 덮은 연두 / 바람의 선율 / 가을볕에 깃든 슬픔 / 새들의 바느질 / 트릴의 미학 / 등대한의원 / 태평무 / 노을국
제2부
매미 / 뜨거운 냄비 / 울음병창 / 바지는 발이 없다 / 비는 추락해야 산다 / 눈물의 껍질 / 장마 끝에 피는 꽃 / 한 치 앞을 모르는 꽃잎 / 가랑비주의보 / 꼬리가 처지다 / 하늘 굼벵이 / 바람의 겨드랑이를 간질이다 / 마림바 즉흥곡 / 울음의 장례 / 사라오름
제3부
토마토는 방울방울 / 가락병창 / 풀쐐기 / 세월의 매듭은 질기다 / 계단이 앓는다 / 간절기 / 가슴은 마르지 않는다 / 부부 / 사이시옷 / 레이어드 스타일 / 눈물은 부드러워진다 / 아마릴리스 / 구름을 우린 비 / 상고대 물고기 / 2월은 숨쉰다
제4부
눈물 감옥 / 손톱이 무뎌진다 / 하모니카 / 서번트증후군 / 동굴은 입만 벌리고 산다 / 필터버블 / 결 / 눈물을 말려 향기를 만든다 / 현수막은 잠들지 않는다 / 꽃으로 잠들다 / 따뜻한 밥상 / 가장 환한 밤 / 눈물을 잠재우는 강 / 겨울은 얼지 않는다 / 충전기
작품 해설 : 시로 풀어보는 가족과 벼랑의 방정식 - 이종섶
■ '시인의 말' 중에서
잡초와 억새 무성한 묵정밭
폭설에 얼어붙은 기억들
꽃씨를 틔우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노란 숲속 두 갈래 길
된바람에 얼굴 따가웠지만
다 걸어본 후련함이 꽃망울로 부풉니다
허리 지나가는 수액은 얼음 밑에 봄의 마음
볼 수 없으나 감춰지지 않는
시의 피톨입니다
■ 추천의 글
바람의 선율에 몸을 맡기고 있는 오새미 시인의 시들은 들꽃 향을 실어 오고 연둣빛 속삭임을 들려준다. 하늘을 응시하는 이파리처럼 한들거리고, 구름을 실어 온 나비처럼 햇살을 비춘다. 차가운 눈발을 녹이는 원기를 일으키고, 문양과 설렘 같은 화음을 낸다. 바람의 무게와 질량을 측정하는 저녁이 오면 시인은 가슴속에 담긴 상처와 슬픔과 눈물을 말려 발원지로 만들고 지나온 여정을 색칠한다. 마르지 않은 가슴을 새들의 바느질로 다독이고, 열정의 이름표를 현수막처럼 내건다. 바람이 닿은 시인의 시들은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나아가/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우”(「바람의 겨드랑이를 간질이다」)고, 마침내 무성한 눈망울의 정원을 이룬다.
― 맹문재(문학평론가, 안양대 교수)
■ 작품 세계
오새미 시인이 보여주는 참의 해답에서 수학적 숫자로 가늠이 되는 차이는 인생의 형편과 상황의 다름과 높낮이로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오답은 아니고 다만 숫자의 차이와 같은 수량적 차이일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오새미 시인의 첫 시집 제목이 『가로수의 수학 시간』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번에 세 번째 시집이 되는 『소나무 방정식』은 그 첫 시집이 구축한 시 세계의 연장선에서 더욱 정교하고 더욱 깊어진 시 세계를 보여준다. 두 번째 시집 제목이 『곡선을 기르다』여서 여기의 “곡선” 또한 수학적 “곡선”의 의미를 담보하고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동시에 “곡선”을 ‘기르는 행위 또는 삶’을 드러내는 “기르다”도 방정식을 풀어가는 인생의 그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세 번째 시집을 통해서 드러내는 오새미 시인의 시 세계는 수학적 바탕의 정교하고도 정확한 설계도 위에 인생의 서사와 서정을 씨줄과 날줄 삼아 직조해낸 가족의 서정화라고 하겠다. 수학적이면 눈물이 없이 건조할 것 같은데 오히려 그 반대다. 수학적이면서도 눈물이 많다. 눈물이 풍부하면서도 수학적인 가족 서사다.
오새미 시인의 이런 현상을 어떻게 규명하면 좋을까. 딱딱한 질감이 품은 서정. 건조한 숫자가 품은 서사. 이렇게 말하면 될까. 오새미 시인의 의지가 투영된 세 번째 시집 제목 『소나무 방정식』은, 이제 본격적으로 오새미 시인의 시 세계를 펼치기 위해 대항해의 준비를 마쳤다. 웅비의 날개를 높이 들어 올리는 순간을 맞이했다. 그 힘찬 날갯짓으로 날아가 앉을 다음 시집의 확장성이 어떻게 구현되어 우리 앞에 나타날까. 그날은 가족이라는 대상을 시의 미적분과 접목해 형상화함으로, 한 차원 높은 시 세계의 미지성을 열어 보여주는 날이 되지 않을까.
― 이종섶(시인, 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소나무 방정식
벼랑 끝에 매달린 소나무 한 그루
어쩌다 저 낭떠러지에 터를 잡았을까
모진 바람도
단단한 뿌리를 흔들지 못한다
세파에 부대껴 온몸이 근육질인 남자
등이 솟고 키까지 작아
뙤약볕이 그의 일터
죽기 살기로 암벽을 붙든다
타들어가는 갈증과 씨름하고
아득한 절벽을 마주 본다
위기의 벼랑에서
짓눌리는 어깨가 무겁다
한 걸음 한 걸음 바위 속을 파고들 때마다
비상을 꿈꾸는 독수리 날개를 달고
천 길 벼랑을 맨발로
뛰어내리고 싶었을 것이다
깎아지른 절벽에서 얻은 방정식은
폭풍과 강수량이 변수
뿌리와 바위는 등식
가느다란 촉수로 움켜쥐는
그 억센 힘
아무도 끌어내릴 수가 없다
바위를 더듬어 좌표를 새기는 두 손
소나무 힘줄은 벼랑에서 나온다
바람의 무게와 질량을 측정하는 저녁
덩굴장미를 만지고 온 바람이
피에 젖은 손바닥을 보여주며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를 슬쩍 흘리는데
찔레꽃 사연이 박혀 있다
발이 묶인 바람은 붉은빛을 띠었고
날개 달린 얼굴은 하얗게
흔들리고 있었다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해
한 무리의 바람을 토해놓고
무심하게 떠나버리는 구름버스
내일의 비를 머금고 골목으로 사라진다
허공으로 귀가하는 늦은 오후
낯선 그림자들의 어깨에 걸쳐 있는
한 짐의 무게
아무도 짐작할 수가 없어
멀어지는 별빛처럼 스러지는데
가시에 찔렸던 날들의 상처는
가여운 질량을 기록해놓은 빛바랜 잎사귀
물풀처럼 떠돌다 쓰러지기만 했던
텅 빈 저녁이 쓸쓸하다
밀도 높은 하루가 쌓이고 밤은
어둠의 가시를 퇴적하다 잠든다
제 발등을 찍힌 저녁
바람의 측량사는 얼굴이 없어
가시에 찔린 표정만 날아다닌다
손톱이 무뎌진다
봉숭아 꽃잎으로 손가락 싸매면
마음이 먼저 주홍빛으로 물든다
울게 할 수 없는
무뎌진 손톱
내일을 더듬으며 살아온 발자취
채송화 피어난 우물가에서
달 보며 그리던 온실
바람 따라 지나온 여정을 색칠한다
수많은 것들을 주무르며
빗물에 목을 축이다
햇살에 너울거리면
더욱 단단해진다
슬플 때 자라는
손톱 한 그루 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