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라크르는 원본을 모방한 복제, 나아가 복제가 아닌 원본이 된 복제이다.
시뮬라크르의 발생 형식은 다음과 같다.
1. 원본에 대한 모방-2. 원본과의 연결성 파괴-3. 원본과 관련이 없는 또 다른
원본으로 변화-1. 원본에 대한 모방.....
시뮬라크르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미키마우스'이다.
미키마우스는 '쥐'라는 원본을 1. 모방하여 만들어진 캐릭터이다. 그런데 2. '쥐'라는
원본과의 관계를 끊고 (더 이상 쥐에게 종속되지 않으며) 3. '미키 마우스'라는 하나의
독립된 또 다른 원본으로 분리된것이다.
이 미키 마우스라는 원본을 또다시 복제하여 1. 짝퉁 중국산 미키 마우스가 생기는
과정이 반복되는것 처럼, 시뮬라크르는 시뮬라크르를 복제하여 원본이 될수도
있다.
미키 마우스는 쥐를 복제하여 만들어졌으나, 쥐가 아니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이미지이나, 절대로 허상이 아니다. 미키 마우스는 현실 동물이 아닐뿐,
캐릭터 산업, 애니메이션, 아이들의 상상력, 완구 산업등 방대한 분야에 실제로
존재하는 원본이 된것이다.
이렇게, 원본을 복제하여 나온 가상의 이미지가, 그 원본과의 관계를 끊고
자신 스스로 생명력을 갖춘 또다른 원본이 되는 과정을 '시뮬라시옹'이라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원본을 '시뮬라크르'라고 한다.
[출처]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작성자 세계정복
장 보드리야르
장 보드리야르가 1982년에 체계화시킨 철학 용어. 사전적 정의는 원본으로 부터
복제되어 나온 또 다른 원본이다.
흔히들 시뮬라크르라고 많이 쓰며, 시뮬라크라는 이것의 복수형, 시뮬라시옹은
시뮬라크르의 동사형이다.
시뮬라크르에 대한 전반적 이해 없이 현대 철학을 이해하는것은 불가능하다.
비단 현대 철학 뿐만이 아니다. 시뮬라크르는 장 보드리야르에 의해 20세기 말엽에
구체화 되었지만, 사실 그 작용에 관한 논의는 플라톤때 부터 이루어져 오고 있었다.
현대 뿐만이 아니라, 서구 철학, 동양 철학의 모든 역사에서 시뮬라크르는 유의하다.
시뮬라크르는 원본을 모방한 복제, 나아가 복제가 아닌 원본이 된 복제이다.
시뮬라크르의 발생 형식은 다음과 같다.
1. 원본에 대한 모방-2. 원본과의 연결성 파괴-3. 원본과 관련이 없는 또 다른
원본으로 변화-1. 원본에 대한 모방.....
시뮬라크르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미키마우스'이다.
미키마우스는 '쥐'라는 원본을 1. 모방하여 만들어진 캐릭터이다. 그런데 2. '쥐'라는
원본과의 관계를 끊고 (더 이상 쥐에게 종속되지 않으며) 3. '미키 마우스'라는 하나의
독립된 또 다른 원본으로 분리된것이다.
이 미키 마우스라는 원본을 또다시 복제하여 1. 짝퉁 중국산 미키 마우스가 생기는
과정이 반복되는것 처럼, 시뮬라크르는 시뮬라크르를 복제하여 원본이 될수도
있다.
미키 마우스는 쥐를 복제하여 만들어졌으나, 쥐가 아니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이미지이나, 절대로 허상이 아니다. 미키 마우스는 현실 동물이 아닐뿐,
캐릭터 산업, 애니메이션, 아이들의 상상력, 완구 산업등 방대한 분야에 실제로
존재하는 원본이 된것이다.
이렇게, 원본을 복제하여 나온 가상의 이미지가, 그 원본과의 관계를 끊고
자신 스스로 생명력을 갖춘 또다른 원본이 되는 과정을 '시뮬라시옹'이라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원본을 '시뮬라크르'라고 한다.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는 만들어진 심볼이다. 따라서 그 이미지는 시장의 공산품과 같다.
이 시뮬라크르는 위에서 설명했듯이, 원본에서 복재되었지만, 그 원본보다
어떨때는 더 위력적이다. 세상의 쥐새끼들이 모조리 멸종해도, 아이들은
여전히 미키 마우스를 논할것이다.
이렇게 복재가 원본을 능가하는 현상, 복재가 복재가 아닌 원본이 되고,
복재와 원본의 차이가 사라지는 현상을 '하이퍼 리얼' 혹은 '초과 실제'라고
한다.
서구 철학에서 '시뮬라크르'라는 용어를 처음 정립하고 체계화 시킨 사람은
장 보드리야르지만, 플라톤 때부터 이에대한 논의는 이루어져 왔다.
그것을 대충 살펴 보자면,
플라톤과 시뮬라크르
플라톤은 이 세상이 이데아에 대한 복제이며, 따라서 세상은 참된 것이 아니며
진짜 세상은 '이데아'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플라톤에게 세상은 이데아라는 원본에 대한 복제, 시뮬라크르이다.
때문에 플라톤은 예술을 하찮게 여겼다. 조각상은 실제 존재하는 사람(원본)에
대한 복제의 결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리스 조각가들은 조각상을 조각할때, 머리 부분을 실제보다 크게 만든다.
그래야 사람이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 볼때, 조각상의 비례가 맞아보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이런 눈속임을 '실제 비례(원본)'를 복제한 가상의 비례일 뿐이라고
폄하했다.
이처럼, 서구 철학에서 대부분의 시뮬라크르에 대한 논의는 '부정적'이었는데,
이는 플라톤 주의의 영향이 컸으며, 이 또한 이성 중심주의, 로고스 중심주의다.
위에서 우리가 '미키 마우스'의 예시에서 본것처럼, 시뮬라크르는 '가짜'가 아니다.
그것은 진실과 구별될수 없는 또 다른 진실이다. 그 누구도 '미키 마우스'를 가짜
고 생각하지 않고, 실제로 미키 마우스는 존재한다.
이런 시뮬라크르에 대한 논의, 긍정적 논의나, 시뮬라크르가 단순한 눈속임,
혹은 가짜가 아닌 실제 진실임을 논의하는 움직임은 근현대 철학에서 나타난다.
발터 벤야민과 시뮬라크르
사실상 시뮬라크르의 작용을 가장 먼저 본격적으로 논의한 사람은 발터 벤야민이다.
그는 그의 유명한 논문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에서 시뮬라크르의 힘을
논의한 바 있다.
관련 내용은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에서 설명.
들뢰즈와 시뮬라크르
들뢰즈는 대표적인 시뮬라크르적 존재론자이다. 그는 시뮬라크르가 폭력적
위계론적 존재론을 타파할 힘이라고 말하며, 시뮬라크르를 환대 함으로써
좀더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시뮬라크르는 원본에 얽메이지 않고 무한하게 증식하는 존재, 존재들
사이를 마음대로 오가는 힘이기에, 기존에 고착화 되어있는 수목적 체계를
부수는 힘이 될수 있다.
관련 내용은 다음의 포스팅 참고.
<아바타> 해석-우니티란 토크
지난번에 블로그 지인과 대화를 하던 중에 아직도 <아바타>가 그냥 CG만 처발처발한 기술 만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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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와 시뮬라크르
데리다에게 시뮬라크르란 언어다. 언어는 절대로 의미를 잡을수 없으며
하나의 언어에는 수만가지 의미들이 미끄러지며 놀이한다.
우리는 언어가 '의미'를 잡을수 있다고 착각하며, 이 착각 자체가 하나의 시뮬라크르
로서 기능한다.
따라서 그에게 언어란 수만가지 가능성이 동시에 혼재하는 생명의 풀이고,
미래에 도래할 타자들을 환대할수도, 동시에 그것을 잡아 죽일수도 있는 이중의
칼이다.
관련 내용은 '데리다의 해체들'에서 설명.
시뮬라크르의 예시들
1. 영화
영화는 그 자체가 시뮬라크르다. 영화는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카메라로 찍은 것이다. 즉, 현실이라는 원본을, 1 카메라로 모방하고, 2 그 현실에서
독립되어 나오며, 3 하나의 작품 영화로서 새로운 원본이 된것이다.
실제 사건을 찍는 카메라는 인공 조명, 촬영 효과, 카메라의 각도등이 섞임으로
그 자체가 실제일수 없다. 이는 명백한 실제의 복제이며 가상이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카메라를 움직이는 촬영 감독의 가치관, 미술 감독의
사상, 연출 감독의 철학등이 녹아들어가는, 원본을 각자의 시각에서 재해석한
복제품, 또 다른 원본이 되는 것이다.
그 어떤 영화도, '사실적'일 수는 있어도, '사실'일 수는 없다. 카메라가 찍은 모든
장면은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는 전쟁을 찍었다 하더라도, 그 실제에 대한 복재이며
가상이자, 시뮬라크르이다.
따라서, 여기서 저번 '플라톤 주의'에서 반쯤 다루었던, CG vs 아날로그 논쟁을
다시 다룰수 있게된다.
2. CG vs 아날로그
<플라톤 주의>에서 반쯤 다루었던것 처럼, 대부분의 영화 매체들과 영화 스노비스트
들은 아날로그 촬영 방식으로 찍은 영화를 무턱대고 빨아주는 습성이 있다.
이들의 주장은 대부분 아날로그로 찍은 '실제에 가까운 영화', '진짜 영화', '현실과
똑같은 재현을 이룩한 영화'로 정리될수 있다.
그러면서 가상인 CG와 그에 대비되는 아날로그를 통해 이원 구조를 만들고,
아날로그 촬영 방식으로 찍은 영화를 CG보다 '사실적'이라면서 뛰어주는 것이다.
우선, CG와 아날로그는 구분될수 없다. CG는 아날로그를 복재하여 나온 시뮬라크르
이며, 이것은 CG가 문화계 전반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담론적 사실
외에도, CG로 만든 요소들이 아날로그보다 더 현실감 넘치게 사용되고 있음을
무시하는 것이다.
위의 물의 사진에서 보듯 컴퓨터 그래픽의 사실감은 실제 아날로그를 초월했다.
이는 영화에서 우리가 듣는 대부분의 빗소리가 실은 감자튀김 튀기는 소리라는것,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샐러리는 부수는 소리라는 것과 같은 이치다.
두번째로, 아날로그로 찍었든 CG로 찍었든, 영화 자체는 가상이며 시뮬라크르다.
놀란이 <덩케르크>를 아무리 현실적으로 찍었든, 그것은 실제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복재하여 나온 시뮬라크르이며, 이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가치관이 섞여
들어간 복재품이다.
따라서 어떤 촬영 방식으로 찍었든, <덩케르크>는 전혀 사실이지 않다. 오로지
사실적일수만 있다.
세번째로, 아날로그 촬영 방식에도 시뮬라크르는 널려 있다.
대표적으로 사진에서 보이는 독일 공군의 메셔슈미트. 영화에서 나온 메서슈미트는
도저히 공군기로서 납득이 안되는 '노란색' 도장을 하고 있는데, 이건 저시인성이
목숨과도 같았던 2차 대전의 공중전에서 설명할수 없는 부분이다.
실제 2차 대전의 메서슈미트는 노란색과 같은 시인성 높은 도장을 하지 않았다.
이는 놀란이 의도한 것으로, 관객들이 피아를 식별하기 쉽도록 의도된 장치이다.
즉, 실제 메서슈미트가 아닌,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복재한 가상의 메서슈미트이며,
이를 관객들이 '실제 메서슈미트'로 받아들이면서 시뮬라크르가 된것이다.
이 외에도, 기뢰 부설함이 침몰할 당시에는 조명과 여러 특수 효과들이 사용되어
현실감(시뮬라크르)를 더했다.
따라서 CG vs 아날로그 논쟁은 시뮬라크르의 존재 만으로도 충분히 반박되는
해묵은 논쟁일 뿐이다.
3. 뉴스 보도
뉴스 보도 또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누군가의 시선으로 다시 제정리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절대로 실제가 아니며, 하나의 만들어진 복재물이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좆중동과 한걸래가 보이는 시각차가 그것을 말해준다.
또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찍는 언론사의 카메라도, 그 언론사의 성격에 따라서
서로 다른 각도와 구도를 지니고, 그것을 방송하는 형태도 언론사마다 천차 만별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도된 뉴스 기사는 시민들의 머릿속에서 실제 사건보다 더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언론사의 성향에 따라 그것은 시민들의 촛불 집회를 이끌어
낼 수도, 태극기 집회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
즉, 뉴스 보도는 실제에 대한 복재로 만들어진 또 다른 원본, 시뮬라크르인것이다.
이는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역사는 기술하는 학파나 민족, 국가에 따라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 역사는 존재할수 없다.
조선 왕조 실록또한, 그것을 기록한 사관의 가치관, 사관의 시력, 사관의 집중력,
태도, 그날의 기분, 외부적 요소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게 따진다면, 뉴스 보도나 역사처럼, 어떠한 '사건'은 그 사건이 일어난 그 순간을
제외하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것이다.
그것을 보도하는 뉴스도, 기록하는 역사도 모조리 시뮬라크르이기 때문에, 우리는
객관성을 아무리 부르짓어도 잡을수가 없다.
따라서 잡을수 없는 객관성을 잡는것은 플라톤이 저질렀던 의미없는 행동, 로고스
중심주의일 뿐이며, 시뮬라크르를 무시하는 행동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수많은 시뮬라크르들의 작용과 그것이 사회에서 만들어
내는 담론들을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시선이다.
이 외에도 시뮬라크르는 무수히 많은 예시가 있다. 보드리야르에게는 세상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시뮬라크르'였다. 걸프전, 케네디 암살 사건, 디즈니 랜드등, 수많은
시뮬라크르들과 그에대한 담론을 모조리 검토할수는 없는 바.
몇가지 구체적인 예시와 시뮬라크르의 기능은 다음의 포스팅에서 잘 설명되어 있다.
<와치맨> 해석-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vh 예전부터 <와치맨>을 써볼까 했었는데 항상 그 방대함과 정리하기 힘든 산만한 내러티브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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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작성자 세계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