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순이와 네오

콩순이와 네오                  콩순이는 귀염둥이 강아지 이름이다. 어느 날 한동네에 사는 내 후배가 개가 새끼를 세 마리 낳았으니 한 마리 가져가라고 했다. 나는 강아지를 키울 때의 어려움은 생각하지 않은 채 불숙 강아지를 집에 데려왔다.   집에 식구가 들어왔으니 이름부터 붙여 줘야 했다. 며칠을 골똘히 생각하며 결정을 못 하고 있는데, 어느 날 아내가 ‘콩순아 이리와’ 하며 강아지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동안 궁리해도 결정 못 한 새 식구 이름을 어떻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그것도 예쁜 이름이 아닌 콩순이가 뭐람. 그러나 새 식구 이름을 두고 아내와 말다툼이나 하는 것은 나이 값을 못 하는 것 같아 내가 수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3년 동안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을 불러야했다.   강아지는 하얀 털에 밤색 얼룩이 적당히 배합된 귀여운 모습으로 무럭무럭 자랐다. 이젠 제법 짓는 소리도 우렁차고 집을 방문한 불청객에게 어름장을 놓을 줄 아는 어른 개의 모습을 갖췄다.  콩순이가 이젠 어른이 되었으니 식구와 떨어져 제 방에서 살아야 하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내가 양동시장을 뒤져서 빨간 지붕의 예쁜 집을 사다 베란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아 주었지만 제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안방의 회전의자만을 고집하는 것이다. 백가지로 수를 써 보았지만 실패했다. 이젠 그 예쁜 집을 밖에 두고 컴퓨터 앞에 놓인 회전의자가 콩순이의 집이 되고 만 것이다. 컴퓨터를 켤 때마다 콩순이에게 사정을 하여 방바닥에 내려놓고 개털을 청소한 후 의자에 앉으면 콩순이는 제 집을 빌려주기라도 한 듯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방바닥에 턱을 대고 나를 처다 보았다.  문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아내가 약국에서 퇴근하여 집에 오면 나에 대한 관심은 뒤로 미룬 채 콩순이의 식사가 우선이었다. 콩순이의 식사가 끝나면 이제 내 차례려니 하고 있으면, ‘쫘아’ 하는 샤워 소리와 함께 개의 목욕이 시작된다.   다른 집의 개는 먹다 남은 밥도 잘 먹고 사료도 잘 먹던데, 우리 콩순이는 끼니때마다 육 고기 죽 아니면 먹질 않는다. 그것도 같은 것을 두 끼만 계속 주면 고개를 획 돌리고 회전의자 위로 올라가 버린다. 식구가 온 종일 콩순이 끼니에 신경을 써야했다.  난 식구가 어쩌다 외식을 할 때도 콩순이 밥에 넣어줄 고깃덩이를 휴지에 싸서 챙겨둔 후 식사를 하곤 했다. 그리고 아빠 엄마가 다정하게 이야기라도 하면 주위를 뛰어다니며 심술을 부리고 질투를 한다. 잠을 잘 때도 회전의자에서 엄마와 아빠의 동태를 감시한다.   그런데 어느 날 식구가 또 하나 늘어난 것이다. 딸이 친구에게서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 와서 우리 앞에 내밀었다. 나와 아내는 깜짝 놀라 소스라치게 소리 지르며 당장 다시 갖다 주라고 했다.   딸이 가져온 강아지는 아메리카 코카 스파니엘로 한쪽 귀가 제 얼굴만 하고 밤색이며 꼬리는 작두로 잘라 버렸는지 흔적만 남아 있었다. 이제부터 딸의 수난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큰 마음먹고 얻어온 강아지를 돌려보내지 못하여, 학원에 출근할 때에는 친구 집에 맡기고 퇴근 때 다시 찾아와 살금살금 제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것도 수업용 가방에다 개집까지 같이 드는 짐은 한 살림이었다.   보다 못한 엄마가 딸이 강아지를 집에서 기르는 것을 허락했다. 딸은 해방이 되었지만 이제부터 누구도 상상하지 못 할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새 가족의 이름을 붙여야 했다. 지난번 콩순이 이름은 아내가 선수를 쳤지만 이번엔 내가 빼앗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나머지 당장에 이름을 지어 버렸다. 그 이름은 ‘네오’였다. 네오는 집에 오자마자 수난을 겪어서 인지  대소변을 가릴 줄 모른다. 아무리 가르쳐도 소용이 없었다. 강아지는 처음에 대소변 자리를 정해 훈련을 시켜야 하는데 엄마 아빠에게 버림받은 터라 누가 훈련을 시킬 수 가 없었다. 또 털이 무척 길어서 아무리 관리를 하여도 집안 곳곳에 빠진 털이 날아다니고 심지어 음식에까지 들어갔다. 그리고 네오가 얼마나 우렁차고 크게 짓는지 담이 큰 남자도 깜짝 놀랄만했다.   문이 열린 날이면 이웃집에서 개소리가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오는 날도 있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네오가 밥을 많이 먹기 때문에 배설도 그와 비례해서 하였다. 보통 개는 큰 것을 배설을 할 때 한자리에서 얌전하게 아이스크림 마냥 산을 만들지만 우리 네오는 집안 곳곳을 다니며 한 덩이 한 덩이 배분을 하고 다닌다. 그러니 그 뒤처리 또한 이만저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네오가 집에만 있는 것이 답답할 것 같아 차에 태워 공원에라도 가면 꼭 작은 것 큰 것을 두 번 이상 쏘아 댔다. 내가 뒤를 따라다니며 휴지로 주워 비닐봉지에 담아도 산책하는 사람들이 싫어할 것은 당연하였다.   아무리 해도 늙은 나와 아내가 감당하기 어려워서 애완견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코카스파니엘 수컷 한 마리를 무료로 가져가세요.”  애견 센터 주인은 우선 가져 와 보라고 하였다. 아내 없을 때 네오를 부리나케 차에 태워 출발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출발하고 5분쯤 지나니 네오가 토하기 시작했다. 차 카펫에 깔판도 없는데 이 일을 어찌할꼬. 참 난감했다. 난 전신주 밑에 차를 세우고 휴지를 찾아 청소를 하였으나 평소에 많이 먹는 놈이라 그 처리가 만만치 않았다.   애견센터에 도착하여 주인을 찾았다. 주인은 내키지 않은 듯 천천히 네오 곁으로 걸어오더니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안되겠습니다. 이런 잡종은 처리할 곳이 없어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네오가 튀기인 줄 그때야 알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한 시간 동안 차 속을 청소한 뒤 방에 들어와 네오를 쳐다보았다. 정말 속이 상했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네오가 물어뜯어 엉망이 된 백과사전도 쳐다보았다.   이때 콩순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아내가 약사이지만 동물의 병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적었다. 치료시기를 놓쳐 병은 악화되었다. 전남대학 수의과 병원에 입원을 시켰고 곧 수술에 들어갔다. 자궁을 들어내는 큰 수술 있었다. 가족들이 모두 수술대 옆에서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죽었다.   식구들은 마치 사람이라도 죽은 듯 울음을 멈출 줄 몰랐다. 박스에 죽은 콩순이를 넣어 차에 싣고 평소에 이 개를 아끼고 귀여워하시던 장모님 산소가 있는 구례로 갔다. 그리고 정성껏 땅을 파고 묻은 후 돌아왔다.  이제 혼자 남은 네오가 귀여움을 독차지하였다.   광주 남구 노대동에 있는 빛고을 건강 타운에 노인들의 합주반이 조직 되어있었다. 나는 이 악단의 지휘를 맡았고 아내는 피아노 반주를 한다. 그런데 연습을 하러 출발하기 직전에 아내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달려 가보니 아내의 얼굴에 피가 흐르고 있고, 아내는 엎드려 울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아프기 시작한 네오가 무슨 위험을 느꼈는지 가까이 오는 아내를 물어 버린 것이다. 아내는 연주를 할 수가 없었고 나도 지휘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토록 네오를 사랑하던 아내도 이젠 지친 듯 수용소로 보내라고 하였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수소문하여 광주 변두리에 있는 개만을 수용하는 시설로 보냈다.   그날 밤이 되었다. 잠이 오질 않았다. 뒤척이는 아내도 나와 같은 모양이었다.   하루가 지났다. 집안에 네오가 다니던 곳을 지날 때마다 자꾸만 눈물이 났다. 밥을 먹을 때도 세수를 할 때도 염치없이 눈물이 났다. 결국, 아내에게 다시 네오를 데려오자고 말하였다.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당장 외출 준비를 하고 차에 올랐다. 네오를 찾아 가까이 갔으나 시끄러운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우리를 알아보지 못했다. 어렵게 목줄을 묶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나와 아내는 이제야 잠을 곤히 잘 수 있었다.   네오가 십사 년을 살았으니 이젠 노환인 것 같았다. 어쩔 때는 주인도 알아보지 못했다. 몸이 괴로우니 누구나 물려고 하였다. 먹지도 못하고 숨을 헐떡거렸다. 수의사가 와서 보고 갔다. 이제 갈 때가 되었다고 했다. 이렇게 3일이 지났다. 의식도 없이 발만 움직이고 있었다. 괴로워하는 네오를 더는 이대로 보고 있을 수만 없었다. 편히 떠나게 해주고 싶었다. 수의사가 와서 주사를 줬다. 그리고 움직임이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