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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중국 출장 - 백두산, 연길, 용정
그린소주의 인기에 힘입어 중국시장 진출을 목적으로
시제품 3가지 - 알콜25도, 30도, 35도를 가지고
브라인드 맛 테스트를 하기 위해 연길과 용정공장에 다녀왔다.
현지인들에게 직접 음식점에서 음식과 함께 시제품을 마시게 했다.
소비자 반응은 35도 제품 외에는 물 같다는 표현을 했다.
중국 술은 40도 이상으로 저알콜 공략은 어렵겠다는 판단을 했다.
이때 백두산도 둘러보는 행운도 누렸다.
하지만 백두산(천지)도 중국과 양분되어 국경선이 갈라져 있고
부르는 이름도 장백산, 장백폭포를 불려 아쉬움이 많았다.
다행히 날씨가 맑아 천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延边朝鲜族自治州
중화인민공화국 동북 지역 지린성(吉林省)의 자치주이다.
중심지는 옌지시(延吉市)이다.
자치주의 면적은 43,474 km2, 2009년 인구는 217만 9천명이다.
이 곳은 80만명의 한국계 중국인이 거주하는 중국 최대의 조선족 거주 지역이다.
당시 연길공항에 도착하자 트럭이 비행기있는 곳으로 와서
승객과 화물을 싣고 입국장으로 간 기억이 있다.
그러나 우리일행의 짐이 도착되지 않아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자,
짐은 다른 비행기로 온다고 해서 한 참을 기다린 황당한 기억이 난다.
그리고 비행출발 시간이 몇 시간씩 지연되는 것이 다반사였던 시절이다.
안도현(중국어 간체: 安图县)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위치한 현으로,
백두산과 두만강 상류를 경계로 북한과 이웃해 있다.
인구는 21만여 명이고, 전체 인구 중 조선족 비율은 25%이다.
백두산을 방문할 때 최종적으로 거치게 되는 행정구역이기도 하다.
"천지는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 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
좋은 날씨에 보기가 정말 힘들다고 한다.
고산지대가 대체로 그렇듯, 맑은 날씨가 드물고
잠깐 좋더라도 변덕이 심해 금방금방 변하기 때문.
천지(天池)
북한 량강도 삼지연시 백두산 정상 분화구에 있는 칼데라 화구호이다.
대한민국의 주소 기준으로는 함경남도 혜산군 보천면에 속한다.
천지의 면적은 9.165 ㎢, 둘레 14.4 km이다.
평균 깊이는 213.43 m인데, 이는 서해는 물론 남해보다도 깊다.
최대 수심은 384 m인데 남쪽이 얕은 편이다.
수량(水量)은 19억 5500만 m³나 되어
백두산 천지의 물로 한반도 전체를 1cm 두께로 덮을 수 있다.
천지는 완전히 고인 호수가 아니다.
천지의 외륜산(外輪山) 북쪽 봉우리들 사이에 달문(闥門)이라는 협곡이 있는데
여기로 천지의 물이 흘러나와 비룡폭포를 거쳐
이도백하(二道白河)라는 물줄기를 이루어 송화강으로 흘러간다.
그러므로 백두산은 송화강의 발원지이다.
천지의 수량은 빗물과 지하수 등으로 유지된다.
호반의 동안(東岸)과 남쪽 송화강의 상류에서는 온천이 솟아난다.
예전에는 압록강과 두만강의 발원지로 여기기도 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압록강은 백두산 정상 부근에서 발원하지만 천지와 직접 이어지진 않고,
두만강의 발원지는 백두산 정상에서 약 30 km 남짓 떨어졌다.
중국과 북한의 국경 지대이기도 하다.
정확히는 1964년에 맺은 조중변계조약에 따라
호수의 54.5%가 북한령이고 나머지 45.5%가 중국령이다.
그러나 중국과 북한의 조약이므로 이들의 국체를 인정하지 않는
분단국가인 대만과 남한(대한민국)에서는 조중변계조약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천지 전체를 자국 영토로 여긴다.
飛龍瀑布(비룡폭포)
백두산에 있는 폭포.
천지에 담긴 물이 북쪽에 난 달문(闥門)을 통해 빠져나와 흐르다
절벽에서 떨어지면서 생긴다.
비룡폭포 외에 백두폭포(白頭瀑布), 장백폭포(長白瀑布) 등으로도 불린다.
천지에서 발원한 물이 이곳을 거쳐 중국으로 흐르는데, 이 강이 바로 송화강이다.
백두산 천지(天地)는 16개의 산봉우리가 병풍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는데,
유일하게 북쪽으로 트인 달문(闥門)을 통해 흘러나온 물은
천문봉(天文峰, 2679m)과 용문봉(龍文峰, 2595m) 사이 골짜기를 따라 1,250m를 흘러내린다.
승사하는 물의 양은 많지 않으나 가파른 계곡을 흐르는 빠른 물줄기 모양이
마치 하늘로 오르는 다리모양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비룡폭포(飛龍瀑布) 라는 아름다운 폭포를 만든다.
용정시 龍井市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있는 도시이다.
인구는 26만여 명이고, 전체 인구 중 한민족 비율이 67%에 이른다.
가곡 <선구자>로 알려진 정자 일송정이 있으며,
시인 윤동주의 고향으로 그의 무덤이 있다.
백두산 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도시 가운데로 두만강의 지류인 해란강이 흐른다.
「용정의 전설」은 ‘용정’의 지명 유래를 설명하는 지명 전설(地名傳說)이다
용왕의 셋째 아들이 우물로 솟구쳐 나와 처녀와 해로했다는 의미에서
그 우물을 '용정'으로 불렀다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옛날, 해란강 기슭에 한 처녀가 홀어미를 모시고 살았다.
처녀는 삯빨래질을 하며 홀어미를 봉양했다.
어느 해 여름, 처녀가 해란강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네 아이들이 알록달록한 뱀을 잡아 어떻게 죽일까 고민하고 있었다.
처녀는 뱀이 측은하여 동네 아이들에게 몇 푼을 주고 뱀을 사서 풀어주었다.
며칠 후, 처녀가 빨래를 하고 있는데, 그 뱀이 나타나 순식간에 청년으로 변했다.
처녀가 놀라자, 총각은 ‘저는 동해 용왕의 셋째 왕자인데
잠시 뱀으로 화하여 인간세상을 구경하다가 아이들한테 잡혔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용왕이 은혜를 갚고자 하니 용궁에 함께 가자’고 했다.
처녀는 왕자를 따라 용궁으로 들어갔다.
처녀는 용왕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두고 온 홀어미가 걱정되었다.
처녀는 용왕에게 뭍으로 보내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왕자는 용왕에게
‘처녀와 결혼하여 용궁에서 홀어미를 모시고 살고 싶다’고 했다.
용왕은 ‘인간은 용궁에서 살 수 없다’며 왕자를 타일렀다.
왕자는 처녀를 다시 뭍으로 돌려보내며,
‘100일 후 집 안 뜰의 우물로 나올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처녀는 오매불망 왕자를 기다렸다.
그러나 99일째 되던 날, 건너 마을 부자가 찾아와
‘내일까지 빚을 갚지 않으면 첩으로 맞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갔다.
처녀는 왕자를 더욱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나 100일째 되는 날, 해가 기울 때까지 왕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처녀가 우물에 몸을 던지자
그제야 왕자가 처녀를 안고 우물에서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왕자는 처녀, 홀어미와 함께 산속으로 들어가 행복하게 살았다.
이후로 사람들은 ‘용이 승천한 우물’이라는 의미에서
그 우물을 '용정(龍井)'이라 불렀다.
일송정 소나무 밑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항일의지를 불태운 회합의 장소로 쓰였다.
이것을 안 일본군은 일송정이 있던 비암산을 사격장으로 만들어
민간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사격 과녁으로 쓰고 그것도 모자라
일송정 나뭇가지에 구멍을 뚫고 약품과 후추가루를 뿌리고
나무 밑둥에 쇠못까지 박았다고 한다.
소나무는 그렇게 말라죽었는데
1980년 중국 동포들에 의해 일송정이라는 정자가 세워지면서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1991년 옛자리에 소나무를 다시 심어 복원했으나 고사했고
다시 심고 죽기를 여덟 번 반복해서 2003년 아홉 번째로 심은 나무가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어렴풋이 알고 있던 친일파들에 대한 인식이
앨범을 정리하면서 많은 공부를 했고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걸 느꼈다.
젊은 시절 선구자를 부르며 항일 투쟁의 선봉에 섰던 독립군들을 기리며
대학시절 술집에서도 즐겨불렀던 기억을 떠올리자
친일문화도 우리나라 전반에 뿌리깊이 내리고 있다는
진실을 알지 못하고 불렀던 내가 부끄럽고 참담한 느낌이다.
언제나 이 일제의 잔재를 없앨 수 있을까?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1945년 2월 16일)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시인이자 작가이다.
본관은 파평(坡平), 아호는 해환(海煥)이다.
1917년 12월 30일 동간도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다.
명동학교(明東學校)에서 수학하였고,
평양 숭실중학교(崇實中學校) 와 서울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를 졸업하였다.
연희전문학교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 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일본에 건너가 1942년 교토 도시샤 대학 (同志社大學) 에 입학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에 투옥,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7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요절하였다.
자금성(紫禁城)
베이징의 중심에 있는 명과 청 왕조의 궁궐이다.
자금성의 규모는 궁궐로는 세계 최대의 규모이다.
현재는 황실이 사라져서 중국어권에서는 주로 고궁(故宮)이라고도 불리며,
1925년 10월 고궁 박물원 故宮博物院)으로 용도가 변경되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동서로 760m, 남북으로 960m, 72만 m²의 넓이에 높이 11m, 사방 4km의 담과
800채의 건물과 일명 9999개의 방(실제로는 8707칸이라고 한다)이 배치되어 있다.
자금성은 5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중국의 정치적, 상징적 수도였다.
1406년에서 1420년까지 지어졌으며, 980개에 달하는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고,
72헥타르나 되는 면적을 차지한다.
전통적 중국 궁궐의 형식을 지니고 있으며, 동아시아 곳곳에 영향을 끼쳤다.
1961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고,
1987년 "명·청 시대의 궁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천안문 광장 (天安門廣場)
베이징의 자금성 톈안먼 앞의 광장이다.
톈안먼 광장에는 인민영웅기념비, 인민대회당,
중국국가박물관, 모주석기념당 등이 자리하고 있다.
마오쩌둥이 1949년 10월 1일에,
바로 이 곳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하였고,
지금까지도 이를 기리는 기념식이 이어져 오고 있다.
도시에 있는 광장들 중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며,
중국사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도 유서깊은 명소이다.
이번 중국여행을 정리하면서 친일파들이 얼마나 많았고
현재도 그들과 후손들에 의해
왜곡된 환경속에서 살아온 우리들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해방은 되었지만 사실 삶은 일본정신 속에 살아온 것 같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잘못도 있지만
그러한 사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살아온 우리가 부끄럽다.
이제라도 정확히 알고 아직도 활개치고 있는 친일파들과
친일문화를 제거하는데 일조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첫댓글
오늘은 중국의 일지 입니다
세잎 클로버 님의 인생 일지
참 깊게 봅니다
단막 영화 한편으로요...
대단하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