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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에 쉼표가 있습니까?
20: 8-11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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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편지지 10장에 빽빽하게 쓴 편지를 누군가에게 보냈습니다. 겉봉투에는 이런 경고문이 쓰여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이 편지를 읽는 자는 죽을 것임.” 그러나 편지를 받아본 사람은 호기심 때문에 다들 편지를 읽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편지를 다 읽자마자 읽은 사람은 죄다 죽는 것입니다.
여기서 넌센스 문제입니다. 왜 그 편지를 읽는 사람은 다 죽은 것일까요? 정답은 10장이나 빽빽하게 쓴 편지글에 쉼표가 없어 숨을 쉬지 않고 읽었기 때문입니다.
우스갯소리입니다만, 우리 인생에서 깊이 생각해 볼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인생에 쉼표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의 일터나 가정에 쉼표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도 정신없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살아가다가, 곧 지쳐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사람만이 아닙니다. 모든 자연의 이치가 쉼을 얻어야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가 있습니다. 심지어 생명이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에게도 쉼이 필요합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도자기나 그림, 조각품들에게도 쉼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 시달리다보면 본래의 아름다운 기운을 잃기 때문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을 지내셨던 최순우(崔淳雨, 1916-1984)씨는 모든 예술작품들은 일정기간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예술작품들이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예술적 가치를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프랑스 출신의 작가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 1901-1976)는 유명한 명화 모나리자의 아름답고 오묘한 미소의 비밀을 보존시키려면 석 달을 전시한 다음에는 반드시 석 달 동안의 휴식을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에 휴식이 필요 없는 피조물은 없습니다. 모든 것에 쉼과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10계명 중에 네 번째 계명입니다. 우리가 아주 잘 아는 말씀입니다.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이 말씀을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계명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이 말씀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배려이고 은혜의 조치였습니다.
특별히 요즘과 같이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 시대에 쉼과 휴식은 마치 죄악처럼 터부시 되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우리 문화에서 속도(스피드)가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판단의 기준이 되어버린 지 오래 되었습니다. 심지어 선과 악의 판단 기준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운동 경기가 속도 경쟁입니다. 오늘날 우리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것도 속도 경쟁입니다. 마치 ‘속도 전쟁’이라고 말해도 될만큼 속도를 요구하고 있고, 속도경쟁에서 패배하면 인생이 실패하는 것처럼 취급되기도 합니다. 속도가 승리의 기준이 되고, 속도가 성공의 잣대입니다.
그런 속도의 전쟁 속에서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안식과 쉼을 주는 말씀이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되는 날은 안식하는 날, 속도 경쟁에서 해방되어 안식과 쉼을 얻는 시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쉼을 얻기 위해서 입니다. 주일에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면서 영혼에 안식을 얻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예배드림 자체가 축복의 시간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예배드림의 모습 속에서 우리에게 쉼을 주십니다. 세상에서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힘겹게 살아온 우리의 삶에 안식을 주십니다. 피곤에 지친 몸이 쉼을 통해 다시금 힘을 얻게 되고, 영적인 전쟁터인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하며 살던 우리의 영혼이 쉼을 통해 하늘의 평화를 맛보는 시간이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 모두 이런 안식의 축복을 얻으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안식의 시간에 하늘의 평안으로 쉼을 얻기 위해서 전제되고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건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제외한 나머지 6일은 우리의 삶에서 힘써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6일을 힘써 일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사람만이 진정으로 안식의 기쁨을 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누구보다 힘써 일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임을 깨닫고 힘써 일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만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주부가 가정에서 가족을 위해서 일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고, 직장인이 직장에서 자기에게 부여된 일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일할 수 있도록 주어진 6일 동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하도록 주신 일터에서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안식의 날은 최고의 축복의 날이 될 수 있습니다.
엿새 동안 힘써 일했으면 제7일은 편히 쉬어야 합니다. 아주 편하게 하나님의 품 안에서 안식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지만, 오늘 우리는 주일을 안식일로 지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주일이고, 초대교회의 생일과도 같은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었던 날도 주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부터 우리 기독교는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안식일의 정신이나 오늘 우리가 지키는 주일의 정신은 같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일은 말 그대로 주님의 날이기 때문에 6일 동안 하나님께서 일하도록 주신 날에 해야 할 그런 일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안식일을 주셨고, 그 안식일에는 일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오늘 본문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우리에게 안식일을 지키라는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쉬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임의로 선별해서 따를 것이냐 말 것이냐를 선택하는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쉬어라, 안식하라’고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두 말할 필요 없이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안식일에 쉼을 얻지 못합니까? 왜 주일을 주일답게 지키지 못합니까? 많은 사람이 생계를 핑계대고 주일을 주일답게 지키지 못합니다. 생계가 걸린 문제라고 하면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주일에 일하지 않으면 굶어 죽습니까? 주일에 일하지 않으면 수입이 적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일에 장사가 더 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주일에 일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굶어 죽지 않는다면 쉬십시오. 수입이 좀 적어져서 생활에 불편함이 있다하더라도 차라리 삶에 불편을 감내하겠다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위해서 내 삶의 한 부분을 떼어 드리면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전에 섬기던 교회 옆에 조그마한 분식점을 운영하는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처음에는 주일에도 일을 했습니다. 주일에 오히려 장사가 더 잘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주일을 지키기로 하고 주일에는 하루 종일 장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수입이 줄었습니다. 그래도 주일을 지켰습니다. 더 열심히 예배드리고 주일학교에서 교사로 봉사하고, 하루 종일 기쁘게 주일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계산해보니까 주일에 일하지 않아도 주일에 일하던 때만큼 수입이 되었습니다. 주일에 가게 문을 닫으니까 금요일 토요일에 손님이 더 많아져서 주일에 일하는 것만큼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오용훈 집사님 옷가게에 가서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집사님도 처음에는 주일에도 문을 열었답니다. 주일에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오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겠다고 문을 닫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맡기고 문을 닫았더니 처음에는 손님이 적어지는 것 같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주일에 일하지 않는 것만큼 채워주셨다고 간증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주일에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 보십시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그것을 계속해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먹을 때에
도 안식일에는 만나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안식일 전날에 두 배로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해 농사를 지을 때에도 제7년째인 안식년에는 농사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안식년에 먹을 양식을 주셨습니다. 제50년째 되는 희년에도 농사를 짓지 않았습니다. 49년째가 안식년이고 50년째가 희년이기 때문에 그 때에는 연속해서 두 해를 농사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안식년에 파종하지 않고 농사를 짓지 않으면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하는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습니다. 레위기 25장에서 말씀합니다. “혹 너희 말이 우리가 만일 제 칠년에 심지도 못하고 그 산물을 거두지도 못하면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 내가 명하여 제 육년에 내 복을 너희에게 내려 그 소출을 삼년 쓰기에 족하게 할지라. 너희가 제 팔년에는 파종하려니와 묵은 곡식을 먹을 것이며 제 구년 곧 추수하기까지 묵은 곡식을 얻으리라.”(레 25:20-22)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년에 농사를 짓지 않으면 ‘무엇을 먹고 살란 말인가’ 라고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3년 먹을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걱정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주일에 장사하지 않고 일하지 않으면 수입이 적어지고 먹을 것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쉬라고 하신 날에 쉬면 하나님께서 그만큼 충분하게 채워주십니다.
우리에게 안식일을 지키라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에게 쉼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안식일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막 2:27)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것은 전적으로 우리를 위해서 입니다. 우리에게 하늘의 안식과 쉼을 얻게 하시려고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안식일에 쉼을 통해서 여러 가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건강의 회복입니다. 안식일에 쉼을 통해서 우리는 6일 동안 힘써 일하다가 소진해버린 힘을 재충전할 수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쉬어야 우리 몸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혹 우리 가운데 ‘나는 쉬지 않아도 충분히 건강을 유지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건강을 잃고 난 다음에 후회하지 말고 하나님이 쉬라고 하실 때 쉬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엿새 동안 천지창조의 대업을 이루시고 제7일에 쉬셨습니다. 하나님도 쉬셨는데 ‘나는 쉬지 않아도 돼’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자신의 체력이 하나님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교만에 빠져 있거나, 유한한 인간인 우리 자신의 체력에 대해서 너무도 무지한 사람이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너만 안식하고 너만 쉬는 것이 아니다.”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하나님은 안식일에 모든 피조물이 안식하여 하나님의 품 안에서 쉼을 얻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심지어 짐승까지도 쉬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제법 큰 회사를 운영하시는 어떤 분은 주일에 자신은 열심히 교회에 나오면서 직원들은 다 출근해서 근무하도록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내가 쉬겠다고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은 일을 부과해서도 안 되고, 나만 홀로 쉬고 다른 사람을 일하게 만들어서도 안 됩니다. 내 일터에도 쉼을 공포해야 하고, 가정에도 주일에는 휴식을 선언해야 합니다.
아무리 내일 시험이 있다 하더라도 아이들에게 주일에는 공부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6일 동안 힘써 일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학생은 6일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안식해야 할 주일에는 공부에서 해방되어 쉼을 얻고 하나님 품 안에서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사실 주일에 교회당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섬긴다는 이유로 몸이 너무 피곤해지면 안 됩니다. 안식과 쉼을 얻어야 할 주일에 오히려 피곤에 지친다면 그건 안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에는 교역자들만 조금 피곤하면 되고, 교인들은 주님 안에서 안식하며 쉼을 얻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일에 오직 한 가지에만 기쁘게 봉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몇몇 분들이 주일에 피곤에 지치도록 봉사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모든 성도들이 서로 짐을 나눠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온 교우들이 작은 일들을 서로 분담해서 기쁨으로 봉사하면 몇몇 사람이 피곤에 지치도록 봉사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손님 같은 교인이 없이 모두가 기쁨으로 섬김에 동참하여 주일을 지키는 것이 6일 동안 힘써 일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기쁘고 행복한 시간으로 보내는 그런 행복한 교회, 행복한 신앙인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세 번째 이유는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서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인 교제를 나누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안식일에 쉼을 통해서 우리는 6일 동안 힘써 일하다가 잃어버린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과 교제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기도하는 무릎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찬송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봉사와 섬김을 통해서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너무너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며 쉴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과 평안의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주일은 그런 날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쉼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의 일을 멈추는 것이다. 그러면 그 때부터 하나님만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 때 우리는 쉼을 누리고 감사하게 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고, 우리의 육체와 영혼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을 누리게 된다.”
쉼이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는 것이고,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육체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의 영혼도 새로워지고, 우리의 육체도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네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날을 거룩하게 하셨고 복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거룩하게 하셨다”는 말은 ‘다른 날과 구별하셨다’는 뜻입니다. 안식하는 날, 쉼을 얻는 날은 힘써 일해야 하는 나머지 6일과 구별된 날입니다. 오직 쉼을 위해서, 안식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구별해 놓으신 날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쉼을 위해서 구별해 놓은 안식일에 쉼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쉼을 얻는 바로 그 날을 복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열심히 일하게 하신 날을 복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쉼을 얻는 날을 더욱 복되게 하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복은 열심히 일하는 일터에서도 누릴 수 있지만, 더 큰 복은 쉼을 얻는 주일에 얻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쉬는 것을 죄악처럼 생각합니다. 쉬는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아닙니다. 쉬는 시간이 더 복된 시간이요, 쉼을 얻는 날이 더 복된 날입니다.
여러분, 십계명에 있는 다른 계명들을 어길 때에 우리는 그를 죄인이라고 부릅니다.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살인하면 그는 죄인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하셨는데 간음하면 그것도 죄입니다. “도적질하지 말라” 하셨는데 도적질하면 그것도 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인하지 않습니다. 간음하지 않습니다. 도적질하지 않습니다. 죄를 짓고 살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셨는데, 안식일에 쉼을 얻지 못하고 거룩하게 구별된 날로 지키지 못했을 때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쉼을 주시고 안식을 주시려 하는데 그것을 거절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조금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는 아닙니까?
여러분, 쉼은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쉼은 새날을 위한 창조적 능력입니다.
쉼은 하늘의 평화 속에 들어가 하늘의 기쁨을 누리는 기회입니다.
쉼은 여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해 주고 잃어버렸던 영성을 회복시켜줍니다.
쉼은 우리를 자아 중심의 교만에서 한 발 물러서서 창조주 하나님께 우리를 맡기는 것입니다.
쉼은 건강을 회복하고 관계를 회복하고 하늘의 축복을 누리를 시간입니다.
우리는 다음 주일 오후부터 2박 3일 동안 전교인 수련회를 갖게 됩니다. 저는 이번 수련회가 수고와 고생을 하는 수련회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쉼을 얻고 안식하는 기쁨의 수련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수련회를 위해서 준비하는 몇몇 손길은 힘들고 고생하겠지만, 그들의 수고와 고생을 통해서 모든 교인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 가운데 쉼을 얻는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여러분, 서커스에서 저글링을 하는 모습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여러 개의 공을 번갈아가며 공중에 띄워 여러 개를 하나도 떨어뜨리지 않는 공중 묘기입니다.
저는 우리 인생이 5개의 공을 돌리는 저글링과 같다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 손에서 공중으로 던져지는 5개의 공은 ‘가족, 건강, 친구, 일, 영혼’입니다. 그 5개는 우리 인생에 어느 것 하나도 잃어버릴 수 없는 소중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 다섯 개의 공 가운데 ‘일’이라고 하는 공은 고무공입니다. 실수로 떨어뜨리더라도 다시금 튀어 올라옵니다. 그러나 나머지 4개의 공은 고무공이 아니라 유리로 만든 유리공입니다. 바닥에 떨어뜨리면 곧 깨어지거나 상처가 납니다. 그러면 그 공은 예전처럼 회복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가족이나 건강이나 친구나 영혼’을 떨어뜨려 상처 나게 만들거나 깨어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고무공인 ‘일’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다가 유리공을 떨어뜨리는 어리석은 범하곤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 쉼표를 찍고 하나님 안에서 안식함으로 쉼을 얻는다는 것은 유리공인 ‘가족과 건강과 친구와 영혼’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일’이라고 하는 고무공을 한번씩 바닥에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 쉼표를 찍어 주셨습니다. 안식일, 안식년, 희년과 같은 쉼표를 찍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쉼표를 무시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쉼표를 무시하고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처럼 생각하고, 고무공인 일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정작 소중한 유리공들을 바닥에 떨어뜨려 깨지고 상처 나게 하지는 않았습니까?
인생에 쉼표가 분명한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축복의 자리에서 기쁨과 감사의 찬송을 부르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쉼표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찍어놓으신 쉼표에 잠깐 멈추고 서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의 복을 누리고 계십니까?
쉼표가 무시된 음악은 음악이 아닙니다. 쉼표가 없는 것은 음악이 아니라 소음입니다. 하나님이 찍어주신 쉼표에서 안식과 쉼을 얻으심으로 여러분의 인생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되는 축복이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