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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 목사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사람들이 생각하는 길과 하나님이 생각하는 길은 다릅니다. 이사야 55장 8절로 9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의 생각과 길로 가지 말고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길로 가야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해 놓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 어떤 자매님이 좌절하고 낙심해서 신앙 상담을 왔습니다. 그 사연 인즉, 약혼을 하고 행복한 결혼의 꿈을 꾸고 있었는데 약혼자가 배신하고 다른 처녀와 결혼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자매는 자존심이 상하고 좌절하고 낙심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제 인생은 이제 끝났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제가 그 자매님에게 “바울이 아시아로 가려다가 실패하고 비두니아에도 못가고 좌절하고 낙심하여 드로아에 와서 캄캄한 밤중에 엎드려 있을 때 하나님은 바울에게 마게도니아의 찬란한 꿈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당신은 그 남성하고 결혼하려던 꿈이 산산조각 나서 어둡고 캄캄한 좌절과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지만 하나님은 자매를 위해서 마게도니아인의 환상을 예비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꿈이 있습니다. 한 꿈이 깨어지면 다른 꿈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십시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다른 좋은 혼처가 생겨서 그는 결혼을 했는데 훨씬 더 행복하고 유복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귀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1.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조차 아버지의 뜻에 순복한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면서 기도할 때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가복음 14장 36절)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십자가를 걸머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아버지의 뜻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2장 27절에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처럼 육신을 가지고 오셨기 때문에 고난 당할 끔찍한 생각에 몸서리를 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 내가 온 것은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기 위해서 온 것이 목적이므로 그것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며 하나님의 뜻에 순복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순복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소유하신 절대주권자이십니다.
시편 103편 19절에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청와대에서 그 권세와 위엄으로 우리나라를 통치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권세로 만유를 통치하십니다. 시편 103편 22절에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사무엘상 2장 6절로 7절에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그 주권과 권세에 복종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거대한 일을 계획해 놓아도 하나님이 그것을 다 제하여 버리시고 아버지 뜻대로 행하면 우리의 행한 모든 일이 헛수고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됩니다.
요한계시록 1장 8절에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은 전지하십니다. 히브리서 4장 13절에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우리 생각을 통촉하시고 우리의 머리털 수까지 헤아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영원불변하십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인 의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당신의 거룩하고 영원한 뜻을 가지고 계시며 그 뜻을 이룰 수 있는 절대 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때문에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종이요, 일꾼이요, 머슴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과 똑같은 주인이 되고자 해서는 안됩니다. 종과 시종과 머슴과 일꾼은 주인이 시키는대로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 4장을 보면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다가 크게 낭패를 당한 느부갓네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니까 세상 중앙에 큰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가 높아서 하늘에 닿고 뿌리가 땅속 깊이 뻗었으며, 가지가 벌어져 세계를 덮고 나무 잎사귀가 아주 무성하고 거기에 각종 열매를 맺고 온 공중에 새들이 깃들며 그 밑에 각종 짐승들이 와서 먹을 것을 얻고 사람들이 살 곳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의 거룩한 순찰자가 내려와서 명령을 하되 ‘이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치고 잎사귀를 떨어뜨려 그 열매를 다 흩어 버리고 공중에 새들을 날려보내고 짐승들을 쫓아내라. 그리고 그 그루터기는 철과 놋줄로 동이고 들 청초 가운데 있게 하라. 그리하여 그 마음은 인생의 마음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얻어 7년 동안 이슬에 젖고 땅의 풀 가운데서 짐승으로 더불어 그 분량을 같이하리라. 그리고 그가 나중에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깨닫게 되거든 다시 회복하라’고 이야기 한 꿈을 꾸었습니다.
너무나 놀란 느부갓네살이 바벨론의 모든 박사와 점술사를 다 불러 물어도 해석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또 그들이 그 나무 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다니엘 4장 25, 26절)라고 해석하였습니다.
다니엘의 해석을 듣고 난 다음 열두달이 지난 어느날 왕이 바벨론의 왕궁을 거닐면서 그 아름답고 장엄한 바벨론 도시를 바라보고 그는 가슴을 내어 밀고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나의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느부갓네살아! 오늘 네 왕위가 너에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버림을 받아 소와 같이 풀을 먹고 7년동안 이슬을 맞으며 들에서 거하다가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깨닫는 그날에 다시 네가 정신이 회복되고 왕위가 복권되어 나라를 다스리게 되리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은 그 음성대로 되어서 7년동안 짐승과 같은 고통을 당하다가 7년만에 하나님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요, 자기는 종이요, 시종이요, 머슴이요, 일꾼인 것을 깨닫게 되자 다시 왕위가 복구된 사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신분을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십니다. 하나님만이 절대 주권자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종이요, 시종이요, 머슴이요, 일꾼인 것을 깨달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2. 선한 일이면 다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선한 일이면 다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 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아! 나는 착한 일을 하니까 하나님이 좋아하실 것이다. 내가 선한 일을 하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한 농부가 피땀 흘려 농사를 지어서 아들을 서울의 대학에서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공부는 하지 않고 자꾸 농촌에 내려와서 농부들과 함께 일꾼들과 함께 일만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너를 공부하라고 학교에 보냈는데 왜 농촌에 내려와서 고생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아버님이 농사짓는데 너무 수고하시기 때문에 마음이 안되어서 효도하고자 공부는 뒤로 하고 이렇게 고생합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때 아버지가 노발대발했습니다. “이 불효막심한 사람아, 내가 너를 공부시키려고 이렇게 농사를 지으며 고생을 하는데 공부는 안하고 농사짓는 것을 거드는 것이 효도냐?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 효도지 네가 착한 일을 한다고 효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지 아버지의 뜻이 아닌 것을 하는 것은 소용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좋은 일인줄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으나 성령이 막았습니다. 그 다음 비두니아로 가고자 하였으나 성령이 또 막았습니다. 그는 갈길이 막혀 낙심하고 좌절하여 드로아에 내려와서 캄캄한 밤중에 하나님께 엎드려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이면서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마게도냐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아시아로 가려고 했고, 비두니아로 가고자 하였습니다. 복음 전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좋은 일이라고 해서 다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좋은 일을 해야 칭찬받지 자기 생각에 좋은 일이라고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의 계획은 사람에게 있어도 그 성사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사람이 계획한다 해도 하나님이 원하지 아니하시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잠언 19장 21절에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잠언 20장 24절에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소한 일상의 계획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해야 성공합니다. 나폴레옹이 유럽을 무력으로 정복하고 소련을 침공했다가 실패하고 난 다음 그는 세인트 헬레나섬에 유배되어 52세에 쓸쓸히 죽고 말았습니다. 자기의 꿈은 장대했지만 하나님이 같이 하지 않아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히틀러는 강력한 무력을 동원하여 전 유럽을 초토화하고 지배하려 했지만 세계2차 대전을 패전하고 56세에 자살했습니다.
일본 도죠는 대동아 지배를 하고 동남아 일대를 일본의 지배하에 넣으려 했으나 2차 대전에 무조건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스탈린은 세계를 공산화하려고 했으나 74세에 급사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제하고 자기 마음대로 계획해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해서 성공한 것이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통치자시며, 지배자시며, 절대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아무리 선한 계획을 세울지라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3. 우리의 살아갈 길
우리는 항상 분수를 지키고 탐심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분수를 알고 탐심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 나가면 하나님이 우리의 갈 길을 보여 주십니다. 아담이 왜 실패했습니까? 아담은 하나님의 길을 버리고 탐욕을 가지고 자기 길로 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장 16절로 1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과 길을 버리고 선악과를 따먹으며 스스로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는 주권자가 되어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고자 하였습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처참한 파멸의 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 예수님의 승리한 생활은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는 자기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길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철저히 육신의 정욕으로 유혹해도 예수님은 넘어가지 않았고, 안목의 정욕으로 유혹해도 넘어가지 않았고, 이 세상 자랑을 가지고 유혹해도 예수님은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로마서 5장 19절에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히 하나님께 순종하되 죽기까지 순종했으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보좌 우편에 앉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구해야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4장 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생활을 하면 성령께서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로 기억나게 하시며 인도하여 주십니다.
시편 119편 50절에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곤란 중에 말씀이 위로가 되고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와 성령님의 인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예레미야 29장 11절로 13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주님께 부르짖고 주님을 찾으면 주님을 만나고 인도해 주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요한복음 14장 17절로 18절에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가시고 난 다음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은 우리를 저버리지 않고 오늘날도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 안에 와서 계십니다. 우리 안에 성령께서 지혜가 되시고 총명이 되시고 재능이 되시고 지식이 되시고 인도함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낮추고 간절히 깨어져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고하면 하나님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되고 가야 될 길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서 생활해야 됩니다. 먼저 할 것과 나중할 것을 혼돈하면 안됩니다. 나의 삶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보다 앞에 두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 즉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우리 삶 속에 먼저 두어야만 합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하나님이 책임지고 채워 주시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항상 겸허하게 자기를 낮추고 일을 행하시고 성취하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찬미하며 우리는 살아야 됩니다.
시편 139편 23절로 24절에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만한 마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
중국에 한 마부가 있었는데 하루는 마부의 아내가 보니 남편이 정승이 탄 말을 끌고 가는 데 정승은 허리를 숙인채 말을 타고 가는데 마부인 자기 남편은 배를 밀어내고 거만하게 말을 끌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녁에 돌아온 남편에게 ‘여보 정승은 허리를 굽히고 말을 타고 가는데 당신은 정승의 마부가 되었다고 거만하게 다니는데 모습이 좋지 않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부인의 말을 들은 마부는 크게 회개를 하고 그 다음부터 겸손하게 말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정승이 보니까 마부가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자네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마부는 아내의 말을 고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정승을 모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마부의 말을 듣고 감동을 받은 정승은 이 사실을 왕에게 고하고 왕은 그에게 높은 벼슬을 내렸다고 합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지만 겸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높임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현명하고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었다고 해도 하나님 뜻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를 다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노력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해 살면서 하나님께 무조건 맡기고 믿으며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25년을 기다려 많은 시련을 겪은 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체험했고, 이삭은 죽음의 체험을 통해서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야곱은 20년, 요셉은 13년, 모세는 40년이 지나서야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알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려서는 안됩니다.
시편 37편 5절로 7절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찌어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잠언 3장 5절로 6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잠언 16장 1절에는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잠언 16장 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전심으로 섬기고 아버지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며 그 앞에 엎드려 종이요, 시종이요, 머슴이요, 일꾼인 자기의 신분을 확실히 알고 하나님을 따라 가기로 결심하면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과 하나님의 인도를 따를 때 우리는 언제나 위대한 승리와 은혜와 축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기 도]
사랑이 많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자기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며, 하나님의 길 대신에 내 길을, 하나님의 생각 대신에 내 생각을 따라 살려고 하다가 낭패와 실망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지금 어느 처지에 있던지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요, 시종이요, 머슴이요, 일꾼인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는 간절한 기도를 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길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간구하며 살아가게 하옵시고 그 나라와 그 의를 항상 먼저 구하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