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
나는 헤밍웨이 작품은 좋아하지 않는다. 고등학생 때 그가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라는 바람에 '바다와 노인'을 이해하려고 세번이나 연속해서 읽은 적 있다. 세번이나 넌더리 치며 반복해서 읽었다는 뜻이다.
그의 '무기여 잘 있거라' 역시 마찬가지다. 헤밍웨이가 <Star>지(紙) 기자가 되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전선에 참여했고 기존 도덕이나 가치관을 상실하고 절망에 빠진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를 대표한다고 하지만, 재미없기는 그놈도 그놈이다.
그는 헬만헷세 같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정서를 표현한 적 없다. 투르게네프 식의 감칠맛 나는 사랑도 없다. 전매특허인 '하드보일드(HARD BOILED)'라 칭한 냉혹 간결한 문체만 있다. 어렵다.
그러나 헤밍웨이 작품도 영화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우선 감독은 영화 만들 때 경치와 풍경을 양념으로 깔고, 남녀배우를 그 속에 등장시킨다. 영화는 대중에게 팔려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라면 그 뜻을 파악할려고 생머리 굴릴 필요없다. 그냥 보면 된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가 그랬다. 우선 에바가드너와 타이론파워 두 주연 얼굴만 봐도 본전 다 뽑는다.
에바가드너가 어디 평범한 여배우인가. 눈섶만 봐도 남자를 흔들리게 하는 여자다. 가는 눈섶 뒤꼬리가 희돌아 간 곳에 마력이 감겨있다. 그 눈섶은 '노틀담의 곱추'에 나온 지나롤로부리지다, '바람과 함게 사라지다'에 나온 에리자베스태일러의 그것과 같다.
그의 초점 잃은듯 허공 바라보는 초록빛 눈동자를 응시하면 그만 정신이 없어진다. 뇌살 그 자체다. 컴컴한 극장에서 그 쎅시한 눈 보면서 정신이 혼란해지지 않으면 그는 남자가 아니다.
상대역 타이론 파워 역시 그렇다. 그는 007씨리즈에 나온 숀코네리, '삼손과 데릴라'에 나온 빅타마추어처럼 시컴뎅이가 눈섶 끝에 붙어있다. 그는 키만 좀 작지 숀코네리다.
화면엔 1920년대 빠리 모습이 나온다. 카폐 풍경이 나오고 딱정벌레 폭스바겐 골동품 차가 사람을 싣고 다닌다. 헤밍웨이 작품이라 권투도 나오고, 투우도 나온다. 이걸 평자는 남성적인 세계라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헤밍웨이는 복 많은 남자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출연한 잉그릿드버그만과 친구다. 게리쿠퍼하고는 사냥을 같이 다닌 친구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에 출연한 에바가드너도 친구고, 타이론파워도 친구다. 세기의 미남미녀와 친구하며 허연 턱수염 척 기르고, 큐바에서 낚시하고 럼주 마시다가 끝내 권총자살로 마감하였다. 사람들은 그걸 Lost Generation의 상징이라 한다.
그 헤밍웨이가 이 작품 이름을 왜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로 했는지 몰라도 된다. 이 작품이 1차 대전 이후의 절망적 시대상황을 그렸다고 한다.
작품을 공연히 어렵게 대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냥 에바가드너만 열심히 보면 된다. 그가 장면장면 어떤 매혹적인 옷을 입고 보드카를 몇 잔 마셨고, 줄줄이 따라다니는 남자들에게 어떤 치명적인 미소를 흘리는지 그것만 보면 된다. 타이론파워 역시 그가 축소형 숀코네리 같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게 영화 보는 사람의 특권일 것이다.
태양이 다시 떠오르는 이유같은 건 만사 이야길 복잡하게 부풀려 독자 애먹이길 좋아하는 문인들한테 맡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