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승소했지만, 휠체어 이용자 차별은 여전
장애인 화장실, 주차장 등 편의시설 요건 못 갖춰
시행령 개정, 예산 배정 등 현실적 방안 이어져야
이승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이 조사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사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지난 27일 서울 이룸센터에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과 함께 진행한 지역사회 공중이용시설 접근권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장추련은 지난 8월부터 전국 17개 시도의 7개 업종을 대상으로 50m² 이하의 소규모 사업장 1,000곳을 직접 방문해 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 업종에는 장추련이 소송을 진행했던 투썸플레이스(카페), GS25(편의점)와 함께 동네 약국, 식당, 카페, 미용실, 휴대폰 판매점, 슈퍼, 무인점포가 추가적으로 포함됐다.
장추련은 지난 2020년 투썸플레이스와 GS25의 모기업인 GS리테일에 주요 공중이용시설에 대한 장애인 휠체어 이용인 접근 관련 차별구제청구소송을 진행했고, 투썸플레이스와는 조정을 마쳤으나 GS25는 조정을 거부해 장추련이 최종 승소했다.
한편 2024년 있었던 장애인 당사자 3명이 접근권이 침해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대법원은 “정부가 시행령을 제 때 고치지 않고 예외조항을 그대로 둔 것은 장애인의 접근권을 방치하고 침해한 것이며, 이는 국가의 명백한 책임”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서울시 강남구의 휴대폰 대리점 입구. 경사로가 있지만 바로 위에 턱이 있다. 사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서울 양천구의 한 장애인 화장실. 안전바와 비상벨은 설치되어있으나 화장실 내 의자가 가득 쌓여 있다. 사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경사로 없거나, 있어도 접근 어려운 소규모 사업장 77.1%
장추련이 제공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규모 사업장 1,000곳 중 771곳(77.1%)이 휠체어 이용자의 접근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조사 대상 중 573곳(57.3%)에 경사로나 승강기가 아예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설치되어 있더라도 입구 협소(16%), 무거운 문(21.4%), 단차(9.4%), 경사로 불량(18.8%) 등으로 접근이 어려웠다고 조사 참여자들은 답했다.
이승헌 장추련 사무국장은 경사로가 있음에도 이용자의 접근이 어려운 것은 “장애인편의증진법의 기준에 따라 경사로의 기울기나 안전바를 설치해야 하지만, 여전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시설이 많기 때문”이라며 “임시경사로 역시 구체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특히 이날 장추련은 “차별구제소송을 통해 조정을 거쳤던 투썸플레이스 100곳을 조사한 결과 25곳의 접근이 어려웠다”고 밝혔고, 승소한 GS25 역시 “200곳 중 절반이 넘는 124곳에 접근이 불가했다”며 “소송 결과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편의시설 의무대상인 화장실과 주차장도 요건 못 맞춰
한편 이날 보고에서는 장애인 편의시설 중 하나인 화장실과 주차장 문제도 대두되었다. 장추련의 조사에 따르면 1,000곳의 매장 중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 곳은 95곳으로 9.5%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사용 가능한 화장실은 55곳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 화장실이 있더라도 이용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화장실에 물건이 쌓여있거나, 좌변기에 휠체어 접근이 불가한 동선 문제가 20곳으로 가장 많았고, 잠겨 있는 경우가 16곳, 입구가 좁아 휠체어가 아예 들어갈 수 없는 경우가 5곳이었다. 장추련은 이 밖에도 “편의시설 요건인 안전바나 비상벨이 설치되지 않은 화장실도 20곳에 달했다”고 밝혔다.
한편 장추련은 “장애인 주차장이 있는 곳은 132곳이었으나, 법적 기준을 충족하지 않은 업장도 상당수였다”고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차 폭이 좁은 곳이 13곳, 바닥에 장애인 표시가 없는 곳이 3곳, 바닥색을 다르게 표시하지 않은 곳이 35곳, 장애인 주차장 안내 표시 간판이 없는 곳이 18곳이었다.
법률가, 구청 공무원, 건축사, 장애인권 활동가가 장애인 접근권 보장을 위해 제언하고 있다. 사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시행령 개정, 예산 배정 등 접근권 보장 위한 해법은?
보고회에서는 장추련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각계 전문가의 제언도 이어졌다. 먼저 한상원 공익인권법단체 두루 변호사는 “장애인편의증진법 시행령에 따른 면적기준 제한과 구축건물에 대한 면제를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시설물까지의 이동이 보장되지 않으면 접근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며 “접근권과 이동권 정책을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국내에서 장애인편의증진법 상 편의시설 설치 의무가 없는 50m² 이하의 소규모 시설을 지원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조례를 제정한 성동구청의 오명신 장애인복지팀장 역시 “편의시설 설치 의무 면적 기준의 단계적 폐지”와 함께 “지방정부의 자발적 사업에 대한 예산 배정 확대”와 더불어 “중앙정부 차원에서 도로법, 소방법 등 법규 간 상충을 해소하는 ‘통합 설치 지침’을 조속히 마련해 줄 것”을 제언했다.
한편 공간전문가인 이충현 브라이트건축사무소 건축사는 “여전히 현장에서는 공간 활용 효율과 디자인, 예산 등의 이유로 접근권이 후순위로 밀리는 현실이 존재한다”며 건축사가 “공간전문가로서 이용자 중심의 설계를 바탕으로 접근성을 구현해야 할 윤리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건축사는 이 날 보고회에서 초기 설계, 기존 건물 리모델링, 시공 및 감리단계에서 “실제 사용자의 이동성을 기준으로 결정해야 한다”며 “턱이 있는 거리면 도로 높이 자체를 높여 단차를 줄이는 등 도시 차원의 관점에서도 접근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이 날 보고회는 여러 전문가들의 제언에 김지혜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사무관이 답하며 마무리 되었다. 김 사무관은 “재판 결과 등을 반영하기 위해 6차 편의증진 종합계획 수립이 늦어졌다”며 “소규모 시설이나 기존 건축물 제한 등에 대해서 현재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