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쓴이 : 박영자 | 날짜 : 12-01-10 00:29 조회 : 1606 |
| | | 일곱 고개
박영자 매화가 벙그는 화창한 봄날 서른한 살이 된 조카는 신랑이 되어 결혼식을 올렸다. 하객들의 축하 속에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인 듯 신랑도 신부도 금세 피어난 꽃처럼 싱그럽고 환한 모습이다. 신랑 입장에 이어 신부가 입장하고 주례사를 시작으로 여느 결혼식과 별다르지 않게 결혼식이 진행되었다. 예물을 교환하고 신랑신부가 양가 부모님께 큰절까지 올렸다. 이제 결혼식이 곧 끝나고 퇴장하기 직전이었다. 사회자는 나란히 서있는 신랑신부를 향해 “이제 결혼식을 올린 신랑 신부는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는다. 신랑은 “잘 살겠습니다.”라고 식장이 떠나갈 듯 큰소리로 대답하여 하객들을 웃겼고 신부는 “예”라는 짧은 대답으로 의사 표시를 했다. 그러나 사회자는 정말 잘 살 수 있을지 시험을 해 보겠다며 몇 가지 질문에 합격해야만 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우선 신부에게 묻겠다며 우리 몸의 여러 명칭 중에 끝에 “지”자가 들어가는 말을 일곱 가지 말해 보라는 것이다. 시끌벅적 하던 하객들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고 신부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발개져서 어쩔 줄을 모른다. 신랑도 덩달아 얼굴이 벌게지며 싱글거리지만 무척 난처한 얼굴이다. 순간 신체의 특정부위의 이름이 번개처럼 떠올랐고 사회자의 짓궂음에 웃음이 나온다. 재골로 생긴 사회자는 싱글거리며 신부에게 어서 답을 대라고 채근했지만 신부는 여전히 곤혹스러운 얼굴이다. 사회자는 힌트를 주겠다며 엄지손가각을 치켜들고 “엄지가 있지요?”한다. 신부는 ‘아! 그거구나.’ 하는 표정으로 “ 엄지, 검지, 중지”하더니 머뭇거린다. 신랑이 무명지라고 신부에게 귀띔을 하자 “무명지”라고 답했고 신부는 또 막혀버린다. 나도 새끼손가락을 한자로 뭐라고 하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쩔쩔매는 신부가 안됐던지 사회자는 “소지” 라고 가르쳐 준다. 그런 말이 있는지 처음 듣는 소리지만 아무튼 손가락 이름으로 다섯 가지는 비교적 쉽게 맞추었다. 사회자는 다섯 가지를 무사히 통과했지만 아직 두 가지가 더 남았다고 어서 답을 하란다. 신부는 아무생각도 나지 않는다는 듯 또 다시 난처한 표정이다. 신랑도 겉으로는 벙글거리지만 민망한 얼굴이다. 나는 순간 ‘젖꼭지’ 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새신부가 어찌 젖꼭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내가 신부의 입장이 된 듯 몸이 달아서 다시 생각을 몰아가는데 나도 모르게 ‘장딴지’라고 신부를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신랑의 큰고모가 되니 가족석의 맨 앞자리에 앉아 신부가 서있는 자리에서 부모 다음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니 쉽게 전달이 된 것이다. 신부는 내 말을 받아 얼른 “장딴지”라고 쑥스러운 듯 말했다. 사회자는 “아. 장딴지가 있었군요. 잘 맞추셨습니다. 이제 한 가지가 남았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데 내 바로 앞에 부모 석에 앉아있는 동생이 “허벅지”하고 작은 소리로 혼잣말 하듯 한다. 신부는 얼른 알아듣고 “허벅지”라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답한다. 시아버지가 새 며느리에게 큰 적선을 한 셈이다. 진땀을 빼며 맞춘 일곱 가지였다. 사회자는 일곱 가지를 다 맞추었으니 지혜로운 신부는 잘 살아나갈 것이라며 치켜세우더니 다시 신랑에게 다른 주문을 한다. 신부를 안고 “나 신랑ㅇㅇ는 신부ㅇㅇ를 사랑합니다.” 하고 복창하며 앉았다 일어섰다 10번을 반복하라는 것이다. 신랑은 호기 있게 신부를 번쩍 들어 안고는 큰 소리로 복창하여 하객들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어찌 고개가 일곱 개만 되랴. 그보다 열배는 더 많은 크고 작은 고개를 만나리라. 인생의 큰 고개는 무엇일까? 이 세상에 태어남이 첫 고개일 것이며 성인으로 성장하고, 학업에 매진하고, 취업의 고달픈 고개, 결혼의 고개, 자식 낳아 기르기, 자식 결혼시키는 일, 병마와 싸우는 길, 그리고 마지막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수없이 많은 고개들이 우리 인생길에 놓여 있는 것이다. 우리네 풍습으로 아홉수라는 고개도 있다. 과학적으로는 증명되지 않은 속설이지만 29, 39, 49, 59 같이 나이의 끝에 9가 들어가는 해에는 고비라 생각하여 모든 일을 조심하고 큰일은 꺼리는 것이 우리네 풍습이다. 인생길에서 만나는 그 크고 작은 고개들을 넘을 때마다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으면 결코 넘을 수 없는 굽이굽이 험난한 길이 저들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2인 3각의 모습으로 힘을 합하여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좌절하고 실패하며 주저앉고 말 것이다. 두 사람의 새 출발에 행운을 축원하며 일곱 고개를 무난히 맞추듯 앞날도 술술 풀려 나가기를 기원해 본다. |
| | 임재문 | 12-01-10 00:53 |  | | 박영자 선생님 신부가 럭키 세븐 일곱고개를 무사히 통과 했으니 행복한 가정 꾸리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또 엉뚱한 생각을 했더랬지요. ㅎㅎㅎ 축복의 결혼식이었다 생각이 듭니다. 조카 결혼 축하드려요. 박영자 선생님도 새해 더욱 더 건강하세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
| | | | 박영자 | 12-01-11 13:06 |  | | 임재문선생님, 언제나 1등하시는 그 성의가 고맙습니다. 전에는 임병식 선생님이 1등하시더니 이제는 임재문선생님이 바톤을 받은 모양이니 임씨들이 부지런하시다는 판명은 확실히났네요. 부족한 글이지만 한 번 웃고 지나가시라고 올려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 임병문 | 12-01-10 11:51 |  | | 신년 새해에 삶의 理法을 말씀해주시는 선생님의 글은,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에게, 아니 모든 이에게 소중한 지혜와 교훈이 될 것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항시 건강하시기바랍니다. | |
| | | | 박영자 | 12-01-11 13:09 |  | | 임병문선생님, 理法이라고 하시니 좀 부끄럽네요. 뭐 제대로 된 철학도 없으면서 어쩌구 한 꼴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글 기대합니다. | |
| | | 강승택 | 12-01-10 13:12 |  | | 흔히 볼 수 있는 결혼식장의 소묘쯤으로 알았던 이야기가 많은 것을 생각케하는 의외성으로 끝을 맺는 문장구성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네요. 박선생님, 앞으로도 건필하시고 평화속에 기쁨을 누리시는 금년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 |
| | | | 박영자 | 12-01-11 13:12 |  | 강승택선생님, 충청도 사람이라고 손이 안으로 굽으시는건 아닌가요? 어쨌든 의미를 두셨다면 천만 다행이네요.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 | | 정진철 | 12-01-10 13:52 |  | ㅋㅋㅋㅋ 웃었어요 짜증만 나는 세상인데 박 선생님이 웃겨주셨어요. 그런데 약지도 있는데 또 꽁지나 귀지도 있고요 ㅎㅎㅎ; | |
| | | | 박영자 | 12-01-11 13:17 |  | 정선생님을 웃겼다면 성공이네요. 사실은 웃자고 쓴 글이니 말입니다. 새끼손가락의 명칭을 한자로 몰라서 이것 저것 찾다보니 이름도 정말 많더라고요. 이래저래 공부가 되었어요. 처음에는 세지인지 소지인지 헷갈렸지요. 꽁지, 귀지도 있었군요.ㅎㅎㅎ | |
| | | | 정진철 | 12-01-15 14:15 |  | 박선생님~~가만 생각해보니 사지(四)도 있네요 사지를 찢어 죽이느니 어쩌니~하잖아요 ㅋㅋ 전 요런글이 넘 재밌어유~~~ | |
| | | | 박영자 | 12-01-17 09:50 |  | | 정진철 선생님, 고마워유~~~~~ | |
| | | 김창식 | 12-01-10 18:39 |  | 그런 짖궂은 사회자가 있군요! 하긴 결혼식장 풍경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긴 주례도 우스개 소릴 잘하고 주례사를 빨리 끝내야 한다나요. ^^ | |
| | | | 박영자 | 12-01-11 13:21 |  | | 결혼 식장 모습이 옛날 같지 않아요. 결혼식장뿐 아니라 어디고 웃기려는 노력이 대단하지요. 유머가 없으면 먹혀들지 않는 세상이 됏으니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가끔은 분노한답니다. 고맙습니다. | |
| | | 김용순 | 12-01-10 20:23 |  | | 그런데, 제일 중요하고, 제일 쉬워 모두들 알고 있는 '지'는 결국 나오지 않네요. 박선생님 재미 있었습니다. | |
| | | 박영자 | 12-01-11 13:22 |  | 김용순 선생님, ㅎㅎ ㅎ 저는 요조숙녀라서 그런말 못해요~~~ㅎㅎㅎ 재미 있으셨다면 참말 다행입니다. | |
| | | 박원명화 | 12-01-12 10:19 |  | 참 재미 있는 결혼식 장면입니다. 선생님의 해학적 재능?을 발휘하신 것 같습니다. 결혼이든, 세미나든, 긴장감이나 세련된 진행보다는 다소 풀어진 듯, 재미를 곁들이는 것도 메마른 세상에 촉촉한 즐거움을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선생님! 아드님께서 그저 잘 노는 것이 최고라 하셨다니, 백번 지당한 말씀인듯,,.....잘 놀아 주는 것도 자식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겠지요. | |
| | | 박영자 | 12-01-13 01:54 |  | | 박원명화선생님, 딱딱하고 경직된 것 보다는 웃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더 좋은 것인지 살아가면서 더욱 깨닫는 점이지요. 잘 노는 것도 쉽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놀아 보자구요. ㅎㅎㅎ | |
| | | 최복희 | 12-01-14 22:25 |  | 제목부터 아리송한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역시 재미있는 글이군요. 긴장과 웃음바다를 이룬 결혼식장에 저도 하객으로 참여한 기분입니다.ㅎㅎㅎ 어디서나 웃음을 선사하시는 선생님이십니다.^^* | |
| | | | 박영자 | 12-01-17 09:58 |  | 최복희선생님, 반가워요. 실버넷에 좀 들어가봐야지 하면서도 게르름을 떨치지 못하네요. 오늘은 꼭 들어가 봐야지... 여전히 바쁘시지요? 요즈음은 '그저 바보가 돼야지' 가 제 모토입니다. 이렇게 실실 미친사람처럼 웃으며 한세상 보내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 | | 이진화 | 12-01-16 17:13 |  | 박영자 선생님, 조카 결혼식 장면을 유쾌하게 그려주셨네요. 언제나 가장 유머러스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박 선생님의 실력이 글에 흠뻑 묻어나옵니다. 그나저나 아이 결혼식 날을 받고 보니 인륜지대사라 그런지 여러가지로 마음이 쓰입니다. 그래서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 마음을 알게 되는가 봅니다.(^_^* | |
| | | 박영자 | 12-01-17 10:59 |  | | 이진화선생님, 자녀의 결혼식을 앞두고 계시군요. 규모있고 안목있으신 선생님이시니 얼마나 알뜰살들하시겠어요. 다 시간이 해결할 것입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결혼식이었으면 좋겠네요. 언제인가요? 축하드립니다. | |
| | | 임병식 | 12-01-18 09:37 |  | 사회자가 '지'자를 유도한 것은 짖궂게 짚히는데가 있지만 피해가는 낱말은 얼마든지 있지요. 무엇보다도 선생님이 웃음을 되찾으시것 같아 좋습니다. 새출발하는 친지의 앞날에 행복만 가득하길 빕니다. | |
| | | | 박영자 | 12-01-29 20:42 |  | | 임병회장님,,반갑습니다. 염려해주시는 마음 감사합니다. 사모님은 어떠신지요? 해마다 책을 내시는 선생님의 그 열정이 부러운데 저는 영 글이 써지질 않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 | | 김자인 | 12-01-18 17:48 |  | 박영자 선생님, 건강하시지요?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결혼식장의 전경이 눈에 선합니다. 선생님도 참 유모어가 많으시네요. 요즘은 결혼 문화가 많이 바뀌어 즐겁게 진행하는 것 같습니다. 일곱고개 잘 읽었습니다. | |
| | | 박영자 | 12-01-29 20:46 |  | 김자인 선생님, 반가워요. 게을러서 못열어본데다 컴퓨터가 고장나서 며칠동안 불통이었네요. 미안합니다. 선생님께는 늘 빚진 기분이네요. 내일 회의 때 만날 수 있을 것 같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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