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지구는 핵이나 맨틀, 지각, 대기, 해양, 자기권 등 각각의 층이 겹쳐진 구조를
하고 있다. 많은 미행성이 모여 지구가 탄생했을 때 해방된 열에너지에 의하여, 이러한
층구조를 단 수억 년 동안에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판 구조론의 탄생
1960~1970년대에 지구 표층의 수백 km에서 일어나는 지학 현상을 통일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으로서, ‘판 구조론(Plate Tectonics)’이 등장하였다. 지구는 100km
정도의 두께를 가진 10여 장의 판과 같은 단단한 암석으로 덮여 있다. 판 구조론이란,
판이 이동하여 서로 충돌하거나 멀어지는 일이 산맥이나 해구 등의 지형이나 화산
활동, 지진 등을 발생시킨다는 생각이다.
판에는 태평양 판처럼 해저에 있는 해양 판과 육지를 덮는 대륙 판이 있다. 비교적
밀도가 높고 해구에서 침강하는 해양 판은, 약 2억 년을 주기로 생성과 소멸을 되풀이
한다. 밀도가 낮은 대륙 판은 생성되고 나서 줄곧 표층을 떠돌아다닌다. 이러한 판의
주기는 약 40억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지구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해 왔다고
생각된다.
플룸이 지구를 지배한다?
1980년대에는 판보다도 깊은 곳에 있는 맨틀의 구조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맨틀의
구조나 대류 운동을 해명하는 일은 표층의 판이 무엇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는가를
밝히는 일과 연결된다. 맨틀을 아는 일은 45억 년의 지구 진화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다.
1980년대 후반에 와서 지구 내부의 3차원 구조를 밝히는 ‘지진파 토모그래피
(tomography)’라는 수법에 의하여 맨틀의 자세한 구조를 알게 되었다. 그 때까지
지구는 심부를 향해 같은 구조와 물질로 변화해 간다는 구대칭(球對稱) 모델이
제시되어 있었다. 이 구대칭 모델을 기초로 계산한 지진파 속도의 이론치와 실제로
측정한 수치의 근소한 어긋나기를 검출하여 지구의 3차원 구조를 해명하는 것이다.
이 수법에 따르면 지구는 구대칭이 아니었다. 같은 깊이라고 해도 지진파의 속도가
다르고, 그러한 구조는 핵과의 경계 부근까지 계속되었다. 지진파의 속도가 느린 곳은
맨틀의 온도가 높은 부분에, 빠른 곳은 맨틀의 온도가 낮은 부분에 해당한다.
남태평양과 아프리카의 바로 아래에는 거대한 버섯 모양의 ‘핫 플룸(hot plume)’이라고
불리는 뜨거운 맨틀의 상승류가, 아시아 대륙의 아래에는 ‘콜드 플룸(cold plume)’
이라고 불리는 침강한 차가운 판의 하강류가 존재하는 것 같다.
지진파 토모그래피의 관측을 바탕으로, 플룸이 표층의 판 부분만이 아니라 맨틀 전체의
물질 순환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플룸 구조론’이라는 새로운 설이다. 맨틀은
약 80%로 지구 내부에서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고 있다. 거대한 플룸의 활동이 지구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플룸 구조론은 지구의 층구조가
만들어진 이래 계속해서 지구의 진화를 지배해 온 것일까?
달의 기원이 지구 진화의 수수께끼를 푼다
지구상에는 40억 년 이전의 암석이 아주 조금밖에 없다. 그래서 지구 탄생부터 수억 년
동안의 정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 달은 40억 년 이전의 정보를 간직하면서
지구 주위를 도는 유일한 위성이다. 지구가 탄생한 것은 같은 시기에 형성된 달의
암석이나 운석의 연대 측정으로 45억 년 전이라고 알려져 있다. 달은 탄생할 때부터
지구 가까이에 있었던 것일까? 당시의 지구와 달의 관계가 밝혀진다면, 우리는
잃어버린 40억 년보다 이전의 지구에 대하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네 가지 달의 기원설 가운데서 가장 유력한 것이, 탄생 직후의 지구에 화성 정도의
천체가 충돌하였다는 ‘거대 충돌설’이다. 충돌에 의하여 흩어진 파편에서 달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하여 아주 상세히 조사할 수 있게 되었다.
달의 기원설에는 이 밖에 원시 지구의 일부가 잘라져 달이 되었다는 ‘친자설(親子說)’
이나, 지구에 접근해 온 천체가 지구의 중력에 의하여 붙잡히게 되었다는 ‘포획설’,
원시 지구와 동시에 달이 형성되었다는 ‘형제설’이 있다. 미국의 달 탐사기 루너
프로스펙터에 의한 중력장 관측에 따르면 철을 주성분으로 하는 달의 핵 크기는 전체
질량의 약 2%로 작았다. 이 사실은 거대 충돌에 의하여 튀어나온 암석질의 맨틀에서
달의 대부분이 형성되었다는 설을 뒷받침한다. 만일 이 거대한 충돌설이 옳다면, 달의
기원 그 자체가 지구 진화와 관계가 있다.
탄생 직후의 지구에서 거대 충돌이 일어나면, 지구의 맨틀 물질의 일부는 증발하고,
질척하게 녹은 마그마의 바다가 지구 전체에 이른다. 당시에 이미 대기나 해양이
지구를 덮고 있었다면 그들은 완전히 증발하고 말 것이다. 원시 지구의 대기나 해양에
많이 들어 있던 수소ㆍ탄소ㆍ질소ㆍ산소 등은 생명의 재료 물질이 되는 아미노산이나
핵산을 만드는 데 중요한 원소이다.
또한 물이 액체로서 바다를 형성한 일은, 생명을 탄생시켜 더욱 복잡한 생물로
진화하는 데 가장 적합한 장소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대기와 해양의 형성은 생물이
존재하기 위한 필요 조건이다. 탄생 직후의 지구를 덮친 거대 충돌은 그 후의 지구
환경과 생명의 진화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앞으로 지구 심부의 구조를 조사하거나 달을 더욱 자세히 탐사함으로써, 그 기원과
진화의 수수께끼를 풀어 줄 열쇠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