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설, 추석이 다가오면 몇 밤이나 남았는지
손꼽아 기다려졌다.
명절 치레로 사주는 옷이나 양말, 운동화를 신고싶어서였다.
그런데 언제부턴인가 명절이 다가오면 성가시기만 하다.
오래 전에 영도 철공소에서 술상무를 하다가
대학 후배들의 등쌀에 몇 달도 못 견디고 다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후배들이 소개해준 북대서양 트롤선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명절이 다가오면 수산회사 협력업체가 많은
영도바닥에서는 개도 게맛살이나 참치통조림을 물고 다닌다고 했다.
동원, 한성, 사조, 대림, 삼호, 오양 등등 수산회사에서
철공소, 페인트상, 와이어로프, 용접봉, 등등 협력업체에
수산물 가공품을 떠맡겻기 때문이다.
내가 후배들에게 떠밀려 다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것은
명절이 되면 주로 공무부에서 일하는 새까만 후배들에게
돈봉투를 돌려야 하는데 내가 요령이 없어? 서로가 골머리 아팠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배들이 '선배님, 제발 우리회사에 좀 찾아오지 마세요!" 했다.
내가 철공소 사장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월급쟁이 술상무하는데
한 건 햇다 하면 수억 원이나 되는 선박수리 일감을 줄 수도 없고
맨날 헛걸음하며 돌아다니는 꼴 보기싫어 배 타고 나가라고 트롤선을 소개해줬던 것이다.
명절에 갑 회사에 찾아다니며 많지도 않은 돈봉투 돌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며칠 전에 모 수산회사에서 과장급 직원들에게 2천만 원 상당의
추석선물세트를 떠맡긴다는 기사가 나왔다. 한 두 회사가 아닐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기념우표 우체국 직원에 강매 논란]이란 기사도 떴다.
그러자 우정본부에서 "판매독려 자제시켯다"고 했다.
우표수집가가 아니면 누가 기념우표를 사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