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을 길게 그린 선분
개울을 덮은 이끼들
파묻히는 과거와
언더페인팅
말을 하려거든
상상을 먼저 해 볼 수도 있겠지
느낌만을 기다린 채
너무 기다린 나머지
실수를 면치 못하면서
변화하는 상태를 멈추고
사멸온도를 지닌 언어로
다시 변화 안에 숨으면서
시작할 땐 아무것도 아니었으나
결국은 무한히 이어질 혼돈 앞에서
무엇을 위한 범칙인지 잊은 채
청자의 심급으로만 남아
미완성의 맹점들을 덧칠하는 것
구름 사이의 저편을 감각하거나
빛의 인용에 반응하면서
왼눈과 오른 눈을
서로 한 번씩 깜빡거려 보는 것으로
다시 이끼 속에 들어가면서
매번 좋아하는 것만을 바라볼 수 없듯이
바닥의 단계에 멈추어 있으면
이어진 잔영의 싸움 안에서만
말을 이어 갈 수 있고
여담 사이에서 이렇게 생각하겠지
더 깊은 곳이 있을 거야
눈앞에 펼쳐진 선분은 어디에 와 있나
미완성의 다반사
시간을 쏟으면
무엇이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
상실은 우리가 모험 대신 섬기는 활자
내가 깨어나는 순간에
새벽은 함께 시작되고
잊지 않는 어둠이기로 약속하면서
끈질긴 잔향의 세계가 계속돼
다시 태어나 매연 속을 헤매고 싶어도
연기를 덮치면 연기만이 흩날리지
펼쳐진 철사들 사이 형태가 풀려나지
부름을 아랑곳 않는 신체는
착각을 식별하면서
고유한 바깥으로의 몸짓을 이어 간다
그래도 소용돌이치며 지속하는 이유는
속죄와 회피를 반복하는 혀가 있기 때문이야
매운 혼돈을 마시며
고개를 끄덕일 때
이해되지 않는 호명을 통해
변명 같은 선회가 이어지고
자전적인 호수 앞
발아래에 놓인 것은
자연적인 초점과
구조화된 말의 거품뿐
자기분석은 인내심을 잃는다
너무 많은 색을
해롭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너무 핥아서 사라진 단어처럼
빈자리가 어느새 메워지면
생각의 허락을 등진 채
빈 곳을 향해 달려가는 쓰기와
딛는 곳 전체를 발설하고 마는 걷기
아침의 길고양이들을 눈빛으로 감을 대
숨 막히는 까닭은 다름 아닌
관성만으로 허사를 반복하는
간지러운 연민에 대한 예감
이제 단순히 기능에 대해 쓰려고 하자
관찰의 미적인 부분은 일그러진다
시중의 선언은 해명을 필요로 하고
낮은 곳에서 더 낮은 곳으로
덧칠에 가담하는 기호들
되살아나는 내면 앞에서
탐구는 아무도 믿지 않게 돼
남아 있는 고백은
돌아온 바닥에 닿은 접촉의 질서와
모든 것을 지켜보던 도구의 시선
[펜 소스],민음사, 2024.
카페 게시글
시사랑
언더페인팅 / 임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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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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