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서 통하는 ‘5대 길거리꽃’은?
완연한 봄기운과 함께 화단에 꽃이 등장하면서 서울 도심이 화사해졌다. 도심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꽃을 꼽으라면 팬지, 피튜니아, 마리골드, 베고니아, 제라늄을 들 수 있다. 이 다섯 가지 꽃이 도시를 장식하는 ‘5대 길거리꽃’이다. 꽃 이름을 잘 모르는 사람도 사진을 보면 “아 이게 그 꽃이야?”라고 할 정도로 길거리에 흔하다.
서울 시내 곳곳은 팬지를 선두로 5대 길거리꽃이 만발하기 시작했다. 5대 길거리꽃이 도심 화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궁금해 서울시에 문의해 보았다. “그런 통계는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화훼협회 장만형 사무총장은 “팬지 등 다섯 가지 꽃 비중이 70%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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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의 팬지./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이들 꽃의 공통점은 개화기간이 길다는 것이다. 짧게는 2~3개월, 길게는 100일 이상 핀다. 팬지는 3월부터 두세 달, 베고니아는 4월 말 심으면 늦여름까지 피어 있다. 피튜니아, 마리골드, 제라늄도 개화기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꽃들이다.
길거리꽃답게 매연과 건조한 조건 등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꽃값도 대부분 본당 300원대로 다른 꽃에 비해 싸다. 이런 장점들 때문에 우리나라만 아니라 세계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이 꽃들을 볼 수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도 시내 곳곳을 베고니아·마리골드로 장식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들 다섯 가지 꽃은 흔한 만큼 현실을 반영하는 소설이나 시, 대중가요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 중 팬지는 요즘 서울 거리에 한창이다. 광화문광장에도, 서울시청광장에도 가장 많은 꽃이 팬지다. 팬지는 저온에서도 자라기 때문에 찬바람이 가시자마자 등장하는 봄의 전령이다. 도시 화단에 팬지가 등장하면 ‘봄이 왔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
팬지는 유럽 원산의 제비꽃을 개량한 꽃이다. 여러 가지 색깔로 개량했지만, 흰색·노란색·자주색 등 3색이 기본색이라 삼색제비꽃이라고도 부른다. 꽃잎은 5개이나 잎 모양이 각각 다른 특징이 있다. 팬지(pansy)라는 이름은 프랑스어의 ‘팡세’, 즉 ‘명상’이라는 말에서 온 것인데, 꽃 모양이 명상에 잠긴 사람의 얼굴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팬지는 조세희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에서 난장이의 딸 영희를 상징하는 꽃으로 나온다. 소설에서 영희는 팬지꽃 앞에서 ‘줄 끊어진 기타’를 치는 열일곱 살 아가씨다. 난장이 가족이 아파트 입주권을 팔 때도 ‘영희는 팬지 꽃 두 송이를 따 하나는 기타에 꽂고 하나는 머리에 꽂았다’. 영희가 입주권을 되찾기 위해 집을 나갔을 때 오빠 영호는 ‘영희가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던져 넣는’ 꿈을 꾼다. 영희를 상징하는 팬지꽃이 폐수 속에 던져지는 것은 영희의 순수성이 훼손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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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튜니아.
피튜니아(petunia)도 도심 화단에 흔하다. 벌써 서울 시내 곳곳에 등장했지만, 5월쯤 더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온통 이 꽃으로 장식하는 곳이 늘어날 것이다. 나팔처럼 생긴 꽃이 피는데 주름진 꽃잎이 다섯 갈래로 갈라지며 핀다. 특히 가로등 기둥에 대형 꽃걸이를 설치해 피튜니아를 심는 경우가 많다. 줄기를 길게 늘어뜨리는 식물이어서 자랄수록 꽃줄기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려 장관을 이룬다. 남태령고개를 넘어 과천에 들어가는 길에서는 해마다 도로 양쪽 100여m를 붉은 피튜니아 꽃터널로 장식해 놓는다.
피튜니아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심고 있는 화단용 화초라고 한다. 화단나팔꽃이라고도 부르는데, 남미가 고향인 이 꽃은 원주민이 담배꽃과 닮았다고 ‘피튠(담배라는 뜻)’이라고 부른 데서 이 같은 이름을 얻었다. 줄기와 잎에 난 털에서 냄새가 좋지 않은 끈끈한 진이 나온다.
꽃 색깔은 품종에 따라 다른데, 우리나라에서는 분홍색·흰색·보라색 품종을 많이 심는다. 도심에서 걸이용 화분에 약간 꽃이 작은, 화사한 진홍색 피튜니아가 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꽃을 따로 사피니아(피튜니아를 개량한 꽃으로 육종명)라고 부르기도 한다.
피튜니아는 특히 우장춘 박사를 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알린 꽃이기도 하다. 우 박사는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육종학 연구를 시작해 1930년 겹꽃 피튜니아꽃의 육종 합성에 성공했다. 이 발견을 계기로 그는 ‘종의 합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했고 도쿄대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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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골드
마리골드(marigold)는 노란색 또는 황금색 잔물결 무늬 꽃잎이 겹겹이 펼쳐진 모양이다. 마리골드는 ‘처녀 마리아의 금색 꽃’이란 뜻으로, 서양에서 여자 이름으로 많이 쓰인다. ‘매리골드’라는 영화도 있고, 마리골드라는 이름을 가진 호텔도 세계 곳곳에 많다.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피고 독특한 향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역시 다양한 색과 품종의 꽃이 있다. 꽃이 활짝 피면 반구(半球) 형태인 프렌치마리골드는 만수국, 꽃잎의 끝이 심하게 꼬불꼬불한 아프리칸마리골드는 천수국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천수국이 만수국보다 꽃이 크다.
조용필 노래 ‘서울서울서울’에는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 계단~’이라는 가사가 있다. 베고니아(begonia)도 거의 일 년 내내 꽃이 피는 원예종이다. 특히 한여름에 물기가 바짝 마른 화단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는 베고니아를 볼 수 있다. 역시 다양한 종이 있는데, 모두 잎의 좌우가 같지 않아 비대칭인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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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고니아.
평양 시내 풍경에서 자주 나오는 북한의 붉은 ‘김정일화’도 베고니아를 개량한 꽃이다. 조총련계로 알려진 일본 원예학자가 남아메리카 원산의 베고니아를 개량해 1988년 북한에 선물한 꽃으로 알려져 있다. 베고니아는 그 발음 때문에 아이들이 쉽게 흥미를 갖는 꽃이다. 베고니아라고 이름을 알려주었더니 발음을 잘못 알아듣고, “이거 진짜 백 원이에요?”라고 묻는 아이가 있었다.
제라늄(Geranium) 역시 꽃이 화려한 데다 개화기간도 길어 화단, 건물 베란다를 장식하는 꽃이다. 원래는 남아프리카에 자생했는데, 물만 주면 잘 자라고 병충해에도 강한 장점 때문에 세계적으로 퍼졌다. 지름 3㎝ 정도의 작은 꽃이 모여 있는 형태로 꽃이 핀다.
유럽에 가면 집집마다 창문 앞에 제라늄 화분을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소설가 윤후명은 책 ‘꽃, 윤후명의 식물이야기’에서 파리 생활을 회상하면서 “파리의 겨울은 집집마다 창가에 놓인 제라늄꽃으로 내게 다가왔다.… 집집마다 창가에 놓인 겨울 제라늄꽃을 보며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숙소에 돌아와 기울이는 보졸레 누보는 제라늄꽃같이 밝은 위안이었다”고 했다.
창가에 제라늄을 놓아두는 이유는 화사한 꽃을 보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꽃을 이용해 방충 효과까지 얻기 위한 것이다. 제라늄은 모기가 싫어하는 냄새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모기를 쫓는 식물이라고 ‘구문초(驅蚊草)’라고 부르기도 한다. 모기는 제라늄 향기를 싫어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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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라늄.
우리나라에서도 베란다에 심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길거리 작은 화단에서 더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강렬한 붉은색 때문에 다른 꽃들이 많은 화단에 포인트를 줄 때 많이 심는다.
제라늄이라는 이름은 그리스어의 ‘게라노스(geranos)’에서 유래한 것으로 ‘학’을 뜻한다. 제라늄의 열매가 학의 긴 부리를 닮아 비유한 것이라고 한다.
제라늄은 서양문화에 많이 등장한다. 생텍쥐페리 소설 ‘어린왕자’에도 “어른들에게 ‘창가에는 제라늄 화분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앉아 있는 예쁜 장밋빛 벽돌집을 보았어요’ 하고 말하면, 그들은 그 집이 어떤 집인지 상상하지 못한다. 하지만 대신 ‘10만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하면, 그들은 ‘야, 정말 멋진 집을 보았구나’ 하며 감탄했다”라는 대목이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ET’의 마지막 장면에서 소년이 우주로 떠나는 ET에게 선물하는 작은 화분에 심어져 있던 꽃도 제라늄이다.
이들 5대 길거리 꽃들을 심으면 도시가 금방 화사해지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고급스러운 분위기와는 약간 거리가 있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가 필요할 때는 다른 꽃들을 심는 경우가 많다.
꽃에 대해서 알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근교 산이라도 가서 초봄 야생화를 만나면 좋겠지만 우선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부터 눈여겨보는 것은 어떨까. ‘5대 도시 길거리꽃’만 잘 기억해도 도심을 지날때 느낌이 전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