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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는 길/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인간은 혼자가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어떤 사람과 어떻게 함께
하느냐에 따라
우리 생활의 내용과
의미가 달라진다.
가끔 인간은 홀로
되고 싶을 때가 있다.
매일 부대끼는 사람들에게서
자유롭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홀로 되면 며칠이
못되어 외로움을 느끼고
함께 사는 생활이 그리워진다.
나는 청장년 목회자일 때 일 년에
두 번씩 기도원에 들어가곤 했는데,
복잡하고 바쁜 생활을 멈추고
기도원에 들어가면 첫날은
조용하고 한가하여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둘째 날부터는
외로움을 느껴 집에 빨리
가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함께 사는 생활이 복잡하고
지겨우면 한 사흘만 따로
지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그립고 다시
보고 싶을 것이다.
인간은 함께 살도록
지음 받았다.
새 학기가 되어 아이들이
학교에서 새 반에서
새 선생님과 새 친구들을 만난다.
아이들이 새학기를 시작하여
새로 만난 선생님과 친구들을
이야기할 때면 재미있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여,
귀 기울여 듣게 된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들은
‘갱에이지’라는 시기를
지나는데, 이때 형성하는
인간관계 경험이 평생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청소년들도 또래집단의
친구관계가 모든 생활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하다.
애들이나 어른이나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은 보기에 좋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동떨어져 있는
아이를 보는 어른들의
마음은 좋지 않다.
따돌림 당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학교를
옮기는 아이들도 가끔 있고,
동네나 아파트에서도
이웃과 잘 어울리지 못해
힘들어 하다가 이사
가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매일 사람과 부대
끼며 사람 속에서 산다.
그러나 사실은 함께 하는
삶이 아니고 각자 자기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데이빗 리이스만은
‘군중 속에 고독’이란
표현으로 현대인의
개인주의를 묘사하였다.
각자 ‘my way'를 간다.
절대 함께 가려고
하지 않는다.
함께 살아야 하면서도
함께 사는 것을
잘하지 못하는 것,
여기에 우리의
고독과 비애가 있다.
가정에서도 함께 살면 잘 산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가
각자 자기 꿈을 꾸고
자기의 길을 따로 가고
있으면 행복할 수 없다.
우리는 가끔 신앙생활은
사회생활과는 달라서
함께 어울리는 것보다
홀로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하나님과 내가 어떻게
만나느냐가 우리 신앙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여긴다.
다른 사람과 어떻게 지내느냐
하는 것은 우리 신앙에서는
두 번째로 중요한 문제요,
부록과도 같은 것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신앙생활도
홀로 가는 길이 아니고
함께 가는 길이다.
모두가 자기 길을 바쁘게
가고 있기에 고독하고
우울한 세상에서,
함께 가는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그 길로 인도
하는 것이 신앙이다.
신앙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 홀로 있는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가는
길을 발견하는 것이다.
범죄한 아담 이후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
으로부터 쫓겨나 있다.
이것이 죄악과 고독이
지배하는 인간의 현실이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십자가
에서 문을 열어 놓으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면 소망과 기쁨이 있다.
또한 신앙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은 우리 손을 이끌어
다른 사람과 함께 하도록
도와주신다.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하시면서, 너희도 이웃과
함께 하라고 가르치신다.
어떤 서기관이 주님께
‘무엇이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입니까?’
물었을 때, 주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하고
사람과 함께 하라
하시는 말씀이다.
어린 나이에 부인을 잘 만나
결혼해서 함께 함으로
팔자가 펴진 사람이 있다.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을 들어보았는가?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가난한 유대인 가정
에서 태어났다.
머리가 너무 좋아서
아버지가 이 아들을
유대교 신학교에 보내
랍비를 시키려했다.
유대인들은 제일 머리 좋은
아들을 랍비로 만들려는
의식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로스차일드가
신학교에 다니는 동안
부모님이 모두
천연두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그는 신학교 3학년 때
어쩔 수 없이 중단하게 된다.
로스차일드는 그때부터
장사꾼이 되었다.
신학교 2학년까지 배운
모세오경과 탈무드를 가지고
장사하는 데 적용했다고 한다.
어떻게 성경으로 장사를
성공시켰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브델라라는 17세의 여자
와 만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한다.
브델라는 20명의 자녀를 낳았고,
가정에 충실하며 남편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들은 장사를 하면서도
한번도 안식일을 어기지 않고,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말씀대로 살았다.
성실하게 부지런히 일했다.
이런 가정을 확실하게 지킨
것이 브델라이고,
로스차일드가 마음껏
날개를 펼치도록 도와주었다.
20명의 자녀들 중에
10명이 죽었다. 그 일이
그에게 너무나 큰
상처가 되었는데,
그때도 아내 브델라는
의연하게 로스차일드와
함께 가정을 지켰다.
그들은 아들 다섯, 딸
다섯을 데리고 살았다.
그 결과 로스차일드 가문은
300년 동안 세계 최고의
부자 반열에 들게 된다.
이 유대인 부자 한 명 때문에
2천 년 동안 나라를 잃어버린
이스라엘이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이라는
땅덩어리를 다 사서
나라를 독립시켰다.
그 돈을 모두 로스차일드가 냈다.
한 사람이 어리지만 믿음
좋은 여자를 만나 가정
을 함께 이루어 잘 사니까,
엄청난 부자가 되어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게 되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며,
사람과 함께 하는 개인과
가정은 위대한 일을 이룬다.
로스차일드 브델라 부부!
그런 함께 하는 삶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하늘 뜻을 이 땅
위에 이루어간다.
개인 개인이 훌륭하고
유능해야 하겠지만,
그보다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사람과 사람이 함께 할 때
위대한 일이 이뤄진다.
신앙도 함께 가는 길이다!
함께 하는 가정을 이루고,
함께 하는 사회를 이루며,
함께 하는 나라를 이루어
갈 때에 하나님 뜻이 이뤄지는
삶을 성취할 수 있다.
하나님은 맨 처음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서 그를 돕는
짝을 만들어 주셨다(창2:18).
성경은 신앙인의 삶이
함께 가는 길임을
여러 곳에서 가르쳐준다.
오늘의 본문은 인생이 함께
가는 길임을 잘 보여준다.
표준새번역 성경으로
9절부터 읽어보겠다.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낫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할 때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한 사람이 자기의
동무를 일으켜 줄 수 있다.
그러나 혼자 가다가 넘어지면,
딱하게도 일으켜줄 사람이 없다.
또 둘이 누우면 따뜻하지만,
혼자라면 어찌 따뜻하겠는가?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혼자보다는 둘이 낫다.
인생은 함께 가는 길이다.
절대 혼자서는 바로 설
수 없고 행복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첫째로, 함께 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는다.
혼자 해서 열을 한다면
둘이 하면 스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서른이나 백을 할 수 있다.
왜 우리가 함께 하는가,
함께 하면 소위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 훨씬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
는 속담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여자들 집안 일 할 때
혼자하면 하기 싫고 어렵다.
그러나 아이 하나가 봐주기만
해도 할만 하다.
예전에는 부엌이 쑥
내려가 따로 있었다.
어머니들, 밥 먹고 나서
설거지 할 때 문 닫고
들어가지 말고 부엌
문 옆에 앉아있으면서
얘기 해주면 그렇게
일이 쉽다고 했다.
여러분 요즈음은
찾아보기 어려운데
예전에는 큰 삽에
끈을 두 개 매달아서
세 사람이 삽질하는
큰 삽이 있었다.
나도 군대에서 일할 때
써본 적이 있는데,
해보셨나? 그렇게
두 사람이 당겨주고
삽질을 하면 깊고
딱딱한 땅을 팔 수
있어서 능률이 세 사람이
각자 하는 것보다 훨씬
오르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슨 일이든 혼자 달려가는
것보다 조금 속도조절하여
함께 하는 게 훨씬 잘 된다.
둘째로, 넘어질 때
일으켜 줄 동무가 있다.
혼자 사는 것이 번거롭지
않고 편한 것 같아도,
고난과 역경을 만나거나
실패하면 혼자 감당하기 힘들다.
넘어질 때 일으켜 줄 동무가
있다는 것은 큰 다행이다.
성격이 철저하고 유능한 남편,
아내가 병들어 일찍 돌아갔다.
그러자 그렇게 힘들어 했는데,
병들면 제일 힘들다고 하더라.
너무 외롭고 쓸쓸해서
견딜 수 없다고.
가족은 넘어졌을 때 일으켜
주는 동무가 되어야 한다.
교인들끼리 넘어졌을 때
일으켜주어야 한다.
넘어졌을 때 말로,
행동으로 더 힘들게 하지 말고,
일으켜 세워주자.
교회에 그런 동무가 있는가?
내가 넘어졌을 때 일으켜
줄 동무가 있는가?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라!
그런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
넘어졌을 때, 더 누르거나
재를 뿌리는 사람은
친구가 아니다.
넘어졌을 때 일으켜 줄
동무를 만들어라!
셋째로, 둘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다.
사람이 함께 거하면 따뜻하다.
혼자 누우면 춥고 외롭다.
인생은 따뜻해야 한다.
썰렁하면 못 쓴다.
신앙 동료들끼리
함께 먹고 마시며
어울리는 생활로
외로움을 극복하라.
혼자 잘 믿는 척
경건한 척 하면서
신앙의 동무들끼리
잘 어울리지 못한다.
재미있게 지내려면
경건하지 못한 것처럼
정죄하는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믿음은 외로움을
좋아하지 않는다.
믿음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과 먼저 함께 하고
나가서 믿음의 친구들
과 함께 해야 맞다.
하나님 없이 자기들끼리
재미있기만 한 것은
신앙적이지 않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면서
재미가 없고 동무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성경적인 믿음이 아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재미 충만한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싸울 때에도
적에게 맞설 수 있다고 한다.
혼자 싸우면 진다.
그러나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사람은 혼자 있으면 점점
약해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함께 있으며
점점 강해진다.
장작불이 활활 타고 있어도
장작 하나를 꺼내 마당에
던져놓으면 조금 더 타다가
불이 사그라지고 연기만 난다.
그러나 젖은 장작도
활활 타는 불에 넣으면
금방 힘을 얻어
활활 타오른다.
혼자 다니지 말고
함께 다니라.
우리는 함께 다니기
위해 교회 다닌다.
죄와 싸울 때에도
혼자 싸우면 진다.
그러나 힘을 합하면
맞서서 잘 싸운다.
세상 사람들은 어울려서
나쁜 생각을 나누고
나쁜 말을 하며 나쁜
행동을 일삼아
나쁜 습관을
자기도 모르게 기른다.
열댓 살 되는 여자 아이가
가래침을 찍찍 뱉으며
“졸라, 씨” 어쩌고
하면서 지나가는 걸
보면 소름이 돋는다.
세상은 죄 짓는 데
단결하고 있다.
때로 세속은 하나가
되어 악을 도모한다.
우리 신앙인들이 죄와
싸울 때 함께 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쪽에서 떼로 덤비는데
우리는 혼자 나가면
어떻게 이길 수 있나?
함께 기도하고 함께
선한 일을 격려하며,
함께 거룩한 습관을 가지며,
함께 기도하며 나가도록
훈련하고 점검하자.
선교회와 학생회 청년회가
모이면 그런 일을 해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늘 다니셨다.
보리떡과 물고기를 먹을
때도 함께 하셨고,
병을 고치실 때도 함께 하셨으며,
풍랑에도 함께 배를 타고 계셨고,
고난을 당할 때도 제자들과
함께 하기를 원하셨다.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너희도 나와 함께
깨어 있어 기도하라” 였다.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은
거룩한 길이요, 소망의 길
이며, 사랑의 길이다.
바울의 사역도 늘 함께
하는 사역이었다.
바울은 서신마다 많은
동역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동역자’라는 말은
‘쉰에르고스’라는 말인데,
함께 힘을 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여기서‘쉰’이라는
말은 ‘함께’라는 뜻인데,
바울이 정말 즐겨 쓴 말이다.
동역자라는 말 외에도,
함께 갇힌 자,
함께 종 된 자,
함께 수고하는 자,
함께 군사 된 자,
함께 멍에를 멘 자,
함께 힘쓰는 자들-
이라는 말을
무수히 볼 수 있다.
신앙은 함께 가는 길이다.
주님과 함께, 이웃과 함께!
고독한 신앙은
완전하지 못하다.
때로 홀로 기도하거나
일할 때도 있지만,
우리는 더 많이
함께 가야 한다.
믿음의 이 길을
다할 때까지
우리는 함께 갈 것이다.
함께 갈 때 더
좋은 결과를 얻는다.
함께 갈 때 넘어져도
일으켜 줄 동무가 있다.
함께 갈 때 따뜻하다.
함께 갈 때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다.
강정규 작시의 성가
‘주님과 함께’.
‘주님과 함께 주님과
함께 걷는 길은
멀고도 가까워.
주님과 함께 함께
걷는 길은 고통도
기쁨으로 변했네.
고통을 나누며
기쁨을 나누며
주님과 함께 걸어가노라면,
나는 어느새 나는 어느
새 주님을 닮아 가.’
전라북도 순창군에
황의창이라는
청년이 집이 가난하여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공부를 더 못한 채
초등학교 소사로 일했다.
그때는 학교에서
청소나 관리일을 보는
사람을 소사라고 했다.
초등학교만 나와 학교에
취직해서 학교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정말 성실한 청년이었다.
교장선생님이 보니 이 청년이
너무 성실하고 똑똑했다.
그래서 여러 번 권했다.
“너 검정고시를 치러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라.
왜 소사만 하느냐?”
“제가 초등학교만 나왔는데
무슨 검정고시입니까?”
“아냐! 넌 할 수 있어.”
그렇게 교장선생님이
도와주고 권면해서
검정고시를 준비하였다.
여러 사람의 권유를 받아
드디어 검정고시를
치르고 합격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하다가
교감으로 진급 시험을 치르는데
전국에서 1등을 했다.
그러니 자동적으로 얼마
지나 교장이 되었다.
교장이 되어서 선생님이
몸담고 있는 학교가
문교부 지정학교가 된다.
그 학교가 바로 전북 순창군
동계면에 있는 동계
초등학교였다.
황의창 교장선생님
의 이야기인데,
여기서도 교장선생님이나
학교 선생님들의 격려
가 있었기에 그런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는 얘기이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
지지 아니하느니라.’(12절)
믿음은 주님과 함께,
믿음의 친구와
함께 가는 길이다!
외로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회개하라!
오늘부터 마음을 열고
물질과 시간을 바쳐
믿음의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여 여러분의 신앙을
주님께로 함께 나아가는
길이 되게 하라!
전도서4: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