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살리스 레인 / 안희연

[플로우]

 기지개를 켜자 손끝에

 있다,

 비처럼 쏟아지는 네가 있다

 위아래가 뒤바뀐 삶도 있다고

 뻗치고 헝클어지는 게 일이라고

 ―멀리서 보면 폭포 같지요? 당신 안에도 나 있지요?

 봉두난발 머리칼 속에 맹랑한 눈동자를 숨기고

 빤히 본다

 이것이 슬픔이라면

 나는 너를 가리고 싶어질까 다듬고 싶어질까

 머리카락에 들러붙은 껌처럼

 싹둑 잘라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할까

 하지만 이것이 환희라면

 그런대로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산타 모자를 씌워주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그런 건 만들어진 이미지

 덧씌워진 의미

 ―비를 맞을 땐 비를 맞아야지, 왜 자꾸 거울을 찾아요?

 중요한 건 기지개, 기지개

 매달려 있군요

 목을 꺾어 당신을 봅니다

 두 문장은 같은 말 같지만

 한 문장 속에선 속눈썹 하나 젖지 않고 한 문장 속에선 기

억까지 흠뻑 젖는다

 키 작은 아이가 찬장 속 곶감 단지를 발견한다면

 높이를 계산하기 전에 일단 손부터 뻗을 것이다

 아이는 튀어오른다

 곶감을 먹을 땐 곶감을 먹는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남김없이

 이미 한 손은 미래의 꿀단지 속에 집어넣고

[당근밭 걷기],문학동네,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