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되지도 않는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산에 가기도 좋아합니다.
온갖 잡기면 다 좋아한다고해야 맞을 듯합니다.
엊그제 언니가 외국에서 와서 며칠간 저의 집에 있었습니다.
시골집에 갔지요.
저는 꿏기르기를 좋아해서 야생화가 무척 많습니다.
일년내내 꽃이 지지않습니다. 계절별야생화를 다 심어 놓았습니다.
밭은 비록 조금 이지만 밭에 고추도 한 10구루, 가지 3구루, 수세미 몇구루, 호박 몇구루
심어 놓았습니다.
10구루의 고추가 늘 나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물론 말리지는 않치만 조려먹고 풋고추로 먹고 서울 올때는 따다가 이웃과도 나눕니다.
그래도 며칠후 가면 잘 자라서 가득 채워줍니다.
사진을 핸폰에서 한번에 올리고 글을 쓰자니 순서가 안맞네요.
시골에서 이리 깨순을 튀겨 먹었습니다.
지금 들깨가 한창 나올때라 아주 좋습니다.
이날은 산에 올라갔습니다.
마지막집에 아는 사람이 삽니다.
여기는 50대후반의 부부에 동물 식구가 50여마리 됩니다.
마지막집이라 산에 그냥 풀어 놓고 키웁니다.
고라니 독수리에게 가끔 잡아 먹혀서 어느날은 밭에 닭발만 몇개씩 발견하곤 한답니다.
태어난지 5일 된 강아지입니다. 9마리를 낳았다네요.
감국입니다.
이 때쯤 채취해서 덕어서 국화차를 만들면 향이 아주 좋습니다.
울동네가 옻골이라 옻나무밑에 야생화가 그득합니다.
기골이 장대한 아주 멋진 야생화입니다.
이사람은 울집입구에 작은 집에 살았습니다.
그리고는 울집에 고장난것 힘든것들을 고쳐주곤 했지요.
이런 사람이 어느날 그러니까 한 3년전의 일입니다.
우리 우물물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마운 생각에 물을 주었습니다.
우리집 우물은 지하100미터에서 펑펑 쏟아지는데
그집은 땅면적도 작지만 어느곳에서도 물이 나오질 않아 건수로
가물면 안나와서 고생을 하곤 햇답니다.
그랫더니 바로 다음해에 집을 잘 고치고 물까지 갖추고는
집을 팔고 골짜기 속으로 집을 잘 짖고 이사를 했답니다.
섭한 생각이 들었지요.
내가 몇살이냐구 묻기가 좀 쑥스러워서 무슨띠냐 물었을 때 정확히 말을 안해서 잘 몰랐습니다.
그것이 뭔 비밀이라고 사람이 좀 음흉해서 그런가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늘 저에게는 사모님사모님 하면서 잘 도와주고 상냥해서 잘 대해주었습니다
이날 언니가 물었습니다. 몇살이냐고.
그랫더니 자세히 과정을 이야기 하는데 딱하기도하고 웃읍기도하고 해서 이야기해봅니다.
자기 나이는 아버지는 잔나비띠라하고 어머니는 닭띠라 했답니다.
그럼 호적은? 60년생으로 되어있답니다. 잔나비띠는 56년생닭띠는 57년생입니다.
그러면 학교들어갈 때 한 10살에 들어갔어요?
아녀 그 때는 굵기가 고만고만하면 받아주어서 크기가 좀 되어서 들어갔답니다.
호적만 있으면 받아주어서 자기는 들어갔는데 없는 애들은 학교들어갈 때 호적을 만들었답니다.
고향이 함평 시골 산속이라 하더군요.
군대는 3년 밑이랑 다녀왔다합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셔서 자기는 자기 나이를 확인할 길이 없었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른이 되어서 고향에 갔었답니다.
이웃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고령댁이라는 아주머니가 있었답니다.
그분은 기억력도 좋고 똑똑하셨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는 자기 정확한 나이를 모르겠다고 실토를 했더니
"니는야 내딸 정숙이랑 동갑이여. 니 낳고 며칠 후 내가 정숙이를 낳았거든.
올딸이 닭띠여. 긍게 니도 닭띠제이." 해서 그후 닭띠인줄로 알고 산답니다.
그래서 실제는 닭띠인 57년 호적에는 60년 그랴서 57년부터 60년 사이의 나이에
만나는 사람은 다들 동갑이라한답니다.
나이 이야기가 나오면 늘 주위의 눈치를 보면서 '갑장이여' 그런답니다.
자기나이도 정확히 모른다는 말에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한편으론 딱하고 불쌍하기도하고 한편으로 50년대말에 그랫었나 하는 생각도 하고
귀한 아들을 낳았는데 부모님은 띠도 모른다는 것에 배를 잡고 웃기도 햇습니다.
이분이 보기는 그래도 다리놓는데만 평생을 쫒아다녀 다리놓는데 기술이 대단하여
아직도 집에서 놀면서 어디어디 유명한 다리놓은 현장에 쫒아다니며 노하우를 알려주고
일을 한다고 합니다. 중학교는 다녔다고 합니다만 사람이 똑똑하고
실생활에 유능하여 여유있게 잘 살고 있습니다.
나이가 먹으니 시골산속출신에 광야에 다리놓는데만 쫒아다녀 서울에는 도저히 못살아
처자식은 서울에 있다가 자식들은 다 커서 독립시키고 마눌과 내려와 있습니다.
나는 시골에 친척 한사람도 없는 서울사람인데
시골에 내려가면 공기 좋고 뒷산에 가면 나의 동행만 있습니다.
나만의 산이지요. 조용한 산에서 좋은 공기 실컷 마시고 숨찰때까지 걷고
집에 와서는 나의 생명같은 꽃친구들과 놀고 있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갈 때가 멀지않아 자연이 그리 좋아지는듯합니다.
서울에서 삶도 재미있고 시골에서도 재미있고
차츰 정리해서 시골로 가서 살고 싶은데 아직 서울에 재미와 미련이 마니 남아있으니
아직 젊엇나 봅니다.
이래도 한평생 저래도 한평생인데 하고픈대로 하고 살 수 있는 것도
행운과 행복인듯합니다.
첫댓글 시니 친구에게 이런사연이 있었구나
그래서 우리 모임에 자주 못 나왔구나
그래도 나는
우리의 친구 시니가 우리 모임에 자주 나오면 좋겠당 우하하하하하
사연을 주욱 읽어 내려가니 흡사
옛날 이야기 같군요
사연은 모든사람이
다 있다고 봅니다
제우스님 잘게시지요?
제우스님 댓글에 한표를....
사람은 누구나 지울 수 없는 자기만의 절절한 사연이 있게 마련이지요.
감동입니다. 설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