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가 고구마 속에서 푸른 선로를 뜯어낸다
덜컹,
늙은 선로 깊숙이 침범한 바람과 햇살이
바퀴에서 풀려난 둥근 속도에 잘려나간다
제 상념 속 로프에 걸려 비틀거리는 사내
소실점을 끌어오던 직선의 시간들이 코일처럼 감겨 둥글어진다
허수아비도 짐을 싼, 기찻길 옆 묵정밭
철거가 진행 중인 선로와 침목이 사내의 하루를 해체하고
흔들리는 코스모스 그늘을 방석처럼 깔고 앉은 아낙이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독백을 해대는, 간이역
철둑 깊숙이 녹슨 들판이 박혀있는 가난한 땅에
사내의 새파란 정수리 위로 서리 맞은 노을이 낮게 내려온다
살점이 다치지 않게 고구마를 캐는 사내
덩굴을 찾아 기우뚱 넘어가는 비탈길, 애벌레처럼
기어가는 서울행 기차 저 멀리
열차객실에서 한 아이가 고구마 칩을 먹으며 창밖을 내다본다
늦가을,
전화기 속으로 황급히 달려든 인사계 장부에 붉은 불이 켜지고
석양을 끌며 멀어지는 기차 꽁무니를 재빨리 지워버리는 터널
저 열차처럼
내일쯤은 사무실 책상에서도 누군가가 삭제될 것이고
십일월 들판은 그의 충혈 된 눈처럼 한 뼘은 더 붉을 것이다
계간 『문학과 사람』2024년 가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