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믿으라 했지 불쑥, 보리건빵 한 봉지를 내밀면서
무슨 무슨 교당이라고
큼지막한 스티커가 붙은 봉지를 유심히 들여다보았지
왜 하필 건빵인가
집에 오자마자 봉지를 뜯어 한움큼 집어삼키면서
신을 믿는 사람은 이런 걸 좋아하나봐 적당히 달고 적당
히 퍽퍽한
팍팍한
이따금 목이 멜 때마다 뒤돌아 꺽꺽거리는
가슴을 때리는 문지르는
시시로 요동하는 울음을 공들여 살피듯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두 손을가지런히 모았지
신을 믿는 사람처럼
먹먹한 속으로 기꺼이 잠기는
사람, 사람들
요새 누가 건빵을 먹어? 의심하는 사람에게는 건빵 한 봉
지 사주며
이 알쏭달쏭한 맛을 전도하고도 싶은데
참 별일이지
나는 왜 진작 믿지 않았나 건빵 같은 걸
먹지 않았나
이렇게 싼 걸 이렇게 가뜬한 걸 시리얼보다 요거트보다
삼시 세끼 꾸역꾸역 삼키는 밥보다
넉넉히 차오르는 양식을
새로 생긴 교당을
한번 찾아가보기로 했지 상한 그림자를 질질 끌고 집을
나서는데
몇 개의 캄캄한 골목을 돌고 도는데
지도에도 없는 교당을
나는 영영 찾지 못하는 게 아닐까 구겨질 대로 구겨진
길은 너무 깊고 아득해
빈 봉지를 더듬거리게 되고 맥없이 끌어다 안게 되고
죽은 엄마의 손을 붙잡는 것처럼
무언가, 뜨겁고 눅눅한
무언가,
그 속에 있고
[수옥],창비, 2024.
첫댓글 신을 믿으라 했지...
빈 봉지를......맥없이 끌어다 안고...
군대에서는 건빵을 기름에 튀겨서 바삭하게 먹었던 기억이 아련하네요.
지금 먹으라면 안 먹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