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나오기 전
연분홍색 다이얼 전화기를 빤히 쳐다봤어
나는 가끔 인테리어 소품이 되는 상상을 해
조용하고 신비한
가을날
성실이라는 단어를 상실이라고 읽는다
왜 우리는 시간을 잃어버리는 데에만 성실한 걸까
너는 도쿄의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의 킷사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케첩 묻은 앞치마를 두른
네 정체가 실은 스파이였으면 좋겠어
메론소다에 이상한 가루약을 넣었으면
아이스크림에서 우연한 쓴맛이 느껴지고
이 계절이 수상하게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
그런데 지금 나오는 노래 말이야
대만 노래지? 이 노래 부른 가수
지금은 죽었지?
음악이 배경이 될 수 있다면
생각도 배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 속에서
생각을 스파게티처럼 포크로 돌돌 감는다
그리고 우리는 스파이답게 몰래 눈빛을 주고받지
짜이찌엔...... 워시환니
우리가 지금은 살아 있어서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 죽은 사람 노래를
다 듣네
생각은 불어서
포크 끝에서 툭툭 끊어진다
이렇게라도 살아 있으면
언젠가 다시 가볼 수 있을까
신주쿠 시먼딩 킷사텐......
아이스크림이 천천히 가라앉는
메론소다의 기분
나는 통조림 체리가 싫어
그거 장식용이야
네가 말하자 다이얼 전화기가 울렸다
아주 요란하게
[샤워젤과 소다수],문학동네, 2023.
카페 게시글
시사랑
메론소다와 나폴리탄 / 고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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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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