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가 오고 까치가 가는 곳
까마귀들이 씨앗처럼 뿌려지는 곳
걸어다니는 곳마다 어둠이 찍히는 곳
비행기가 밑줄을 그으며 지나가는 곳
사방이 어둠이어서 말하는 그대로 마주보는 얼굴에 타이
핑되는 곳
날개 그림에 몸통만 밀어넣으면 천사가 되는 곳, 오래 기
다려도 날개가 펴지지 않는 곳
이곳 사람들과 손만 잡아도 어둠이 거래되는 곳
잉크를 먹고 잉크로 목욕하는 곳
눈물이 얼룩으로 번지는 곳
핼쑥해지는 곳
암암리라 써놓으면 사방이 어두워지고
밤바다가 고요한 도로 같습니다
낮엔 해안을 빙 돌아 당신에게 갔는데
이 밤엔 머뭇거리 않고 당신에게 도달하겠네요
암암리라 써놓고는
고요에 묻힐까 두렵습니다
빙하가 녹은 후에나 발견되는
고요의 흔적
단단해진 고요에 불을 지피면
고요 주변을 서성이던 소란도 함께 타고
고요의 부스러기가 날아갑니다
암암리라 써놓아서일까요
자주 촛불을 들게 되고
암암리는 창문 앞까지 환해져
밤잠을 설칩니다
일 초마다 눈을 깜빡이고, 일 초마다 줄어들면서
촛불은 어둠에 둘러싸인다는 걸 알기나 할까요
잠들기 전
머리맡 종이를 당겨
글씨 위에 글씨를 씁니다
헝클어진 생각은 봉두난발이지만
아무리 검게 칠해도 빈틈을 비집고
별이 뜹니다
아맘니, 아맘니 입술 부딪히며
암암리에는 밤새 덜 마른 생각이 반짝거립니다
[처음인 양], 문학동네,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