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재
창으로 스미는 빛이
내 눈을 감겨줘요
두꺼운 파도처럼
감당하기 힘들면서도
은은해요
당신이 그렇게
왔는데도 안 오시나 싶어
애가 타요
눈을 감고 조는 듯 환희에 빠져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빛의 스밈만을
음미해요
더 큰 신비의 이불인 빛은
존재의 어느 덩어리
어떤 모양
허연 도포 자락의 기운을 머금은 하늘이
하품을 하듯 빛을 쏟아내면
이승은 들뜨면서 안타까워져요
아버지는 그렇게 수박 빛깔 레몬 빛깔이 섞인
눈부신 빛의 얼굴로
허공을 건너 들어오셨어요
그것은 당신만은 아니었어요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와 괴테와 병승이를
재홍 아저씨와 홍성 고모와 준석이를
눈사람처럼 뭉친 둥그스름한 무리가
시간을 함께 타요
붙들 수 없지만 오셨다는 확신이
나를 기쁘게 해요
빛은 존재의
빛이라는 존재의
자체이면서 동시에
빛이라는 존재로밖에
다가올 수 없도록 존재하는
어떤 기운의 무리가 청하는
끝없는 대화의 장면들
빛의 말소리가 들릴 때
비로소 말 없는 이야기의
숨은 얼굴 눈부신 표정이
보시다시피
들리는 거죠
[빛과이름], 문학과지성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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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 성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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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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