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광환 감독은 동계훈련중 ‘부활 독수리’ 지연규와 ‘좌완 새내기’ 지승민(23)의 공이 좋다며 이들을 선발감으로 거론한 적이 있다. 이들의 공이 그만큼 좋다는 의미였겠지만 한화에 선발요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의미이기도 했을 것이다.
지승민은 아마시절 철저히 무명이었다. 97년 천안북일고 졸업 당시에는 한화에서 2차 우선지명으로 뽑을 만큼 기대주였지만 한양대 입학 후에는 1년 후배 강철민 등에게 밀려 좀처럼 등판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데뷔한 프로 무대. 지승민은 개막 두번째 경기인 6일 삼성전에서 패전 처리로 첫 등판을 하였다. 이승엽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등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일단 합격점.
그러나 8일 SK전에서는 뭇매를 맞고 프로의 매운 맛을 봐야만 했다. 팀이 16-5로 앞선 7회부터 등판, 처음 6명의 타자를 상대하는 동안 아웃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홈런 포함 3안타 3볼넷으로 4점을 내주는 수모를 당했던 것이다.
가까스로 일곱번째 타자를 좌익수 플라이로 잡고는 황급히 지연규로 교체되었다.
지승민이 다시 안정을 찾은 것은 12일 LG전. 팀이 10-2로 앞선 9회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한숨을 돌리더니 14일 해태전에서는 마침내 긴요한 순간에 투입되었다.
5-3의 접전을 벌이던 7회 세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2.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홀드를 기록했다. 마지막 한 타자를 남겨놓고 용병 누네스에게 마운드를 넘겨주는 것이 아쉬울 정도의 호투였다.
해태전의 호투로 이광환 감독의 신임을 얻은 지승민의 투구횟수는 다음 경기에서 조금 더 늘어났다.
17일 현대전에서 선발 조규수가 난조를 보이자 4회부터 마운드에 올라 3.1이닝을 무실점으로 버텼다. 안타는 단 한 개만을 맞았고 삼진은 4개를 탈취. 조규수를 신나게 두들기던 현대 타선은 4회부터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지승민의 마지막 시험무대는 21일 두산전. 팀은 5회까지 5-3으로 앞서고 있었지만 선발 이상목이 썩 좋지 않았다. 이때 이광환이 다시 찾은 것은 지승민. 한화는 지승민이 6회부터 두산 타선을 꽁꽁 묶는 동안 5점을 추가, 10-5의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지승민은 세이브를 기록.
그리고 26일. 선발 로테이션이 한 순 돌고 지승민은 팀의 제5선발로 마운드에 올랐다. 상대는 20일전 자신을 무참하게 두들겼던 SK. 하지만 이미 그때의 지승민이 아니었다.
지승민은 4회까지 SK 타선에 안타 하나 허용하지 않으며 상대 선발 김희걸과 팽팽한 투수전을 벌였다. 5회와 6회에 안타 하나씩을 맞았지만 여전히 무실점, 0-0의 균형.
그러나 여기서부터 밀리기 시작했다. SK는 김희걸에 이어 오상민-조규제-조웅천의 황금 불펜진이 출동했지만 한화에서는 지승민이 홀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지승민은 결국 7회 손차훈에게 2루타를 맞고 결승점을 내준 후 8회 다시 브리또에게 2루타를 맞고 한 점을 더 내주고 말았다.
8이닝 2실점으로 0-2 완투패. 지승민은 할 만큼은 다 했다. 이틀 연속으로 완봉으로 몰리는 팀타선이 야속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