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rigins and Overview of Bossa Nova Music - 보사 노바 음악의 기원과 개요 - 2
Antonio Carlos Jobim은 리우데자네이로의 시쥬카에서 태어났지만 얼마되지 않아 이파네마로 이주하였다. 10세경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클래식 작곡까지 익혔지만 그에게 있어서 음악은 단순한 취미였다고 한다. 대학에서는 건축학을 전공했지만 전공을 포기하고 20세경부터는 지방 나이트 클럽에서 취객을 상대로 매일밤 피아노를 연주하는 생활에 들어가게 되었다. 52년 작, 편곡가겸 지휘자인 라다메스 지나타리의 권유로 컨티넨탈 레코드사의 전속작곡가로 취임하여 작곡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소년시절부터 친했던 뉴튼 맨도사를 시작으로 빌리 브랑코,도로리스 듀란등과 공동 작곡한 곡이 인기가수들에 의해 레코딩되어 서서히 인
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 중 특히 눈에 띄는 대작은 56년 빌리 브랑코와의 공동작품인 "리오데자네이로 교향곡"이다. 15분이 넘는 이 대작은 상업적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산,태양, 바다등 3악장으로 구성된 심포닉한 조곡은 작곡가로서의 재능을 당시 음악관계자들에 크게 어필했다고 한다. 같은 해 시인 비니시우스 데 모라레스와 만나게 되는데 그는 외교관으로서 파리에 3년간 근무하던 당시 쓴 희곡 "흑인 올페"의 음악을 조빔에 의뢰한것이다. 당시 콘티넨탈에서 이적이하여 오디온 레코드사의 작편곡가겸 지휘자로서 안정된 생활을 누리던 조빔이 었지만 단순히 돈이 된다는 이유로 청을 수락 보사노바 사상 최고의 작곡.작사 콤비인 조
빔- 비니우스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3년후 59년 이 희곡으로 프랑스 영화감독 루이 말(사형대의 엘리베이터로도 유명)에 의해 영화 흑인 올페가 완성되었다. 58년 에리체티 가르도조가 조빔- 비니시우스 작품집으로 레코딩하였는데 그 중 "셰가 디 사우다지"를 녹음할 당시 조빔이 한 뮤지션을 기용할것을 제안하였다. 그가 바로 바이아 출신 조안 질베르토였다. 여기서 조빔은 다른 기타리스트와 다른 독특한 리듬을 연주했는데 이는 삼바와 칸손전통에 입각한 연주로 보사노바 의 전형은 아니었지만 "바라손"이란 리듬으로 보사노바 리듬의 원점을 제공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조빔은 오디온 레코드사와 담판하여 질베르토의 레코드 데뷰
를 실현시켰는데 이것이 58년 7월 조빔의 프로듀스로 싱글 "셰가 디 사우다지"와 "빈 본"을 녹음하였다. 같은해 11월 2번째 싱글 "데스피나도"와 "오바라라"를 녹음했는데 데스피나도의 가사중 보사노바란 단어가 최초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로써 보사노바는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조빔의 작곡 비니시우스의 작사 그리고 조안의 노래와 기타에 매료된 카를로스 리라, 로베르토 메네스칼, 나나 레온등 신인 3인방에 이어져 보사노바는 리오의 새로운 문화로 형성되어갔다. 62년 11월 조빔은 조안 질베르토,세르지오 멘데스,카를로스 리라등과 함께 도미하여 카네기홀에서 개최된 보사노바 콘써트에 출연했다. 이 공연 이전 스탄 겟츠와 챨리
버드의 앨범 "재즈 삼바"에서 첫번째곡인 데사피나도가 대히트를 기록한 바 있기에 조빔은 미국 재즈맨 사이에서의 작곡가로서의 명성은 상당하였다. 63년 조빔은 크리드 테일러의 프로듀스로 3매의 앨범녹음에 참가하게 된다. 스탄 겟츠의 "재즈 삼바 앵콜 (흑인 올페 카니발의 아침을 작곡한 루이스 폼파도 참가)", 조빔의 기타와 피아노를 전면에 등장시킨 전곡이 연주곡으로 된 "The Composers of Desafinado Plays",그리고 조안의 부인 아스트라드 질베르토가 세계적인 가수로 발돋움하게 된 앨범 "겟츠/질베르토"이다. 이리하여 조빔의 음악은 세계로 확산되게 되었고 각계에서 작곡,연주 요청이 쇄도했다. 재즈 필드의 빅 네임들과의 공연
을 예를 들면, 67년 프랭크 시나트라와의 공연작 "시나트라 & 조빔"과 77년 사라 본이 리오에서 녹음한 "아이 러브 브라질"에서 두곡을 공연하고, 80년에는 엘라 피츠제랄드가 조빔의 작품집 "엘라 싱즈 조빔"을 녹음하였다. 1990년 미국 저작권협회 BMI 발표 자료에 의하면 1990년까지 "이파네마에서 온 여인"는 약 300만회 이상 연주되어 역대 5위에 랭크되어 있다. 그외 데사피나도,원 노트 삼바, 하우 인세시티브, 웨이브, 워터 옵 마치 등은 100만회 이상 연주되는등 비영어권 출신 작곡가로는 최고의 히트곡을 보유한 인물이기도 하다.
Roberto Carlos & Caetano Veloso - Wave
(로베르토 카를로스, 카에타노 벨로소 - 웨이브)
▼
Lyrics
영어 | 영어를 구글을 이용해서 한국 어로 번역함 |
I'm gonna tell you Eyes can no longer see Things that only the heart Can understand Love is truly essential It's impossible to be happy alone The rest is sand It's all that I can't explain They are beautiful things That I have to give you Come gently With the breeze and tell me It's impossible to be happy alone The first time It was the city The second, the pier And eternity Now I already know About the wave that rose in the sea And the stars we forgot to count Love lets itself be surprised While the night comes to envelop us I'm gonna tell you | 내가 말해줄게 눈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마음만이 할 수 있는 일들 이해할 수 있다 사랑은 정말 필수입니다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다 나머지는 모래야 그게 다 내가 설명할 수 없는 일이야 아름다운 것들이에요 내가 당신에게 주어야 할 것 부드럽게 오세요 산들바람과 함께 말해요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다 처음으로 도시였어요 두 번째, 부두 그리고 영원 이제 나는 이미 알고 있어요 바다에 일어난 파도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가 세는 것을 잊어버린 별들 사랑은 스스로 놀라게 만든다 밤이 우리를 감싸는 동안 내가 말해줄게 |
1994년 조빙이 사망했을 때 그의 친구 중 한명이었던 미국의 프랭크 시나트라는 조빙에 대해 그와 "밤새 대화하며 깊은 생각을 나눴던 시간들 만큼이나 그와 함께 했던 음악적 경험들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창조적이었다"라고 술회한 바 있다. 또한 시나트라는 그의 사망에 대해 "전 세계는 가장 재능있는 음악가 중 한명을 잃었으며 내 개인적으로는 큰 친구 한명을 잃은 것"이라고 애도를 표했다. 이처럼 세계적인 음악가로 이름을 날렸던 톰 조빙의 본명은 안또니우 까를루스 브라질레이루 지 알메이다 조빙(Antônio Carlos Brasileiro de Almeida Jobim)으로 1927년, 세계 3대 미항 가운데 하나인 히우 지 자네이루(RIo de
Janeiro)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띠주까(Tijuca)구(區)에 살았으나 곧 조빙의 음악적 영감의 산실이 된 이빠네마(Ipanema)로 옮겼다. 14세가 되던 무렵 그는 뮤지컬에 종사하던 삼촌들의 영향을 받아 피아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이를 눈치챈 그의 의붓아버지가 한스 조아슁 쾰로이터(Hans Joachim Koelreuter)에게로 데려가 피아노 공부를 시작하도록 해 주었다. 이 스승은 어린 조빙에게 고전음악의 대위법과 하모니의 개념을 깨우쳐 주었으며 그 결과 조빙은 자신의 음악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드뷔시(Debussy)에 심취하게 된다. 그 뒤엔 루씨아 브랑꾸(Lúcia Branco)에게서 피아노 공부를, 또마스 떼랑(Tómas Téran)에게서는 기타
를 배우게 되었다. 한때 그는 건축가가 될 꿈을 안고 건축사무실에서도 일하기도 하였으나 자신의 재능이 음악에 있음을 알고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1949년, 조빙은 청년기때부터 연인관계에 있던 그의 첫 번째 부인 떼레자(Tereza)와 결혼을 하였으며 꼬빠까바나(Copacabana)해변의 야간 업소에서 피아니스트로 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3년 뒤에는 꼰찌넨따우(Continental)라는 녹음회사에서 일을 시작하며 녹음을 위한 편곡일을 맡았다. 그 결과 1953년 그의 첫 작품이 선을 보이게 된다. 작품명은 Incerteza(불확실)로 뉴톤 멩동사(Newton Mendonça)와 공동으로 만들어졌으며 마우리씨 모우라(Mauricy Moura)의 목소리로 녹음되었다. 또
이듬해 1954년, 빌리 블랑꾸(Billy Blanco)와 함께 작곡한 Teresa da praia(해변의 떼레자라는 뜻)가, 당시에 큰 인기를 모으던 딕 파니(Dick Farney)와 루씨우 아우비스(Lúcio Álves)의 목소리로 녹음되어 대 성공을 거두기에 이른다. 그 직후 그는 다시 빌리 블랑꾸와 Sinfonia do Rio de Janeiro라는 곡을 만들어, 꼰찌넨따우사에서 10인치 LP판으로 녹음, 찬사를 받았다. 그리하여 1956년경 부터는 빌리 블랑꼬(Billy Blanco), 돌로리스 두랑(Dollores Duran), 뉴톤 멘동사(Newton Mendonça)등과 함께 본격적인 작곡 활동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에게 정작 중요한 변화는 당대 유명한 브라질 시인이었던 비니씨우스 지 모라이스
(Vinícius de Moraes)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조빙은 언젠가 "비니씨우스와 함께 하루에 3곡을 만들기도 했다"고 술회한 적이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의 친분은 두텁기 이를 데 없었으며 둘은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였다. 그 결과 이들은 "Se Todos fossem iguais a você", "Amor em Paz", "Chega de Saudade", "Águas de Beber", 그리고 "Garota de Ipanema" 등 보사노바의 명곡들을 만들어 내었다. 특히 비니씨우스 지 모라이스와 함께 만든 "아 펠리시다지 (A Felicidade - 행복이란 뜻)"가, 프랑스의 칸느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하고 헐리우드에서 오스카의 최고외국영화상을 수상한, 마르셀 까뮈 감독의 영화 "Orfeu do Carnaval"(카니발의
올페라는 뜻)의 배경음악으로 삽입되면서 큰 주목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듬해 1958년, 주엉 질베르뚜(João Gilberto)의 기타 연주와 오케스트라가 동원된 엘리제찌 까르도주(Elisete Cardoso)의 Canção do amor demais라는 LP판에 비니씨우스 지 모라이스와 함께 만든 여러 곡이 선보였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브라질 음악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쉐가 지 사우다지 - Chega de Saudade(그리움은 이제 그만이라는 뜻)"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LP는 멜로디와 가사의 창작성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연주 등 모든 면에서 향후 붐을 이룰 보사노바의 특징을 고루 갖춘 이정표로 간주되고 있다. 그 직후 "Chega de Saudade"는 주엉 질베르뚜
(João Gilberto)에 의해 78rpm으로 다시 녹음되었으며 이때부터 보사노바는 브라질 전역을 휩쓸 게 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톰 조빙은 국제무대로 활동영역을 넓히기 시작한다. 우선 1962년, 미국의 Audio Fidelity사의 초청과 브라질 외무성의 후원하에 미국의 카네기 홀에서의 공연을 가졌으며 이어 미국의 배우겸 가수인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초청으로 로스엔젤레스에서 자신의 곡들을 녹음하면서 세계무대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1963년 처음으로 솔로 음반인 The composer of Desafinado Plays을 내고 Corcovado Music이라는 이름의 음반출판사도 열어 본격적으로 미국에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
만 아이러닉하게도 그의 조국인 브라질에서는 그가 '미국음악'을 한다든가 아니면 미국 시장에 몸을 팔았다는 비난이 크게 일었으며 그것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그의 음반은 미국을 비롯한 각 국에서 상당한 판매를 기록한 반면 브라질 국내에서는 아주 저조한 판매실적을 나타내었다. 한편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빙은 아마존 밀림의 파괴와 대도시에서의 부동산 투기 등을 보며 자연보호에 관심을 갖게되면서 "Matita Perê", "Urubu", "Passarim"과 같은 곡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에 들어서는 브라질 국민들로부터도 점차 사랑을 받기시작하면서 국내 활동도 강화하였으며 그 와중에 두 번째 부인인 아나 롱뜨라(Ana Lontra)
를 만나게 된다. 두 번째 부인과는 아들인 주엉 프랑시스꾸(João Francisco, 18세이던1997년 7월 교통사고로 사망)와 딸인 마리아 루이자(Maria Luísa)를 두었다. 첫 번째 부인과는 딸인 엘리자베찌(Elizabeth)와 아들인 빠울링뉴 (Paulinho, 피아니스트이자 현재 역시 피아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다니에우 조빙-Daniel Jobim의 아버지)를 두었었다. 노년기에 접어들었던 1992년 그는 그해 브라질 카니발에서 망게이라(Mangueira) 삼바스쿨의 주 테마로 등장하며 브라질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1994년 초, 방광암 선고를 받고 미국의 뉴욕에서 종양 제거를 위한 수술과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이기지 못하고 그해 12월 8일 사망하고
말았다. 1994년 4월 6일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는 굴지의 재즈 레코드사 버브(Verve)의 창립 50주년 기념 음악회가 열렸다. 이 음악회는 전설이 되어버린 과거 거장들의 모습을 재현해냄으로써, 화려했던 재즈의 지난날들을 회고하게 해준 무대였다. 그러나 이 음악회에는 자신이 만든 작품들을 스스로 연주한 유일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브라질의 천재 작곡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이었다. 50년대 말 브라질 음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포르투갈의
선율과 아프리카 리듬이 결합한 삼바라는 브라질 전통음악은 보다 유럽적이고, 미국적인 감수성으로 무장한 젊은 음악가들을 통해 변화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건 하나가 1958년에 초연된 연극 <카니발의 오르페>였다(이 연극은 이후 <흑인 오르페>란 제목으로 미국에서 영화화되었다). 이 연극은 루이스 본파가 작곡한 주제가〈카니발의 아침〉과 함께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실상 작품의 세련된 감수성은 젊은 시인 비니시우스 데 모라에스와 음악을 담당했던 톰 조빔(톰은 안토니오 카를로스의 애칭)의 것이었다.
Carmen Monarcha, Carla Maffioletti, Suzan Erens - Manhã de Carnaval
(카르멘 모나르카, 칼라 마피올레티, 수잔 에렌스 - 카니발 모닝)
▼
Lyrics
너무나 아름다운 아침
행복한 이 아침이 밝았구나
하늘에는 온갖 색채로 빛나는
태양이 떠오르고
희망이 가슴속에 피어오르는구나
이 행복한 날이 지나면
또 다른 날이 있으려나
드디어 이 아름다운
우리의 카니발 아침이로구나
나의 마음은
기쁨의 노래를 부르네
너무나 행복한 아침이 밝았노라고
이때부터 조빔은 자신의 작품들을 연속해서 발표했다. 〈음이 맞지 않아요 Desafinado〉〈한 음으로 된 삼바 Samba de Una Nota So〉〈블루스는 이제 그만 No More Blues〉등 그의 걸작들은 이미 1958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곡들을 본격적으로 부르기 시작한 가수는 당시 무명이었던 주앙 질베르토였다. 이들이 빚어낸 협력은 보사노바(새로운 경향)란 이름으로 불렸으며 브라질 음악의 일대 혁명이었다. 그것은 삼바에 인상주의적인 세련미와 도회적인 아이러니를 담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미국의 색소폰 주자 스탄 게츠는 보사노바의 신선함을 최초로 간파한 재즈 연주자였다. 그를 비롯한 몇몇의 재즈맨들은 보사노바를 불러들여 60년대 초 미국을 강타했는데, 어느 평론가의 말대로 이는 케네디 정권으로 상징되는‘젊은 미국’의 감수성과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이었다.
João Gilberto & Tom Jobim - Desafinado
주앙 질베르토 & 톰 조빔 - 음이 맞지 않아요)
▼
Lyrics
내가 음조가 틀렸다고 말하면, 자기야
Se você disser que eu desafino, amor
이것이 나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Saiba que isto em mim provoca imensa dor
오직 특권을 가진 사람들만이 당신과 같은 청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Só privilegiados têm ouvido igual ao seu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만을 소유한다
Eu possuo apenas o que Deus me deu
굳이 나를 분류하려고 한다면
Se você insiste em me classificar
나의 반음악적 행동
Meu comportamento de anti musical
나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어 논쟁을 벌여야만 한다
Eu mesmo mentindo, devo argumentar
이게 보사노바구나
Que isto é bossa nova
이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Que isto é muito natural
당신이 모르는 것, 심지어 감지하지도 못하는 것
O que você não sabe, nem sequer pressente
단지 음조가 맞지 않는 사람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것뿐입니다.
É que os desafinados também têm coração
내 Rolley-flex를 타고 당신의 사진을 찍었어요
Fotografei você na minha Rolley-flex
그의 엄청난 배은망덕이 드러났다
Revelou-se a sua enorme ingratidão
내 사랑을 그렇게 말하면 안 돼
Só não poderá falar assim do meu amor
그 사람은 당신이 찾을 수 있는 것 중 가장 큰 사람이에요, 그렇죠?
Ele é o maior que você pode encontrar, viu?
당신은 음악을 가지고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Você com a sua música esqueceu o principal
그건 음이 맞지 않는 가슴에 있어
Que no peito dos desafinados
가슴 깊은 곳에서 조용히 뛰네
No fundo do peito bate calado
음조가 맞지 않는 이들의 가슴에도 심장이 뛰고 있다
No peito dos desafinados também bate um coração
보사노바 열풍의 정점을 만들었던 1963년 음반《게츠와 질베르토 Getz / Gilberto》는 게츠의 감미로운 테너 색소폰과 당시 부부였던 주앙과 아스트루드의 달콤한 목소리로 고전의 반열에 오른 걸작이다. 하지만 이 음반은 실질적으로 조빔의 음반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음반에 담긴 여덟 곡 중 여섯 곡을 썼기 때문이다. 이 음반에서 그의 작품들이 들려주는 기적적인 역설(소박하면서도 지극히 세련된)은 결코 모방될 수 없는 미감이다. 지난 세기가 저물어가자 많은 언론들은 보사노바를‘만인의 취향’으로 만들어놓은 조빔을 20세기 최고의 작곡가 중 한 명으로 꼽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스스로를 소박한‘딴따라’로 여겼던 그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1994년 12월 뉴욕에서 그는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Caetano Veloso & Gilberto Gil & Ivete Sangalo - Se Eu Não Te Amasse Tanto Assim
(카에타노 벨로소, 질베르토 길, 이베테 상갈로 - 내가 당신을 그토록 사랑하지 않았다면)
▼
Lyrics
포르투갈어 | 포르투갈어를 구글을 이용해서 영어로 번역함 | 포르투갈어를 구글을 이용해서 영어로 번역함 |
Meu coração, sem direção, voando só por voar Sem saber onde chegar Sonhando em te encontrar E as estrelas que hoje eu descobri no seu olhar As estrelas vão me guiar Se eu não te amasse tanto assim Talvez perdesse os sonhos dentro de mim E vivesse na escuridão Se eu não te amasse tanto assim Talvez não visse flores por onde eu vim Dentro do meu coração Hoje eu sei, eu te amei no vento de um temporal Mas fui mais Muito além do tempo do vendaval Nos desejos, num beijo Que eu jamais provei igual E as estrelas dão um sinal Se eu não te amasse tanto assim Talvez perdesse os sonhos dentro de mim E vivesse na escuridão Se eu não te amasse tanto assim Talvez não visse flores por onde eu vim Dentro do meu coração | My heart, without direction, flying just to fly Not knowing where to get Dreaming of meeting you And the stars that today I discovered in your eyes The stars will guide me If I didn't love you so much Maybe I would lose the dreams inside me And live in darkness If I didn't love you so much Maybe I wouldn't see flowers where I came Inside my heart Today I know, I loved you in the wind of a storm But I was more Far beyond the time of the gale In desires, in a kiss I've never tasted the same And the stars give a sign If I didn't love you so much Maybe I would lose the dreams inside me And live in darkness If I didn't love you so much Maybe I wouldn't see flowers where I came Inside my heart | 내 마음은 방향도 없이 그저 날기 위해 날아가 어디서 구해야 할지 모르겠는 경우 당신을 만나는 꿈을 꾸어요 그리고 오늘 당신의 눈에서 발견한 별들 별들이 나를 인도할 거야 내가 당신을 그토록 사랑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내 안의 꿈을 잃어버릴지도 몰라 그리고 어둠 속에서 살아요 내가 당신을 그토록 사랑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내가 왔던 곳에서는 꽃을 볼 수 없을지도 몰라 내 마음 속 오늘 난 알아요 폭풍바람 속에서도 당신을 사랑했다는 걸 하지만 나는 그 이상이었다 강풍의 시대를 훨씬 넘어서 욕망 속에서, 키스 속에서 같은 맛을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별들이 신호를 보내요 내가 당신을 그토록 사랑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내 안의 꿈을 잃어버릴지도 몰라 그리고 어둠 속에서 살아요 내가 당신을 그토록 사랑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내가 왔던 곳에서는 꽃을 볼 수 없을지도 몰라 내 마음 속 |
리사 오노 Lisa Ono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보사노바 재즈 보컬리스트. 리사 오노는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보사노바를 받아들이게 된 독특한 아티스트이다. 이미 여러 차례 일본 골든 디스크상을 수상한 바 있는 그녀는 정통적인 브라질 보컬 스타일로, 일본 뿐 아니라 브라질에서도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1990년대, 브라질 지구 정 반대편의 나라 일본에 보사노바라는 생소한 장르가 열풍을 일으킨다. 그리고 다양하고 폭넓은 장르에서 세계시장을 점령해가는 일본 음악계에 보사노바를 본격적으로 소개한 이가 바로 리사 오노이다. 영화 ‘와니와 준하’의 메인 테마 곡 ‘I Wish You Love‘, 이영애가 출연한 마몽
드 CF의 ‘You Are The Sunshie Of My Life’ 등으로 국내에도 익숙한 아티스트로 1967년 브라질 상 파울루에서 태어난 리사 오노는 1977년 일본으로 귀국해 아버지가 차린 나이트 클럽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보사노바와 브라질 음악에 빠져들게 된다. 데뷔 음반 “Capurity”(1989)과 함께 음악계에 정식으로 모습을 나타낸 이래 일본과 브라질을 오가며 활동을 계속해왔고 양국 모두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편안하고 부드러운 보컬, 그리고 일본 뮤지션이지만 브라질에서 태어나 자연스러운 포르투갈어 발음을 구사할 수 있었던 점 등은 그녀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요소였다. 그리고 그녀는 초기 이후 발표되는 앨범들마다 다양한 음악 장르들을 주
제별로 묶어서 보사노바의 색채를 가미해왔다. 그 예로 그녀의 이름을 한국 팬에게 알린 11번째 앨범 [Dream](1999)에서는 베니 굿맨의 ‘Stomping At The Savoy’와 조니 머서의 ‘Dream’, 레스 브라운의 ‘Sentimental Journey’ 같은 1930년대와 40년대의 스윙 넘버들을 재해석했고 [Pretty World](2000)에서는 스티비 원더의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와 ‘My Cherie Amour’를 비롯해 비틀즈의 ‘Yesterday’, 폴리스의 ‘Every Breath You Take’에 이르는 팝 히트곡을 보사노바로 소화해냈다. 또 [Boas Festas](2000)에서는 ‘보사노바=여름 음악’이라는 등식을 깨고 익히 알려진 크리스마스 캐롤을 보사노바풍으로 들려줬으며 이어진 [Lisa's Ono Bossa Hula Nova](2001)에서는 하와이 전통 음악과 보사노바의 만남을 주선해 그녀의 색다른 시도가 꾸준히 계속될 것임을 예고했다. 그리고 또 다시 [Questa Bossa Mia...](2002)에서는 칸초네 레퍼토리를 보사노바로 해석해 이탈리아어로 노래를 했다.
Lisa Ono - I Wish You Love
(리사 오노 - 사랑했으면 좋겠어)
▼
Lyrics
나는 당신이 파란색을 기원합니다
I wish you blue
봄의 새들
birds in the spring
당신에게 노래할 노래를 선사하기 위해
To give you heart a song to sing
그리고 키스
And then a kiss
하지만 이보다 더
but more than this
네가 사랑했으면 좋겠어
I wish you love
그리고 7월에는 레모네이드
And in july a lemonade
나뭇잎이 무성한 숲 속에서 당신을 식혀주기 위해
To cool you in some leafy glade
건강을 기원합니다
I wish you health
하지만 부보다
but more than wealth
네가 사랑했으면 좋겠어
I wish you love
내 상처받은 마음과 나는 동의합니다
My broken heart and I agree
너와 나는 결코 될 수 없다는 걸
That you and I could never be
그러니 최선을 다해 최선을 다해
So with my best my very best
나는 당신을 자유롭게 설정
I set you free
피난처가 되길 바라요
I wish you shelter
폭풍우로부터
from the storm
당신을 따뜻하게 해줄 아늑한 모닥불
A cozy fire to keep you warm
하지만 무엇보다도
But most of all
눈송이가 내릴 때
when snowflakes fall
네가 사랑했으면 좋겠어
I wish you love
<>
<>
내 상처받은 마음과 나는 동의합니다
My broken heart and I agree
너와 나는 결코 될 수 없다는 걸
That you and I could never be
그러니 최선을 다해 최선을 다해
So with my best my very best
나는 당신을 자유롭게 설정
I set you free
피난처가 되길 바라요
I wish you shelter
폭풍우로부터
from the storm
당신을 따뜻하게 해줄 아늑한 모닥불
A cozy fire to keep you warm
하지만 무엇보다도
But most of all
눈송이가 내릴 때
when snowflakes fall
네가 사랑했으면 좋겠어
I wish you love
눈송이가 내릴 때
When snowflakes fall
네가 사랑했으면 좋겠어
I wish you love
눈송이가 내릴 때
When snowflakes fall
네가 사랑했으면 좋겠어
I wish you love
눈송이가 내릴 때
When snowflakes fall
네가 사랑했으면 좋겠어
I wish you love
눈송이가 내릴 때
When snowflakes fall
네가 사랑했으면 좋겠어
I wish you love
눈송이가 내릴 때
When snowflakes fall
네가 사랑했으면 좋겠어
I wish you love
Rachael Yamagata - I Wish You Love
(레이첼 야마가타 - 사랑하길 바라)
▼
Lyrics
봄에는 파랑새를 기원합니다
I wish you bluebirds in the spring
당신의 마음에 노래할 노래를 주기 위해
to give your heart a song to sing
그리고 키스
and then a kiss
하지만 이보다 더
but more than this
네가 사랑했으면 좋겠어
I wish you love
그리고 7월에는 레모네이드
and in July a lemonade
나뭇잎이 무성한 숲 속에서 당신을 시원하게 해줄
to cool you in some leafy glade
나는 당신에게 건강과 부보다 더 많은 것을 기원합니다
I wish you health, and more than wealth
네가 사랑했으면 좋겠어
I wish you love
내 상처받은 마음과 나는 동의한다
my breaking heart and I agree
너와 나는 결코 될 수 없다는 걸
that you and I could never be
그러니 최선을 다해, 최선을 다해
so with my best, my very best
나는 당신을 자유롭게 설정
I set you free
폭풍우로부터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I wish you shelter from the storm
당신을 따뜻하게 해줄 아늑한 불
a cozy fire to keep you warm
하지만 무엇보다도 눈이 내릴 때
but most of all, when snowflakes fall
네가 사랑했으면 좋겠어
I wish you love
내 상처받은 마음과 나는 동의한다
my breaking heart and I agree
너와 나는 결코 될 수 없다는 걸
that you and I could never be
그러니 최선을 다해, 최선을 다해
so with my best, my very best
나는 당신을 자유롭게 설정
I set you free
폭풍우로부터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I wish you shelter from the storm
당신을 따뜻하게 해줄 아늑한 불
a cozy fire to keep you warm
하지만 무엇보다도 눈이 내릴 때
but most of all, when snowflakes fall
네가 사랑했으면 좋겠어
I wish you love
하지만 무엇보다도
but most of all
눈송이가 내릴 때
when snowflakes fall
네가 사랑했으면 좋겠어...
I wish you love...
끝
end
물론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초기 앨범들과 라틴 음악계의 거장 카를로스 리라, 조앙 도나투 등 ‘친구들(Amigos)'과 함께 했던 보사노바 명곡집 [Amigos](2000) 그리고 [Bossa Carioca](1998) 등에서는 귀에 익은 보사노바 레퍼토리를 들려주기도 했지만, 영어로 된 스윙 재즈 레퍼토리를 보사노바로 불러준다거나 하와이와 이탈리아 음악 등을 들려주는 ’브라질 태생의 일본 뮤지션‘ 리사 오노의 모습은 충분히 눈길을 끌 만 했다. 그리고 단순한 화제성을 뛰어넘어 정상급 뮤지션들과 함께 만들어낸 높은 고 충실도의 음악은 적당히 고급스럽되 어렵지 않은 음악을 찾는 많은 팬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일본계
브라질인 2세로 태어났다. 10살까지의 어린 시절을 브라질에서 보내고,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역이민하여 15세부터 기타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시작한다. 1989년 첫 음반을 발표하였다. 내츄럴한 가성, 리드미컬한 기타, 매력적인 미소로 순식간에 보사노바를 일본에 전파한 그녀는 보사노바의 전설로 불리는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과 재즈 삼바의 거장 주앙 도나투 등 저명한 아티스트와의 공연 및 뉴욕과 브라질, 아시아 등의 해외 공연도 하고 있다. 1999년에 발표한 앨범 "DREAM / 드림"이 20만장이 넘는 히트를 기록하였으며, 이후 일본에서 보사노바의 일인자로서 부동의 지위를 지키고 있다. 1989년 첫번째 싱글 " YOU'RE SO UNIQUE "
을 발표 , 맥스팩터 의 CM 송에 채택된다. 리오데자네이로에서 녹음한 앨범 "CATUPIRY / 카토삐리 " 발표. 삿포로 와인 " 포트 레일 " 의 CM 송으로 채택되어 화제가 된 "별의 산책 " 을 싱글로 발표했다. 1990년 두번째 앨범 "Nanã / 나난 " ( 리오데자네이루에서 녹음 ) 발표했다. 첫 전국투어를 실시. 브라질에서 도리스 몬테이로 , 조니 알프 , 마르사와 함께 두번째 전국투어. 도쿄돔에서 열린 존레논탄생50주년 기념콘서트에 출연.1992년 라디오 프로그램 "세레나타 · 카리오카"가 Bay - Fm 의 DJ시작. 앨범 " Menina / 메니나 " 일본골드디스크를 수상. 1st 비디오 " 메니나 콘서트 " 발매. 같은시기에 발표한 싱글 "FLOR DO CAMPO / 플로르
드캄포 " 가 시세이도의 CM송으로 채택. 첫 일본어 곡 ' 태양의 아이들 」가 NHK " 모두의 노래 " 에서 방송 된다. 4th 앨범 " SERENATA CARIOCA / 세레나타 · 카리 오카 " ( 리오데자네이로 / LA / 도쿄녹음 ) 발표했다. 나카노 히로유키 프로듀스에 의한 아마존, 리오데자네이로의 영상과 리사의 노래를 비디오 " PEACE BOSSA / 피스보사 」발매. 올해 자신의 레이블 "나난 · 레이블" 을 시작해 브라질의 뛰어난 음악을 적극적으로 일본에 소개. 첫 포토 & 에세이 집 "훼리시다지 " 발표. 1995년 조앙 도나토와 함께 제작된 7th앨범 「 MINHA SAUDADE / 밍야 사우다지 」 ( 리오데자네이루 녹음 ) 발표. 조앙 도나토와 함께 전국투어를 하며 리
오 , 상파울루 에서도 콘서트를 개최 하여 대성공을 거둔다. 1999년 보사노바 기타리스트,프로듀서 오스카 카스트로 네비스 를 프로듀서로 11th 앨범 " DREAM / 드림 '"( LA녹음 ) 을 발표. 미쓰비시 파제로이오 의 CM 송에 채택된 "Moonlight Serenade / 달빛세레나데 " 를 포함하여 보사노바 탄생 이전의 미국에서 태어난 명곡을 중심으로 수록. 20만장을 넘는 히트앨범이 되었다. 홍콩과 대만에서도 같은 앨범이 출시. 아시아에서의 인지도가 높아진다.
Lisa Ono - Cachito
(리사 오노 - 카치토)
▼
Lyrics
[Coro]
Cachito, cachito, cachito mío
Pedazo de cielo que Dios me dio
Te miro y te miro y al fin bendigo
Bendigo la suerte de ser tu amor
아가 아가 내 아가야
하느님이 내게 주신 천국의 일부
너를 보고 또 보며 마침내 감사하게 된단다
너의 사랑이 될 수 있음에 감사드린단다
[Verso]
Me preguntan por qué eres mi cachito
Y yo siento muy bonito al responder
Porque eres de mi vida un pedacito
Que yo quiero como a nadie he de querer
(사람들이) 왜 네가 내게 천국의 일부인지 물으면
나는 대답할 때 너무 행복하단다
너는 내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지
그 누구보다 너를 사랑하니까
[Coro]
Cachito, cachito, cachito mío
Pedazo de cielo que Dios me dio
Te miro y te miro y al fin bendigo
Bendigo la suerte de ser tu amor ( x 2 )
[Puente]
Cachito, cachito mío
Tú eres el amorcito de mamá (y de papá)
Cachito, cachito mío
Tú eres el amorcito de papá (y de mama)
아가 내 아가야
너는 엄마의 사랑이란다 (아빠에게도)
아가 내 아가야
너는 아빠의 사랑이란다 (엄마에게도)
[Verso]
Me preguntan por qué eres mi cachito
Y yo siento muy bonito al responder
Porque eres de mi vida un pedacito
Que yo quiero como a nadie he de querer
[Coro]
cachito, cachito mío
Pedazo de cielo que Dios me dio
Te miro y te miro y al fin bendigo
Bendigo la suerte de ser tu amor
'Lisa Ono Best'
특색이 없어서 더 튀어 보이는 목소리를 가진 리사 오노. 그녀는 196 7년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태어났고, 10살 때 일본으로 건너왔다. 15 살 때부터 기타를 치며 노래를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10여 장의 앨범 을 발표했다. 리사의 음악으로 인해 일본에 보사노바가 인기를 얻었 으며, 그것을 시작으로 그녀는 독특한 음색의 보사노바 가수로 세계 에 점차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녀의 음악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유지시켜줄 정도의 템포를 가졌다 . 또 그 음악을 이루는 목소리와 멜로디는 눈이 저절로 감길 정도로 감미롭다. 자극적인 사운드나 현란한 장식음이 없는 리사 오노의 음 악은 단순함과 정겨움이 주는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지난 3월 6
일에 발매된 그녀의 베스트 앨범을 이제서야 국내에서 만 날 수 있게 됐다. 이 앨범에는 BMG에서 EMI로 이적한 1997년부터 200 1년까지 발매한 앨범 중 히트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포르투갈어로 된 정통 보사노바는 물론이고, 팝과 영화 음악, 정통 미국 음악 등 특별 히 한 가지 장르로 국한하지 않았다. 국내 CF 삽입곡으로 쓰인 ‘I wish you love’ ‘Pretty world’, 모 던함이 그윽하게 깔려 있는 그녀 최고의 히트곡 ‘Moonlight serenade’는 꽤 익숙한 곡들이다. 여기에 힘없이 풀린 듯한 보컬이 특히 귀에 와 닿는 ‘Smile’, 화려한 하모니의 전주가 크리스마스를 연상시 키는 ‘Dream’ 등 총 19곡이다.‘코모레비’(木漏れ日)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볕’이라는 뜻 의 일본어다. 이렇게 우리나라 말로는 몇 개의 단어로 표현해야 하는 말이 일본어로 단 하나의 경우가 있다. 힘들이지 않고 경제적으로 원 하는 표현할 수 있는 단어처럼 음악도 쉽고 편리하게 감정과 상황을 표현할 수 있다. 어디선가 들은 듯하면서도 새로운 리사 오노의 음악은 여행할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생전 처음 보는 곳이지만 정겨운 기분을 느끼게 하 는 ‘여행길에 탄 기차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 리사 오노의 음악이 딱 이렇다.적절한 빠르기에 신선함과 푸근함이 실려 있다. 앞으로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떨까. ‘리사 오노 음악’ 같은 경치가 있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자고.
https://cafe.daum.net/yswlsj4812
본문은 Chrome 과 글자 크기 110%에 최적화 돼 있음을 알립니다.
토지사랑 http://cafe.daum.net/tozisarang/
토지투자동호회밴드
(카페회원님들은 같이이용하시면됩니다)
추천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