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가 말하는 것을 배우려들지 않고
다만 어떻게 말하는가를 듣기에만 골몰하고 있었는데
당신께 도달하는 길을 이미 단념해버린 내게는
이런 쓸데없는 주의만이 남았었기에
―성 아우구스티누스, 「제5권 14장 암브로시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사랑해요
이 말을 못 한것은
그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도 그렇기에
이 말을 하는 순간
당연함 속에 잠자던 그 맘을
부러 흔들어 깨워
고연히 곱씹는 의혹의 눈동자가 불을 켜
자꾸 그 불을 끄기 위해 혀를 놀려
내뱉었다가 자칫
쓸데없이 지껄이는 말이 되어 끝내
사랑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려
아니 지껄임만 못하게 될까
두려워
그저 모른 채 맘속에 그 뜻을
고이 간직하여
이제나저네나
아끼고 소중히 어루만져
오직 사랑만을 하기 위함이었는데
이렇게 이별하고 나니 말 한마디
못 한 내 어리석고 미련함이
천추의 한이요
후회막심 통탄할 일이라
놓고 가신 님 뒤안길에
전구가 녹아 흘러 빛이 출렁여
아리랑 아리랑 우는 바람 소리
귀청을 찢고 목청으로 파고들어
곡소리가 절로 나와 부질없이 빌며
문지방 너머 맨발로 뛰쳐나오며
되뇌니이다
사랑해요
사랑했어요
사랑만을 했어요
[빛과 이름],문학과지성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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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고 가신 님 / 성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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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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