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 당신이 언제나 건강하기를 기원하며
때때로 태양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날에는 아무것도 깨닫지 않
아도 된다 그래서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은 날의 모든 문
자는 모조리 창문이다 나는 내 눈앞에 무심코 씌어진 글
자들을 내 의지와 상관 없이 매번 이해해왔기 때문에 함
부로 나의 이해를 쓰고 싶지 않다는 건 때때로 내가 눈부
신 태양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추신 같은 거다
왜 의자는 의자야? 그렇게 불러야 다들 알아듣는 창문들
창문 앞 의자에 앉아 햇살을 걷지 않으면 소나기는 잠
깐의 오해에 불과하다 매일 나의 안부가 궁금한 사람을
알아보지 않으면 안녕은 내가 쓰는 말투에 불과하고 추
신은 내가 늘 엉뚱하게 느껴진 거다
실수를 할 때마다 연습 대신 의자를 한입 베어 먹고 자
전거를 잃어버리면 열쇠만 잘 간직하고 무르익은 과일은
절대 혼자 먹지 않기를
어깨가 마른다 싶다가도 이내 이마를 두드리는 하루가
이틀이 되고 2주가 되면 사람들은 종일 창문에 블라인드
를 치거나 수시로 커튼을 내리고 거둔다 그러던 어느 날
추신 같은 편지를 받으면 며칠간의 창문은 아무것도 이
해허하지 않아도 뭐든지 이해되는 문자가 되고 너의 말을
잘 못 알아들을 때마다 너와 나 사이에도 추신이 필요하
다는 걸 알게 되는 거다
제대로 태양을 즐기고 계시는군요
무엇이든 꽉 움켜쥐면 와장창 깨지고 물컹하고 엉뚱한
변명을 둘러대면 설익는, 그렇게 불러야 다들 알아듣는
창문들을 먹어치우는 거다
* 햇살이 가득한 프라이팬을 뒤집지 마세요.
[시 보다 2023],문학과지성사,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