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랑비 내리는 추석 전날입니다. 내일이면 차례상에 어김없이 대추가 올라올 테지요. 빨갛게 익어 쭈글쭈글한 대추가 아니라 탱글탱글 살이 오른 대추가 올라올 테지요.
안현미의 신작 시집 『미래의 하양』에서 한 편 띄웁니다.
- 대추
추석 전날 시인이 말하는 대추는 시인이 전하는 대추는 이제 곧 시들시들해질지도 모르는데 겨울이 오면 마침내 떨어지고 말 텐데 주인이 병이 깊어 오도 가도 못한 채 저리 매달려 있습니다.
대추나무에 매달린 대추와 삶에 매달린 방범창 안의 여자와 병이 깊은 주인이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에 문득 소름이 돋습니다.
내일이면 어김없이 추석상에 대추가 올라올 테지요. 밤이 되면 대추 같은 보름달이 뜰 테고 대추 같은 사람들은 소원을 빌겠지요.
이 세계는 우리의 바람보다 훨씬 견고해서 사람들의 소원이 이루어질 일은 결코 없겠지만 말입니다.
겨울이 오면 그저 툭 떨어질 수밖에 없을 테지요.
시인은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일 차례상에 탁구공 같은 대추를 올려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탁구공 같은 송편이나 빚을까 합니다.
그런데 혹시 대추꽃을 보신 적 있는지요? 대추나무 이파리 사이로 연둣빛 아기별들이 반짝이고 있는 모습을 보신 적 있는지요? 작아도 너무 작아서 보이지도 않지만, 핀 줄도 모르는 사이 슬며시 지고 마는 꽃이지만 아기별들이 잠시 반짝이고 나면 그곳에 몽글몽글 대추 열매가 맺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