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직 대통령 김대중씨께서 여권 통합에 대해 수렴 청정한다고 하여 간단히 올렸는데 정구돈씨가 댓글을 달아 그간 대표적으로 오르내리는 역사를 옮겨왔습니다
[내용] 당(唐)나라 고종(高宗) 이치(李治)는 몸이 허약하여 자주 병을 앓았기 때문에, 자주 조정(朝廷)의 일을 보지 못하였다.
어느 날, 그는 풍진(風疹)에 걸려 머리가 어지럽고 체력이 떨어져서 조회(朝會)에 임할 수가 없었다. 이런 시간이 길어지자, 상주문과 문건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국사(國事)가 혼란에 빠졌다. 황후 무측천(武則天)은 기민하고 일 처리가 과감하였으므로, 아무도 개입하지 못하였다. 측천무후는 직접 상주문을 열람하며 크고 작은 조정의 일들을 모두 혼자서 처리하였다. 당시 홍문관 학사와 서대시랑 등의 관직을 지냈던 상관의(上官儀)는 줄곧 측천무후의 미움을 받아온 터에, 인덕(麟德:664~665) 연간에 이미 폐출된 태자 충(忠)과 내통한 죄로 고발을 받게 되었다. 측천무후는 상관의를 고발한 상주문을 읽고, 즉각 그를 체포하여 옥에 가두고 그의 재산을 몰수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리고 상관의는 얼마 후 처형되었다.
상관의가 죽자, 측천무후는 조정에서 최후의 장애를 제거한 셈이 되었다.
이후, 고종이 매번 조정에 나올 때마다, 측천무후는 어좌(御座)의 뒤에 발을 내려뜨려 놓고 바르게 앉아서, 조정의 크고 작은 일들을 간섭하고 처리하였다.
조정 안팍에서는 측천무후와 당나라 고종을 일러 ˝이성(二聖)˝이라 하였다
***기록상으로 한국에서 제일 먼저 수렴청정을 한 것은 53년 고구려 제6대 왕 태조왕이 7세로 즉위하자 태후(太后)가 수렴청정을 한 경우이다. 이보다 앞서 제3대 왕 대무신왕도 11세로 즉위하여 어느 누가 대리정치를 하였을 듯하나 기록으로 나타나는 것은 없다.
신라에서는 540년 법흥왕이 죽고, 그의 조카 진흥왕이 7세로 제24대 왕으로 즉위하여 법흥왕의 비(妃)가 수렴청정을 하였고, 765년 경덕왕이 죽고, 태자가 8세로 제36대 왕 혜공왕으로 즉위하자 역시 태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백제의 경우 섭정(攝政)의 기록은 있으나 수렴청정의 기록은 없다. 고려시대에는 1094년(선종 11) 선종이 죽고, 태자가 11세로 제14대 왕 헌종으로 즉위하여 사숙태후(思肅太后:선종의 비)가 수렴청정을 하였고, 1344년 충혜왕이 복위한 지 5년 만에 죽고, 태자가 8세로 제29대 왕 충목왕으로 즉위하여 충혜왕의 비가 역시 수렴청정을 하였다. 1349년 충목왕이 4년 만에 죽고, 그의 서제(庶弟)가 13세로 제30대 왕 충정왕으로 즉위하자 생모 희비(禧妃)와 충혜왕의 비가 수렴청정을 하였는데, 원(元)나라에서는 3년 만인 1351년 제27대 왕 충숙왕의 둘째 아들 강릉대군(江陵大君)을 제31대 왕 공민왕으로 삼았다. 1374년(공민왕 23) 공민왕이 최만생(崔萬生) 등에게 살해되어 우(禑)가 10세의 나이로 뒤를 잇자 할머니 명덕태후(明德太后:충숙왕의 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조선시대에는 1468년(세조 14) 세조가 죽고 태자 광(晄)이 14세에 예종으로 즉위하여 그의 어머니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예종과 동좌(同坐)하여 수렴청정을 하였다. 1469년 즉위 1년 만에 예종이 죽고 조카 성종이 13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정희왕후가 7년 동안 계속 수렴청정을 하였다. 1546년 인종이 재위 1년 만에 죽고 명종이 12세의 나이로 제13대 왕으로 즉위하니 중종의 계비(繼妃) 문정왕후(文定王后)가 8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였다. 1557년(명종 22) 명종이 죽고 선조가 15세로 즉위하자 명종의 비 인순왕후(仁順王后)가 1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였다. 1800년(정조 24) 정조가 죽고 순조가 11세로 즉위하자 영조의 비 정순왕후(貞純王后) 김씨가 3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였다. 1834년(순조 34) 순조가 죽고 왕세손 헌종이 즉위하자 할머니 순원왕후(純元王后:순조의 비) 김씨가 6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였다. 1849년(헌종 15) 헌종이 죽고 철종이 즉위하자 순원왕후가 또 수렴청정을 하였고, 1863년(철종 14) 철종이 죽고 고종이 즉위하자 익종의 비인 조대비(趙大妃)가 약 2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였다.이와 같이 한국 역대 왕조의 수렴청정은 고구려에서 1회, 신라에서 2회, 고려시대는 4회, 조선시대는 8회 임금이 즉위 초에 나라의 정사를 모후나 대비에게 맡겨 외척의 정치 참여를 가져왔고, 특히 순조 이후 철종 때까지 60년간의 척신(戚臣)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는 조정의 문란, 부정부패, 매관매직의 성행 등을 초래하였다. 또한 탐관오리의 득세로 민생은 도탄에 빠졌고, 민심이 흉흉하여 홍경래(洪景來)의 난(亂)이 일어나는 등 나라가 어지러웠다.
첫댓글 수렴청정(垂簾聽政)에 대한 역사(歷史) 공부 한번 확실히 했네여 !.....ㅎㅎㅎ........
왕들이 단명해서 그런점도 있겠고.....또한 우리나라 여성들이 강한게 이유가 있었군요. 서양사는 어떠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