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교회 중 부흥되는 20대 교회 등 주요 교회에 대한 문헌을 살펴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총신대출판사 등)미국의 주요 20대 교회 목회자들이 성공하고 부흥한 내용에는 십일조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주일성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유는 교회에 표준인 신약성경에 없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은 예수님이 이것도 버리지 말지니라는 말씀을 근거 삼아 충실히 이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20대 교회를 관찰해 본 결과 놀라운 것은 미국교회는 물론 바울과 제자들이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십일조와 주일성수를 수없이 언급하고 교회중심을 삼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울러 축복의 도구로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헌금하는 방법은 현재 한국교회 목사님들이 말하는 방법보다 몇 배 더 축복 받는 방법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한국교회는 지금 헌금을 잘못하여 개혁에 대상이 되었습니다.
십일조헌금을 무조건 반대하는 논리는 맞지 않습니다.
헌금방법에서 중요한 헌금의 목적과 대상을 바르게 이해하고 초신자와 장성한 성도의 헌금방법이 다르고 이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반대는 과거 교회역사와 성도들의 십일조헌금 결과에 경험과 체험에 대한 역사가 부정되기 쉽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초기에는 어디든지 십일조와 주일성수로 축복을 간증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다.)
목회자들은 미국교회를 본받으면 안 된다며 한국의 십일조 론을 주창합니다. 그러면서 십일조헌금으로 축복(잘살게)받았다는 과거 성도들에 경험만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 경험이 나쁜 결과를 낳은 것과 온전한 성도의 헌금방법을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초기 성도들의 헌금과 지금 교회시대 장성한 성도들의 헌금방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헌금은 처음부터 잘못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하고 그런 방법으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일성수도 처음 믿는 신자들에게는 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그러나 섬기는 방법은 유치원생 때와 어른에 때가 방법이 다릅니다. 주일성수 십일조만 하면 축복 받는 초신자 단계가 지나가면 장성한 자가 축복을 받는 방법으로 다르게 해야 합니다.
십일조헌금과 주일성수에 대하여 예수님은 물론 바울과 제자들이 왜 한 번도 말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을 교회중심으로 삼는다고 이단으로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회에 핵심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는 사실입니다. 헌금은 기독교복음전파와 하나님의 역사와 나라를 이루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헌금이 있었기에 우리가 복음을 믿을수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개혁의 성공은 개혁주의자들의 헌금이 있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성경적으로 헌금하는 방법과 사용방법은 한국교회 개혁에 선봉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성도들이 더 축복을 받기 위해서 모두 찬성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며 이는 현재 교회가 복음을 물질 축복으로 가르친 대가 가 될 것입니다. 공개발표 되어 특정 기간에 전국 공동전도지 5000만 장에 배포될 예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