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이번 생(生)은 기린입니다 [남길순]</p><p> </p><p> </p><p> </p><p> </p><p>  기린은 앞다리를 양옆으로 펼치고 우스꽝스럽게 서서 물</p><p>을 먹습니다 아느 날 불편한 자세로 물을 먹다가 사자에게</p><p>심장을 바치게 되었는데요 그로부터 기린은 숨을 멈추고 보</p><p>이지 않는 곳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하늘 아래 눈</p><p>둘 곳은 키 큰 나무와 날아가는 독수리의 발톱뿐 기린의 뒷</p><p>발차기는 사자의 머리통을 깨고도 남음직합니다 어느 날 사</p><p>자로부터 새끼를 지켜내려다 그만 새끼를 뒷발로 차서 날</p><p>려보내기도 합니다 초원에 빨간 꽃기린이 피어난 날이었어</p><p>요 독수리가 발톱을 세우고 여기저기 꽃을 따먹고  있습니</p><p>다 기린은 긴 목으로 상대의 목을 부러뜨릴 수도 있다는군</p><p>요 수컷 기린 두마리가 갈고리처럼 엉킨 목을 풀고 있습니</p><p>다 싸움에서 이긴 기린이 암컷에게 다가갑니다 기린이 짝짓</p><p>기하는 장면은 불편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기린은 기린이</p><p>고, 기린 역시 물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으니까요 기린의 혀</p><p>는 시시때때로 하늘을 핥아주어야 합니다 기린이 기린임을</p><p>증명하듯 기다란 목을 빼고 가시나무 잎을 먹는 중입니다</p><p>사자가 다가가고 있군요</p><p> </p><p> </p><p>               - 한밤의 트램펄린, 창비, 20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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