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신등면 율곡사를 찾아서/안성환/20240616
율곡(栗谷)사는 밤‘율’자에 골‘곡’자를 쓴다. 그래서 그런지 경내에도 무척 큰 밤나무가 있고 절도 제법 깊은 골짜기에 있었다. 경내를 돌아보았지만 스님은 보이지 않고 불경소리만 은은하게 골짜기를 매웠다. 모처럼 듣는 불경소리, 왠지 모르게 속세에 두고온 임을 기다리는 소리인 듯 그냥 애절한 느낌으로 들린다. 예전에 채무기교수님과 함께한 답사기에서 조금 배운 건축미술에 관심이 있어 보물제 374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곳 대웅전(대웅전:석가를 모시는 전각. 대성전:공자를 모시는 전각)을 찾았다. 역사성이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한국전쟁때 파괴되거나 화재 혹은 관리소흘로 소실되어 국가보물로 지정되기란 흔치 않다. 기록을 보니 조그마한 사찰이지만 천년 고찰이었다. 우선 절 입구에 안내문에는 신라 진덕여왕 5년(651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기록하고 있고 이후에 경순왕 4년(930년)에 감악조사가 중창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더 중요한 것은 2023년 대웅전 보수 과정에서 지붕 서까래를 받치는 종도리(서까래를 걸기 이전에 마지막으로 올리는 횡방향 나무, 집안에서 천장을 쳐다봤을 때 천장 높은 곳에 위치한 긴 나무)를 조선 숙종 4년(1697년)에 올렸다는 기록이 발견되어 조선 시대에 대웅전을 대대적으로 보수했다는 기록이다. 시대의 변화 속에 최소 330년 넘게 질곡의 세월을 지내왔다는 뜻이다. 건물의 구조가 매우 궁금했다.
율곡사의 대웅전은 아미타불(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뜻을 품고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불법을 전하는 부처)을 중심으로 왼쪽에 관세음보살(도움을 청하는 중생에게 나타나 자비를 베푸는 보살)과 오른쪽에 대세지보살(지혜로 중생의 어리석음을 없애 주는 보살)을 모시고 있었다. 일반적인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왼쪽에 문수보살(지혜를 맡은 보살)과 오른쪽에 보현보살(불교의 진리와 수행의 덕을 맡은 보살)을 모시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았다. 아마 오래전부터 내려온 율곡사의 관례인 것 같다. 대웅전 건물은 정면 3칸과 측면 3칸으로 되어 있으며 지붕은 옆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작지붕이다. 양옆으로 건물들은 맞배지붕인데 가장 간단한 모양 사람(人) 되어 있다. 팔작지붕은 맞배지붕보다 훨씬 아름답고 화려하다. 그리고 대웅전 처마 끝의 무게를 기둥으로 전달하기 위해 겹겹이 짜 맞추어 쌓아 올린 ‘공포’도 꽤 흥미 있었다. 이런 공포들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데 ‘다포’ 즉 공포가 많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한옥은 공포가 많으면 더욱 화려하게 보인다. 대웅전의 창틀(창호)은 한 칸에 3개가 달려 있는데 가운데 문은 민꽃살(세모솟)무늬이고, 좌우가 ‘육모솟을 빗살’ 인데 특이하게 육모솟을 빗살에만 녹색으로 칠을 해 놨다. 창틀의 빗살무늬는 삼각형 모양의 세모형과 육각형 모양의 육모와 세로 방향으로 긴 살대가 솟아 있으며, 그리고 아주 소박한 형태의 꽃살, 즉 꽃인지 줄기인지 모를 정도의 아름다운 민꽃살의 미학을 볼 수 있다. 정말 대웅전의 창틀만 바라보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조각의 솜씨가 기가막힐 정도이다.
목공기술과 건축기술의 끝판왕은 ’그랭이공법‘이다. 그 아름다운 공법을 이곳 대웅전의 건축에서 볼 수 있다. ‘그랭이공법’이란 건물의 기둥을 받치고 있는 울퉁불퉁한 돌면에 나무 기둥을 돌 모양 그대로 다듬어서 돌 위에 올리는데 그 모양을 따내는 것을 ’그랭이공법‘이라 한다. 흔한 예로 한옥을 보면 주춧돌을 가공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돌을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다. 주춧돌 위에 올려진 기둥의 밑면을 돌에 맞닿는 면의 모양대로 나무를 깎아 올려놓는 방법이다. 사실 목공기술의 백미는 ’그랭이질‘에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서로 다른 이질적인 바윗돌과 나무기둥이 만나 절묘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특히 그랭이공법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만 봐도 우리 조상들의 지혜는 가히 놀라울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선조들은 왜 ’돌‘을 평평하게 다듬지 않았을까? 이유는 자연사상. 즉 ’돌‘은 물질을 대표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산업혁명 이후의 현대문명은 철의 문명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이전의 수천 년 동안 세계를 지배한 대표적인 물질이 ’돌‘이라고 한다. 우리 옛 건축에서 ’돌‘은 단순히 건축재료가 아니었다고 한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는 중요한 통로였으며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배우고 구현하는 데 있다고 한다. 주춧돌과 나무기둥의 조화를 볼 때 우리가 본받아야 할 도덕 정신인 것 같다.
2024년 6월 16일 성환 쓴다..
괘불지주
대웅전
공포
그랭이질
창틀
세모솟(민꽃살)
육모솟을빗살
첫댓글 자연에의 동화 ..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로움과 자연친화 사상이 그대로 묻어 나는 것이 우리 고유의 건축물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정원을 보면 깨끗하고 아름답다 고는 느껴지는 데 돌아서면 별로 남아 가슴에 남아있지 않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이것은 아마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많이 가미 되어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뭏던 선배님 덕분에 좋은 곳 알게 되어 감사. 이웃 산청에 이러한 사찰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저도 한번 가 보아야겠습니다. 늘 건행 하십시오.
후배님 고맙습니다. 고향에서는 거리가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네 근거리라 얼마 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