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겨울이 다가옵니다. 텅 빈 나무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칼바람이 앙가슴을 파고듭니다. 당신도 그러리라고 짐작됩니다만, 저 또한 깊은 절망에 사로잡혔습니다.
지난 편지에서 말씀드린 RTV(www.rtv.or.kr)의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송두율 교수 구속과 이라크파병 그리고 농민과 노동자의 자살에 이어 수능시험을 다루면서 스산한 절망감은 더욱 깊어갔습니다. 삶을 본격적으로 열어갈 10대들마저 사회제도에 자살로 항의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새삼스러운 사실 때문입니다.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출연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원영만 위원장은 해마다 200여 명의 10대들이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고 있는 충격적 현실을 고발하면서 교육현장의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비단 200여 명의 학생에 그치지 않는답니다. 대다수 학생들의 창의성과 가능성이 일상적으로 교실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증언은 통렬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문득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10대 시절에 이미 죽은 게 아닐까 하는 잿빛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무례하고 발칙한 상상입니다만 차분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살아있는 20대는 물론이고 30대, 40대, 50대 두루 10대 시절의 입시지옥을 지나면서 삶에 진정으로 소중한 어떤 것을 스스로 죽인 게 아닐까요. 아니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죽임을 당한 게 아닐까요.
보십시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의 눈은 뻘겋게 경쟁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있습니다. 특히 조금이라도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들일수록 더 그렇지요. 위선과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서 자기 몫을 잃지 않으려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군상들을 보십시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슬픔은 그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나선 사람들 사이에서도 단결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조각조각 갈라져 서로가 서로의 진의를 의심하고, 정작 싸워야 할 대상은 앞에 있는데 자꾸 옆이나 뒤를 보다가 심지어는 앞에서 싸우고 있는 동료의 뒤통수를 때리는 일이 거의 모든 조직과 영역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에 대한 믿음의 상실로 이어질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 남녀노소의 군상 모두 '대한민국 입시교실'이 만든 창백한 인물화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편가르기의 '먹물 전통'에 더해 비인간적인 경쟁이데올로기가 뿌리깊은 '생활문화'가 되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입니다. 오래 전부터 제가 펴내는 책들에 '혁명'이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써왔습니다만, 이번에 '작심'을 하고『아직 오지 않은 혁명』을 내걸었습니다. 출판사인 <월간 말>의 벗들―새삼스러운 말입니다만 그 벗들도 출판 본령의 일 못지 않게 진보적 월간지의 재정에 도움이 될 책을 펴내야 할 '현실적 과제'를 지니고 있습니다―과 더불어 고심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그것이 우리 시대의 화두요, 우리 시대의 '말'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월간 말> 출판부도 기꺼이 동의해주었습니다.
물론, 당장 '아직 오지 않은 혁명'의 투박한 제안이 손쉽게 퍼져 가리라는 환상은 없습니다. 이를테면 예상대로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들이 그 책이 담고 있는 '제안'은 말할 나위 없고, 출간 자체를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개혁의 이름을 내건 저 '두 민주인사'를 비롯해 노무현 정권의 오늘은 이제 우리가 혁명이라는 말을 다시 진지하게 화두로 삼아야 할 당위성을 생생한 현실로 증언하고있습니다. 오늘 이 땅에서 '혁명'을 제안하는 게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하지만 우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혁명'이란 말이 입증하듯이, 제가 '볼셰비키혁명'을 주장할 만큼 현실에 둔감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오늘의 이 절망적인 민중 현실과 민족 현실을 바꿀 가장 현실적인 가능성으로서 혁명을 시나브로 제안해 가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온전히 살아가기가 역겨운 이 시대를 절망하는 당신께, 특히 분신과 투신의 분노에 가득 찬 당신께, 동시대인으로서 사랑의 고백말을 전해드립니다. 함께 살아서, 함께 바꿉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