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판소리, 동동주의 황홀한 맛 ( 옛소리의 샘 )
`제비 몰러 나간다아________'
우리집 다섯 살바기 꼬마가 가장 먼저 배운 판소리는
흥보가 중의 `제비 몰러 나간다'이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까지 그럴 듯하게 따라 한 다음 아이가 묻는 말은 `엄마,
우리 것이 뭐예요?'다. `우리 것'이 무슨 과자나 음료수
이름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대답할 말을 찾다 못해 나는
어쩔 수 없이 남의 어감을 흉내냈다. `좋은 것은 우리 것이여.'
판소리가 뭐냐를 한 마디로 답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밥 좀 주오오______' 내가 판소리 연습을 하면 꼬마는
`엄마는 노래 연습한다면서 왜 그렇게 소릴 질러요?' 핀잔이다.
판소리 배운다니까 어떤 친구는 목소리를 낮추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똥물은 언제 먹을 꺼니?' 서편제를 보면서 눈두덩이
짓무르도록 울었다는 피아노 학원장님은 그러나 `판소리가
나올 때마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귀를 막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판소리는 갈등을 가진 이야기를 소리와 말로 엮은 것이다.
소리에 얹은 이야기를 마당이라고 하는데,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등 `5 마당'이 전해온다. 판소리가
생긴 지는 200 년쯤으로 추측된다. 예전에는 대청이나 너른
마당에서 판을 벌리고 판놀음을 놀았는데, 이 판에서 가수가
소리하는 걸 일러 `판소리'라 했다. 허나 노래만 잘 하면
되는 가곡, 민요에 비해 판소리 광대는 뛰어난 자질을 요한다.
옛이야기를 혼자서 노래로 재담으로 몸짓과 표정으로 일곱
여덟 시간 동안 판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관솔불이 꺼진 줄도 모르고, 동녘이 희부옇게 터오는 줄도 모르고
암행어사가 출도하여 춘향을 구하기 전에는
멍석을 뜨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껏 이름을 전하는 명창은 많다. 권삼득은 이른바 양반
광대인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판소리만 하자 가문에서
그를 죽이기로 결정하고 거적을 덮었다. 허나 그는 거적
밑에서 애간장을 녹이는 소리를 하여 죽음을 면했다. `가왕'
송흥록은 뭇 귀신들의 괴기한 울음소리 흉내로 사람들을
소름 끼치게 했다. 한쪽 눈이 곪은 박유전은 운현궁을 자주
드나들었다. 곪은 눈을 뜨고서 대중 앞에서 소리를 팔아야
했던 그의 옹이 깊은 설움조가 풍전등화격인 대원군의 신세를
위로했으리라. 서편제의 꽃은 임방울이다.
1929년 전국명창대회에서 검정 두루마기 차림의 시골뜨기가
`쑥대머리'를 부르자 장내는 박수와 재청으로 들끓었다.
목에 칼을 쓰고 앉은 춘향의 신세자탄은 약간 갈라진 듯
곰삭은 그의 수리성을 타고 나라 없는 백성을 울렸다.
판소리는 한의 예술이라느니, 서편제와 동편제로 나뉜다느니,
목구멍이 갈라지고 피를 쏟아야만 명창이 된다느니 등의
소문이 꽤 많다. 가래 끓는 목소리(수리성), 가사가 뭔지
모를 발음, 귀 기울일 만하면 옆에서 소리치는 사람들(추임새)
때문에 친하기 힘들다는 사람도 있다. 판소리는 목을 둥글게
열고 코를 울려 맑은 소리를 내는 서양 발성법과 다르다.
탁하면서도 맑은 천구성을 뱃힘으로 질러내야 으뜸소리다.
추임새 또한 고수의 그것과 더불어 소리꾼의 소리를 부추기는
필수품이며, 발음도 오페라의 그것보다는 알아 듣는
구석이 많을 것이다.
판소리는 클래식처럼 자꾸 듣는 수밖에 다른 정도가 없다.
다행히도 임방울, 이동백, 이화중선의 음반이 복각되어
시중에 나와있다. 뿌리 깊은 나무의 판소리 시리즈도 들을
만하고, 조상현, 성창순, 안숙선의 목소리도 찾으면 있다.
허나 어떤 좋은 음반이 산 명창을 당하겠는가. 3월 26일
국립극장 소극장에 가서 오정숙의 완창 판소리 수궁가를 들어보라.
4월 30일 김소영의 춘향가를 들어보라. 단번에 문화재급 보물이
가득 들어찬 곳간 열쇠를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