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끝자락 주중 수요일이었다. 퇴근하여 저녁식후 창원시립도서관으로 나갔다. 지금은 이름을 바꾸어 의창도서관이라 불린다. 그간 내가 빌려 읽은 책을 반납하고 다시 세권 책을 골라 뽑았다. 도서관 현관에서 뜰을 내려서니 거리는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인근에 용호와 중앙의 두 곳 고교는 교실마다 불을 훤히 밝힌 채 고요했다. 자녀를 학교 보내 놓은 부모 마음이 헤아려졌다.
도서관과 이어진 공원 언덕에는 개나리꽃이 화사하게 드리워 있었다. 콘크리트 옹벽에는 새로 단장한 벽화가 산뜻했다. 용지호숫가는 어둠이 살짝 드리운 때였다. 근처 상가빌딩에선 네온 불빛이 휘황했다. 물결이 일지 않은 호수 수면은 아주 잔잔했다. 삼각지 자투리에는 팬지 꽃 사이로는 튤립이 싹을 내밀고 있었다. 아마 팬지꽃이 지고 나면 연이어 튤립 꽃을 선사할 채비를 하였다.
용지호숫가 사계는 철 따라 다른 모습이다. 지난겨울 호수 수면은 한동안 꽁꽁 얼어 있었다. 추위가 아무리 혹심해도 롯데아파트 앞쪽 볕바른 언덕의 애기동백은 요염한 꽃을 피웠다. 이제는 호수가장자리 창포나 부들 새싹이 돋아나고 있는 즈음이다. 호숫가 주변 언덕에도 개나리꽃이 때맞추어 노랗게 수를 놓았다. 물속이라 알 길 없었다만 물고기도 알을 슬어 세대교체를 하지 싶었다.
도심에서 시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용지호수다. 낮에는 낮대로 산책객들로 붐빈다. 주말이나 일요일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유모차를 밀고 나온 새댁이나 은발의 노부부들이 더러 보았다. 밤이나 새벽녘에도 운동을 하러 나온 중장년층 있었다. 나는 비오는 날 새벽이나 일요일에 우산을 받쳐 쓰고 산책을 나갔다. 창원에서 이만한 친수 휴식공간이 있음이 무척 자랑스럽다.
아득한 옛적 인류 문명이 발상한 곳은 모두 강을 끼었다. 현대 첨단 도시문명도 그렇다. 서울은 한강, 상하이는 양쯔강, 파리는 세느강, 런던은 템즈강, 뉴욕은 허드슨강 연안에 위치한다. 이처럼 인간은 물을 잘 이용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여왔다. 사막화가 급속히 진행 중인 아프리카 일부 부족은 당장 일용할 식수조차 구하기 어려운 처지라 한다. 거기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다행인가.
진해와 마산은 바다와 바로 인접해도 옛 창원은 사정이 좀 다르다. 실개천은 아니다만 창원천과 남천이 도심을 빠져나가도 내륙분지나 마찬가지다. 언뜻 보면 도심에서 수자원을 가까이 접하기 쉽지 않은 편이다. 그래도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용지호수는 웬만한 도시를 꿰뚫고 흐르는 강만큼 시민들에게 소중한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창원 도심에서 산소탱크 같은 용지호수다.
시민들에게 남아 있을 용지호수 인상은 여러 갈래다. 잘 정비된 호반산책로는 많은 시민들이 이용한다. 유모차를 미는 새댁에게는 아기의 꿈길이다. 팔짱을 낀 젊은 남녀에게도 달콤한 꿈길이다. 운동화 끈을 조여 묶고 걷는 은발 부부에게는 황혼녘 꿈길이다. 실연이나 실직의 아픔을 겪은 이들에게는 다시 일어나도록 북돋워주는 꿈길이다. 병고를 딛고 일어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용지호수의 사계는 시민들에게 각양각색으로 비친다. 호수 수면에는 수련을 비롯한 몇 종의 수생식물까지 자라고 있다. 근래는 동절기를 제외하고 저녁 지정 시간대면 영상 음악분수까지 제공된다. 꽃이 피면 꽃이 피는 대로, 잎이 무성하면 잎이 무성한 대로, 단풍이 물들면 단풍이 물드는 대로,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는 대로 계절마다 다른 옷을 갈아입기에 여러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용지호수는 아무래도 인공이 많이 보태진 도심공원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 피어나는 꽃을 봐도 그렇다. 동백은 철이 지나고 개나리가 한창이었다. 예년보다 하루 이틀 늦다만 벚나무 가지마다 꽃망울도 한껏 부풀었다. 내가 용지호수에서 본 가장 빼어난 모습은 이런 꽃들이 아니었다. 동쪽 언저리 예닐곱 그루 능수버들이다. 수액을 빨아올려 연두색으로 번지는 휘어지는 저 가지를 보라. 1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