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관측의 위업을 달성한 브라헤
인류 최고의 육안 천문학자인 티코 브라헤(tycho Brahe, 1546~1601)는 코페르니쿠스가 죽은 지 3년 후인 1546년에 덴마크에서 태어났다. 쌍둥이였던 브라헤는 다른 한 아이가 죽자, 쌍둥이라는 뜻의 '티게(Tyge)' 대신 '복 있는 아이'라는 뜻의 '티코(Tycho)'로 불리게 되었다. 브라헤는 어려서 사회적, 경제적으로 지위가 높은 큰아버지의 양자로 들어가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일을 하면서 자랐다. 그리고 13세에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코펜하겐 대학에 입학했지만 법학 대신 물리학과 수학에 대한 그리스 고전과 점성술 등을 공부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일례로 브라헤는 1560년 8월에 부분일식을 관측하면서 천문학자들이 일식을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사실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이후 브라헤는 <알마게스트>를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읽었고, 점성술, 천문학, 수학 등도 열심히 공부했다.
브라헤는 '복 있는 아이'라는 티코 자신의 이름처럼 덴마크 국왕의 후원을 받으며 여러 관측기구들을 가지고 천문 관측에 몰두했다. 1576년에 덴마크 국왕이 초대한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1572년에 발견한 초신성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덴마크 국왕 프레데릭 2세는 브라하에게 흐벤 섬을 하사한 후 그곳에서 천문 관측을 하도록 후원했다. 브라헤는 왕에게 받은 영지에 두 개의 거대한 천문학적 성, '하늘의 성(우라니보르그 Uraniborg)'과 '별의 성(스테르네보르크 Stjerneborg)'을 세웠다. 두 개의 성은 당대에 가장 훌륭한 과학시실이었다.
브라헤는 일찍이 정확하고 지속적인 천문 관찰을 통해 천문학이 완성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거대하고 정교하게 고안된 육안 관찰 장비들을 제작했다. 예를 들어 브라헤는 망원경이 발달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각거리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천문학적 기구인 '방위각사분의'와 구리로 만든 대형 '천구의'를 만들었다. 이외에도 그는 우라니보르그와 스테르네보르크에 벽면사분의와 혼천의를 비롯해 20여 가지에 이르는 중요한 관측 장비들을 설치했다. 브라헤는 관측기구들을 이용해 독특한 방법으로 행성의 운동을 관측했다.
브라헤는 값비싼 장비들을 이용하고 바람의 영향을 막으며 온도의 변화를 최소화하고 내적인 오차를 검사하고 수정하며 대기에 의한 굴절을 보정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역사상 가장 정확한 육안 관찰 자료를 얻어 기록했다. 브라헤가 관측한 자료의 오차는 5초나 10초 각도, 혹은 1분이나 2분 각도 정도로 고대의 천문학 관찰보다 두 배는 정확했다. 이 정확도는 망원경 관찰리 이루어질 때까지 최고의 자리를 지켰다. 브라헤는 관측한 사실에 기초해 이전의 모든 관측 자료가 부정확하다는 사실들을 발견했다.
브라헤는 두 가지 천문학적 사건을 겪으면서 자신의 천문학적 지식들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는 연금술과 점성술에 관심이 많아 친구와 후원자들을 별점을 쳤고 연금술적 의학을 보급하기 위해 여러 개의 연금술 실험실을 설치했다. 1572년 11월 11일 밤에 연금술 실험실을 나서다가 브라헤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별이 카시오페아 자리에서 금성만큼 발게 빛나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 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별에 변화가 있을 수 없다"라는 학설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하늘은 완벽해서 더 이상 모습이 변하지 않는 영구불변한 존재라고 여겼다. 이러한 생각을 수용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브라헤의 발견을 신성이 아닌 혜성이라고 간주했다. 하지만 새로운 별이 스스로 빛을 내지도 아닌 혜성이라고 간주했다. 하지만 새로운 별이 스스로 빛을 내지도 않고 떠돌아다니지도 않으며 지구의 대기권 안이아 달 아래의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토성 천구보다 먼 거리에서 발견되었다. 브라헤는 정확한 시차 관찰을 통해 이러한 사실들을 알아내었고 그러한 이유에서 그 별을 일명 '티코의 초신성'이라고 불렀다.
1577년에 브라헤는 시차 관찰을 통해 달 위의 영역에 있는 혜성을 발견했는데, 혜성이 행성들의 천구를 관통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신성과 혜성의 발견은 수정체 천구의 존재와 서로 모순을 일으키는 것으로서 고체 천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브라헤의 발견은 하늘 역시 완전하지 않고 하늘도 자연의 모든 존재들처럼 변화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전통적인 서양 우주론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했고 천상계와 지상계의 구별을 타파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브라헤는 '티코의 우주구조'라는 코페르니쿠스와 다른 과도기적 우주구조를 발표했다. 브라헤는 처음에 수학적 간결성 때문에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구조를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경험적 근거에 입각하여 물리적으로 불합리하고 성서와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구조를 거부했다. 특히 항성 시차가 관찰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대신 브라헤는 1588년에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정지해 있고 그 주위를 달과 태양이 돌고 있고 다른 행성들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지구태양중심체계'를 주장했다.
티코의 우주구조는 태양중심설과 지구중심설을 적절히 섞은 '과도기적 우주구조'로 몇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즉 행성의 정지와 역행을 주전원 없이 설명했고, 설명하기 어려운 지구의 운동을 제거했으며, 다른 체계들 못지않게 수학적으로 정확했다. 이러한 티코의 우주구조는 당시의 다른 천문학자들에게 하나의 대안을 제시해 주었으나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구조보다 훨씬 복잡했기 때문에 널리 수용되지 않았다.
브라헤는 16년 동안 화성을 관측하면서 화성의 역행과 순행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 노력에 대한 보답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천부적인 시력을 가진 브라헤는 맨 눈으로 화성을 관측한 후 최고의 정밀도를 자랑하는 화성 관측 기록을 작성했다. 1600년에 28세의 케플러와 53세의 브라헤가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 만남을 가진 이후에 브라헤의 관측 기록들은 수학적 재능이 뛰어난 케플러에게 유산으로 남겨졌다. 케플러는 브라헤의 자료들을 근거로 화성의 운동과 지구중심설을 설명하는 행성의 법칙과 행성운동에 대합 해답들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