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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제작년도 : 1998년 ㆍ제작국가 : 미국 ㆍ감독 : Barry Levinson ㆍ출연 : Dustin Hoffman, Sharon Stone, Samuel L. Jackson
태평양 해저 깊숙한 곳에서 우주선으로 보여지는 미확인물체가 발견되면서 이 영화는 시작된다. 정부는 이 우주선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과학자들로 구성된 탐사팀을 해저에 내려보내고, 그들은 우주선 안에서 둥근 구체, 즉 스피어를 발견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마음을 읽고 그 안에 있는 공포를 현실로 불러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영화는 바로 이 '스피어'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미스테리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를 잠깐 들여다 보자.
▒ 의미심장한 영화 속 배경, 바다. <스피어>의 무대는 깊은 바닷속이다. 바다는 심리적으로 여러 가지를 상징하는데, 모든 가능성을 포함하는 생명의 원천이자, 모든 생물의 탄생이 이루어졌던 장소라는 의미에서 '어머니'를 나타내기도 한다. 바다는 <스피어>에서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무의식을 상징한다. 바다는 무의식처럼 깊이를 가늠할 수 없고, 심연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영화에서 네 명의 탐사팀은 외계인을 만나러 내려갔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의식과 만나러 간 것이다. 무의식은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자신을 해치고 괴롭히는 대상이 존재할 수도 있다. 의식세계는 빛이 지배하는 지상의 세계처럼 우리가 의식하고 느끼고 냄새맡고 감촉을 느끼는 현실의 세계다. 하지만, 무의식은 흔히 우리가 어둠의 세계라고 하는데, 우리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고 어떤 생각이 도사리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를 두려워하거나 감추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 당신도 무의식을 볼 수 있다면? <스피어>에서 네 명의 탐사팀은 깊은 바닷속에서 우주선에 있던 구체에 들어갔다 나온 후부터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신비한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이 생각했던 것은 탐욕, 이기심, 공격성, 분노감 뿐이었다. 또한 어린시절에 가지고 있었던 공포의 대상물이 실제로 나타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여기서 스피어는 인간의 무의식과 접하는 도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스피어를 통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무의식의 파괴적이고 무서운 측면들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탐사팀은 자신 안에서 해결되지 못한 채 의식 저편으로 깊숙이 밀려나 존재하고 있었던 무의식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혼란에 빠진다. 특히 탐사팀의 무의식 내에 있었던 내용들은 우리들이 흔히 억누르고 있었던 기억이나 사고, 느낌 등 우리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고통스럽고 남에게 보이기 싫은 것들이기에 그들은 더욱 괴로워했다.
▒ 변화를 원하지 않기에 계속 뱀에 쫓기고... 심리학자인 노먼은 어린시절 해파리 때문에 고통받았던 아픈 기억과 뱀에 대한 공포가 현실로 나타난다. 이렇게 나타난 해파리는 동료를 죽이고, 뱀은 노먼을 쫒아다니며 계속해서 괴롭힌다. 여기서 특히 뱀은 여러 번 허물을 벗는 성질 때문에 재생, 영적인 변환을 의미한다. 따라서 노먼이 뱀에게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곧 무의식 속에서 노먼이 의식의 변환과 새로운 의식의 자각을 요구받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노먼의 의식은 이런 변화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뱀에 쫒겨다니기만 한다.
▒ 오만함과 경쟁심리가 동료를 죽음으로 까지? 해리는 자신이 똑똑하다는 오만함과 다른 사람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는 타인과의 관계를 고려하고 자신의 사회적인 위치 때문에 이런 마음을 남에게 노출하지는 않았다. 남들로부터 거만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고, 남들로부터 따돌림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스피어라는 마법의 힘을 가진 물체 속에 들어갔다온 후에는 자신이 그동안 숨겨왔던 무의식을 그대로 노출하고 만다. 자신과 경쟁관계에 있던 동료에 대한 살의가 현실로 나타나면서 동료를 죽음으로 몰고갔으며, 또한 그가 숨겨왔던 타인에 대한 파괴 욕구가 의식의 통제를 벗어나면서 모든 탐사팀을 위험에 빠뜨리고 만다.
▒ 무의식의 긍정적인 측면 무의식에는 이렇듯 위험하고 부정적인 속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무의식 속에 있는 두려움과 공포를 조금씩 분화시키고 동화한다면, 의식이 더욱 성장하고 성숙해질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또한 무의식 속에는 거부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부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긍정적인 장점이라든가, 모습이 발견되어질 수 있다. 이렇듯 무의식은 항상 의식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싶어하며, 이런 보상작용을 통해 인간의 마음은 균형을 이룬다. 하지만 무의식에 접근할 때 아무런 준비없이 하거나 의식과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무의식에 몰입하면, 의식은 무의식에 사로잡히고 만다. 이런 상태를 심리적으로 정신병적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정신병적인 상태란 의식의 기능이 약해지면서, 의식에 의해 억압되었던 무의식의 파괴적이고 위협적인 측면이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을 말한다.
▒ 준비되지 않은 무의식과의 만남 <스피어>의 탐사팀이 거쳐 간 구체는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열어주는데, 그들은 의식과 단절된 상태로 무의식과 접했기 때문에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무섭고 위험스러운 무의식의 내용으로 고통을 받게 된 것이다. 탐사팀이 이처럼 자신의 무의식에 무방비 상태로 완전히 노출되었던 것은 이들이 무의식에 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탐사팀은 사실 노먼의 엉터리 보고서 때문에 소집되었고,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왔으며, 깊은 바닷물을 유영할 수 있는 잠수 기술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이들은 즉 타의에 의해 무의식과 접촉하게 되었으며, 바다라는 무의식을 탐사할 수 잇는 기본적인 훈련도 되어 있지 않았다.
▒ 치유하지 못할 환부라면, 건드리지 말자. 그래서인지, <스피어>를 연출한 베리 레빈슨 감독도 자신 안에 있는 무의식적인 내용을 억지로 잊고 현실만을 보고 살라고 주장한다. 즉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니면 영원히 인정하지 않는 방법 말이다. 그래서 <스피어>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지막 생존자인 노먼, 베스, 해리는 마법의 능력이 있는 스피어에 대한 모든 것을 잊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 장면은 하데스의 망각의 의자를 떠올리게 한다. 이들은 사실 스피어가 남용될 게 두려워서 잊기로 했다기 보다는 자신 안에 존재하는 어린 시절의 상처, 탐욕, 살의, 경쟁심 등을 떠올리는 게 고통스러워 모두 망각의 저편으로 보내고, 다시 지적이며 선량한 인간으로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글/ 김상준(정신과 의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