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21:10~26)
'므낫세는 유다가 죄를 짓도록 만들어
그들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게 한 일 외에도
죄없는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한 일이 무척 많았습니다 .
그리하여 그 피가 예루살렘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됐습니다.'(16절)
지리하고, 지루하게 느끼는 내 감정,
그 인내의 한계를 넘어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에 반역하는 왕들이 등극-죄앙-폐위를
반복한다.
열왕기를 읽으며
생경스럽게 교훈을 얻는다.
얼마나 우리의 죄악이 끈질긴지.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것을 벗어나 생명의 길로 인도하려는
하나님의 '노력(?)'은 또 얼마나 큰 것인지.
우리의 죄성과 하나님의 은혜가
양극에서 더욱 극명해지는 시간이다.
왕의 악행으로
함께 재앙을 받는 백성, 민초들을 생각한다.
죄악은 리더인 왕이 다 저질러 놓고
왜 죄악의 대가는 공동으로 감당해야 하는가?
불공평하다, 정의롭지 못하다!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그 안에도 어떤 이유, 진리와 공정에 어긋나지 않는
사실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다.
예를 들어,
타자로부터의 '영향'은 무시하기 힘든 '힘'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의 고유 권한은,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
또는 최종적으로는 '죽음'이라는 것이 인간에게는
'종결'의 의미가 되지만,
하나님에게는 '과정'의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
죽음을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
이런 것을 건조하게 말하는 것이 매우 비현실적이지만
아무튼 사실은 그럴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이런 죄악의 퍼뜨림, 전염, 그리고 그 피해, 폐해에 대한
책임은 다 어디로 간단 말인가?
그것은 철저히 그것을 저지른 이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동체 안에서 죄를 전염시키는 것에 대한 책임은
전염자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자들은
아무리 악의 관성이 강하더라도
자신에게만 주어진 선택권을 힘 없이 양도하지 않은
의무와 책임이 있다.
물론 악의 관성이라는 것이 가공할만하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그것을 이기고
자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더 큰 힘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나는 믿는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평온한 주말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귀한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옳은 묵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주관대로 막나가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의 자유로운 묵상, 솔직한 묵상, 자발적인 묵상을
하나님께서 품으실 것이라 믿습니다
저의 잘못된 점은 하나님께서 교정하여 주시옵소서.
너무나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 양정환 집사,
주님께서 힘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양소영, 건강을 회복하게 해 주시옵소서.
저의 어머니 조성일 권사, 주님께서 힘과 건강을 최대한 부여하셔서
오랫동안 저희들과 사랑 나누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를 주님 안에서 잘 누리는 시간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