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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장
다윗은 블레셋 망명중에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차출되어 나가서 싸워야 할 판이었는데 겨우 모면합니다. 그가 거주하던 시글락에 돌아왔을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그 성읍을 쳐서 모든 가족들이 다 끌려갔습니다. 다윗이 군대를 이끌고 쫓아가서 그들을 치고 가족들을 다 데리고 돌아옵니다. 사흘 후에 한 아말렉 청년이 전쟁하던 사울의 진영에서 도망 와서 다윗에게 이릅니다. 그는 옷을 찢고 머리에 흙을 뒤집어쓰고는 애도하면서 사울이 죽었다는 것을 고합니다. 사울이 죽었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말하자 그 청년은 사울이 전장에서 큰 상처를 입어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자기를 보고는 죽여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보니까 왕이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자기 칼로 죽이고 왕의 면류관과 팔찌를 빼내어서 가져왔다고 내밉니다.
다윗은 그 아말렉 청년의 말을 듣고는 기뻐한 것이 아니라 자기 옷을 잡아 찢으면서 슬피 웁니다. 다윗과 다윗을 따르는 무리들은 해가 질 때까지 함께 울면서 금식합니다. 다윗이 다시 한번 더 그 청년에게 어디 사람인지를 묻습니다. 이스라엘 땅에 거주하는 아말렉 사람이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다윗은 호통을 칩니다.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절) 다윗은 그가 피를 흘렸기 때문에 그 피가 너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곁에 있는 호위병에게 그 아말렉 청년을 치라고 명령합니다. 다윗은 망명 중에 원수인 아말렉인들을 쳤는데, 이제는 이스라엘 내에 남아있던 아말렉 사람을 쳤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대적 사울이 죽었다고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수해 주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애가, 즉 ‘활 노래’를 지어 부릅니다. 다윗은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의 죽음을 이스라엘의 영광이 죽임을 당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절). 다윗은 이 죽음을 이방인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합니다. 즉, 다윗은 이 죽음을 개인적인 죽음으로 이해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왕권이 이방인에게 조롱받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는 용사들이 죽은 길보아 산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을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고,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사울이 이스라엘을 부유하게 했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왕권을 인정하여 여인을 향한 사랑보다 더 큰 사랑으로 자신을 사랑하였던 요나단의 죽음도 크게 슬퍼하였습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절). 다윗은 교회의 직분자답게 복수하지 않고 용서했으며, 언약적인 사랑을 나타내었습니다.
기도: 피는 피를 부릅니다. 이 세상에서 남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 자신이 피를 흘리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피의 복수가 결코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싸움이 그렇습니다. 저희는 피의 악순환을 끊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겨야 합니다. 나를 죽이려고 하는 이들을 용서하고 복수하려는 마음을 끊어내어야 합니다. 저희가 원수의 죽음을, 악한 직분자들의 망함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불쌍하게 생각하고 슬퍼하게 하여 주소서.
사무엘하 2장
사울의 죽음을 애통해한 다윗이 하나님께 묻습니다. 자신이 유다지파 사람이기 때문에 유다 성읍으로 올라가면 되겠냐고 묻습니다. 이제 더 이상 블레셋에 머무를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어디로 올라가야 되겠느냐고 묻자 하나님께서는 헤브론으로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가족과 자기를 따르는 이들을 이끌고 헤브론으로 올라가자 유다 사람들이 다윗을 기름부어 유다의 왕을 삼습니다( 절). 다윗은 사무엘상 30장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유다 지파의 지도자들과 친밀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요단강 동편 갓지파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의 시신을 장사해 주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사절을 보내어서 왕에게 의리를 지킨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복이 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절). 길라앗 야베스 사람들이 한 일은 단순히 친절을 베푼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와 진리에 입각하여 행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다윗은 그들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점령하러 가야 할 여호수아에게 한 말씀과 같습니다. 다윗은 유다 지파가 자신을 왕으로 세운 것을 알리면서 사울이 그들을 구출해 준 인정에 얽매이지 말고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는 일에 동참할 것을 은근히 요청합니다.
유다 외에 다른 지파들은 아직까지 다윗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사울의 조카였으며, 사울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브넬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옹립하여 북쪽 이스라엘 지파들의 왕으로 세웁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요단강 동쪽 마하나임으로 가서 왕으로 세웁니다. 다윗과 사울의 집 사이에 전쟁이 시작됩니다. 아브넬은 군대를 이끌고 다윗의 군대와 싸우기 위해 마하나님에서 기브온으로 진격해 옵니다. 연못을 사이에 두고 양쪽 군대가 진열을 가다듬었습니다. 다윗의 군대는 다윗의 조카(여동생의 아들, 대상 2:16))인 요압이 군대장관이었습니다. 아브넬은 요압에게 12명의 군인들이 나와서 싸우게 하자고 합니다. 그들이 서로를 창으로 찔러 한꺼번에 죽습니다. 이어서 두 군대가 맞붙어 싸웠고 다윗의 군대가 승기를 잡습니다. 아브넬이 자기를 뒤쫓는 요압의 동생 아사헬에게 다른 군인을 쫓으라고 했지만 끝까지 뒤쫓는 아사헬을 창으로 찔러 죽입니다( 절). 다윗의 군대는 아사헬이 죽은 곳에 머물러 섭니다. 요압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브넬을 계속해서 추격합니다. 아브넬은 기브온 암마 산 꼭대기까지 내몰렸는데 ‘언제까지 형제들끼리 싸우겠냐?’고 호소합니다( 절). 요압은 그 말을 듣고는 나팔을 불어 추격을 멈추고 돌아갑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서로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교회가 분열된 것과 같습니다. 언제쯤이면 주의 백성이 하나가 되겠습니까?
기도: 세상과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도 갈등과 다툼이 있습니다. 서로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싸웁니다. 서로 지도자가 되겠다고 하면서 싸웁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가 서서히 인정받고 세워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하시고, 주의 때를 기다리게 하여 주소서. 저희는 경쟁과 다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구하게 하여 주소서.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은혜를 베푸시듯이 저희도 언약백성답게 서로 돌아보고 신실할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사무엘하 3장
다윗의 집과 사울의 집 사이에 전쟁이 길어집니다. 다윗은 점차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게 됩니다( 절). 헤브론에 거하던 다윗은 많은 자녀들을 낳습니다. 아내가 여섯명이나 되었고 여섯명의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집을 번성케 하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윗이 아내를 많이 둔 것에 대해 일부다체제를 비난할 수도 있는데 당시 왕정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울의 집에서는 이스보셋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브넬이 큰 세력을 얻습니다. 그를 건드릴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기고만장하여 사울의 첩이었던 리스바를 범합니다. 왕 이스보셋이 분노하자 도리어 아브넬이 맞받아칩니다. ‘내가 당신 아버지 집에 은혜를 베풀어 다윗의 손에 넘겨주지 않았는데 나를 이렇게 대우하냐?’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한 약속을 공적으로 인정합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대로 내가 이루게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브넬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절). 이스보셋은 그 기세에 눌려 찍 소리도 못하고 물러납니다.
아브넬은 자기가 말한대로 다윗에게 전령을 보내서 이 나라를 다윗에게 돌리겠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자기 아내였던 사울의 딸 미갈을 데리고 오라고 말합니다. 아브넬은 미갈을 그녀의 남편에게서 빼앗아 옵니다. 울면서 쫓아오는 그녀의 남편 발디엘을 돌아가라고 호통칩니다. 미갈은 원래 다윗의 아내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브넬은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사울이 속한 ‘베냐민의 온 집’도 설득하여 다윗을 따르게 합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설득하여 그들의 마음을 다윗에게로 돌린 다음에 아브넬이 다윗을 찾아가자 다윗이 잔치를 베풉니다. 그 잔치자리에서 아브넬이 말합니다. “내가 일어나 가서 온 이스라엘 무리를 내 주 왕의 앞에 모아 더불어 언약을 맺게 하고 마음에 원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기 하리이다( 절).
다윗의 군대장군 요압이 전쟁터에 나갔다고 돌아와서 벌어진 일을 듣습니다. 그는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왕 다윗을 방문한 것을 속이기 위해, 즉 정탐을 하기 위해 온 것으로 간주합니다. 사실, 그는 자기 동생 아사헬의 죽음을 앙갚음하기 위해( 절) 아브넬의 뒤를 쫓아가 왕이 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 몰래 데리고 옵니다. 다윗은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요압은 자기 장막에서 아브넬을 칼로 찔러 죽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요압을 저주합니다( 절). 자신과 자신의 나라는 그 피에 대해 무죄하다고 하면서 요압의 가문에는 병자나 죽음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저주합니다. 다윗은 사울이 죽었을 때처럼 아브넬을 위해서 애가를 지어 부르고 헤브론에 장사해 줍니다. 아브넬이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 애가를 들어 보십시오. “아브넬의 죽음이 어찌하여 미련한 자의 죽음 같은고? 네 손이 결박되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차꼬에 채이지 아니하였거늘 불의한 자식의 앞에 엎드러짐 같이 네가 엎드러졌도다.” 다윗이 하루 종일 금식하고 슬퍼하자 온 백성이 비로소 아브넬을 죽인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다윗은 자신이 요압을 제어할 힘이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젠가 요압의 그 악을 갚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절). 다윗은 정의로운 나라를 세우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때에 처벌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도: 저희는 적과는 끝까지 싸워 그들을 굴복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힘이 없을 때는 어쩔 수 없이 기다리겠지만 힘이 생기면 반드시 복수하려고 합니다. 저희가 저희를 공격한 이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분통 터뜨리며 살지 않게 하소서. 과거의 적이 동지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협력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정의와 공정에 목을 매지만 그 정의와 공정이라는 것도 저희의 사적인 감정에 치우칠 때가 많습니다. 저희가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해하고, 정의시행을 하나님 손에 맡기도록 도와 주소서.
사무엘하 4장
왕노릇하던 이스보셋은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손의 맥이 풀렸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도 심히 놀랍니다( 절). 사울이 점치는 여인을 통해 자기의 죽음을 듣고 놀랐듯이(삼상 28:41) 그런 큰 두려움이 온 이스라엘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세우셨다는 것을 온 이스라엘이 알게 된 것입니다. 아브넬이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이스보셋의 두 장군을 소개합니다. 그들은 베냐민지파 사람들입니다. 바아나와 레갑이었습니다. 한편 사울의 다른 아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인데 다리를 접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전쟁터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유모가 그 아이를 안고 도망하다가 떨어져서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사울에 속한 두 장군과 사울의 두 아들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두 장군이 사울의 한 아들을 죽이고, 다윗은 또 다른 한 아이를 돌보아 줍니다.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두 장군은 자기들의 욕망에 따라 행하고 있지만, 다윗은 요나단과 맺은 언약에 따라,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행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다윗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는 것을 본 이스보셋의 두 장군 바아나와 레갑이 이스보셋을 암살합니다. 이 둘은 이스보셋의 왕궁에 밀을 가지로 온 체 하다가 침상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이스보셋을 칼로 찔러 죽이고 목을 베어서 밤새도록 길을 달려 다윗에게 그 목을 내어줍니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왕의 생명을 해하려 하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 주되신 왕의 원수를 사울과 그 자손에게 갚으셨나이다”( 절). 얼마나 기회주의적인 행태입니까? 그들은 다윗 아래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큰 자리를 넘보려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다윗의 원수를 제거합니다. 이스보셋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다윗이 이스라엘 온 지파의 왕으로 추대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다윗은 이스보셋의 목을 보고는 기뻐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말합니다.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한다”( 절)고 하면서 말합니다.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고 온 이도 죽임을 당했는데, 너희들이 왕을 침상에서 죽인 것이 더 큰 죄가 아니겠냐고 말합니다. 다윗이 이스보셋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았던 것은 이전에 사울이 그에게 자기 후손을 끊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삼상 20-22). 다윗은 이스보셋이 의인이요, 두 장수는 악인이라고 말합니다. 이에 다윗은 그 둘에게 상 주기는 커녕 무죄한 피를 흘린 그들을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피를 묻히지 않도록 사울 가문이 스스로 무너지도록 역사하십니다. 다윗은 율법에 따라(신 19:19, 21:9) 살인자들을 재판하여 이스라엘에서 악을 제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화해와 공의가 시행되는 왕국입니다.
기도: 저희는 사사로운 감정에 휩싸여서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에 선다면 더더욱 저희는 개인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원한의 감정을 풀려고 합니다. 저희가 공적인 감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복수심이 아니라 말씀에 따라 화해의 길과 정의의 길을 찾도록 도와 주소서.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정의는 사람을 무자비하게 쳐내는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무너지게 하시고, 하나님이 세우신 이를 서서히 높이는 방식임을 알게 하소서.
사무엘하 5장, 시편 2편
다윗은 이제 드디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다윗에게 나아가 ‘우리는 왕의 한 골육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사울이 왕이었을 때도 다윗이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전쟁터에 나갔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되뇌입니다.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절)고 하셨던 말씀입니다. 다윗은 이제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언약을 맺습니다. 다윗과 이스라엘은 서로에게 헌신하기로 서약했고, 함께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겠다고 언약했습니다. 드디어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이 다윗을 왕으로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삼습니다. 다윗은 30세에 왕이 되어 40년동안 다스렸습니다.
다윗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받은 땅 사이에 있던 예루살렘을 쳐서 자신의 도성, 즉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습니다. 그 땅은 원래 베냐민 지파에게 주신 땅이지만 그들이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했기 때문에(삿 1:21) 그 여부수 사람이 눌러앉았는데 다윗이 점령했습니다. 여부스 사람들은 자기들의 성을 난공불락의 성이라고 자랑하면서 다윗을 향해 소경과 절뚝발이가 지키더라도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조롱합니다( 절). 다윗은 여부스 성채 안으로 들어가는 수로를 통해 공격해 들어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예루살렘을 빼앗습니다. 다윗은 여부스족의 성채 옆 가파른 비탈 위의 계단모양의 구조물이었던 밀로를 메꾸어서 성벽을 쌓고 든든한 요새를 만들어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릴 왕의 도성으로 삼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온에 자기 아들을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아드님을 경외하며 섬겨야 할 것입니다(시 2: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십니다.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갑니다. 북쪽의 두로 왕 히람이 자발적으로 다윗왕에서 사절을 보냅니다.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도 보냅니다. 다윗은 히람의 도움으로 예루살렘 언덕에 자신의 왕궁을 짓습니다. 점차로 왕국이 안정되어 갑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우신 것을 더 분명하게 압니다( 절). 다윗의 가문은 점점 더 번성합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처첩을 더 많이 두고 자녀를 더 많이 낳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블레셋이 다윗을 치기 위해 올라옵니다. 두 군대가 르바임 골짜기에서 대진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자신의 손에 붙여주시겠냐고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다윗이 블레셋을 치면서 외칩니다.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절). 그래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하나님이 치고 나가셨다)이라고 짓습니다. 다윗을 블레셋 사람들이 버린 우상을 치웁니다. 이전에는 사울의 머리가 블레셋 신전에서 웃음거리가 되었는데, 이제는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들의 우상을 내팽개칩니다. 블레셋이 다시 쳐들어오는데, 이번에도 다윗이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은 전략까지 세워주십니다. 블레셋 후방에서 기습하되 인근에 있는 뽕나무 꼭대기에서 사람이 걷는 소리가 들리면 공격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윗보다 앞서 가서 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절). 다윗은 블레셋을 쳐서 게바(아마도 기브온?)에서 블세셋 국경이 있는 서쪽 게셀까지 쫓아냅니다. 블레셋이 점령하였던 이스라엘 땅이 수복되고 블레셋이 완전히 물러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다윗을 당한 사람이 없습니다.
기도: 하나님께서 어떤 이를 기름부어 세우시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에게 헌신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영역에 직분자를 세우시는 것은 군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목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직분자들이 목자처럼 양들을 잘 인도하게 하여 주소서. 하나님께 물으면서 악한 세력과 싸우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잘 보호하게 하소서. 직분자들이 하나님께 헌신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서로에게 헌신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직분자들과 저희의 헌신을 통해 하나님의 다스림이 나타나게 하소서.
사무엘하 6장
예루살렘을 왕의 도성으로 삼은 다윗은 그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보좌인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와야 함을 깨달았습니다(대상 28:2). 법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절). 다윗이 블레셋을 포함한 이방 나라들과 전쟁을 벌여 승리하는 문맥(5장과 8장 사이) 속에 법궤를 옮기는 것을 배치하는 것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 법궤가 전쟁지휘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3만명이나 이끌고 법궤가 있는 기럇여아림으로 올라갑니다. 이전에 사울은 제사장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또한 법궤가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해 법궤를 옮겨오려는 시도를 아예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윗이야말로 왕이신 하나님께 바르게 응답한 왕이었습니다. 다윗은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싸울 때도 그렇고 모든 일을 할 때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무엇보다 갈망했습니다.
수많은 악기가 동원되어 연주하는 가운데 법궤가 이동합니다. 다윗은 말씀에 깊이 유의하지 않고 이방인의 방법대로 수레에 싣고(삼상 6장) 옮깁니다. 원래 법궤는 제사장들이 어깨에 매고 옮겨야 했습니다(출 25:12-15). 다윗은 이것을 깊이 살피지 않고 이전에 블레셋에 빼앗긴 법궤가 돌아올 때 수레에 실어서 보냈기 때문에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법궤를 수레에 실어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그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수레를 몰았습니다. 도중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는데 소들이 날뛰어서 법궤가 미끄러져 땅에 쳐박힐 위기에 이르렀습니다. 웃사가 그 궤에 손을 대어 땅에 쳐 박히지 않게 했는데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그를 죽입니다( 절). 다윗이 분노하면서 그 곳을 ‘베레스웃사’(웃사를 쳤다)라고 이름짓습니다. 누구에게 분노한 것일까요? 다윗은 법궤를 옮기는 것이 예사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다윗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그 법궤를 메어가게 했는데, 그때부터 그 집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반 물건을 다르듯이 법궤를 다루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방법대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안치된 날부터 큰 복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급해서 다시 메어오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통해 레위인들이 법궤를 매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 규례대로 시온성에 메어 올립니다. 궤가 움직이자마자 다윗이 제사를 드립니다. 그 궤를 따라가면서 너무나 기뻐하면서 힘을 다하여 덩실 덩실 춤을 춥니다( 절). 법궤가 안치된 뒤 다윗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온 백성을 축복하고 돌려보냅니다. 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다윗의 아내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이 뛰놀고 춤추는 것을 보고는 왕의 체통을 떨어뜨렸다고 생각하여 속으로 업신여겼습니다. 미갈은 다윗이 왕궁으로 돌아오자 직설적으로 다윗의 경박함을 질타하는데 다윗이 반응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 것이라고요. 하나님이 사울의 집을 버리고 자기를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계속해서 뛰놀겠다고요.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재롱을 떨어댈 수도 있고, 더 한껏 낮아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절). 그 말에 대해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미갈은 죽을 때까지 자식을 생산하지 못합니다. 사울의 딸은 다윗에게 씨를 낳아주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경멸하는 이들, 하나님 앞에서 뛰놀지 않은 이들은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 저희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을 거북해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도 시들해지기도 합니다. 저희가 저희 방식대로 하나님을 대하고 예배하지 않도록 도와 주소서. 십계명의 첫번째 돌판에 기록된 것처럼 오직 하나님만 섬기며,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기쁨으로 하나님의 날에 예배하게 도와 주소서. 저희가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너무 점잔을 빼고, 예배를 너무 우습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며, 저희가 함께 나누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원합니다.
사무엘하 7장, 시편 2,89편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 주위의 모든 대적들을 무찌르게 하십니다. 무수한 전쟁이 끝나고 이제 이스라엘에 안식이 깃듭니다. 다윗도 자기 왕궁에 평안히 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절). 이에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으려는 계획을 가집니다. 자기는 그럴듯하게 지어진 왕궁에 거하지만 하나님의 보좌인 궤는 임시로 설치된 천막 안에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의 요청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대로 하면 되겠다고 말합니다.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는 나단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할 때부터 나를 위해 집을 건축하라고 한 적이 있느냐?’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성막 안, 즉 텐트 안에 거하셨습니다. 어느 지파를 향해서도 나를 위해 집을 지어달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제 다윗에게 고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양치기를 데려다가 이스라엘 전체의 양치기, 즉 왕으로 세우고 그와 함께 하셔서 모든 대적을 물리치셨습니다. 이것은 다윗 개인을 넘어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한 곳에 심고 다시는 옮겨가지 않도록 대적을 물리치십니다. 이제는 사사시대와 다를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친히 다윗을 위하여 집을 이루어 주겠다고 하십니다.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절). 하나님께서 언어유희를 하고 계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고 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집을 짓겠다고 하십니다. 다윗이 꿈꾸던 하나님의 집은 다윗의 아들이 짓게 될 것이고, 그의 나라가 영원히 든든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이 다윗의 후손에게 아버지가 되시고,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시 2: ). 이렇게 집을 이루어 주겠다는 말씀은 다윗의 왕권이 자손들에게로 이어져서 그 왕권이 영원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은 ‘영원한 왕권의 언약’입니다(시 89: ). 이것은 메시아의 왕권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맺어주신 그 언약을 기뻐하면서 하나님께 큰 감사를 돌립니다. 다윗은 ‘네가 하찮은 존재인데 무엇때문에 왕으로 세우시고,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시냐?’고 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고는 주의 광대하심을 찬양합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신도 하나님 같은 분이 없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주의 광대하심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시고, 자기와 자기 가문을 복주셔서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신 것과 연관지워 찬양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이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과, 하나님이 영원히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감사합니다( 절). 다윗은 계속해서 ‘영원히’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왕권의 언약을 맺으셨고, 주의 백성은 영원히 주의 이름을 높일 것이고, 다윗가문이 영원히 주님 앞에 있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절)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그의 가문을 영원히 주의 백성을 위한 주권자로 세우셨습니다. 이 모든 언약은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마 1:1, 롬 1:3)를 통해 우리를 영원히 다스리십니다. 그분의 나라가 영원하고, 우리는 그분의 다스림을 받으면서 영원히 복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하나님의 집을 세우려는 선한 열심을 기뻐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희보다 더 열심을 내셔서 저희의 집을 세워주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떨기나무같은 저희를 시냇가에 심으시고 굳게 세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와 저희 집을 굳게 세워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세상나라는 쉽게 스러지지만 하나님이 세워주시는 집과 나라는 영원합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새언약으로 인해 영원히 주의 백성으로 살고, 영원히 주의 나라에서 살게 하소서.
사무엘하 8장
다윗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왕국을 확장시켜 주십니다. ‘그 후에’ 다윗은 서쪽의 블레셋을 쳐서 메덱암마(가드?)를 빼앗습니다. 동쪽의 모압도 쳐서 키를 줄로 재어서 거인들은 다 죽입니다. 이제는 북쪽의 대적들을 쳐 부숩니다. 다윗은 소바 왕 하닷에셀의 수많은 마병과 병거를 쳐 부숩니다. 병거 1백대의 말만 남기고 나머지 말들의 발 힘줄을 자릅니다. 다메섹의 아람 사람들이 하닷에셀을 도우러 왔지만 다윗은 2만2천명을 쳐 죽입니다. 그리고는 그 곳에 수비대를 주둔시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신 결과입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절). 하맛 왕 도이는 다윗이 하닷에셀을 쳐 부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아들 손에 예물을 들려 보내면서 감사를 표합니다. 그가 하닷에셀과 원수관계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받은 예물, 그리고 대적들에게서 빼앗은 것들을 가지고 성전지울 준비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남쪽의 에돔을 쳐서 무찌릅니다. 1만8천명을 쳐 죽이고 그들을 종으로 삼습니다. 그리고는 에돔에 수비대를 상주시킵니다. 다시 한번 더 하나님께서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셨다는 말씀을 합니다( 절).
이제 다윗의 왕국 조직을 말합니다. 아브넬을 죽인 요압이 군사령관이 되었습니다. 여호사밧에 사관이 되었습니다. 사독과 아히멜렉이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스라야가 서기관이 되었습니다. 브나야는 다윗의 용병이었는지 모르겠는데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관할했습니다.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의 역할을 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자기 왕조를 잘 조직한 것은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절). 다윗은 하나님과의 관계인 공의, 그리고 법을 제대로 실행하기 위한 정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제도를 정비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왕은 정의로운 왕이어야 합니다. 불의를 행해서는 안됩니다.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시기 위해 이 비천한 땅에 오셨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공의의 사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무엘하 9장
다윗의 왕국은 공의의 왕국일 뿐만 아니라 자비의 왕국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집에 남아있는 사람이 있는지 묻습니다. 그가 요나단에게 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삼상 20:14-16) 요나단의 후손에게 ‘은총’을 베풀려고 합니다. 사울 집을 섬기던 시바라는 종이 있었습니다. 그가 왕 다윗 앞에서 서자 사울 집에 남은 사람이 있는지 묻습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려고 한다’고 말합니다. 요나단의 아들인데 다리를 저는 므비보셋이 있다는 말을 듣고 다윗은 그를 데려옵니다. 벌벌 떨고 있는 므비보셋을 향해 다윗이 말합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절).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던 일입니다. 다윗은 세 번이나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려고 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호의를 베풀지만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 때문에 베푸는 은총이기에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고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 므비보셋은 뜻밖의 말에 감격해 합니다. 다윗의 왕국의 기초를 확인한 것입니다.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절). 다윗은 친히 사울의 사환 시바를 불러 사울 왕의 이전 모든 재산을 다 므비보셋에게 줄 것이니 잘 관리하고 그를 잘 섬기라고 당부합니다. 시바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분부를 받잡겠다고 답합니다. 다윗은 즉시로 므비보셋을 왕자들과 함께 왕의 상에서 식사하게 됩니다. 얼마나 큰 은총입니까! 죽을 수밖에 없는 그가 왕의 아들인 것처럼 왕과 함께 식사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사울 가문에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대로 신실하게 자비와 긍휼, 사랑을 베풉니다. 다윗은 자신의 왕국이 자비에 근거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자비를 맛본 자들은 마땅히 자비의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 저희는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힘입은 이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푸시는 사랑인 은총을 받은 이들입니다. 자격없는 이들에게 베푸시는 긍휼을 누리는 이들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저희는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어야 합니다. 저희가 다른 이들과 관계를 가질 때 철저하게 갚거나 보상받으려고 하지 않도록 도와 주소서. 다른 사람에게 받은 것만큼 갚고, 내가 한 것만큼 보상받으려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으니 보상이나 갚음이 아니라 값없이 나누고, 섬기게 하소서.
사무엘하 10장, 시편 60편
다윗의 왕국이 자비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소개한 후 다시 전쟁을 기록합니다. 사무엘하 8장에서 이미 다윗이 동서남북 사방의 나라들과 전쟁한 것을 기록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특별히 다윗의 신하를 모욕하고는 아람 사람을 고용해 이스라엘을 대적한 암몬과의 싸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은 바로 뒷 장에 나오는 다윗의 범죄의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요단강 동쪽의 이스라엘 지파들과 붙어있던 땅 암몬 왕 나하스가 죽고 그 아들 하눈이 대신하여 왕이 됩니다. 이전에 암몬의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을 위협하였고 왕 사울이 그들을 물리친 적이 있습니다(삼상 11장). 사울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후 처음으로 대적들과 싸워 이긴 전투입니다. 이후에 암몬의 나하스는 다윗과 더불어 화평조약을 맺었던 것 같습니다. 이에 다윗은 나하스의 죽음 소식을 듣고 조문객을 보내어 위로를 전합니다. “내가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되 그의 아버지가 내게 은총을 베푼 것같이 하리라”( 절). 신하들이 하눈을 꼬드깁니다. 다윗이 신복들을 보내어 조문하려는 것은 왕의 부친을 존경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땅을 정탐하여 칠 기회를 엿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에 하눈은 다윗의 신복들을 정탐군이라고 몰아세워 그들을 잡아 수염 절반이며 엉덩이가 드러나도록 바지를 잘라서 내칩니다. 다윗은 자기가 보낸 사절이 당한 수치를 듣고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 머물다가 다윗성으로 올라오도록 명령합니다.
다윗에게 미움거리가 된 하눈은 북쪽의 여러 아람 족속들을 용병으로 고용합니다. 벧르홉 아람사람, 소바 아람 사람, 마아가 왕, 돕 사람 등을 수 만명 고용합니다. 군대장관 요압이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로 나갔는데 암몬과 아람의 연합군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에 요압은 아비새와 군사를 반으로 나누어 암몬과 아람을 하나씩 맡자고 말합니다. 자신이 아람 사람과 싸우고, 아비새가 암몬 사람과 싸울텐데 어느 쪽이든지 상대 군대가 강하면 싸우다가 서로 도우자고 격려합니다. “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절). 요압은 복수심에 불탄 전력이 있지만 이번에 그는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위한 충성의 마음으로 힘을 내고 있습니다. 아람 군대가 요압 앞에서 패하여 도망치자 암몬 군대도 자기들 성읍으로 줄행랑을 칩니다. 요압과 아비새 둘 다 이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둡니다.
자존심이 상한 아람 사람들이 연합군을 구성합니다. 하닷에셀이 동맹군을 진두지휘합니다. 군사령관 소박이 동맹군을 이끌고 내려오자 다윗이 이스라엘 모든 군대를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서 헬람에서 양 군대가 맞붙습니다. 아람 동맹군이 결정적으로 패배합니다. 아람 병거 7백대, 마병 4만명이 죽습니다. 군사령관 소박도 그 전투에서 죽습니다. 이 결정적 전투로 인해 아람 부족들은 마음을 완전히 바꿉니다. “하닷에셀에게 속한 왕들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함을 보고 이스라엘과 화친하고 섬기니 그러므로 아람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다시는 암몬 자손을 돕지 아니하니라”( 절). 이 전쟁을 치르면서 다윗은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승리의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그 깃발을 매달아 놓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시 60: ). 하나님의 왕국을 무시한 이방나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항해 연합한 이방나라가 철저하게 패배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 중심적이지만 유독 교회를 핍박하는 일에서 만큼은 서로 힘을 합칩니다. 온 세상이 힘을 합쳐 교회와 성도들은 짓밟으려고 하여도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주의 백성을 짓밟고 조롱하는 이들의 결국은 영원한 멸망입니다. 그들은 다가올 영원한 저주를 쌓고 있습니다.
기도: 기독교인인 저희는 전쟁과 평화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죄와 싸우시면서 하늘과 이 땅 사이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해를 이루시고 평화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아는 저희는 평화의 사람이 되고 싶은데 이것을 오해하고 도리어 사람들의 공격과 조롱이 심합니다. 저희가 하나님과 주님의 백성, 더 나아가 이 세상을 위해 사랑과 충성을 다할 수 있도록 힘주시기를 바랍니다. 너무나 연약한 저희이지만 핍박과 조롱이 심해도 결코 물러서지 않고 담대하게 죄와 싸우면서 평화를 일구게 하소서.
사무엘하 11장
전쟁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 우기가 끝나고 추수가 마무리되면 전쟁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앞 장에서 언급된 암몬과의 전투가 재개되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암몬의 수도 랍바를 에워싸고 함락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출전하고 난 후 다윗은 왕궁에 홀로 남아 있었습니다. 병사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전쟁에 나갔는데 혼자 왕궁에 남았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할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한가하게 왕궁 지붕을 거닐다가 저 아래쪽 여염집에서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절). 너무나 아름다워 보여 음란이 발동하여 그 여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녀는 자기 참모인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의 딸이었습니다(23:34). 그녀는 이스라엘에 귀화한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였습니다. 다윗은 그 여인을 데려와서 잠자리를 같이 합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세바를 빼앗아 ‘정욕으로’ 자기의 집을 세우려고 합니다.
다윗과 잠자리를 할 때에 밧세바는 율법에 따라 생리 후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는 목욕을 한 이후였습니다(레 15:19-24). 이 상태라면 그녀는 임신할 수 없었을텐데 이상하게도 임신합니다. 그 여인이 임신하였다는 말을 들은 다윗은 자기의 죄악을 감추기 위해 전쟁터에 나가 있던 그 여인의 남편 우리아를 불러 올립니다. 다윗이 우리아를 집에 보내었지만 그는 다른 병사들을 생각하면서 저녁에 왕궁 문에서 잠을 잤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이 다시 집으로 가서 쉬라고 하자 우리아가 말합니다.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절). 얼마나 충실한 주의 군사입니까? 이에 왕 다윗은 우리아의 손에 편지를 써 보냅니다. 우리아를 랍바 성벽 바로 앞에 내세우고 다른 군사들을 물러서게 하고는 그를 죽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는 세상의 폭군들처럼 신하 우리아를 죽였습니다( 절). 이처럼 그는 ‘살인으로’ 자기의 집을 세우려고 하였습니다.
군대장관 요압이 왕에게 전령을 보냅니다. 전황을 보고하기 위함입니다. 암몬의 도성 랍바에 바싹 붙어서 싸웠기에 군인들이 여러 명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전해야 할 판이었습니다. 왕이 화를 내면서 사사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그렇게 데베스 성에 바짝 붙어서 싸우다가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던져서 맞아 죽지 않았냐(삿 9:50-54)고 말하면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다고 보고하라고 합니다. 요압은 속사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압이 예견한 대로 왕이 말하고, 요압이 대답하라고 한 대로 대답합니다. 그러자 다윗은 그런 일로 기 죽지 말라고, 전쟁터에서는 이쪽이나 저쪽이나 죽게 되어 있다고, 용기를 내어서 성을 함락하라고 말합니다. ‘우리아의 아내’는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고는 통곡하지만 장례를 마친 후 다윗이 불러주니 그의 아내가 됩니다. 다윗이 행한 이 일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 악했습니다( 절). 얼마나 뻔뻔합니까? 자기 죄를 숨기기 위해 교묘한 방법을 동원합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도 별 수 없었습니다. 자기의 정욕 때문에 자기의 충신을 죽이고, 그 충신의 아내를 빼앗는 엄청난 죄를 지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었던 연약한, 아니 완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기도: 저희의 경험상 한번 거짓말하면 그 거짓말은 다른 거짓말로 이어집니다. 거짓말의 퍼레이드가 계속됩니다. 나중에는 급기야 자신이 무슨 거짓말을 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것처럼 한번 죄를 저지르면 그 죄를 덮기 위해 또 다른 죄를 저지릅니다. 죄와 악행의 쳇바퀴를 계속 굴릴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가 죄악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수치를 당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죄의 악순환을 계속되게 합니다. 저희가 저지른 죄와 악행에 대해 벌 받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소서.
사무엘하 12장, 시편 32, 51편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보내어 다윗의 죄악을 폭로하십니다. 나단이 비유인 듯한 이야기를 합니다. 양과 소가 많은 한 부자에게 손님이 왔는데 자기 가축 중에서 잡아서 손님을 대접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이 자식처럼 데리고 기르던 암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잡았다는 것입니다. 그 암양 새끼는 그 가난한 사람에게는 가족과 같았습니다. 자식과 함께 자라고 자기 상에서 함께 먹고, 함께 뒹굴면서 잠도 함께 자는 자기 딸과 같았습니다( 절). 그런 암양 새끼를 빼앗아 잡았으니 얼마나 잔인무도합니까?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그 사람이 양 새끼를 4배나 갚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런 지독한 사람은 죽여야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나단은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소리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사 온 이스라엘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집과 사울의 아내도 주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온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맡기셨습니다. 이것이 부족했다면 하나님께서 더 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부족하여 살인과 음행을 저지르냐는 것입니다. 다윗이 행한 것은 사람에게 한 것이지만 사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긴 것입니다.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절).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한대로 그대로 갚겠다고 하십니다. 칼이 다윗의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할 것이고( 절), 다윗의 집에 백주에 음행이 저질러질 것이라고( 절) 하십니다. 다윗은 은밀하게 악을 저질렀지만 하나님께서는 백주 대낮에 이 모든 보응을 내리겠다고 하십니다.
심판선언에 다윗은 자기 죄를 토설합니다. 사울과는 달리 상한 심령(시 52: )으로 통회합니다. 다윗은 죄를 숨겼던 과거를 안타까워 하면서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시 32: )고 하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악을 용서해 주시지만 그의 회개에도 불구하고 음란과 살인으로 자기의 집을 세우려고 한 다윗의 행동은 원수들에게 크게 훼방거리를 주었습니다( 절).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의 왕도 우리 이방의 왕들처럼 별 수 없구나”라고 비방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원수들의 그런 훼방을 없애기 위해 음란의 씨인 그 아들을 죽이겠다고 하십니다. 계속해서 ‘우리아의 아내’라고 말하면서 그 여인이 낳은 아이가 심하게 앓자 다윗이 살려달라고 금식하면서 기도합니다. 7일만에 그 아이가 죽었는데 다윗의 신하들이 아이가 죽었다는 말을 고하지 못하고 수군거리자 다윗이 알아차리고는 묻습니다. 아이가 죽었다고 하자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궤가 안치된 장막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뵈옵고 왕궁으로 돌아와 음식도 먹습니다. 아이가 살아있을 때에 금식하고 우시더니 아이가 죽었는데 왜 훌훌 털고 일어나시냐고 물으니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거두어 가셨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냐고 말합니다.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절).
하나님은 심판 중에서도 긍휼을 잊지 아니하십니다. 다윗은 아내 밧세바를 위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음란의 씨를 죽인 대신 ‘그의 아내 밧세바’에게 다른 아들을 낳게 해 주십니다. 그 아들이 솔로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입은 자라는 뜻의 ‘여디디아’란 이름을 지어주면서 이 아이를 크게 사랑하십니다( 절). 이 솔로몬은 다른 왕자들보다 나이가 훨씬 어렸지만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다윗의 영원한 왕권은 우리아의 아내(마 1:6)가 낳은 솔로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까지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이 사건 이후에 요압이 암몬의 도성 랍바를 쳐서 점령하기 직전에 다윗에게 친정(親征)해 주십사 부탁합니다. 자기가 왕의 도성을 함락시켰고, 그래서 그 도성이 자기 이름으로 불리면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왕에게 영예를 돌리고자 한 것입니다( 절). 다윗이 그 도성으로 가서 랍바를 쳐서 점령합니다. 암몬의 왕이 쓰던 보석박힌 관을 빼앗는데 금 1달란트(약 30kg)나 나갔습니다. 그 도성에서 무수한 노략물을 빼앗아오고 백성들을 끌어내어서 노예로 삼았습니다. 이후로 암몬 자손의 모든 성읍을 다 무너뜨리고, 다윗과 그의 부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 긍휼을 베풀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대적을 무찌르는 능력을 주십니다.
기도: 저희는 죄를 지적받을 때 변명하기에 급급합니다. 내 형평이 아니어서 그렇지 나와 같은 형편이었다면 누구도 죄짓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죄를 지은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죄를 짓고 난 다음입니다. 죄를 지적해 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죄를 지적받아야 고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적받았을 때에 외면과 변명을 넘어, 후회와 탄식을 넘어 회개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서는 대단한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요구하시고, 그 회개를 통해 영광받으신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사무엘하 13장
다윗이 행한 음란과 살인에 대한 징계로 다윗의 집과 왕국은 내부로부터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다윗의 아들 암논은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연모하다가 병이 났습니다. 배다른 누이동생이기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상사병에 걸린 것입니다. 이것은 안 친구 간교한 요나답(다윗왕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 부추깁니다. 참상에 누워 병든 체하다가 왕이 문병하러 오면 다말이 와서 떡을 차려서 먹게 해 달라고 부탁하라고 합니다. 다윗이 허락하자 다말이 가서 암논을 위해 과자를 구워 내어놓습니다. 암논을 그것을 먹기를 거절하고는 모든 사람을 다 내어 보낸 후에 떡을 가지고 자기 침실로 오라고 합니다. 다말이 가까이 가니 암논은 그녀의 손을 붙잡고는 자기와 동침하자고 합니다. 다말은 화들짝 놀라서 이런 수치스러운 일을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내 오라버니여,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 이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말라”( 절). 그녀는 왕에게 정식으로 청하여 자기를 아내로 삼아달라고 말하라고 하지만 이미 정욕에 눈이 어두워진 암논은 힘으로 밀어붙여 그녀를 강간합니다.
암논은 자기 육체의 욕망을 채우고 나자 곧바로 다말을 미워하여 나가라고 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성폭행했으면 그와 결혼해야 합니다(출 22:16). 그런데 사랑이 한 순간에 증오로 돌변하여 쫓아냅니다. 얼마나 큰 죄악입니까! 암논이 다말을 추행한 죄악보다 이후에 다말을 미워하여 내쫓는 죄악은 더 큽니다( 절). 다말이 소리지르자 암논은 자기 종을 불러 ‘이 계집을 문밖으로 내쫓고 문빗장을 질러버리라’고 합니다. 다말은 재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채색옷을 찢고는 울부짖습니다. 압살롬은 자기 여동생을 집으로 들이고는 머물게 합니다. 다윗왕은 이 소식을 듣고는 분노하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공의대로 처지하지 않고 인정에 치우쳐 벌을 주지 않습니다. 자신이 이전에 저질렀던 간음죄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그냥 놓아두었던 것일까요? 압살롬도 자기 여동생의 문제를 암논에게 꺼내지 않았고, 속으로만 삭이면서 기회를 엿봅니다. 복수할 기회만 노렸습니다.
2년 후 암논의 사건이 거의 잊힐 무렵 압살롬은 양털을 깎는 기회를 이용해 왕자들을 청합니다. 압살롬은 왕에게도 그 잔치에 함께 오십사 간청합니다. 암논이 다말을 강제한 것처럼 압살롬이 왕에게 강하게 말합니다. 다윗은 내가 그런 자리에 갈 필요까지 있겠냐고 하면서 복을 빌어줍니다. 이에 압살롬은 형 암논을 오도록 해 달라고 말합니다. 압살롬은 자기 사환들에게 명령하여 암논이 술에 취해 있을 때 그를 쳐 죽이라고 합니다. 왕자들이 뿔뿔히 흩어져 도망할 때에 왕궁에 소식이 전해집니다. 왕자들이 다 죽었다는 소문이 왕궁에 들어갑니다. 다윗이 옷을 찢고는 땅바닥에 드러눕습니다( 절). 다윗인 자신이 밧세바와 함께 누웠던 죄악을 생각하면서 다시 회개한 것입니다. 신하들도 다윗을 따라 합니다. 압살롬에게 간교하게 제안했던 요나답이 왕께 아룁니다. 암논이 압살롬의 여동생 다말을 욕보인 것 때문에 복수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나답이 말한 대로 왕자들이 언덕길을 올라와 왕궁에 이르러 소리높여 통곡합니다. 암논을 쳐 죽인 압살롬은 이스라엘에 머무를 수 없었기에 그술 왕 달매(압살롬의 외가집이 아람족속의 그술 왕실이다)에게로 도망갑니다. 다윗의 우유부단함이 이렇게 왕자들의 살육으로 이어졌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왕국이 공의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자식에 대한 애정에 끌려 그 공의를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식으로 다윗을 징계하십니다. 다윗은 징계를 통해 계속해서 회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징계가 있을 때에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더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기도: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법칙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의 법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뿌린대로 거둡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이 지은 죄를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것은 저주가 아니라 징계입니다. 저희가 뿌린 죄악이 싹을 틔우고 그것으로 인해 괴로움이 심할 때 이것을 하나님의 징계로 받아서 회개하게 하여 주소서.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자식이기에 혹독하게 징계하고, 저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저희가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더 굳게 확신하게 도와 주옵소서.
사무엘하 14장
다윗은 아들 암논의 죽음으로 인해 마음이 심히 상했지만 서서히 마음 정리가 되면서 이제는 암논을 죽인 압살롬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분노가 용서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군대장관 요압이 이것을 알아차리고는 작전을 짭니다. 요압은 드고아의 한 지혜로운 여인을 데리고 와서 상복을 입히고는 왕에게 가서 자기 사정을 아뢰는 것처럼 할 말을 넣어줍니다. 그 여인이 요압이 시킨대로 왕에게 가서 말합니다. 자기 집을 살려달라고 말합니다. 무슨 일이냐고 왕이 물으니 남편이 죽고 자기가 과부가 되었는데 아들 둘이 싸우다가 하나가 다른 하나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온 집안이 들고 일어나서 형제를 죽인 그 아들을 내어 놓으라고 합니다. 피를 흘렸으니 그 아들을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편의 상속자가 없어지고 남편의 이름과 유산으로 물려줄 땅도 사라지게 됩니다( 절). 이 말들은 들은 왕은 친척들이 그 아들에게 복수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 여인이 거듭 부탁하고 왕 또한 거듭 그 아들의 생명을 해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말합니다.
다윗의 말을 들은 그 여인이 왕 자신의 잘못을 지적합니다. 아들의 생명을 보호해 주겠다는 말씀을 하셔놓고는 왕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에 대하여 이같은 생각’을 하냐고 묻습니다. 즉, 왕은 내쫓긴 자를 집으로 돌아오게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보호하시는 분이지 내쫓아 버리는 분이 아니지 않냐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쫓긴 자가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시나이다”( 절). 그 여인은 친척들이 두려워서 왕께 와서 아뢰는 것이라고 하면서 ‘나와 내 아들을 함께 하나님의 기업에서 끊은 자의 손’으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다시금 말합니다. 왕은 하나님처럼 선악을 분별하시는 분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다윗은 이 말까지 듣고는 그 여인의 속뜻을 간파합니다. 요압이 보내서 그런 말을 하라고 한 것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 여인은 맞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요압을 불러서 압살롬을 데려오라고 명령합니다. 요압은 절하면서 자신이 왕께 은혜를 입었다고 말하고는 압살롬을 데려옵니다. 이상하게도 다윗은 돌아온 아들을 그의 집으로 가라고 말하고는 얼굴 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절). 다윗은 아들을 보고 싶어하면서도 보기 싫은 즉, 애증의 관계였습니다. 다윗은 분노와 용서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압살롬이 정수리부터 머리부터 발바닥까지 아름다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머리털이 길었는데 해마다 2백세겔(2.3킬로그램)이나 자란다는 것은 그의 힘이 대단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는 아들 셋과 딸 하나가 있었는데 딸 이름을 다말이라고 지어서 여동생에 대한 사랑을 잘 보여줍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2년동안 아버지가 자기 얼굴을 외면하니 압살롬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아버지를 향한 분노의 마음이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압살롬은 자기를 돌아오도록 도와준 군대장관 요압에게 부탁하려고 해도 되지 않자 종들을 요압의 밭으로 보내서 불을 질러 버립니다. 요압이 분노하면서 압살롬에게 항의하니 왜 자기를 돌아오게 했냐고 항의합니다. 왕이 자기를 용서하지 못하겠다면 지금이라도 죽이시면 된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네가 나로 하여금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으니라”( 절). 이에 요압이 왕에게 가서 아들 압살롬을 보셔야 한다고 하고 다윗이 아들을 불러 입을 맞춥니다. 드디어 아들을 용서하고 화해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윗은 마지못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아들 압살롬도 마음에 응어리가 너무 커서 결국에는 아버지를 향해 반란을 도모하기에 이릅니다. 우리는 정의를 세우는 것과 용서하는 것의 차이를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두 가지를 동시에 제대로 세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기도: 저희는 시계추처럼 정의와 사랑, 심판과 용서 사이를 쉼없이 왔다 갔다 합니다. 정의를 완전하게 세우지도 못하고, 온전하게 용서하지도 못하고 이 둘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습니다. 정의를 세우기 위해 심판하는 것과 사랑하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이 대립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은 저희를 용서하시려는 것이요, 하나님이 세우시려는 정의는 저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저희에게 지혜를 주셔서 정의와 긍휼, 어느 쪽도 소외시키지 않도록 하여 주소서. 저희가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 일하게 하여 주소서.
사무엘하 15장
압살롬은 왕이 자기를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않자 분노하면서 자신의 야망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병거와 호위병을 앞세우고 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는 더 노골적으로 나갑니다. 아침 일찍 성문에 서 있다가 왕께 송사하기 위해 올라오는 사람들을 붙들고는 어느 지파 사람인지, 무슨 일인지 묻습니다. 그리고는 왕께서 송사를 들을 이를 세우지 않았으니 나에게 말해 보라고 합니다.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정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절). 그 사람이 너무나 감읍하여 절하려고 하면 붙잡아 일으키고는 입을 맞춥니다. 이렇게 압살롬은 다윗에게 향해 있던 온 이스라엘의 마음을 도둑질합니다( 절).
압살롬은 왕에게 공공연히 반란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세력과 인기가 상승했습니다. 이에 압살롬은 자신이 서약한 것을 지키기 위해 제사드리러 한다고 하면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도시인 헤브론에 가도록 허락해 달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면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겠다고 서약했는데 그것을 이루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교묘하게 속입니까? 반역하여 왕이 되려고 하면서 말입니다. 다윗이 평안히 가라고 하면서 축복하면서 보냅니다. 압살롬은 영문도 모른 채 따라나선 200명 앞에서 나팔을 불고는 왕으로 선포됩니다. 다윗의 모사인 아히도벨이 주도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완전히 기울어 버렸습니다.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압살롬이 왕으로 등극했고, 백성들이 압살롬을 따르기 시작했다고 보고합니다. 다윗은 사태를 파악하고는 신하들을 이끌고 급히 도피합니다. 도피할 때에 신하들과 가족들이 따르지만 후궁 10명은 왕궁에 남겨둡니다. 이들이 압살롬에게 욕보임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이런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다윗이 도망할 때에 블레셋의 가드 사람 600명도 따릅니다. 이들은 다윗이 블레셋에서 망명생활할 때 다윗을 따랐고, 그 후에 이스라엘로 와서 다윗의 부하가 되었던 이들입니다. 다윗은 그들에게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들의 우두머리인 잇대가 말합니다.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절). 그는 나오미를 따라나선 모압 여인 룻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다윗은 잇대의 충성심을 보고는 그의 무리와 가족들을 자기 앞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보내고는 자신도 그 시내를 건넙니다. 다윗을 따르는 모든 백성이 함께 통곡하면서 그 시내를 건너 광야길로 도망합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나려고 하자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이 하나님의 궤를 메고는 함께 떠나려고 합니다. 이에 다윗은 하나님의 궤와 함께 도망가면 자신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돌려 보냅니다. 아들이 자기를 반역한 것이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임을 알기에 그 언약궤를 도로 예루살렘에 메어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징계하시는데 눈에 보이는 언약궤가 함께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희망하기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절)고 합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자신은 하나님의 처분에 따르겠다고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긍휼에 자신을 맡길 줄 알았습니다.
다윗은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예루살렘 성벽 바깥인 동쪽 산 감람산을 올랐습니다. 이렇게 다윗이 회개하면서 도망치며 올라갔던 감람산은 후에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 기도하러 가신 바로 그곳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범죄로 인하여 자기 백성들을 버려두고 쫓겨나고 있습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맡기신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감람산을 오르셨습니다! 다윗을 따르는 모든 백성들이 통곡하면서 따라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모사였던 아히도벨이 자신을 배반했다는 말을 듣고 그의 모략을 어리석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절). 또 한 명의 모사이면서 다윗의 친구와 같았던 후새가 통곡하면서 왕을 맞이하고 따라나서려고 하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아히도벨의 모략을 무너뜨리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후새를 통해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내는 모략을 교란시키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는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낸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왕궁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려주어 자신에게 바로 전해달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이미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아들들을 통해 왕궁 소식을 전해달라고 부탁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지혜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숨이며 다윗 왕국을 새롭게 세우실 은혜를 구했습니다.
기도: 살벌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기에 모두가 안전을 갈구합니다. 믿는 저희는 이것을 좀 고상하게 바꾸어서 하나님이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스스로를 세뇌시키기도 하고, 어떤 물증이나 사건으로 안전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불안과 위협, 수치와 조롱을 겪게 하십니다. 저희가 만들어 놓은 안전책들과 믿는 구석들이 하나씩 무너지고 저희를 향해 등을 돌릴 때 이때가 바로 하나님을 구할 때입니다. 저희가 다른 어떤 도피처가 아닌 하나님의 자비를 향해 도망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사무엘하 16장
다윗이 감람산 마루턱을 지나갈 무렵 므비보셋의 사환 시바가 나귀에게 먹을 것을 잔뜩 실어 가지고 옵니다. 그가 싣고 온 것들은 이전에 다윗이 쫓겨다닐 때 아비가일이라는 여인이 다윗을 위해 가져온 것들과 거의 대동소이합니다(삼상 25:18). 무슨 마음으로 이런 것들을 가져왔냐고 물으니 시바는 왕과 함께 도망하는 이들이 피곤하여 지쳤을 것이니 드시라고 합니다( 절).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그의 무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이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시바는 이스라엘 족속이 왕위를 므비보셋 자기에게 돌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들떠있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요나단과의 언약 때문에 그를 돌보았는데 크게 실망하면서 므비보셋의 모든 소유를 시바에게 주어 버립니다. 시바는 왕에게 절하면서 자신이 왕께 큰 은혜를 입었다고 외칩니다. 나중에 시바의 이 모든 말들은 거짓말로 드러납니다. 다윗이 깜빡 속았습니다.
다윗이 바후림, 즉 감람산 꼭대기 근처에 이르자 사울의 친족 시므이라는 사람이 다윗에게 돌을 던지며 “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거거라”라고 저주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피 흘린 죄를 갚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에 군대장수인 아비새가 분노하면서 죽은 개 같은 자가 왕을 저주하냐고 하면서 그 머리를 베겠다고 합니다. 다윗은 놓아두라고, 자신을 저주하는 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절). 내 몸에서 난 아들이 내 생명을 해하려고 하는데 하물며 저 베냐민 사람이 저주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징계를 겸손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그 저주를 통해 자신에게 선을 베푸시기를 기대한다고 말합니다( 절). 시므이는 다윗이 가만히 있는 것을 보면서 신이 나서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을 따라가면서 돌을 던져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 그것으로 인해 겪는 심판과 수치를 잘 견뎌내어야 하겠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나자마자 압살롬과 아히도벨, 그리고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접수합니다. 마침 후새도 압살롬에게 가서 절하면서 ‘왕이여, 만세’라고 외치니 압살롬은 ‘네가 왜 너의 친구와 함께 가지 않았냐?’고 힐난합니다. 후새는 ‘여호와와 이 백성 모든 이스라엘의 택한 자’에게 속하겠다고 말합니다. 이전에 왕의 아버지를 섬긴 것처럼 이제는 왕, 즉 압살롬을 섬기겠다고 맹세합니다. 압살롬이 속아 넘어갑니다. 압살롬은 아히도벨에게 이제 어떻게 해야 내 왕위가 든든할지 계략을 내라고 합니다. 아히도벨은 왕 다윗이 궁에 남겨놓은 후궁들과 동침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다윗이 아들 압살롬을 극도로 미워할 것이니 왕 압살롬을 따르는 이들이 더 힘을 얻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절). 아히도벨은 갈라치기 전략, 불신과 증오전략을 구사합니다. 이에 그의 조언대로 압살롬은 왕궁 옥상에 천막을 쳐 놓고 아버지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합니다. 다윗이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아릿다운 한 여인을 발견하고는 그녀를 불러다가 동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은밀하게 저지른 그 죄를 갚으시되 다윗의 아내들이 백주대낮에 공개된 상태에서 성적으로 유린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삼하 12:11-12). 이 예언이 이루어졌고, 다윗은 아들에게 끔찍한 수치와 조롱을 당합니다. 다윗은 이 모든 하나님의 징계를 뼈저리게 받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다윗을 건져주시고, 그 모든 수치를 갚아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은밀하게 지은 죄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십니다. 하나님께는 결코 숨길 수 없습니다. 숨기고 있던 것이 드러나고 수치를 당하기도 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저희의 대부분의 죄는 특정한 이들에게 행한 죄입니다. 저희가 욕망으로 다른 이들에게 행한 죄악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큰 무안과 조롱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징계하신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게 하여 주소서. 저희가 사람에게 저지른 죄악은 전부 하나님께 한 것이요, 하나님께서 뭔가를 하실 때는 사람을 통해서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사무엘하 17장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하나님에게서 받은 말씀처럼 믿을만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다윗이 왕으로 다스릴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에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또 다른 계략을 베풉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미워하게 되었으니 이제 더 이상 합쳐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고 난 다음에 다윗을 급습하여 제거할 계획을 세웁니다. 자기에게 군사 12,000명을 내어주면 당장 다윗의 뒤를 추격하여 지쳐서 쓰러져 있을 때에 급습하여 다윗을 쳐 죽이겠다고 합니다. 다윗만 죽이고 나머지 다윗을 따르는 이들을 다 왕 압살롬에게 돌아오게 하겠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돌아오기는 왕이 찾는 이 사람에게 달렸음이라. 그리하면 모든 백성이 평안하리이다”( 절). 모든 이들이 그 계책이 좋다고 말합니다. 위험천만입니다! 밧세바의 조부일 것으로 추정되는 아히도벨은 개인적인 복수심에 불타서 다윗을 죽이려고 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계책을 바로 실행하지 않고 후새를 불러 그의 계책을 들어봅니다. 후새는 속으로 큰일났다고 생각했지만 태연하게 말합니다. 이번에는 아히도벨의 계략이 옳지 않다고 말합니다. 왕의 아버지 다윗은 용사이고, 지금 새끼를 빼앗긴 곰처럼 광분하고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밤에는 군사들과 함께 자지 않고 홀로 굴 같은 곳에 숨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군대를 보내서 다윗의 무리를 치다가 우리 군사 중 몇이 죽게 되면 우리가 패한 것처럼 소문이 날 것이니 낭패라고 말합니다. 이에 바로 급습하기보다 전국에 전령을 보내어 대군을 모아 왕이 직접 전쟁터에 나가 이슬이 땅을 덮듯이 그냥 덮어 버리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다윗을 따르는 이들이 한 사람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전쟁하다가 어떤 성읍으로 도망치면 그 성벽에 밧줄을 둘러서 성 자체를 강에 빠뜨려 버리면 된다고 말합니다. 다윗을 따르는 이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제거해 버리자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는 모두들 이번에는 후새의 모략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후새는 아히도벨의 모략을 차단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다윗의 군사들이 좀 더 유리한 조건하에서 압살롬의 군대와 전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후새의 모략을 통해 다윗(즉, 메시아의 유산)을 안전하게 보호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왕위를 찬탈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고 작정하신 결과입니다( 절).
후새는 자기의 계책이 받아들여지자마자 안도하면서도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을 통해 다윗에게 기별합니다. 오늘 밤에 요단 나루터에게 자지 말고 빨리 건너가라고 당부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왕과 따르는 이들이 몰사할 수 있다고 전합니다. 한 여인이 이 첩보를 들고 두 제사장의 아들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머물고 있던 예루살렘 성 밖 샘으로 가서 전하고, 그 둘은 다윗에게 급히 가서 알립니다. 어떤 청년이 이 둘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압살롬에게 가서 알립니다. 추격이 시작되고 이 둘은 바후림이란 마을의 어떤 사람 집 뜰에 있는 우물에 내려갔고, 그 안주인이 우물 어귀에 찧은 곡식을 펼쳐놓습니다. 추격자들이 그 집에 들이닥쳐서 두 사람을 찾으니 요단 나루턱을 건너갔다고 말하면서 따돌립니다. 추격자들이 멀어지자 그 둘이 우물에서 올라와서 다윗왕에게 가서 빨리 요단나루를 건너가셔야 한다고 아룁니다.
다윗은 무리를 이끌고 그 밤에 나루턱을 건너기 시작하고 새벽에 모두 도강합니다. 다윗은 구사일생으로 마하나임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암몬 사람 소비와 마길, 바르실래라는 사람이 잠자리와 일상생활 기구들, 그리고 먹거리를 가지고 와서 공급합니다. 아들에게 쫓겨났지만 이방인들이 와서 돕고 있습니다. 이후에 압살롬은 전국의 군대를 모으고 요압의 사촌 아마사를 군대 지휘관으로 삼아 요단강을 건너 다윗을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이렇게 후새의 모략이 받아들여지고 다윗을 죽일 절호의 기회가 날아가자 아히도벨은 장차 닥칠 불길함을 예측하고는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가산을 다 정리하고는 목을 맵니다( 절). 이와 같이 다윗이 묵묵히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극적으로 생명을 부지하게 하시고 그에게 회복할 은혜를 베푸십니다. 다윗은 이번의 도피생활을 통해 사울을 피해 도망다녔을 때와는 또 다른 훈련을 받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낮아지는 훈련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끝까지 긍휼과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기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주장하시는 분입니다. 어떤 이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치려는 절호의 계획을 말해도 자기들끼리 자중지란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자기들이 판 무덤에 스스로 빠지게 하십니다. 저희가 그런 악한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고, 그들을 선제적으로 치려고 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무너뜨리시기를 구하게 하여 주소서. 하나님께서는 악한 이들을 통해 주의 백성을 징계하기도 하시지만 오히려 그 징계를 통해 악한 이들의 도모를 무너뜨리시고 주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회복시키신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사무엘하 18장
하나님이 세우신 왕권에 대항한 압살롬의 군대와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다윗의 군대가 드디어 결전을 벌입니다. 다윗은 세 개 부대로 나누어 전쟁터로 내 보면서 자기가 가겠다고 합니다. 백성들은 다윗이 싸움터에 나가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적들이 다윗만 죽이면 된다고 생각할 터이니 너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알겠다고 하고는 전쟁터에 나가는 세 부대장들(요압, 아비새, 잇대)에게 압살롬을 살려달라고 부탁합니다. 모든 백성들이 그 말을 다 듣습니다. 두 군대가 에브라임 수풀에서 싸웠는데 압살롬의 군대가 패합니다. 칼날에 의해 죽은 이들이 많았지만 수풀에 찔려서 죽은 이들이 더 많았습니다. 압살롬이 노새를 타고 큰 상수리나무 아래로 지나가다가 그의 긴 머리카락이 나무에 걸립니다. 노새만 따져나가고 압살롬은 공중에 대롱 대롱 매달립니다. 한 군인이 그것을 요압에게 알리니 왜 그를 당장 치지 않았냐고 말합니다. 왕께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은 천개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압살롬을 해치겠냐고 말합니다. 요압은 신경질 내면서 지체하지 않고 창을 가지고 가서 압살롬의 심장을 찔러 죽입니다. 요압은 나팔을 불어 이스라엘 군대를 뒤쫓는 것을 멈추게 합니다. 그는 구덩이를 파고는 압살롬을 묻어 버리고 큰 돌무더기를 쌓습니다. 압살롬은 아들이 없었고, 그래서 자기 이름을 남기려고 돌비석을 세웠는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시신 위에 돌무더기가 세워지게 하셨습니다( 절). 하나님께서 친히 언약을 맺으신 다윗을 대적한 사람의 최후입니다.
제사장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요압에게 요청합니다. 왕의 원수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왕에게 알리러 가겠다는 것입니다. 요압은 이 소식을 전하는 것이 왕에게 큰 슬픔일 것이기에 구스 사람을 전령으로 보냅니다. 아히마아스가 계속해서 자기도 가서 전하겠다고 하자 이 소식은 상을 받을 소식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한사코 가겠다고 하자 가라고 하고, 그가 구스 사람보다 앞질러 갑니다. 왕 다윗이 머물고 있던 성읍 두 문 사이에 앉아서 목을 배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루에 있던 파숫군이 누가 달려오고 있다고 소식을 전하고, 또 다른 이가 달려오고 있다고 전합니다. 먼저 달려오는 이가 아히마아스의 달음질 같다고 하니 왕은 그가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온다고 말합니다. 말 그대로 아히마아스가 승리의 소식을 전합니다. 압살롬이 어떻게 되었냐고 했더니 그는 큰 소동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는데 무슨 일인지는 모른다고 답합니다. 왕이 뒤따라 소식을 알리러 온 구스 사람에게 물으니 그는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절)라고 답합니다. 압살롬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마음이 심히 아파서 성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통곡합니다. 아들 압살롬 대신에 차라리 자신이 죽었으면 좋았겠다고 소리칩니다. 다윗은 기뻐해야 할 상황에서 슬픔에 겨워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의 아들 압살롬의 죄악 가운데서도 다윗과 더불어 맺으신 왕권을 다시 세워주십니다. 다윗은 통곡하고 회개하면서, 그리고 아들에 대한 연민 가운데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신실하게 지키신다는 것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기도: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의 배반으로 인해 너무나 큰 고통을 겪다가 한 순간에 그 사람의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씁쓸해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슬퍼할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너무나 혼란스럽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저희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면 회개하게 하시고,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이용하셔서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게 하소서. 도대체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를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셔서 저희를 굳게 세워주신다는 것을 믿고 용기를 내어 살게 하소서.
사무엘하 19장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며 통곡한다는 말이 퍼져갑니다. 전쟁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다윗을 위해 싸운 용사들이 머쓱해져서 도둑처럼 몰래 성으로 들어갑니다. 승리의 기쁨이 슬픔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이에 압살롬을 살해한 요압이 왕에게 따집니다. 오늘 왕과 왕에게 속한 이들의 목숨을 건져준 군사들을 부끄럽게 하면 어떻게 하냐고 따집니다. 개인의 정으로 슬퍼하는 다윗의 잘못을 꾸짖습니다. 미워해야 할 자를 사랑하고, 사랑해야 할 자를 미워하면 어떻게 하냐고 따집니다( 절). 왕의 모습을 보면 압살롬이 살고 우리가 다 죽었다면 좋아할 뻔했다고 말합니다. 빨리 나가서 부하들을 위로하라고 제안합니다. 다윗이 반역군을 진압한 장병들을 위로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왕이 당한 화보다 더 큰 화를 자초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정신이 번쩍 들어서 나가서 성문에 앉고 백성들이 그 소식을 듣고는 왕 앞에 나갑니다.
압살롬을 따르는 이들은 다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서로 의논합니다. 다윗왕은 처음부터 이방 원수의 손에서 우리를 구해 주셨는데 우리가 왕을 배신한 것이 잘못이라고 뉘우칩니다. 그래서 왕을 모셔 오자고 말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사람을 보내서 유다 장로들이 먼저 왕을 예루살렘 왕궁으로 모셔와야 하지 않겠냐고 전하라고 합니다.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 너희는 이쩌하여 왕을 도로 모셔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절). 다윗은 유다지파와 나머지 지파들의 충성심을 부추기려고 합니다. 그리고는 압살롬의 군대장관이 되었던 아마사에게 사람을 보내서 요압 대신 내 부대의 지휘관이 되어달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요압이 무죄한 이들의 피를 흘린 죄를 단죄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따랐던 유다지파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금 자기에게로 기울게 하여 ‘당신께서는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돌아오소서’라고 말하게 합니다.
다윗이 돌아가려고 하자 다윗이 도망할 때 돌을 던지면서 저주를 퍼부었던 시므이가 베냐민 사람들 천명을 데리고 와서 땅에 엎드려 용서해 달라고 구합니다. 군대장관 아비새가 지난번처럼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왕을 저주한 저 놈을 쳐 죽이겠다고 합니다. 다윗은 오늘 ‘나의 원수’가 되지 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회복시키시는데 자신이 복수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절). 자신이 아들처럼 돌보았던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도 다윗을 맞이하러 나옵니다. 그는 다윗이 왕궁을 떠날 때부터 슬퍼하면서 지냈습니다. 시바가 다윗에게 거짓말했습니다. 그 므비보셋이 다윗이 쫓겨나는 것을 기뻐하면서 자기가 이제는 왕이 될 것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왜 나와 함께 가지 않았냐고 하니까 자기는 다리를 절고, 시바가 자기를 속였다고 말합니다. 왕이 이제 돌아오시니 왕께서 마음대로 하셔도 된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시바에게 이미 약속한 것이 있기에 그 시바와 밭을 나누라고 말합니다. 므비보셋을 자기 재산 전부를 시바에게 다 주셔도 된다고 말합니다( 절). 또 한 사람이 왕을 맞이하러 나옵니다. 다윗이 도망할 때에 먹을 것을 가지고 왔던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입니다. 다윗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자고, 당신을 잘 대접하겠다고 합니다. 바르실래는 자기가 너무 늙었고 왕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합니다( 절). 대신에 자기 사람(아들?) 김함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합니다. 다윗은 도피생활을 통해 속기도 했지만 누가 자기의 대적인지를 분별하는 지혜를 배웠을 것이고 정의와 긍휼을 세우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다지파는 다윗의 제안을 받아들이고는 길갈로 올라가 다윗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다윗이 요단강을 건너 길갈로 갈 때에 유다지파와 나머지 10지파가 경쟁하듯이 다투면서 다윗을 모셔가려고 합니다. 다윗의 환궁을 먼저 가서 환영할 계획을 세웠던 이스라엘은 유다를 향해 불평을 털어 놓습니다. 유다 지파가 자기들 왕을 훔쳐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왕은 온 이스라엘의 왕인데 어떻게 한 지파의 왕으로 돌아가겠냐는 것입니다. 이에 유다 지파가 또 소리를 높입니다.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요. 왕은 우리 종친이라고요. 우리 혈육인데 우리가 이렇게 왕을 끼고 도는 것이 잘못된 것이냐고 말합니다. 우리가 왕 때문에 뭐 얻어 먹은 것이라도 있냐고 소리칩니다. 나머지 지파들이 지지 않고 소리칩니다. 너희는 왕께 대해 한 몫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열 몫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절). 그런데도 유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커서 나머지 지파들의 목소리를 잠재워 버립니다.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의 경쟁과 다툼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솔로몬 시대에 왕국이 분열된 것은 이런 깊은 골이 마침내 폭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혈연 관계보다 영적인 하나됨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기도: 저희의 사생활과 공적인 직무가 두부 자르듯이 나뉘지 않습니다. 저희가 사사로운 감정과 공적인 의식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할 때가 많습니다. 저희가 정의를 세우는 것과 긍휼을 베푸는 것 사이에서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저희에게 지혜를 주셔서 개인적인 복수심과 상실의 슬픔을 잘 극복하게 하여 주소서. 저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상황을 잘 통제하고 사람들을 잘 이끌게 하소서. 저희가 너무나 연약하고 심지어 어리석지만 깨어진 모든 관계를 조금씩 회복해 갈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소서.
사무엘하 20장
다윗을 모셔오는 일에 유다와 나머지 지파가 서로 경쟁하고 다투었습니다. 다윗이 경쟁을 부추긴 측면이 있습니다. 유다지파에게 사람을 보내서 그들이 다른 지파들보다 먼저 왕을 모셔 오도록 하라고 부추겼습니다. 이에 요단강을 건너 길갈에 이르렀을 때에 유다지파와 나머지 10지파가 충돌했습니다. 서로 왕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었습니다. 유다의 목소리가 더 커서 나머지 지파들이 고개를 숙이자 베냐민 지파의 세바라는 불량배가 나팔을 불면서 우리는 다윗과 함께 할 생각이 없다고 외칩니다.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절). 이스라엘 열 지파들은 다윗을 버리고 세바를 따르고, 유다 지파만 다윗을 모시고 예루살렘으로 내려갑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메시아 앞에 무릎 꿇기를 싫어하는 인생의 패역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환궁한 다윗은 왕궁을 지키던 후공들을 별실에 가두어 버리고는 먹을 것만 들여 보내줍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군대장관이었지만 자신이 세우고 싶은 아마샤에게 3일안에 군사들을 모집하라고 명령합니다. 3일이 지나도 군사들을 모집하지 못하니 다윗은 초조해하면서 아비새에게 세바를 뒤쫓아가라고 명령합니다. 요압은 용병들과 함께 아비새를 따라 세바를 뒤쫓기 시작합니다. 기브온에 이르렀는데 아마사가 맞으러 나옵니다. 요압은 평안하냐고 입을 맞추어 인사하는 척하다가 칼로 그의 배를 찔러 죽입니다( 절). 요압의 측근 중 한 명이 아마사의 시체를 치우고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옷으로 덮어 버립니다. 요압은 시기질투에 가득차서 이전에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을 죽였고, 얼마 전에는 압살롬을 죽였고, 이제는 자기의 지위를 확실히 하기 위해 경쟁자라고 생각하면서 아마사를 죽였습니다.
군대장관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세바를 뒤쫓습니다. 세바가 저 멀리 갈릴리 북쪽 벧마아가 아벨까지 자신의 영향력을 떨치면서 그 성읍에 눌어 앉습니다. 다윗의 군대는 그 성읍을 에워싸고 토성을 쌓습니다. 그 성읍의 지혜로운 한 여인이 요압에게 몰래 찾아와서 왜 이 성읍을 멸하려고 하냐고 말합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 중 하나이거늘 당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머니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시는도다”( 절). 요압은 왕 다윗을 대적하는 세바만 내어주면 이 성을 떠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여인은 성읍 사람들을 설득하여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집니다. 요압은 나팔을 불어 군대를 철수시키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그 지혜로운 여인은 평화와 충성으로 갈등을 중재했습니다.
반역이 진압되고 다윗에 세운 직분자들을 소개합니다. 다윗이 내각을 재정비합니다. 이전에 다윗이 왕이 된 후에 대적들을 물리치고는 왕국의 직분자들을 임명했지만(8:15-18) 이제 왕국의 조직을 공적으로 재정비합니다. 그때는 왕자들을 대신으로 삼았지만 이제는 새롭게 대신을 임명하고, 건축을 감독하는 이도 임명합니다. 다윗을 반역했던 나머지 지파들도 다윗의 통치하에 들어와 명실상부 12지파 전체가 다윗의 통치하에 들어왔습니다.
기도: 사람들은 하나되기를 원하면서도 끊임없이 갈라치기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리를 이용해 사람들의 시기심과 경쟁심을 부추깁니다. 직분자들과 교인들의 경쟁심을 부추겨서 교회를 세우려고 할 때도 많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결코 경쟁이나 투쟁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아드님을 보내셔서 저희를 위해 자기를 온전해 내어주신 것을 잊지 않도록 도와 주소서. 저희에게 지혜를 주셔서 평화와 충성의 마음을 가지고 갈등을 견디고 투쟁을 극복하고 서로를 세우게 하여 주소서.
사무엘하 21장
다윗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드디어 마무리됩니다. 왕국이 새롭게 단장되었습니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것이 한 가지 더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사울이 예전에 범한 죄악입니다. 사울은 오래 전에 기브온 사람들이 여호수아와 체결한 언약(수 9:19)을 어기고 그들을 살해했습니다.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그들을 죽이고자 하였더라.” 하나님과 민족을 위한 열정이 얼마나 잘못될 수 있는지 모릅니다. 민족주의와 가족주의는 비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피 값으로 인해 온 이스라엘에 3년 기근이 들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절). 하나님의 백성이 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방 나라를 향해 한 맹세라도 마땅히 지켜야 합니다. 사울이 범죄했는데 다윗 때에 맹세를 지키지 않은 그 죄악을 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왕국이 정의로운 왕국이라는 것, 억울한 이들의 마음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다윗이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서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속죄가 되고, 우리에게 복을 빌어줄 수 있겠냐고 묻습니다. 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자기들을 학살한 사울의 후손 7명을 내어달라는 것입니다. 다윗을 그렇게 하겠다고 합니다. 다윗은 요나단과 맺은 언약 때문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사울의 다른 아들들을 내주어 목매어 달게 합니다. 사울의 아내였던 리스바는 자기 두 아들의 시신이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는 굵은 베옷을 바닥에 펴고는 거기서 자면서 밤낮 지킵니다. 공중의 새와 들짐승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율법과 달리 사람들은 그 시신을 매장조차 해주지 않고 버려 두었습니다. 리스바는 건기인 곡식 베기 시작할 때부터 비가 쏟아질 때까지 거의 1달 이상 그 시신을 지킵니다. 비가 쏟아져야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이 소식을 듣고는 사울과 요나단의 뼈를 수습하고 사울의 자손들 시신을 수습하여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 있는 사울의 부친 기스의 묘에 합장합니다. 그 시신들이 합당하게 매장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 즉 이스라엘에 비가 내렸습니다( 절). 교회에서 범죄한 사람이 처벌받아야 하지만 정도 이상으로 과도하게 조롱받아서는 안되고 오직 율법대로 벌 받으면 됩니다.
블레셋이 다시 이스라엘에 쳐들어 옵니다. 다윗이 부하들과 함께 전쟁터에 나갔는데 거인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자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거인을 쳐 죽입니다. 이에 부하들이 다시는 왕께서 전장에 나가지 마시라고 청합니다( 절). 그 후에 다윗의 부하들은 블레셋 거인 삽, 다윗이 죽인 거인 골리앗의 동생 라흐미, 또한 이스라엘을 모욕한 손가락 발가락 각각 여섯 개씩인 거인을 쳐 죽입니다. 다윗의 죄, 왕국의 죄가 해결되자 이스라엘은 원수들을 계속해서 이깁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생명을 걸고 싸우는 위대한 용사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나라에는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싸우는 용사들이 필요합니다.
기도: 저희가 당하는 경제적인 어려움은 그냥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닙니다. 언약의 축복과 저주가 경제적인 것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이 하나님께서 저희를 벌하고 버리신 결과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저희가 당하는 일은 저희 자신이 저지런 죄악으로 인해서만이 아닙니다. 오래 전에 저희 조상이 저지른 죄악으로 인해 생겨난 문제와 형벌을 저희가 당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저희는 원인과 결과를 따지지 말고 모든 일들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게 하소서.
사무엘하 22장
다윗은 사울과 모든 대적들로부터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시편을 짓습니다. 먼저,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10가지로 노래합니다. 나의 반석, 요새, 건지시는 분, 피할 바위, 방패, 구원의 뿔, 산성, 피난처, 구원자 등입니다. 다윗에게 죽음의 물결, 파멸의 파도, 스올의 줄, 죽음의 덫이 덮쳤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부르짖자 그분의 보좌에서 모든 환난을 돌아보셨습니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절). 하나님이 듣고 노하시는데 그분의 코에서 연기가,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옵니다. 그러니 땅이 꿈틀거리고 흔들리며 산의 뿌리까지 떨면서 뒤틀립니다. 하나님께서 바람과 먹구름과 천둥을 동반하여 하늘을 가르고 내려오셔서 목소리를 발하십니다. 시내산에서 주님이 강림하실 때가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화살과 번개를 쏘아 원수를 흩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땅과 바다의 기초도 드러내십니다. 주님은 다윗보다 훨씬 강한 원수들의 손아귀로부터 건져 주셨습니다( 절). 원수들이 덤벼들었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품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윗을 잘 대해 주신 것은 다윗의 공의를 알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정의를 행할 마음을 주셨고 그것에 상을 베푸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새겼고 악한 일을 멀리했습니다.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함으로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모든 법도를 내 앞에 두고 그의 규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 절). 다윗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의와 깨끗함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는 이들에게 주님의 자비를 나타내시고, 흠 없는 이들에게 주님의 흠 없으심을 나타내십니다( 절). 반대로, 사악한 자들에게는 주님의 교묘하심을 나타내십니다. 이렇게 주께서는 불쌍한 백성을 건져주시고, 교만한 자들은 낮추십니다. 주님은 참으로 등불이기에 주께서 도와주시면 적을 뒤쫓아 높은 성벽이라도 넘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완전하다고 노래합니다. 주님 밖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주님 밖에 구원의 반석이 없습니다. 주께서는 자기 발을 암사슴 발처럼 튼튼하게 하셔서 높은 곳에 세우십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담대하게 해 주셔서 전투에 강하게 해 주셨습니다( 절). 하나님이 구원의 방패로 다윗을 막아 주시고 안전하게 지켜 주셨습니다. 다윗은 원수들을 뒤쫓아가서 그들을 다 무찔렀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부르짖어도 구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다윗은 원수들을 산산이 부수어서 먼지처럼 날려 버립니다. 그 이방 원수들이 다윗에게 와서 굽실거립니다. 다윗에 대한 소문만 들어도 겁을 내고 복종합니다. 다들 두 손 들고 항복하면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원수들만이 아니라 반역하는 주의 백성들에게서 다윗을 건져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다시 한번 더 하나님을 반석, 나의 반석이라고 이중적으로 부르면서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들의 손아귀로부터 다윗을 건져 주셨습니다. 원수들은 다윗의 발 아래 다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승리를 안겨 주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후손에게 영원토록 은혜를 베푸실 것을 믿고 찬양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하도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절). 다윗은 자신의 왕조를 찬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영원한 왕권의 언약을 노래합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 주신 언약, 그 언약에 근거한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 구원의 근거요 우리 승리의 비결입니다.
기도: 저희는 다른 사람과 경쟁하여 이기고 싶습니다. 꼭 한번 이기고 싶습니다. 그런데 죄와 싸우고, 악을 이기고 싶어 하는 마음은 크지 않습니다. 저희가 스스로 높이고 다른 이들을 굴복시키려고 할 때 이것이 곧 마귀의 유혹에 굴복한 것임을 알게 하소서. 저희가 죄악 가운데 고통스러워하고, 악한 이들로 인해 부르짖을 때 저희를 일으켜 주소서. 하나님, 저희는 연약하지만 주께서는 저희가 디딜 반석이요, 저희가 피할 요새입니다. 저희 발을 튼튼하게 하시고, 저희 입으로 힘껏 찬양하게 하소서.
사무엘하 23장
‘다윗의 마지막 말’입니다. 유언과 같은 말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이새의 아들’, 하나님께서 ‘높이 세우신 이’,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이’,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이’라고 말합니다. 이 예언과 같은 마지막 말은 야곱이 한 예언(창 49:1), 모세가 부른 노래(신 33:1)를 연상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 모세를 통해 예언한 것을 다윗이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이 누릴 복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의 후손을 통해 주의 백성들에게 주신 복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예언의 말씀을 통해 이후에 벌어질 일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을 보내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통해 예언하십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반석’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공의로 다스리는 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다스리는 다윗의 왕조가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을 것입니다’( 절). 다윗 왕조의 미래를 노래한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희망 사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과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대로 다윗을 구원하셨으며, 그의 모든 소원을 만족하게 하셨습니다. 사악한 자들은 내버려질 가시나무 같을 것입니다( 절). 사람이 손으로는 잡을 수 없고, 불태워질 수밖에 없는 가시나무입니다. 사람이 타락한 후에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나무가 자랐듯이(창 3:13) 사악한 자들은 가시나무처럼 온갖 저주와 고통을 야기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의 모든 가시를 제거하시고 새 풀이 움 돋게 하실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가시가 우거진 이 세상에서 새 풀을 움 돋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다윗의 예언과 같은 찬양이 있은 후 다윗의 용사들을 소개합니다. 37명의 용사들을 소개합니다. 먼저, 3인의 놀라운 용사들을 소개합니다. 이들은 맨 손으로 블레셋 사람들을 쳤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큰 이김과 큰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 절). 다음으로 군대장관 아비새와 브나야의 행적을 소개합니다. 이어서 30명의 용사들을 한 명씩 소개합니다. 마지막 용사로 ‘헷 사람 우리아’를 언급합니다. 다윗이 밧세바 때문에 죽인 바로 그 우리아입니다. 다윗의 죄악을 묻어두지 않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와 더불어 맺으신 언약때문에 다윗을 붙드시고 그의 가문을 번성하게 하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이스라엘을 이끌고 있습니다.
용사들을 소개하는 와중에 한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다윗이 블레셋과 싸우고 있을 때였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고향인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마시고 싶어 했습니다. 그가 그런 소원을 이야기하자 세 용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대적들을 치고 나가서 물을 길어 옵니다. 물을 떠 오자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는 그 물을 땅에 부어 버립니다.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절). 우리는 다른 이들의 피를, 생명을 요구할 권리가 없습니다. 다윗은 피를 취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이심을 깨달았으며, 용사들의 무모한 영웅적인 행동을 경계했습니다.
기도: 이상하게 요즘은 하나님만이 아니라 회사도, 일터도 충성을 요구합니다. 내 모든 것을 내어놓고 충성하라고 요구합니다. 세속사회에서 종교적인 충성을 요구합니다. 하나님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에 저희도 다른 이들에게 충성하라고 요구합니다. 돈 몇 푼 쥐어주고는, 자리 하나 주겠다고 하고는 전적인 충성을 요구하고, 착취하고, 심지어는 목숨마저 요구하기도 합니다. 저희가 서로에게 생명이나 피를 요구하지 않도록 도와 주소서. 저희는 서로 도우고 협력하게 하시고, 함께 오직 하나님께 충성을 바치도록 도와 주소서.
사무엘하 24장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진노하셔서 치시려고 다윗으로 하여금 인구를 조사하게 하십니다. 이전에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아 자신의 ‘집’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다윗이 인구를 조사하므로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대적들을 물리치고 이기게 하셨고, 군대장관들에게 용맹을 주셨지만 다윗은 숫자에 목 말랐습니다. 요압이 왕에게 필요하다면 하나님께서 더 많은 이들을 붙여주실 것인데 왜 인구조사 하냐고 간언합니다. “이 백성이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절). 이 말을 듣고도 다윗은 재촉합니다. 요압과 사령관들이 전국을 다니며 인구를 조사합니다. 민수기의 경우처럼 전쟁에 나갈 이들을 조사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칼 든 자가 80만, 유다에서 50만명이었습니다. 다윗은 교만해져서 숫자를 믿고 있습니다.
인구조사가 거의 마무리될 때에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께 죄를 범했음을 깨닫습니다. 자신이 큰 죄를 지었으니, 자신이 미련하게 행했으니 자기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합니다( 절). 선지자 갓이 와서 세 가지 심판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합니다. 7년의 기근, 3달의 도망, 3일의 전염병 중에 선택하라고 합니다. 다윗은 대적의 손이 아니라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들어가게 해 달라고 구합니다( 절). 이에 이에 이스라엘에 전염병이 돌아서 7만명 가량이 죽습니다. 다윗이 인구조사하는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불순종 때문에 진노하셔서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에게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으로 대표되는 유다의 죄악과 세바의 반역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징벌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치는 천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께서 후회하십니다. ‘그만 하면 되었다’고 하시니 천사가 예루살렘 북쪽,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멈추어 섭니다. 다윗은 칼을 빼든 그 천사를 보고는 자기가 범죄했으니 백성들 대신에 자기를 벌해 달라고 구합니다( 절). 선지가 갓이 다윗에게 바로 그 타작마당에서 제단을 쌓으라고 권합니다. 다윗을 보고 아라우나가 땅에 엎드리자 다윗은 자신이 재앙을 그치게 하려고 제사드리려고 한다고 말합니다. 아라우나는 타작마당뿐만 아니라 소와 땔나무를 드리겠다고 합니다. 다윗은 공짜는 싫고 사겠다고 합니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절). 다윗을 값을 치르려고 합니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면서 간절히 ‘간구’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십니다(참조/21:1). 다윗이 제사드린 그곳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희생제사를 바쳤던 곳이며, 나중에 솔로몬이 바로 그곳에다가 성전을 건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곳에 자기 아드님을 제물로 보내셔서 자기 백성의 죄를 담당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 저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힘 있는 사람을 의지합니다. 편가르기하고 세력을 확보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방패막이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떠나가면 기가 죽고, 사람들이 모이면 으쓱거리며 교만을 부립니다. 숫자와 물질이 모이면 교만을 부리고 군림하려고 합니다. 하나님마저 이용하려는 저희입니다. 내 힘이나 나를 위하는 세력을 의지하지 않게 하시고, 당신을 온전히 내어주시는 주님께 자신을 바치게 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