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삼일만세운동때 우리 민족은 일제히 궐기하여 일본의 제국주의통치에 반대하였습니다.
비폭력저항운동은 겉보기에 실패한것처럼 보였으나, 독립을 이루는 성공의 시작이었습니다.
일본은 이후 한반도에 대한 무단정책에서 문화정책으로 전환하여 교육, 언론, 출판의 영역에서
얼마간의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 결과 민족학교들과,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창간되었습니다.
한편 중국과 연해주로 건너간 독립투사들은 임시정부를 세웠는데, 그중 상해임시정부가 조선의
고종황제께서 세우신 대한제국의 정통성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일본에 대한 평화적 독립쟁취가 어렵다고 보고 무장투쟁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윤봉길 의사의
1932년4월29일 중국 상해의 홍구공원에서의 폭탄투척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은 만주를
집어삼키고 상해사변을 일으킨 일본에 대하여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하던 중국민족에게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국민당의 장개석 총통은 이후 김구 주석과 만나 대일항쟁에서 공동투쟁을 하기로
결의하므로, 상해임시정부는 중국정부의 재정지원과 행정 및 군사적 후원을 얻게 됩니다.
또한 미국에서는 이승만 박사의 미국을 움직이려는 외교적 노력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는 일본과의
무력투쟁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일뿐 아니라 테러와 같은 폭력투쟁은 자유민주주의 세계에서 지지를
얻지 못하므로, 미국과 일본간의 정치 및 군사적 대립에 의하여 식민지 조선이 독립할수 있다고 주장
했습니다. 당시로서는 꿈꾸는 듯한 발상이었으나, 그의 예견대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많은 청년들은 나라잃은 설움을 극복하기 위해 중국으로 가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습니다. 그들에게는 공산당의 폭력에 의한 국권회복외에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고,
특히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국권을 회복할수 있다는 기독교인들의 믿음을 잠꼬대로 치부했습니다.
그러나 김구선생의 「백범일지」에도 나와 있듯이, 조선의 독립은 어느날 갑자기 우리의 힘이 아닌
연합국의 승리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연합국의 편의대로 38선이 그어지고 남북이 분단되었습니다.
어제 우리 교회에 오셔서 설교하신 김진홍(동두천 두레교회) 목사님은 여기서부터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설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기독교인이 4%밖에 되지 않던 당시에 삼일만세운동에 앞장선 민족대표 33인중에 기독교인이
16명 이었고, 기독교 학생들과 교회가 중심이 되어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일제치하의 민족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기독교인들이었는데, 안창호, 이승훈, 이상재, 남궁억,
조만식, 김교신, 김구, 이승만 등등이 바로 그들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김교신 선생님은 양정고등학교의 지리담당 교사였는데, 그의 제자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데, 부모가 자식을 길러내듯 그렇게 가르쳐서, 손기정은 김교신
선생님의 그 간절한 기도와 격려로, 마침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으며, 일제식민지하에서 신음하던 한국국민들에게 한민족의 긍지를 심어주었습니다.
1948년5월31일 상해임시정부의 적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 제헌의회가 개회되던 날, 이승만 임시
국회의장은 '이 땅에 대한민국을 세워주심을 하나님께 감사하자며' 당시 감리교 목사님 신분으로
서울 종로구 갑구에서 제헌의원에 당선된 이윤영 국회의원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전에 미 군정에서 여론조사를 하였을때 국민의 70%는 사회주의 국가를 선호했다고 합니다.
사실, 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적으로 1백여개국의 신생독립국이 생겼는데, 그들 대부분은 사회주의
내지는 공산주의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주위의 압력을 뿌리치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웠으며, 군목제도와 같은 기독교 국가를 염두해 둔 여러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사랑과 겨레사랑을 동시에 하셨던 독립운동가들의 얘기를 쭉 하시면서 김진홍 목사님은
대한민국에서 기독교인들의 사명은 교회내에서 도토리 키재기 식으로 서로 지지고 볶고 싸울게 아니라,
사도행전 20장17절~32절 말씀의 바울처럼 '겸손'과 '눈물'과 '인내'로 신앙생활을 하여야 할 것이며,
'목숨'까지도 아끼지 말고 예수님만을 의지하며 통일한국을 바라며, 이 땅을 하나님의 기업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 읽기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고도 했습니다.
중국으로 건너가 공산당에 가입하여 무장독립투쟁을 하였던 많은 조선의 청년들은 그후 어떻게 되었을까?
우선은 모택동과 김일성의 합의에 의해 인민군에 편입되어 '민족해방전쟁'이라는 6.25전쟁때 참전하였다가
낙동강 전투에서 거의 몰살당합니다. 또한 일부는 남한의 빨치산으로 투쟁하다가 그 종말을 고했으며, 용케
월북한 자들은 박헌영이 '미제의 앞잡이'로 총살을 당할때, 또한 연안파와 소련파가 김일성에게 숙청당할때
한반도에서 사라졌습니다. 실로 하나님을 모르거나 하나님께 대항하는 자들의 말로가 이와같았습니다. "끝'
첫댓글 정말 차분하고 은혜로운 설교말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