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3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박찬수 목사
《 또 사랑은 이것이니 》
요한2서 1:6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제가 퀴즈 몇 개 내겠습니다. 한번 맞춰보시겠습니까?
성경에 ‘사랑’이란 단어가 언제 처음 나오는지 아십니까? 모든 것의 시작을 기록한 창세기에는 사랑이란 단어가 나올까요? 네 나옵니다. 그럼 어떤 인물과 관련해서 처음 나올까요?
그렇습니다. 사랑이란 말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야기에서 처음 나옵니다.
(창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의 자식 사랑을 언급하신 장면입니다. 믿음의 조상이 사실은 사랑의 조상도 되는 것이죠. 그럼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사랑의 사람일까요? 네, 이것도 성경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창 24:67)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그렇다면, 성경에 믿음의 족보에 기록된 야곱은 어떨까요? 그도 성경에 사랑의 사람으로 기록되었을까요? 네 맞습니다. 기록되었습니다.
(창 29: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그럼 야곱 다음 믿음의 계보에 오른 요셉은 어떨까요? 요셉도 사랑한 장면이 성경에 기록되었을까요? 네 어김없이 요셉도 사랑했던 이야기가 역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 43:30) “요셉이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이렇듯, 믿음의 사람들의 삶의 방향을 좌지우지하는 결정적 원인 중에 공통적으로 사랑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아들 이삭을 사랑함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이삭은 아내 리브가를 사랑하므로 깊은 상실감을 떨치고 위로를 받으며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야곱이 20년 동안 처가 집에서 외삼촌 라반의 속임수를 견디며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사랑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도 모든 시련을 견디고 권세의 정점을 찍게 되기까지 견디는 힘은 사랑이었다고 말씀합니다. 사랑이란 것이 그만큼 힘이 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중꺾마’ 라는 요즘 신조어를 아십니까?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의 줄인말입니다. 요즘에는 더 나가서 ‘중꺾그마’라는 말로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뜻은 ‘중요한 것은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란 뜻입니다. 사랑이 믿음의 선배들의 위기의 순간에 ‘중꺾그마’을 갖도록 도와주었던 같습니다.
본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과 계명을 지키는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떠난 까닭은 무엇 때문이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왜 이런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지키려고 애썼을까요?
야곱이 말도 안 되는 장인어른 라반의 말도 안되는 계약내용을 알고도 그와 약속한 20년을 채우고 나온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창 31:4)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
(창 31:7)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야곱을 잘 살펴보십시오. 을도 이런 을이 없습니다. 야곱처럼 똑똑한 사람이 자기 장인어른이 10번씩이나 급여를 속여서 변경한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찌 20년을 일했겠습니까? 사랑 아니면 답이 안 나옵니다. 이들의 행동양식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랑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정서에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놈의 사랑 때문에’ 단순히 사랑 때문에 한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한 이야기가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사람들의 희생 이야기를 살펴봐도 왜 희생했는지를 따져보면 결국 사랑 때문으로 결론 납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것과 계명 지키는 것의 관계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부모를 사랑한다면,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으로 증명하게 되어있다. 하나님께서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시는 기준도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출 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어느 정도까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나요? 이에 대한 성경의 대답도 분명합니다.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럼 죄 많은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구원하심의 이유도 단순하죠.
(신 7: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여기서 눈치 없이 ‘나 때문이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그럴만하게 살아서, 내가 착하고 정직해서, 남에게 해롭게 한 일이 없어서. 도덕적으로 남부끄럽지 않게 살아서. 내가 믿음이 남달라서, 내가 어릴 때부터 신심이 많아서 등’의 이유를 드는 것은 성경도 하나님의 사랑도 잘 몰라서 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냥 착각입니다.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는 것에 사랑이 동반되지 않는 것을 경계하셨습니다. 마치 동전의 앞면과 뒷면을 분리해서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눅 11: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사람이 명령을 지키거나 말을 잘 듣는 것은 ‘사랑받은 것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자녀들이 부모의 말을 잘 듣지 않거나, 군대나 직장에서 부하가 상사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것은 사랑의 실종 때문일 것으로 보입니다. 누군가 먼저 사랑을 보이지 않았기에, 혹은 받은 사랑의 정량 부족 때문에 생겨 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순종은 사랑 없는 사회에서 생겨나는 마음 아픈 현상일 것입니다.
결론)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에 사랑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립니다. 사랑 행함=계명 지킴
(요이 1:6)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롬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사도바울도 율법은 명령했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원인이 되어 지키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순종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이미 한발 늦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순종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사랑이 원인이 되어 자원하는 심령으로 ‘하게 되는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처음부터 내 안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의 출처를 하나님이라고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일 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만큼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질문이 안 통합니다. 사랑은 무조건 하나님 먼저입니다. 우리는 받은 사랑으로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성령의 열매로 우리 속에 주어집니다.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 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세상에는 지금도 사람들이 ‘말 듣게 하기 위한’ 온갖 방법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교 500년 역사와 일제강점기 이후의 군대 문화가 사회 전반에 걸쳐 이 숙제를 풀려고 무지하게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현재 학교와 가정을 보면 그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역풍을 맞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통치이념과 강압 모두 실패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도 그 자식 말 듣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입니다. 부모의 명령을 안 듣습니다. 어느 권위 있는 목사님이 이런 말씀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목사 10명 줄 세우는 것이 가장 힘들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목사들이 가장 말을 안 듣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목사님도 명령을 잘 안 지키는데 보통 사람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순종은 받은 사랑에 대한 예의입니다. 먼저 사랑에 힘을 쏟으면 알아서 명령을 지키고 따르게 되어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사랑은 순종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지켜서 하나님 사랑함을 증명하는 우리 모두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