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재(비조령) 가는 도중의 조망대에서, 속리산 자락이다
白頭嫡脉走東陲 백두산 큰 산맥이 동으로 뻗어와서
兄是金剛弟俗離 금강산 먼저 서고 속리산 뒤에 섰네
彌勒觀音寬世界 미륵관음 양봉 높아 자비세계 너그럽고
忠淸慶尙壯根基 충청 경상도의 경계한 산 장엄하도다
――― 백남 김시빈(白南 金始鑌, 1684~1729), 『俗離山』(늘재 백두대간 표지석 뒷면에서)
▶ 산행일시 : 2014년 6월 21일(토), 안개, 안개비, 흐림
▶ 산행인원 : 10명(영희언니, 버들, 드류, 金錢無, 대간거사, 상고대, 신가이버, 해마, 도~자,
메아리)
▶ 산행시간 : 11시간 30분
▶ 산행거리 : 도상 19.7㎞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시간별 구간
00 : 20 – 동서울 출발
03 : 09 – 늘재, 차안에서 계속 취침
04 : 30 – 산행시작
05 : 18 – △692.6m봉
05 : 40 – 밤재(밤티재)
06 : 22 – 594m봉
06 : 56 – 직벽, 바위굴
07 : 53 – CCTV 카메라, 헬기장
08 : 00 – 문장대(文藏臺, 1,028m)
08 : 43 – 신선대(1,026m)
10 : 00 – 천왕봉(△1,057.7m)
11 : 00 - ┣자 갈림길, 무덤, 점심
12 : 12 – 703m봉
13 : 20 - ┣자 갈림길 안부, 오른쪽으로 만수리 가는 길
14 : 00 – 형제봉(828m)
14 : 27 – Y자 갈림길, 왼쪽은 갈령(葛嶺) 1.3㎞, 오른쪽은 백두대간 비재(비조령) 3.6㎞
14 : 57 – 못제
16 : 00 – 비재(비조령), 산행종료
1. 문장대에서
▶ 밤재(밤티재)
낙동강과 한강의 분수령인 늘재. 백두대간 산행교통의 요충지이다. 그런데도 속리산 쪽 진행
방향이 헷갈린다. 부지런 떨어 반대쪽인 청화산에 들었다가 우람한 백두대간 표지석 감상을
핑계하고 뒤돈다. 밤을 꼬박 달려온 두메 님의 계속 수고로 우리는 밤재(밤티재)까지 비무장이
다. 2.6㎞. 1시간을 견적하고 시위 떠난 살처럼 튕겨 나아간다.
숲속 부는 바람이 선선하다. 506m봉을 댓바람에 오르고 숨 고르며 살짝 내렸다가 그 추동 살
려 긴 오르막을 성큼 내딛는다. 산 아래 가까운 마을에서 닭 홰치는 소리가 들린다. 닭도 새라
뭇 새들과 함께 새벽을 견인한다. “닭아 닭아 우지마라.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
는다.” 심청의 넋두리에 토를 단 분이 거산 김영삼이었다. (울지 못하게) 닭 모가지를 비틀어
도 새벽은 온다고.
풀숲과 나뭇잎이 흠뻑 젖은 건 이슬 아닌 안개비가 내려서다. 눈이 어째 침침하다 했더니 안개
속이다. 사암 슬랩 지나고 바위 하늘벽을 왼쪽 밑자락으로 돌아 넘어 △696.2m이다. 속리산
물이 튀였기로 암봉이다. 조망이 트일 법한데 사방 안개가 자욱하다. 직진. 암릉 슬랩을 손맛
보며 내리고 인적이 흐릿하다. 잘못 내렸다. 백두대간 길에서 알바라니 조금은 멋쩍다.
후미에서 누구 알바할 이가 또 없을까? 해마 님이 대뜸 도~자 님을 지목한다. 그랬다. 도~자
님이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왼쪽 사면 길게 돌아 암릉을 지나고 가파르게 떨어져 밤
재다. 금계국이 도로 양옆에서 꽃술 들고 도열하여 환영한다. 밤재 고갯마루에는 동물이동통
로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 위로 절개지가 너무 깊어 동물이 이동하려다 추락사하지나 않을까
염려한 이는 대간거사 님이다. 내 생각도 같다.
2. 아침 요기 중, 지도 공부하는 이는 신가이버 님
3. 협곡 앞에서, 대간거사 님
4. 너덜성 암릉, 해마 님
▶ 문장대(文藏臺, 1,028m)
속리산 방향은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철조망 치고 출입을 엄중히 막았다. 초소근무자는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 찜찜하다. 여기에서 월담하여 통과하더라도 문장대에서 지키고 있다면 대책
이 없다. 거기는 암릉이므로 우회로가 마땅하지 않다. 걸리면 과태료가 1인당 10만원이다. 사
안이 그러한데 웬 승용차가 지나가다 멈추고 차창 열더니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이라며 여기
밤재에서는 속리산을 갈 수 없다고 수차례 알려준다.
“예, 알겠습니다!” 우리의 합창을 곧이듣고(?) 휑하니 지나간다. 약간 맹한 사람이다. 도대체
이 새벽에 밤재 초소 앞에서 산행채비 꾸리는 등산객들이 속리산 말고 어디를 가겠는가! 나 같
으면 등산객들이 떠날 때까지 지켜보고 있겠다 했더니, (속리산을) 알아서 잘 가시라는 알뜰한
배려가 아니겠느냐고 해석하는 이가 다수다.
철조망 옆으로 비켜 산속에 들고 사면 돌자 예의 탄탄한 백두대간이 길이 나타난다. 엊그제 다
녀간 산행표지기가 안심하시라 이르는 듯 줄줄이 나풀거린다. 그래도 문장대를 얼른 통과하려
고 서두른다. 594m봉 암반인 등로에 앉아 요기로 아침을 때운다. 바위가 출몰한다. 암릉 길
서막이 열린다. 밧줄 매달린 직벽과 맞닥뜨린다. 그 옆에 바위굴이 있다. 바위굴로 들어가면
쉬울까 신가이버 님이 기어 들어갔다가 별 수 없어 다시 기어 나온다. 외길. 외줄 타고 오른다.
새벽 2시경에 밤재에서 올랐다는 단체 등산객을 만난다. 난리는 혼자 당할 때 난리인 법. 그들
선두와 동무하며 간다. 바위가 젖어 되게 미끄럽다. 등산화는 이런 데에서 맥 못 추는 중등산
화 비브람창이다. 전망바위 가는 길인 줄 모르고 그저 들렸다가 내릴 데 없어 여기저기 쑤셔보
기 일쑤다. 반침니가 자주 나온다. 암면에 양손바닥 찰싹 밀착하여 오르내린다. 손금 닳아 없
어질까 관계하랴. 긴다.
암릉 길 끝나고, CCTV 카메라와 방송시설 설치하여 출입금지 구역임을 알린다. “…… 어서
지정등로로 가시라” 반복해서 녹음테이프 튼다. CCTV 카메라는 고개 푹 꺾고 곤히 잔다. 너
른 헬기장 지나고 주변동태 살펴 잡목 숲 벗어나자마자 금줄 넘으면 문장대 표지석이 있는 공
터다. 선걸음에 철계단 74개 올라 문장대다. 사방 둘러 만천만지한 안개다. 바람이 세게 불어
춥기까지 하다. 공터로 내려와 바람 막은 바위벽 기대어 휴식한다.
5. 문장대 표지석
6. 문장대 정상에 있는 서쪽 조망도
▶ 천왕봉(△1,057.7m), 형제봉(828m)
천왕봉(천황봉이었는데 개명했다) 가는 길. 대로다. 이제는 허리 펴고 간다. 돌길 돌계단 오르
내린다. 안개가 자욱하여 전망대는 다 그만둔다. 등로 양쪽 사면은 산죽이 워낙 빽빽하게 우거
져 있어 거기 누빌 엄두를 내지 못한다. 신선대. 매점 문 열었다. 당귀 신선주 주문하여 분음한
다. 여간 향긋하지 않은 게 앉은뱅이 술일시 분명하다. 등로는 신선대를 기점으로 흙길 목제계
단으로 바뀐다.
경업대, 입석대, 비로봉은 다만 가늠해볼 뿐 아무도 들리지 않는다. 천왕석문 지나고 오른쪽으
로 법주사 가는 ┣자 갈림길 지나고 왼쪽으로 장각동 가는 ┤자 갈림길 지나고 좁다란 산죽 숲
길 이슥 올라 비스듬한 암반이 천왕봉 정상이다. 삼각점은 1등 삼각점, ‘속리 11, 2003 재설’
이다. 당초 도착예정시각이 일러 오래 휴식한다.
천왕봉 정상 벗어나면 잡석 깔린 길이다. 완만하고 긴 내림, 하산시각 조절할 겸 사면에 들려
풀숲 누빈다. 옛사람도 그랬다.
“식물을 앎으로써 누리는 기쁨과 희열을 내가 굳이 자세히 설명할 까닭이 없다. 숲 속을 거닐
때나 갖가지 희귀한 꽃들과 풀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산과 들을 바라볼 때, 예리한 눈으로 자
세히 살피는 것보다 더 기쁘고 즐거운 일이 인생에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음이다. 게다가
식물의 쓰임새와 효능까지 알게 된다면 그 기쁨과 희열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다.(로버트 헉슬
리 편집, 곽명단 옮김, 『위대한 박물학자』(레온하르트 푹스, 1501~1566), 『식물 탐구에 관
한 주목할 만한 논평(1542)』중에서)
거의 등로 옆이었다. 메아리 대장님이 산삼을 발견한 건 절대 우연이 아니다. 메아리 대장님의
평소 너그러운 마음 씀씀이를 천왕님이 감응했음이 분명하다. ┣자 갈림길 무덤가에서 경사
축하하며 점심밥 먹는다. 오른쪽으로 방향 꺾어 내리막길은 계속 된다. (문장대에서부터) 오른
발은 충청북도, 왼발은 경상북도를 밟는다.
하도 내리다 보니 나지막한 봉우리라도 오르기가 힘들다. 703m봉, 667m봉, 남진하여 쭈욱
내린다. 바닥 친 안부가 ┣자 갈림길인 피앗재다. 형제봉을 잔뜩 높고 다가간다. △803.3m봉
이 관문이다. 숨이 턱에 차도록 가파르다. 슬랩 직등하고 수직사면을 나무뿌리 고정자일 삼아
붙들어 오르면 암봉인 형제봉 정상이다. 사방 훤히 트인 경점이지만 오늘은 흐릿하다.
7. 속리산 주봉인 천왕봉, 상고대 님
8. 형제봉
9. 형제봉
10. 형제봉에서 바라본 속리산 쪽
▶ 비재(비조령)
형제봉 내리는 길이 오를 때 모양 가파르다. 갈령 삼거리까지 직하로 떨어진다. 쉼터인 Y자 갈
령 삼거리도 백두대간 산행교통의 요충지다. 갈령 1.3㎞는 탈출로이고 백두대간 비재(비조령)
3.6㎞는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이다. 방금 전의 형제봉은 단판이었지만 여기는 첨봉이고 준
봉인 무명의 봉우리가 4좌나 된다.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첨봉인 암릉은 세지 않았다.
암릉은 우리가 아무리 오지산행이라 해도 직등하기 어렵다. 오른쪽 사면 깊이 밧줄 잡고 떨어
졌다가 밧줄 잡고 오른다. 오늘은 신가이버 님이 나를 살린다. 내 뒷배로 든든했던 도~자 님이
슬그머니 갈령으로 탈출해버려 가뜩이나 불안했는데 뜻밖에도 신가이버 님이 지친 것이다. 천
하의 신가이버 님이! 이런 날이 다 있다니.
못제(못재가 아니다). 백두대간 마루금에 유일한 못이라고 한다. 후백제 견훤이 보은 호족인
황충과 세력 다툼하다가 패했던 곳이라고 한다. 못제(-堤?)를 지난다. 그 앞 첨봉 오를 일에
아까부터 주눅이 들었는데 등로는 왼쪽 산허리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망외의 큰 부조다. 능선
마루 비켜 갔다고 쑥스러워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백두대간 종주하는 이들은 다 그렇게 갔다.
등로 약간 벗어난 조망대 들려 건너편 구병산 연봉 구경하고 안부로 내려 마침내 마지막 봉.
고도 80m를 올라야 한다. 모자챙에 낙숫물로 떨어지는 땀방울을 빗방울로 착각한다. 양쪽 허
벅지에 쥐가 날 듯하여 정상이다. 곧바로 오른 터수 그대로 내린다. 낙하 제동하느라 애쓴다.
산중턱에서부터는 목제계단 내림이다. 스퍼트 낸다. 비재(비조령)는 봉화산 연결하는 동물이
동통로를 설치했고 도로포장공사 중이다. 두메 님은 갈령 탈출조 태우고 비재에 진작 와서 기
다린다. 하이파이브 하여 무사산행을 자축한다.
11. 만수계곡이 저 안에 있다
12. 봉황산
13. 왼쪽이 두루봉(대궐터산)
14. 구병산
첫댓글 숨가쁘게 달려간 하루였습니다...날씨 덕분에 완주도 하고,,,조망만 좀 틔었으면 금상첨화였을텐데,,,수고 많으셨습니다^^
예전에 대간때두 국공파하구 숨바꼭질하던 구간이었는데 아직두ㅠ
평소 너그러운 마음 씀씀이에 천왕님이 감응하여 ᆢ딱입니다요~~ 딸랑 딸랑~~
저 구간 나도 가야하는데, 아직 계획도 못잡고 있으니, 부러운 마음으로 보고갑니다........
저도 저구간 아직임다요.팔목 골절로 못간 구간~9월에 갈듯해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