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야합과 선의 연대
히브 7,1-17; 마르 3,1-6 / 연중 제2주간 수요일; 2023.1.18.; 이기우 신부
어제에 이어서 오늘 복음의 상황에서도 안식일과 관련된 논쟁이 이어집니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남의 밀밭을 지나가다가 배가 고파서 밀 이삭 몇 알을 뜯어먹은 일이 있은 다음부터, 바리사이들은 혹시 예수님께서 안식일 계명을 소홀히 여기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 이 계명을 철저히 지키자면 안식일에는 모든 생업을 중단해야 했고, 그만큼 실생활에서는 관련이 깊은 계명이었는데 어떤 행위가 계명 위반인지 여부를 판단해 주는 재판관역 내지 자문관 역이 그들 바리사이의 몫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안식일에 다른 농부의 추수거리를 도와주는 품앗이도 생업의 일종으로 간주했기에 제자들이 남의 밀밭에서 밀이삭 몇 알을 뜯어 먹은 일까지도 고발하는 사단이 벌어진 것이지만, 안식일에 병자나 장애자를 고쳐주는 일도 일종의 의료행위이므로 금지되어야 한다고 간주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들어가실 회당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데려다 놓았는데, 회당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고발하려는 올가미가 놓여진 이런 사정을 단박에 알아채셨습니다. 그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낫게 해 주시기 전에 먼저, 이 함정을 정면 돌파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손이 오그라든 그 사람을 앞으로 나오게 하시고는 그를 데려다놓은 바리사이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마르 3,4)
이는 안식일이라도 소나 나귀나 양 같은 짐승들에게는 물을 마시게 했으며, 물을 마시려다가 자칫 잘못해서 그 짐승들이 우물에 빠지기라도 하면 그 즉시 그 짐승들을 구해내던 당시의 당연한 관습을 염두에 두고 던진 질문이셨습니다. 당연히 정답은,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고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말문이 막혀서 그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도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해야 하고 목숨이 위험해지면 짐승이든 사람이든 구해내야 마땅함을 알고 있었지만, 함정에 빠졌어야 할 예수님이, 즉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기만 했더라면 당연히 사람들에게 고발을 당했어야 할 예수님이, 바리사이들이 스스로 자초한 모순을 폭로해버리시자 할 말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주일에는 좋은 일을 해야 합니다. 미사 참례는 그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미사를 참례하고 나서 소외된 이들에 대한 선행 같이 하느님께서 원하실 법한 그런 일을 가족이나 뜻이 맞는 교우들과 함께 실행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주일을 거룩히 지내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주일을 온전하게 거룩히 지내는 신자들이 느끼는 기쁨과 매력이 서서히 번져나가야 하고 이것이 진정한 복음화의 현상입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은 평소에 정치적 입장이 달라서 서로 앙숙처럼 지내던 헤로데 당원들과 야합하여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하고 모의하였습니다. 그만큼 생업과 직결된 안식일 계명과 이에 대한 해석이야말로 바리사이들이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유지해온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였던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정의나 평화 같은 가치를 실현하는 일 따위는 안중에 없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아브라함과 멜키체덱의 고사(古事)를 근거로, 예수님이야말로 정의와 평화의 가치를 추구하고 실현하신 대사제임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주일에 미사 참례와 더불어 실천해야 할 선행들은 바로 이렇게 정의와 평화의 가치를 추구하고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일들이어야 합니다.
1980년대에 열렸던 커다란 신앙행사들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두 차례 방한 등으로 우리 사회에 조성되었던 가톨릭 붐과 선교열의 배경과 바탕에는 1970년대의 암울했던 유신 독재 상황에서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인권 옹호, 민주화에 대한 국민 염원을 대변하는 소신 발언 등 천주교회가 보여준 정의로운 발언과 처신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의와 평화라는 가치는 최고선이신 하느님의 직접적인 관심사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종으로서 이 가치를 수호하는 파수꾼이어야 합니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사목헌장, 78항; 이사 32,17)이기 때문에 정의라는 가치는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도 결코 타협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우리 사회에 정의라는 가치가 흔들리지 않도록 관심을 갖고, 정의롭지 못한 처사로 인해 불이익이나 희생을 당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교회와 신자들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런데 나라를 수호하는 천주교 신자임을 위장하고는 이 당연한 의무를 드러내놓고 반대하는 세상의 무리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내놓고 반대는 못하지만 교회는 경건하게 종교적 의무만 다 하면 그만일 뿐 이 당연한 의무를 꺼리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바리사이들이 서로의 정치적 앙숙관계에도 불구하고 헤로데 당원들과 야합하여 제거할 음모를 꾸미는 살벌한 상황에서 이에 대항하고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모으셨습니다(마르 3,13-19). 그러므로 악의 야합에 대항하는 선의 연대야말로 예수님을 따라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방식 중의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