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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록으로 읽는 믿음과 삶] (17) 처음 네 개의 봉인이 열리다(묵시 6,1-8)
하느님은 결코 인간의 아픔 외면하지 않으신다
봉인이 열린다. 숨겨진 진실이 혹은 감추어진 계시가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그 시작은 ‘오너라’(Ἔρχου)라는 명령형의 동사다. 헨리 바클레이 스위트(Henry Barclay Swete)와 같은 고전적 성서학자들은 ‘오너라’라는 동사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갈망하는 믿는 이들의 외침을 읽어내곤 했다. 요한묵시록은 ‘오다’라는 동사를 통해 예수님의 오심을 수차례 언급하기도 한다.(1,4.7.8; 2,5.16; 3,11; 4,8; 16,15 참조) 요한묵시록 끝자락에서는 교회 공동체를 대표하는 어린양의 ‘신부’가 예수님께 ‘오시라’고 외치기도 한다.(22,17 참조) ‘오다’라는 동사를 두고 예수님과 믿는 이들의 서로에 대한 갈망과 열정이 도드라진다. ‘오너라’의 외침이 들리는 처음 네 개의 봉인은 어쩌면 예수님을 향한다는 것과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며, 그리하여 어느 곳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는지를 일깨우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봉인이 열리면서 네 마리의 말이 등장하는데 각기 다른 색을 가지고 있다. 즈카르야서 6장 1절부터 8절까지에 나타나는 병거 넉 대와 말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네 마리 말들로 인해 벌어지는 재앙들 때문에 탈출기의 열 가지 재앙과 연결해서 해석하기도 한다. 또 아니면 서기 70년,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의 함락을 ‘종말’의 징표로 이해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해석이 네 마리 말들로 표현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무엇이건, 마지막 시대에 주님께서 직접 인간 역사 안에 개입하셔서 당신의 구원 의지를 드러내신다는 해석으로 마무리된다.
문제는 첫 번째 말의 색깔이 하얗다는 데 있다. 대개 천상의 기쁨이나 영광을 드러내는 하얀색이 다른 말들의 색깔들, 그러니까 붉고 검고 푸르스름한 색깔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하얀색의 말을 탄 이는 ‘활’을 들고 있는데, 구약성경은 하느님의 심판과 징벌을 이야기할 때, 활을 등장시킨다.(신명 32,41-42; 하바 3,8-9; 에제 5,16-17) 활이라는 형상은 인간 세상사 그 어떤 대목에서도 하느님의 권능과 위엄이 가득하다는, 그리하여 그 어떤 것도 하느님께 대적하지 못한다는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요한묵시록은 19장에서 마지막 시대, 마지막 승리자로서 백마 탄 기사, 곧 예수님을 소개한다. 6장의 백마 탄 기사는 19장의 예수님을 미리 알리는 하나의 표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어린양이 여는 봉인의 시작은 말하자면 예수님을 계시의 첫 자리로, 그 자리에서 그 어떤 것도 예수님과 대적할 수 없다는 확고한 신앙을 갖추도록 독자를 이끈다. 첫 번째 말의 색이 하얗다는 건, 우리가 누릴 천상의 기쁨과 영광은 세상이 어떻든, 그 세상이 얼마나 아프고 슬프든, 우리에게 유일한 승리자는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믿고 바라는 데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꽃길만이 보장된 편안하고 행복한 길이 아니다. 어린양이 두 번째 봉인을 뜯고 나서 붉은 말이 나오는데, 그 말 위에 탄 기사는 큰 칼을 들고 있다. ‘칼’의 형상은 마지막 시대 하느님의 심판을 가리키는 전통적 형상이다.(이사 27,1; 에녹 90,19.34; 91,12) 유다의 묵시문학 작품들은 ‘칼’을 통해 메시아 시대의 갈등과 다툼, 그리고 전쟁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학자들은 요한묵시록이 쓰인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느꼈을 또 다른 마지막 시대의 징표를 로마 제국의 군사력에서 찾기도 한다. 이를테면, 무시무시한 로마의 군사력은 공포의 대상이지만 또한 비로소 마지막 시대가 도래했다는 희망의 징표로 해석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를 살해하는 일은 끔찍한 일이지만, 그 일로 파멸이 아닌 메시아 구원의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신앙의 해석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함으로 맞닥뜨리는 눈물겨운 삶을 어떻게든 살아내어야 한다는 그리스도인의 다짐일 것이다.
세 번째 봉인이 열리면서 삶의 애환과 고통은 배가된다. 세 번째 말은 기근과 결핍을 가리키는 검은 색을 지녔고 그 말 위의 기사는 저울을 가지고 있다. 네 생물 한가운데에서 나오는 어떤 목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밀 한 되가 하루 품삯이며 보리 석 되가 하루 품삯이다.”(묵시 6,6) 하루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가정했을 때, 어떤 목소리가 말하는 밀 한 되의 값은 1세기 당시 거래되는 가격의 여덟 배에 가깝다. 검은 말을 타고 있는 기사의 저울은 엄청난 인플레이션에 허덕이는 경제적 상황을 상징하며 서민이 감당해야 할 힘겨움을 암시한다. 요한묵시록이 쓰였을 당시 로마의 황제는 도미티아누스였는데, 그는 포도밭을 갈아엎어 보리를 심는 정책을 펴기도 했다. 그만큼 먹고사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시기였고, 요한묵시록은 배고픈 시대의 아픔과 슬픔 안에서 신앙의 가치를 고민하고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유다의 전통은 마지막 메시아 시대에 벌어지는 현상으로 빵과 포도주의 결핍을 이야기한다.(요엘 1,10-11 참조) 현실이 결핍투성이라 할지라도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희망과 그 신앙은 결코 하느님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 번째 봉인은 삶의 애환과 고통을 비껴가지 않는다. 그 삶을 직시하게 독자들을 이끌며, 그 속에서 각자의 신앙 자세를 다시금 다듬어 볼 여지를 살피게 한다.네 번째 봉인이 열리면서 나타나는 말은 죽음을 이야기한다. 에제키엘서 5장 12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하는 이 대목은 하느님을 외면하고 그분께 불충하는 백성을 향한 심판을 가리킨다. 어렵고 힘든 세상살이로 하느님을 저버리는 좌절과 포기의 삶은 죽음으로 향한다는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가 네 번째 봉인을 통해 드러난다.
비록 거칠고 투박한 경고의 메시지라도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강조하고 싶은 요한묵시록의 의도는 명확하다. 어린양이 봉인을 열면서 보여주고자 한 하느님의 계시는 결코 인간 세상의 부조리나 아픔을 외면한 유토피아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가 늘 마주하고 살아가는 인간 삶 그 안에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분명히 전하고 계신다는 것. 우리가 사는 삶은 지금 이 순간의 것이고 다른 세상 다른 시간을 꿈꾸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그러므로 모든 존재를 창조하신 하느님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망상이라는 사실을 요한묵시록은 우리에게 각인시키고자 한 것이리라. 그러므로 승리자이신 예수님과 더불어 지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이 삶을 살아내기를 우리는 다짐하고 또 다짐해야 할 것이다. ‘오너라’라는 그 외침을 향한 응답은 이 삶을 온전히, 열심히, 살아내는 이들의 몫이다.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69) 세관에 있는 마태오를 부르신 예수님
예수님과 마태오가 처음 만난 장소는 세관이었다. 마태오는 세리였다. 유다인에게 세리라고 하면 창녀에 버금가는 죄인이었다. 세리는 유다인 사회에서는 배척을 받는 직업으로 같은 유다인들에게 두 배 내지 세 배의 세금을 징수하는 등 부당한 이익을 취해서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로마제국의 앞잡이와 같은 일을 하는 세리들은 유다인 사회의 ‘왕따’를 당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세리들을 이방인과 같이 취급했고 겉으로는 내놓고 표현하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경멸했다. 당시에 로마의 징세 제도에서 세리들은 미리 담합을 벌여 다음 해의 세금 징수권을 따냈다. 세리로 등용된 이들은 자신이 사용한 돈 이상으로 이익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혈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통행세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임산부를 2명으로 간주하는 등 비상식적인 세금 징수로 유다인들은 세리를 이방인 취급하여 ‘개’라고 부르곤 했다. 세리도 돈을 많이 벌고 호의호식했지만, 마음속에는 평화가 없었다.
인간에겐 돈과 재물보다도 중요한 것이 많다. 명예와 평화로운 마음을 회복하고 싶은 것은 인간 모두의 본성이다. 마태오도 적당히 법을 이용하여 재물을 많이 축적했던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진정한 친구나 지인보다 돈으로 얽혀있는 인간적인 만남이 많았을 것이다. 마태오는 주변 유다인이 자신을 도둑과 개처럼 멸시하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살고 있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죄인들과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도 들은 터였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저 다른 보통 사람들과 동등하게 대해주시며 손을 내밀어 주셨다. 전혀 새로운 만남에 감동한 마태오는 충실한 제자가 되었다.
사도들의 명단 속에는 항시 마태오라는 이름이 들어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태오 복음서만이 세리 출신의 제자를 특별히 부각시키고 있다.(10,3 참조) 마태오 복음서는 유다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다인들을 위해 쓰였다. 마태오 복음서는 ‘팔레스티나 복음서’로 간주될 만큼 팔레스타인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는 교리서와 같은 책이다. 마태오 복음서는 그 선교의 대상이 되는 유다 세계와 유다 문화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집필연대는 내적 특성을 고려하여 마태오 복음서는 서기 70년 예루살렘 함락 이후 10여 년이 지난 80~85년에 결정적으로 편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화에서 마태오는 성경(에제 1,10; 묵시 4,7)에 언급된 ‘네 생물’에서 유래한 상징에 의해 날개 달린 사람, 다시 말해 천사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마태오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복음서를 시작한 것에 대해 리옹의 주교이자 교부인 이레네오 성인이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마태오는 세리였던 경력으로 인해 은행원과 경리, 회계사와 세무 직원들의 수호성인이 되었고, 교회 미술에서도 장부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표현되기도 한다.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황금 등잔대
이스라엘에 가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장식물이 있습니다. 바로 황금색 등잔대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국회 의사당의 깃발에도 장식되어 있고, 유다교의 최고 성지인 ‘통곡의 벽’ 입구에도 세워져 있습니다. 기념품 가게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의 대표 상징 가운데 하나인 셈인데요, 오늘 제2독서에도 언급되는 황금 등잔대는 어디서 기원하였을까요? 탈출 25,31-40에 따르면, 황금 등잔대는 주님의 성소를 비추기 위해 만들어진 기물입니다. 히브리어로는 [메노라]라고 하는데, 그 어근은 ‘불타다’ ‘빛나다’라는 뜻입니다. 탈출기 율법은 메노라를 ‘순금’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합니다. 순금 덩어리 하나를 마치로 두드려 편도나무 모양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메노라를 편도나무 모양으로 만들도록 규정한 까닭은 이렇게 추정됩니다. 편도나무는 아몬드 나무인데, 겨울이 채 가시지 않은 1월 말부터 2월에 만개하는 꽃나무입니다. 곧 근동 지방에서 맨 먼저 피는 봄꽃이라 예부터 부활과 갱생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봄의 전령이자 갱생의 상징인 편도나무는 황금 등잔대의 ‘빛’과 더불어, 생명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성소 안에서 암시해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빌로니아 탈무드」에는 “메노라의 불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안에 현존하고 계심을 증명해주는 표상이다.”(샤밧 22ㄴ)라는 구절도 나옵니다. 메노라의 등잔 숫자는 완전수 일곱이고, 등잔 역시 편도 꽃 모양으로 제작해야 하였습니다.
메노라가 자리했던 옛 성막과 성전이 에덴 동산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합니다. 이들 사이에는 여러 공통점이 있습니다. 원조들이 에덴 동산에서 하느님을 자유롭게 뵐 수 있었듯이, 성막과 성전도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나 주시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곳 모두 죄가 없는 상태, 곧 정결한 상태여야 들어갈 수 있었다는 공통점도 존재합니다. 원조들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건 죄를 지어 합당한 정결함을 잃어서였고, 옛 이스라엘인들은 성전에 들어가기 전 반드시 정결 예식을 거쳐야 하였습니다. 커룹의 존재도 공통됩니다. 에덴 동산 입구에는 커룹들이 불 칼과 함께 그곳을 지켰고(창세 3,24), 성전에서는 지성소에 모셔진 계약 궤에 커룹이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원조들이 에덴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커룹들이 지켰듯이, 지성소 또한 커룹이 자리하여 백성의 출입을 제한하는 상징적 구실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 모두를 감안하면, 편도나무 모양의 황금 등잔대는 에덴 동산의 상징인 성막과 성전에서 생명나무처럼 자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더구나 성소 기물들 가운데 완전한 순금으로 만들어져 죄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상태를 상징하였습니다. 그래서 메노라는 비록 기원후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가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할 때 자취를 감추지만, 그 존재감은 계속 유지되어 오늘날도 성지를 비추는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묵시록으로 읽는 믿음과 삶] (16) 어린양의 삶과 죽음(묵시 5,6ㄴ-14)
오늘도 어린양의 형상으로 다가오시는 예수님
어좌 한가운데 자리 잡은 어린양은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 ‘살해된 것처럼 서 있는’(ἑστηκὸς ὡς ἐσφαγμένον) 어린양이 과연 가능한가. 죽었는데 서 있는 게 가능한 일일까. 주석학자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역사적 사건과 연결하여 어린양의 모순적 양태성을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어린양은 분명 죽었고, 또한 분명 살아 있다. 죽음과 삶은 물리적 시간의 전후에 머무르지 않는다. 죽음과 삶은 하나다.
흔히들 말한다. 예수님은 죽음을 물리치고 승리하여 우리 모두에게 생명을 주셨다고. 요한묵시록의 어린양은 이러한 이분법적 신앙 고백엔 그리 관심이 없는 듯하다. 요한묵시록은 삶을 죽음의 대척점에서 고민하지 않는다. 모두가 승리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죽음을 물리친 자리가 아니라 여전히 죽어가는 자리를 동시에 껴안는 자리로 묘사된다.
그 이유는 너무나 뚜렷하여 선명하다. 우리 주 예수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이고, 그분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여전히 세상의 찬바람을 끝끝내 버티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사라진 게 아니다. 영원한 생명을 살아내는 신앙인 곁에 예수님의 죽음은 현실의 죽음 위에 포개져 사유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린양’의 형상은 단순히 역사의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만을 놓고 고민한 결과가 아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위에 신앙인의 삶과 죽음이 포개져 ‘어린양’의 형상으로 소개된 것이다.
문법적으로 살펴봐도 그렇다. ‘살해된 것처럼 서 있는’으로 번역된 분사 형태의 동사들은 어린양을 꾸미는 형용사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스말은 남성, 여성, 중성을 문법적으로 구별하는데, ‘살해되었다’는 동사는 남성형 분사다. ‘어린양’(ἀρνίον)은 중성 명사이기에 중성인 명사와 남성인 동사의 결합은 문법적으로 틀린 것이다. ‘살해되었다’는 동사가 남성형이라서 몇몇 주석학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어린양을 통해 바라보지만, 중성인 어린양에 대한 해석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더욱이 ‘살해되었다’는 동사는 ‘스파조’(σφάζω)로 쓰여있다. 목을 잘라 제물로 바치는 행위를 가리키는 동사다.
살해된 어린양을 굳이 예수님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한묵시록은 11장의 두 증인 이야기에서 주님의 죽음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이 잘려 죽은 이는 누구일까. 어린양이 중성 명사라면 굳이 남성으로서의 예수님만을 언급하기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예수님의 죽음에 신앙의 증거로 함께 한 모든 순교자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예수님의 죽음은 실은 많은 신앙의 증거로 피가 끓어오르는 생명의 자리가 아닐까. 어린양은 예수님을 증언한 신앙인의 숱한 죽음 위에 새롭게 살아가는 모든 신앙인의 삶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역사적 사실관계에 머물러 성경을 읽다 보면 무리수가 발생한다. 성경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신앙의 해석과 상상을 가미한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친다. 역사의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 모든 신앙인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은 그분의 삶은 물론이거니와 그분의 죽음마저 우리에겐 생명의 선물로 사유하고 상상하는 자유를 어린양을 통해 마련하신다.
예수님을 두고 상상을 펼쳐나가는 요한묵시록 5장은 6절 후반부터 우주론적인 차원으로 뻗어 나간다. 권능을 가리키는 뿔과 지혜를 암시하는 눈을 각각 일곱 개씩 가진 어린양은 하늘과 땅을 이어놓는 친교의 상징체로 소개된다. 어린양의 일곱 눈이 온 땅으로 파견되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공간은 천상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양의 눈은 땅으로 파견되어 하늘과 땅이 어린양의 형상 안에 통합되는 것이다.
네 생물과 스물네 원로는 이러한 친교와 통합을 이렇게 노래한다. “주님의 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속량하시어 하느님께 바치셨기 때문입니다.”(묵시 5,9) ‘주님의 피로’라고 번역된 그리스말은 ‘너의 피로’(ἐν τῷ αἵματί σου)라고 되어 있다. 천상의 ‘어린양’은 지상을 대표하는 네 생물과 스물네 원로에게 ‘너’라는 친근한 이웃이 된다. 어린양은 자신의 희생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을 하느님께 이끌었다. 묵시문학은 ‘모든’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네 가지 범주로 표현하는 습성을 지닌다. 모든 민족이라고 해도 충분할 터인데, 굳이 종족, 언어, 백성, 민족으로 구별하여 표현한다. ‘모든 이’가 진정으로 ‘모두’, 어린 양을 통해 하느님과 하나 되는 것으로 어린양을 통한 신앙의 상상은 마무리된다.
천상의 주님이 지상의 ‘너’가 되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너의 피’, 곧 예수님의 희생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속량하다’라고 번역된 그리스말 동사 ‘아고라조’(ἀγοράζω)는 다분히 상업적 의미를 지니는데,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물건을 구입할 때 사용하는 동사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희생을 부정적 사건으로 보지 않고 하느님과 하나 되기 위한 필연적 과정 혹은 치러야 할 대가를 말할 때 이 동사를 사용한다.(1베드 1,18 참조)
하느님이신 예수님은 거저 우리 사람을 구원하신 게 아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라서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우리를 구원하신 게 아니란 말이다. 하느님은 참된 인간으로서 바보 같은 죽음을 맞닥뜨리셨고 바보같이 돌아가셨다.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친교의 원동력은 끝없이 내려놓고 비워내고 스스로를 대가로 지불하는 하느님의 바보 같은 사랑 덕분이었다.
예수님은 오늘도 어린양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우리에게 주어진 나날들은 실은 죽어가는 시간의 연속이다. 죽음이 생명일 수 있는 건,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이 세상 모든 이와 더불어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봉인을 열어 보이실 어린양은 그러므로 새롭고 신비한 천상의 놀라움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끝내 살아내는 숱한 일상의 희로애락을 다시금 살펴보게 할 것이다. 그 일상이 죽음을 향할지라도 우리 믿는 이들에겐 천상이요, 생명이 된다.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68) ‘천둥의 아들’ 충직한 제자 야고보
세계 어디서나 간호사가 되면 나이팅게일의 정신을 물려받자는 뜻에서 '나이팅게일 선서'라는 것을 하게 된다. 나이팅게일(1820~1910)은 간호사로 영국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854년 크림 전쟁으로 부상병이 많이 발생하여 간호사를 모집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녀는 이 뉴스가 주님께서 자신을 부르신다는 확신을 갖고 야전병원으로 향했다. 그때까지 여성이 전쟁터에 가서 부상병을 간호하는 일은 없어 나이팅게일의 부모님 반대했다, 그러나 그녀의 확고한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그녀는 전쟁터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거의 잠도 자지 않은 채 부상한 병사들을 돌보았다. 늦은 밤에도 램프를 켜서 들고 부상병들을 간호하는 그녀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녀의 이런 봉사의 모습은 널리 퍼져나가 세계인의 관심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전쟁이 끝나자, 영국은 그녀를 위한 대대적인 환영대회를 준비했다. 이 소식을 들은 나이팅게일은 눈에 띄지 않게 몰래 고향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리고 주변에 “나는 위대한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느님의 명령에 따른 것뿐”이라고 이야기했다. 나이팅게일은 모든 간호사의 모범이 됐지만 그저 항상 주님의 도구였을 뿐이라고 자신을 낮추었다.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있다. 국적, 신분에 상관없이 사람의 생명은 모두 소중한 것이기에 나이팅게일과 같은 소명의식을 가진 의료인들이 더욱 필요하다.
야고보는 열두 사도 중 한 명으로 요한의 형이다. 즉흥적이고 열정적인 성격 탓에 예수님께 꾸지람(?)도 들어 ‘천둥의 아들’이란 별명을 갖고 있었다. 야고보는 스페인과 수의사, 의사, 목수의 수호성인이다. 또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동명이인이라 교회에서는 그를 ‘대(大)야고보’라고 부른다. 그는 동생 요한과 함께 아버지를 도와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어부로 일하고 있다가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님을 따랐다.(마태 4,21-22 참조)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예수님의 최측근으로 스승의 말씀을 충직하게 따랐던 제자였다.
야고보는 사마리아와 유다 지역에서 복음을 열정적으로 전파하였고 이베리아반도까지도 다녀갔다는 교회전승이 전해진다. 그런 이유인지 모르지만 9세기경 야고보의 유해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장되어 모셔졌고, 당시 알폰소 국왕은 그 묘지 위에 150년에 걸쳐 웅대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건축하였다. 스페인과 유럽의 신심이 약화되던 시기에 젊은이들이 야고보 사도의 무덤을 순례하는 피정 프로그램이 오늘날의 꾸르실료 신심운동을 탄생시켰다.
현재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까지의 순례길은 세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순례지다. 지금도 대성당 안에 그의 유골함이 전시되어 있다. 순례 끝에 충실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야고보 사도를 만나는 것도 또 다른 기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