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로 들여다보는 타인의 슬픔
달마는 보시 (布施, dana)를 수행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마음의 때를 없애고 중생을 도울 수 있으며, 모습[相]을 취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모습을 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보시를 할 때 자신이 보시를 하고 있다고 여기지 않고 보시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보시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보시에는 재보시 (財布施), 법보시 (法布施), 무외보시 (無畏布施)가 있다. 재보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기 재물을 주는 것이고, 법보시는 불법을 전파하는 것이며, 무외보시는 남에게 용기를 주고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다.
보시라는 행위가 우리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내 말 좀 들어 봐”, “내가 바라는 건…”, “내 생각은…” 등의 말을 수없이 많이 하며 살아가고 있다. 또 이런 말들이 인생을 앞으로 끌고 나간다고 생각한다.
일생 동안 우리는 자신만을 바라보고 자신에게만 집중한다. 심지어 일상적인 교류에서도 타인의 말에 차분히 귀를 기울이고 타인의 애환을 들어주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보시를 하면 자신이 아닌 타인이 중심이 되어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다음은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남의 슬픔에 대해》다.
타인의 슬픔을 보며
어찌 나 또한 슬퍼하지 않을 수 있을까.
타인의 한탄을 보며
어찌 따뜻한 위로를 구하지 않을 수 있을까.
타인의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어찌 나 또한 슬퍼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가 우는 것을 보며
아버지가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기가 두려움에 찬 신음을 토해 낼 때
어머니가 어찌 조용히 앉아 듣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다. 결코 그럴 수 없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
보시는 남의 슬픔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남을 도와주는 행위 속에서 우리 안의 소유욕과 잃어버릴 것을 두려워하는 불안감이 사라지고 평정심을 얻게 된다. 보시를 하면 현실 속의 냉혹한 관계를 따뜻하게 변화시킬 수도 있다.
테레사 수녀의 일화가 있다.
인도의 한 귀부인이 테레사 수녀에게 거액의 헌금을 내놓았지만 테레사 수녀는 그 돈을 거절하며 그 대신 귀부인에게 앞으로 옷을 살 때마다 한 벌씩 덜 사고 옷 한 벌 값을 헌금으로 내달라고 부탁했다.
이 귀부인이 테레사 수녀의 말대로 옷을 살 때마다 한 벌씩 덜 사고 옷값을 헌금으로 내놓았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그녀는 옷에 대한 갈망이 조금씩 줄어들었고, 욕망이 억제되자 선을 행하는 동안 기쁨이 공기처럼 은은하게 퍼져 그녀의 생활을 가득 채우게 되었다.
남의 슬픔에 주의를 기울여라.
내 안의 소유욕과 상실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져
마음의 평정심을 얻을 것이며,
냉혹한 인간관계가 따뜻하게 변할 것이다.
반야심경 마음공부 중에서
페이융 저자
허유영 번역
출판사 유노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