贈送蓮花片 떠나시며 주셨던 한 송이 그 연꽃
初來灼灼紅 처음 그렇게 붉고 붉기만 하더니
辭枝今幾月 얼마 가지도 않고 떨어지고 말아
憔悴與人同 해쓱 마른 모습 마치 이 사람인 듯
고려조의 충선왕(忠宣王)이 원(元)나라에서 귀국할 때, 정들었던 낭자에게 정표로 한 송이 붉은 연꽃을 주고 떠났답니다. 낭자는 떠난 임의 기약이 없음을 애달아 그리면서 서러워 하다가, 마침 고려에 귀국하는 이익재(李益齋) 편에 연시(蓮詩) 한 수 지어 충선왕께 보냈답니다. 그 시를 앞에 적어보았습니다.
북송(北宋)의 학자 주돈이(周敦 )는 연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칭송하였습니다.
"내가 오직 연꽃을 사랑함은, 진흙 속에서 태어났지만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씻겼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이 소통하고 밖이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가 없고, 향은 멀수록 맑아, 우뚝 서 깨끗한 품은 멀리서 볼 것이요, 다붓하여 구경하지 않을 것이니, 그래서 연은 꽃 가운데 군자라 함이라!"
그렇듯 연꽃은 갖은 칭송을 받아 당연합니다.
이러한 연꽃은 통상 불교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흙탕물밑의 진흙에 뿌리를 내림으로써 번식하고 생동적인 잎사귀들을 물위에 띄우며 향긋한 꽃을 피우는 것이 연(蓮)이지요.
불가(佛家)에서 연꽃을 성화(聖花)로 여기는 까닭은, 더러운 진흙 속에 뿌리박고 줄기를 올려 더러운 물에 가라앉지 않는 너른 잎을 싱싱하게 띄우면서 그 위에 깨끗한 꽃을 떠받쳐 피우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흙탕물 가운데서도 초연하여 결코 더러움에 묻히지 않는 위엄으로 피는 꽃, 그래서 고귀한 꽃으로 숭상된답니다. 하여, 불상(佛像)·불좌(佛座)·불구(佛具)뿐 아니라 불당(佛堂)의 모든 조형에도 이 연꽃이 그려지고 쓰여진답니다. 연화세계(蓮花世界)·연좌대(蓮座臺)·연등(蓮燈)으로, 그렇게 연꽃으로 불법(佛法)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러나 연꽃은 불교 이전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 동양인들에게는 신비스런 꽃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흙탕물에 자라면서 꽃은 물론 잎이나 잎사귀 위의 물방울조차 더러워지지 않는 그 불염성(不染性) 때문에 동양 사람들은 어떤 신성함을 이 꽃에서 느껴온 것입니다.
연꽃은 또한 재생 설화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의 민간 설화에 이 연꽃이 효녀 심청과 연관되는 것이 그것입니다. 임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 연꽃 속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설화입니다. 연꽃은 밤이면 그 꽃잎을 닫고 낮이 되면 다시 활짝 펴집니다. 그런 까닭으로 연꽃은 심청의 재생 설화를 전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풍류의 특급으로 연차(蓮茶)... '보현차(普賢茶)'라는 이름의 녹차는.. 낮에 펼쳐진 연꽃이 오후에 오므라지기 전에 그 속에 초벌로 덖은 녹차 잎을 넣어서 밤을 새어 그 연꽃 향기를 듬뿍 머금게 한 다음에 그 녹차 잎을 따로 모은 녹차가 그 연차(蓮茶)라고 합니다. 지혜를 익혀 머금는 보현차(普賢茶)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