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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章 용유진, 호풍동(呼風洞)에 가다(一)
1.
겨우 손가락이 움직였다. 팔에도 약간의 감각이 돌아온 것 같았다.
그 팔을 움직여서(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뒤에야 겨우 가능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서문하가 말한바, 약주를 찾는 것이었다.
약주가 담겨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호로병은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당겨오는 일이 매우 어려웠고, 다시 그것을 쥐어 입으로
부어 넣는 것은 더욱더 어려웠다.
대신 결과는 훌륭했다. 그 약주의 독기가 기침을 연발했다. 먹은
약주가 반은 입 밖으로 흘렀고, 나머지 반 중에 다시 반이 기침과 함께
뱉어졌다. 그러나 그 효과만으로도 그는 어느새 반쯤 몸을 일으키고 있
었다.
"이게 약효인지 독효인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군."
서문하가 말했다.
"그렇게 입을 놀리는 걸 보면 뭔지는 분명하지 않으냐?"
용유진은 이제 서문하를 완전히 볼 수 있었다. 한 마리 학이 내려앉
은 것처럼 고요히 가부좌를 틀고 있는 서문하는 아까 보았을 때보다
더욱더 수척해져 있는 것 같았다.
용유진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후배가 버릇없이 농 삼아 한 말입니다. 약효가 과연 탁월함을 확실
히 그것으로 알 수 있군요."
그는 표정을 바꾸어 근심스럽게 물었다.
"아까 뵈었을 때보다 훨씬 안색이 안 좋으신데, 후배가 그 원인인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군요."
서문하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아까? 아까라고? 너는 그 사이에 다시 이틀이나 시간을 보냈다. 나
는 정말, 흥! 한 가닥 호기심이 아니었다면 벌써 버려두고 떠났을 것이
다."
운기조식하는 동안 다시 이틀이나 지났던 것이다. 용유진은 의아해
서 물었다.
"호기심이라시면?"
"물론 네 내력에 대한 호기심이다. 그것 외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
그의 말투는 냉랭했고, 표정은 담담햇다. 그에게서는 용유진에 대한
호기심 따위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무언가 다른 데에 있는
것이다. 한편 그의 담담한 표정 뒤에는 고통스러운 기색이 까려 있음을
용유진은 발견할 수 있었다. 자세히 보면 땀조차 비 오듯 흘리고 있었
다.
용유진은 가슴이 섬뜩해짐을 느꼈다. 서문하와 같은 고수가 땀을 흘
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극도로 몸 상태가 안 좋거나, 혹은
주화입마에 들었을 때나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서문하가 그의 회복을 기다리는 이유, 그리고 지금처럼 고통스러워
하는 이유를 용유진은 짐작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신했
다. 서문하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고, 또 스스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분명히 무언가 그를 위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리를
했고, 지금도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아마 얼마 더 버티지 못할 것 같았
다.
용유진은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았다. 서문하의 말대로 회복이 첫째
였다. 회복되지 않더라도 움직이기는 해야했다.
그는 가볍게 기를 주천(周天)시켜 몸 상태를 점검했다. 회복은 상반
신까지만이었고, 그나마 완전하지 않았다. 호리병 하나 들어올리는 것
도 힘겹지 않았던가. 그러나 필사적으로 노력하면 움직일 수는 있을 것
도 같았다. 그리서 그는 그렇게 했다.
용유진은 양손으로 바닥을 움켜쥐고 있었다. 고통스러웠다. 팔목과
팔꿈치, 어깨의 관절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여오는 듯했다. 무엇보
다도 그 고통을 참고 노력하는데도 몸이 한 치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자세도 안 좋았다. 그것부터 먼저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용유진은
몸을 뒤집으려고 있는 힘을 다했다. 양손만으로 몸전체를 움직이는 것
보다는 이쪽이 쉬웠다. 그는 온 힘을 기울여 몸을 모로 눕히고, 다시
그보다 더한 힘을 쥐어짜서 간신히 바닥을 향해 엎드릴 수 있었다.
그 다음엔 서문하 쪽을 향해 몸을 돌려야 했다. 이것은 더 어려웠다.
그리고 그 전에 다시 힘을 모아야 했다.
'서둘러선 안된다. 서둘러선 아무것도 되지 않아.'
지금 몸 한 번 뒤집는 것이 평생의 대적과 상대하는 것보다도 더 어
렵고, 그 한 번의 움직임이 고수 열댓 명과 싸우고 난 뒤보다도 더 힘
들었다. 그는 가쁜 숨을 고르려고 애를 쓰며, 다시 한 번 주천을 시켰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한 치 한 치 자벌레 처럼 꿈틀거리며
몸을 움직여 서문하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
번에는 그대로 서문하를 향해 기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주천, 몸은 파김치처럼 퍼졌지만 점차 허리에 힘이 들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움직이기는 훨씬 편했다. 그러면서 바라본
손은 이상하게 변해 있어서 그 와중에도 잠시 놀랐다.
피부는 갓 만드어진 것처럼 투명하고, 그 아래로 얼기설기 붙은 근
육들이 들여다보였다. 마치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낸 듯한 모습. 볼 수는
없지만 몸의 다른 부분도 이와 유사하리라.
아마도 서문하의 말대로 그는 완전히 피곤죽이 되었다가 그 속에서
다시 만들어진 모양이었다. 그의 몸은 새로 생겨난 것이다.
'그럼 다시 한 번 죽어도 상관없겠군.'
용유진은 어쩐지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끼고 속으로 웃었다. 고통
도, 피곤함도 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한결 가뿐한 마음으
로 다시 손에, 그리고 막 힘이 돌아온 허리와 배에 힘을 주어 기었다.
누워 있던 곳으로부터 서문하가 앉은 곳까지는 채 일 장이 안 되는
거리, 그 거리를 그는 일 각에 걸쳐서 기었다. 그리고 간신히 서문하까
지 도착했을 때, 서문하는 추가로 주문했다.
"내뒤까지 가라!"
용유진은 의문을 달지 않고 시키는 대로 했다. 다시 일 각의 반이
걸렸다. 그의 무릎 아래는 아직 서문하의 앞에 있는 그때에 서문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했나 보다. 가부좌를 틀고 있는 서문하의 무릎 바로
앞에서 암반에 균열이 일어나더니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천길 낭떠러지로 사라져 버렸다.
용유진은 무릎 아래가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서문하의 손
이 그의 허리춤을 잡아 끌어올리는 것을 그 다음으로 느꼈다. 그가 안
전한 자리에 내팽겨쳐지고 난 뒤에 서문하가 그대로 긴 한숨을 내쉬며
물러나 절벽에 몸을 기대고 거의 반혼절 상태에 빠지는 것을 그 또한
반혼절 상태에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무너지는 암반을 서문
하가 지탱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로지 그를 위해서, 서문
하 자신은 충분히 몸을 피할 수 있었는데 용유진을 위해서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맙습니다.'
그말이 입 밖으로 나갔는지는 그도 모른다. 그는 마음속으로, 혹은
입 밖으로 그말을 하고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용유진이 다시 깨어 났을 때, 일어나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서
문하의 등이 보였다. 떨어진 이후, 그리고 몇 번의 혼절을 거듭하는 동
안 며칠이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날은 다시 밝아오고 있었다. 먼
산봉우리를 감싼 구름 뒤로 떠오르는 태양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바람이 몹시 차가웠다. 겨울이 깊어가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쳐도 지나치게 차가웠다. 이제 겨우 회복기에 들어간 그의 피부를 뚫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한 추위였다.
그는 아마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빨까지 부딪쳐가며 떨고 있었
나 보다. 서문하가 돌아서서 그를 절벽 안쪽에 둥글게 파여 있는
곳으로 끌어당겨 놓고 그 옆에 앉더니 물었다.
"추우냐?"
동굴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 공간이 바람을 막아 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바람에 날려가지 않을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용유진은
거기 동그랗게 웅크린 채 이를 딱딱 마주치며 간시히 대답했다.
"견딜 만합니다."
그리고 문득 생각나 덧붙였다.
"감사합니다."
서문하가 물었다.
"뭐가?"
"절 살려주셨잖습니까."
"난 그런 적 없다."
서문하는 냉랭하게 말했다.
용유진은 더 이상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로 감사한 것은
가슴에 새기면 그만이다. 그리고 이 꼬장꼬장한 노고수는 누굴 도우면
서도 생색은 내지 않고, 협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속으로만 품고 있는
사람, 진정한 협사라 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미 십대고수 중 여섯 명이난 만난 셈이지만 그의 빙조부인
공손조덕을 제외하고는 협사라 할 사람을 만난 것은 서문하가 처음이
었다. 사실 공손조덕조차도 강호에서는 흑도 쪽의 인물로 치고 있고,
그 역시 그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큰 것에 있어서는 협도를 지키지만
자잘한 부분에선 자위적인 판단과 편협한 처사가 적지 않았고, 손속
또한 독랄한 데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서로 침묵을 지키다가 서문하가 태도를 바꾸어 한결 부드럽
게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야말로 네게 감사해야 한다. 네 덕분에 적잖은
것을 얻었으니까."
"제가 무슨 도움이 되었다고 그러십니까."
"도움이 되었지. 큰 도움이 되었다."
서문하는 말했다.
그는 이미 말한 것처럼 여기 마음공부를 하러 왔다. 사실은 그간 평
생토록 닦아온 무공에 대한 의문을 느끼고, 무언가 돌파구를 찾기 위해
온 것이다. 특히 그가 돌파구로 생각한 것이 마음이라는 부분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금기서화사어검의 칠절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
중 천하제일이라 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어는 분야에서나 그저 수
준급, 잘 돼야 이인자였지. 그게 내 평생의 고민거리였다."
그조차도 한 사람이 한 몸에 갖추기엔 어려운 일 아니냐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용유진은 말을 삼켰다. 천하제일검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비파를 잘 타시네요 해봤자 칭찬이 안 된다는 것을 그 자신이 누구보
다도 달 알지 않는가. 표사가 되고 싶어하는 그에게 훌륭한 동창 위사
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서문하의 고민은 그와는 조금 궤가 다르지만 근본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는 원인을 생각하고, 나름대로 해답을 얻었다.
"공자님 이래로 유가(儒家)의 이상은 원만구족(圓滿具足)한 사람이 되
는 것이다. 한 가지 방면으로만 뛰어난 것은 천박하다 여기고 아무것에
도 정통하지 못함을 오히려 군자의 이상이라 여겼지. 나는 어려서부터
그런 교육을 받고, 그것을 옳다 여기며 살았다. 내가 재주가 많다고 강호
에 소문이 났지만 나는 오히려 부끄러워했다. 재주 많음이 자랑이 아니
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얼굴을 슬쩍 붉히며 다시 말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부끄러워하지는 않는다. 은근히 자만하는 마음이
있었지. 내가 특별히 어떤 것을 전문해서 배우지는 않았지만 천생 재주
가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해도 금방 습득하고 정통하게 되었음을 자랑
스러워했던 것이지. 주변에서 추어주는 말에 내심 좋기도 했고, 어떤
땐 한 방면에 국한하지 않고 다방면에 천하제일이 되면 그야말로 천하
제일인이 아닌가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검치 섭광생을 만나면서 그게
깨어졌지."
그는 말을 돌려 용유진에게 물었다.
"내가 보기에 너는 강시당의 공손조덕 노사와 관계가 있는 듯하더구
나."
용유진은 긍정했다.
"제 빙조부 되십니다."
서문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물었다.
"무당파의 내공도 사용하는 것 같던데, 그게 아마 태청강기, 그러니
까 태청수단진결의 무공이겠지?"
"그렇습니다."
"그 외에도 두세 가지 정도의 기공을 더 익히고 있고, 그 하나하나
가 다 경지에 이르렀더구나."
"그렇습니다."
"나는 천하에 유명한 구대극품강기 중 하나도 알지 못한다. 검치 섭
광생도 그렇지. 그러나 당금무림의 천하제일고수는 그고, 나 또한 삼군
에 꼽혀서 사이보다 위라고 평가되고 있다. 왜라고 생각하느냐?"
용유진은 생각해 보았으나 마땅한 대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수없이 많은 답이 있고, 또 어떻게 보면 어떤 것도 정답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던 것이다.
다행히 서문하가 먼저 답을 말해주었다.
"강기나 내공이 무공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공의 고하를 가
리는 데에는 보다 중요한 어떤 요소가 있지. 섭광생은 그것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은 그보다 그게 못하기 때문에 그가 천하제일인 것이
다."
"그게 뭡니까?"
"그가 천하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라는 거다. 즉, 그는 인간적인 강함
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적어도 서문하는
그 점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땐 난 충격을 받았다. 겉보기로는 늙어 쪼그라든
초라한 늙은이에 불과했지만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어떤 부호, 명숙보다
도 두드러져 보였다. 그는 나를 포함한 까마귀 무리들 속에 홀로 우뚝
선 백로 같았다. 그는 자유로웠다. 눈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듯
한 태도를 취했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어. 실제로 그의 눈에는 아무
도 보이지 않았던 거다. 이 나조차 말이다."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여태 보여 주었던 고고한 학자이자 금기
서화의 달인인 풍류인, 검의 고수인 무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단지 질투
와 시샘으로 가득한 초라한 늙은이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서문하는 계속말했다.
"나는 그를 보는 순간 오히려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없이
자유롭고 위대한 무인, 한 자루 검처럼 아름다운 검객 앞에서 몇 가지
찬사에 눈이 어두어 썩은 나뭇가지를 보석이라 믿고 자랑스럽게 들고
있는 나 자신, 이루어 놓은 일 하나 없이 초라하게 늙어가고 있는 나를
본 거다. 화가 났지. 나 자신에게, 그리고 무엇보다고 그에게. 그 이후
로 내 필생의 목표는 그를 이기는 것, 그를 넘어서는 것이 되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 용유진을 보았다. 그 짧은 순간에 그는 십 년은
늙어버린 것 같았다. 장장 칠 일간이나 만근 거석을 지탱하고 있었던
때보다 더 피로해 보였다. 검치 섭광생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타격을 주는 존재였던 것이다.
"도대체 그는 왜 강할까? 나는 왜 그보다 못할까?"
용유진로서는 대답할 길이 없는 질문이었고, 이번 대답도 서문하
가 해주었다.
"그는 한 가지에 미쳤고, 나는 미치지 않았다. 때문에 그가 강한 것
이다. 어떤 일이든 완벽해지기 위해서느 미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야.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강하고, 나는 그보다 못한 것이다."
용유진은 지금 서문하가 말하는 것과 똑같은 일에 대해서, 그러나
전혀 반대로 말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동창에서 무공을 배울 때,
사부 허신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는 검에 미친 인물일 뿐이다. 그러니 검객이 아니라 검치인 것이지."
허신은 그렇게 말했었다.
"그는 검사(劍士)로서는 완벽하지. 완벽한 검을 구사하고 있다고들
하더구나. 검으로 그를 따를 자는 아무도 없다고... 하지만 인간으
로서는 아무도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는 검객이 아니다. 그
런 점으로 보면 화산노인 엽장청이 오히려 검객에 가깝지."
그는 또 말했었다.
"무공의 경지에 다다른다는 것은어찌 생각하면 미치지 않고는 불가
능할지도 모른다. 권력의 정점에 도달하기 위해 조홍이 미친 것처
럼.... 검의 극의에 도달하기 위해 섭광생이 미친 것처럼, 미쳤기 때
문에 그들이 거기 도달했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나는 그게 진짜는 아니
라고 보는 것이다. 하나의 검객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인간이 동시에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들이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단지 권력에 미칠
때, 검에 미칠 때, 그들은 극의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멀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그러나 용유진은 이것을 서문하게게 들려줄 수가 없었다. 확신이 없
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직 검치 섭광생을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주는 위압감이 어떤지도 몰랐고, 무엇보다도 그 말은 사부의 말이
지 그의 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미친 듯이 집중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
면 허신의 말대로, 공자님의 말대로 먼저 인간이 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옳은지 그는 아직 모른다.
반면 서문하는 직접 보며 느껴서 한 말이고, 숱한 고뇌 끝에 그런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그리고 몸으로 직접 구현하려고 하고 있었다.
거기에 그가 덧붙일 말은 없었다.
서문하는 다시 표정을 굳히고 그에게 물었다.
"여기가 어딘지 아나?"
용유진은 상념에서 깨어나서 본능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모릅니다."
그럼 어떻게 여기 떨어져서 그 고생을 했냐고 물을 만도 한데 서문
하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보다는 다른 것에 마음을 빼
앗기고 있는 것이다.
"이 절벽을 삭풍애라고 한다. 그리고 특히 여기, 우리가 있는 곳을
호풍동(呼風洞)이라고 부르지. 왜 그렇게 부르는지 아나?"
물론 알 리가 없다. 그런데 서문하는 바로 그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
었다. 그가 여기 온 이유가 그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여기는 여름에도 삭풍이 몰아치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지. 그 중에
서도 여기 호풍동은 더욱 그러하다. 겨울의 일정한 때가 되면 빙한풍
(氷寒風)이 몰아치는데, 거기 닿으면 뭐든지 얼어 부스러진다는 것이다.
나는 그 바람을 맞으러 왔다."
용유진은 약간 어리둥절해져서 물었다.
"특별한 이유라도?"
"죽음을 직면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지. 극한의 환경 속에서 생사의
간두(竿頭)에 서서 내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게 내가 생각한
마음공부였지. 육체를 단련하고 기를 모으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강함은 그것을 넘어서는 어딘가에 있지 않
을까? 그게 마음, 정신의 도야를 꾀함으로써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것
이 내 생각이다."
그는 생각한 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무공이라는 게 그런 것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몸 쓰는 법을 배우
지만, 배우다 보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마음 쓰는 법이 더 중요함을 알게 된다. 알고 보면 몸 쓰는 법
은 마음 쓰는 법과 다르지 않고, 마음 쓰는 법을 닦지 않으면 몸 쓰는
법 또한 닦을 수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근저(根抵)에 큰 생
각이 없는 뛰어난 무공은 있을 수가 없고, 큰 생각을 깨치지 못한 고수
또한 없다."
이것은 평범한 진리일 수도 있지만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몸소 수련
하는 과정에서 부족함을 느끼고, 고련을 통해 그것을 넘어서며 평생을
살아온 노고수가 하는 말이기 때문에 진실했고, 힘이 있었다. 게다가
절벽에서 떨어지면서, 그리고 지금까지 새로운 경험을 하며 어렴풋이
생각했던 바로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 아닌가. 용유진은 한 마디 한 마
디 놓치지 않고 새겨 들었다.
"초보를 벗어나지 못한 무인은 젊은 혈기와 잔재주를 믿고 위세를
부리며,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손발 겨루기를 지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은 그가 재주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재주가 그를 부리는 것이고,
그가 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단지 혈기에 밀려 버둥거리며 떠밀려
가는 것에 지나지 않다. 경지에 다다르면 비로소 육체에 국한된 무공에
의문을 느끼게 되고, 어떻게든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것이지. 검치
섭광생은 그렇게 했고, 나는 아직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게 그와 나의
차이지."
그는 비밀스러운 일을 알려준다는 듯이 나직하게 한 마디 말하고 입
을 다물었다.
"나는 그가 심검(心劍)의 경지를 이루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다. 나
역시 심검을 이루지 못하고는 그와 겨룰 수 없는 것이다."
용유진은 그가 한 말을 곰곰이 되새기다가 문득 한 생각이 떠올라
물어 보았다.
"마치 그와 곧 겨루실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겨룰 거다."
서문하는 간단하게 긍정했다.
"이미 날짜와 장소를 잡았지. 그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시도
를 해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
용유진은 이제야 서문하가 여기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일단 경
지에 오른 고수가 단기간에 실력이 향상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칠십이 넘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
룰 수가 없으니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한 것이리라.
"그래서 성공하셨습니까?"
"바람은 아직 불지 않았다."
서문하는 하늘 한 구석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
고 있었다. 아까는 분명 아침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이 절벽
은 서쪽으로 열려 있고, 여기서 보이는 산은 서쪽에 있는 것이었다. 아
까의 태양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가라앉는 것이었다.
하늘에 구름은 더욱 짙어지고, 태양은 그 너머로 희미한 잔광을 뿌
렸다.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음산한 기류가 온 산과 온 하늘에 가득
했다.
"그래서 네게 재촉을 했던 거다. 운 좋게도 아직은 바람이 불지 않
았지만 아마도 오늘, 아니면 내일 불어올 거다. 분명히 말하건데 그 바
람은 제 아무리 고수라도 견디지 못할 정도라고 들었다. 바위조차 부스
러져 나가는데 살과 피로 이루어진 사람이 견딜 수는 없겠지. 그러니
움직일 수가 있다면 이제 내려가도록 해라. 아래로 데려다 주고 싶지만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다. 언제 불어올지 모르는데 자리를 비우고 싶진
않거든."
용유진은 절벽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아직 빛이 남아 있지만 아래
쪽은 어둠 속에 잠겨 있어서 깊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내려가게 된다면 스스로 내려가겠습니다. 깊이는 얼마나 됩니까?"
"백여 장쯤 될거다. 바위가 많아서 잡고 내려가기 어렵진 않지. 아
래쪽에는 계류도 있는데, 그렇게 넓지도, 깊지도 않지만 급류니 조심해
야 한다."
"그렇게 깊진 않군요. 하지만 내려가지 않겠습니다."
깊진 않지만 지금의 용유진으로서는 내려갈 수 없는 깊이였다. 몸이
성했다면 잠깐 사이에 몇 번이고 왕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
금 몸 상태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데에도 힘겨웠다. 절벽을 내려가
는 것은 불가능 했고, 내려가고 싶지도 않았다.
용유진은 말했다.
"선배님과 함께 여기 머물며 저도 마음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서문하는 그를 빤히 보다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마음공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네 지금 상태로는 할 수도
없다. 부탁하기 싫어서 그런가 본데, 내가 조금 시간을 내서 너를 내려
다 주지. 너 때문에 얻은 것도 있으니."
"아까 전부터 자꾸 제게 얻은 것이 있다고 하셨는데, 제가 무슨 도
움이 되었다는 것입니까?"
"네가 떨어지지 않도록 암반을 지탱하는 동안에 나는 내 한계까지
힘을 써야 했다. 그러는 사이 모종의 깨달음이 있어 마음공부가 한 단
계 높아졌으니 네 덕택이라고 해도 좋겠지. 자, 그러니 내가 이유 없이
호의를 베푼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려가도록 해라. 데려다 주마."
만근 거석을 며칠씩이나 지탱하고 있느라 한계까지 힘을 썼고, 그럼
으로 해서 육체의 극한까지 체험한 용유진과 같이 모종의 깨달음이 있
었다는 뜻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용유진은 더욱더 이 자리를 떠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죽을 정도로 다쳤었고, 서문하는 죽을 정도로 탈진
을 했었다. 그리고 둘은 비슷한 깨달음으로 이른바 마음공부의 첫 걸음
을 내디뎠다. 주어진 조건은 비슷한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 아닌
가.
그래서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저는 여기 남아 있고 싶습니다."
"그럼 네 맘대로 해라. 살 길을 버려 두고 죽을 길을 택하니 말릴 수
도 없지."
거듭된 호의가 거절 당하자 서문하는 약간 화가 난 표정이었다. 표정
이 굳어지더니 냉랭하게 한 마디 내뱉고는 돌아앉아 버렸다.
용유진은 씁쓸하게 웃고는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이른바 빙한풍이
불어오기 전에 최대한 몸의 상태를 끌어올려 두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서문하가 말한바, 마음의 문제와 스스로 깨달은, 그
리고 의문을 던졌던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
해 보고 싶기도 했다. 두 가지가 아주 다른 것이 아닐 수 있었던 것은
역시 태청수단진결의 덕분이었다. 운기하는 것이 곧 생각하는 것이 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첫댓글 이제부터 구정 연휴에 들어 갑니다
계속해서 연재해 드리고 싶지만 여건이 허락이 안되네요
우리님들 설 명절 잘 보내시고 새해에는 행복과 행운이
가득 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감사하며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구정명절을 편히 즐기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행운과 행복이 함께하는 새해를 맞이 하시며 만수무강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즐겁고 행복한 명절되십시요
구정연휴 잘보내시고 올한해 좋은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건강하시고 연휴끝난후 뵙겠읍니다,
새해복많이받으시고
더욱 재미난얘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오미크론 돌파바이러스 조심 건강하시고
날씨가 추우면 기억력도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실내외 온도차가 큰 날에외출 했을 때 갑작스러운
혈관 수축으로 인해 뇌에 전달되는 산소나 영양분의 양이 줄 수 있어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는데특히 고령의 사람들에게 해당되지요
적당한 온도 차이를 유지 하는것이기억력 건망증에 보탬이 되고
건강에도 좋다고 합니다.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해요~^^
즐독 하였습니다
설 명절 행복하게 보내시고~
복 받는 한해 되십시오~^
떡국들 드시와요
즐독하였습니다
즐독입니다
감사히 보았읍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보고 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잘밨어요
즐감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많이받으세요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