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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사랑하라고 내가 여기 있다!
공지영의 장편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 저자가 5년 만에 쓴 장편소설로 2004년 혹은 2005년, 송봉모 신부님의 책에서 발견한 구절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날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베네딕도 왜관 남자 수도원이라는 명사와 마리너스 수사라는 이름을 하나의 형상으로 만들어 세상에 선보인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수도사들의 인간과 신을 향한 사랑,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까지 다양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랑은 신의 다른 이름이며 우주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무엘 아빠스님으로부터 소희의 소식을 전해들은 요한 신부는 자신의 젊은 수사 시절을 떠올린다. W수도원의 요한 곁에는 미카엘과 안젤로 수사가 함께 했고, 아빠스님의 조카인 소희는 진정한 사랑을 알게 해줬다. 그러던 어느 날 미카엘과 안젤로가 공부방 일로 대구에 갔다가 교통사고로 죽고, 소희가 홀연히 떠나버리자 홀로 남아 괴로워하던 요한은 수도원을 떠났다 다시 돌아와 바쁜 나날을 보낸다. 그런 요한에게 수송선의 선장인 마리너스 수사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저자 공지영
1963년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나왔다. 1988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착한 여자', '봉순이 언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즐거운 나의 집'이 있고, 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별들의 들판', 산문집 '상처 없는 영혼',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등이 있다. 21세기문학상과 한국 소설문학상, 오영수 문학상, 앰네스티 언론상 특별상, 제10회 가톨릭문학상을 수상했다. 세상의 변화와 여성의 현실을 투시하는 섬세한 문학적 감성과 속도감 있는 문체로 주목받아왔다.
1부 제 영혼이 밀랍처럼 007
2부 빈 들에 나가 사랑을 125
3부 그러면 제가 살겠나이다 241
작가의 말 372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 지상에 머문다
“삶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과 같다.” 이 구절을 떠올리자마자,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찾아온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가 했던 유명한 말 중의 하나라는 것을 기억해내자 내 입은 나도 모르게 신음을 토해냈다.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이 구절을 떠올리려고 이곳까지 찾아왔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수습할 사이도 없이 눈물이 핑 돌았고, 들을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깐 그렇게 누워 있었다. 삶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 같았다는 것을 나도 이제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게다. -작가의 말 중에서
신부 서품을 앞둔 한 젊은 수사의 달고 뜨겁고 쓰고 차가운 인생 순례기
“젊은 시절 하게 되는 고뇌, 취직이나 이런 거 말고 인간 본성에 더 깊숙이 다가가는 고뇌에 대한 질문들을 하고 싶었다. 이 소설은 그런 질문들에서 시작된 한 청년의 순례기, 방황기 또는 어른이 되기 전 겪는 마지막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 작가 인터뷰 중에서
《높고 푸른 사다리》는 작가 공지영이 등단 26주년, 그리고 《도가니》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신부 서품을 앞둔 베네딕도 수도회의 젊은 수사가 사랑에 빠지고, 같은 길을 가던 친구들의 갑작스런 사건을 겪고, 한국전쟁의 한복판에서 일어났던 이방인 노수사들과 할머니, 할아버지의 끔찍하고 쓸쓸하고 기적적이며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경험하면서 달라져가는 인생의 순례기를 담았다.
작가가 10년 전 읽었던 책 속 몇 줄의 묘사가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한국전쟁 중 흥남 철수 때 목숨을 걸고 기적적으로 14,000명의 한국인을 구조한 선장 마리너스의 실제 이야기, 그 이후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져 미국 뉴튼 수도원에서 수사로서 평생을 살다가 뉴튼 수도원을 인수하러 간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 그 기나긴 구조의 과정을 극적으로 털어놓고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가 그것이다. 여기에 더해 가여운 나라 한국을 위해 기꺼이 일생을 바친 이방인 성직자들의 이야기도 이 소설이 탄생하는 배경이 되었다. 작가는 이 이야기들을 줄곧 마음에 품고 있다가 본격적으로 취재를 시작해 삶과 죽음, 신과 사랑 등 잔인하고 기이하며 때로는 신비로운 인간 삶의 본질적 뿌리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고, 작가의 개인적인 방황에도 종지부를 찍으며, 한 젊은 수사의 인생 순례 이야기로 풀어내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무엇을 지킬 것인가?
인간으로서의 삶에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소설
“‘대체 왜?’가 이 소설의 키워드인데, 내가 신에게 가장 많이 던졌던 질문이다. ‘대체 왜 나에게?’ ‘대체 왜 저 죄 없는 사람들에게?’ 인생의 어느 한순간 누구에게나 커다란 봉우리를 넘는 시간이 있다. 죽을병에 걸릴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버릴 수도 있고, 갑자기 가난해질 수도 있고, 직업을 잃을 수도 있다. ‘정요한’을 주인공으로 하기로 하고 취재하러 수도원에 갔는데, 마침 나이까지 비슷한 정요한 수사라는 분이 계셨다. 그런데 소설을 쓰는 중간에 이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많이 충격을 받았고, 인생에 대해 숙연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인생의 커다란 봉우리를 넘는 순간 어떤 자세로 내 삶을, 나를 돌봐야 할 것인가? 마지막까지 잃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작가 인터뷰 중에서
이 소설에는 각자 자신의 것을 추구하는 개성이 강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소설의 화자 정요한 수사는 갈 길만 가고 하지 말라는 일은 함부로 행하지 않는 모범생이며, 어른들의 신임을 많이 받는 인물이다. 그러나 마음속에 가득했던 그의 열정은 한 여자를 통해 폭발하게 된다. 사람들에게 ‘미, 안, 요’ 수사들이라 불리며 우정을 나누는 요한의 친구 중 하나인 미카엘. 그는 키가 크고 날카롭게 생긴 외모와 어울리게 지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다. 지적 능력이 뛰어나고 성실해서 교회 장상(長上)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지만, 교회와 교회 장상들에 대해 비판적이다. 또 다른 친구 천애 고아 안젤로. 키가 작지만 얼굴은 조각상처럼 아름다우며 마음이 따뜻하고 말과 행동이 사랑스러워 수도원의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다. 공부도 일도 서툴러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그여서 넘어갈 때가 많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어릴 때 약속한 헌신적인 약혼자와 요한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아가는 아빠스(대수도원 원장)의 조카 소희도 있다.
젊은이들과 대척점에 있는 인물들도 매력적이다. 토마스 수사, 죽은 요한 신부, 마리너스 수사, 요한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들은 커다란 봉우리를 넘는 젊은 인물들에 앞서 그들에게 덮친 전쟁을 비롯한 끔찍한 고난과 잔인한 역경 속에서 어떻게 대처했는지, 어떻게 자신을 지켜냈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의 생은 끊임없이 시험에 들고 ‘대체 왜’냐고 신에게 분노에 차 질문하면서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려 노력하는 삶의 연속이었다. 작가는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세상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역경이 닥쳤을 때도 인간의 품위라는 것으로 자기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을 함부로 취급하지 않으며 역경에 희생당하지 않는 그들의 삶에 대한 태도를 강조한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생의 모든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
“이 세상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없다. 이루어질 수 없는 형식만 있을 뿐이다. 사랑은 이미 하는 순간 다 이루어지는 거고 완성되어 있는 거다. 소희의 편지 속에서도 사랑에 대한 정의가 나오고, 요한도 그런다. 사랑은 누군가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저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내가 가진 어떤 것을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고, 저 사람이 가진 나쁜 것을 내가 나눠 갖기 바라는 마음이다. 사랑은 이미 우주만큼 완성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이 세상에 있는지 모른다.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다.” ― 작가 인터뷰 중에서
이 소설은 다양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요한과 소희, 요한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미카엘과 미카엘의 여자 친구 등 남녀 사이의 사랑 이야기, ‘미, 안, 요’ 수사들 간의 사랑 이야기, 요한과 할머니, 안젤로와 어머니, 토마스 수사와 어머니, 모니카와 어린 요한 등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이야기, 수도사들의 인간과 신을 향한 사랑 이야기,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 이야기……. 이들의 이렇게 다양한 사랑 이야기는 혼자로는 지극히 약하기만 한 인간에게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준다. 작가는 사랑을 신의 다른 이름이고 우주의 다른 이름이라고 정의한다.
작가는 사춘기 시절부터 오랫동안 물었다고 한다. ‘하느님 대체 왜?’ 작가는 이제 북한 자강도 옥사덕 수용소에서 지옥 같은 일을 겪고도 잔인한 신을 떠나지 않고, 고국 독일이 아닌 한국에서 생을 마감한 토마스 수사의 입을 빌려 말한다. “사랑했으니까요, 사랑은 가실 줄을 모르는 거니까요.” 작가의 말처럼 사랑은 신의 다른 이름이고, 우주의 다른 이름이며, 한번 생기면 사라지지 않는 것, 우리가 인생 전체를 통해서 추구해야 할 마지막 목표일지 모른다. 소설의 이야기들을 죽 따라 겪다 보면 한번쯤 멈추게 된다. ‘내 생에 마지막으로 지켜야 할 것, 마지막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무엇일까?’ 하면서.
■ 줄거리
어느 날 밤, 요한 신부는 사무엘 아빠스로부터 소희의 소식을 전해 듣고 자신의 젊은 수사 시절을 떠올린다. 그 시절, W수도원의 요한 곁에는 늘 미카엘과 안젤로 수사가 있었다. 아빠스의 조카인 소희의 일을 돕다가 둘은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홀연히 소희가 떠나버리자 요한은 홀로 남아 이별의 고통으로 괴로워한다. 요한은 휴가를 떠났다가 할머니에게 한국전쟁과 흥남 부두 폭격,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충격적인 이야기들을 듣는다.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온 요한은, 미국 뉴튼 수도원 인수 문제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아빠스와 함께 뉴저지 뉴튼 수도원으로 가, 수송선의 선장이었던 마리너스 수사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산책을 하다가 멈추어 서면 내 발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때 내 샌들의 밑창은 고무였기에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작은 소리에 가려졌던 무수한 소리들이 귓가로 다가왔다. 소나무 가지 위에 쌓였던 눈꽃이 푸수수 흩어지고 이파리 없는 가지들이 바람에 가만히 흔들리는 소리. 깊은 땅속 고물거리는 벌레들이 몸을 뒤척이는 소리. 나무뿌리들이 아주 조금씩 깊은 데로 가느다란 발을 뻗는 소리. 그때 내 귀를 스쳐 가던 여린 바람 소리는 지구가 자전하면서 내는 마찰음이었을까? 우주가, 신이 혹은 인간의 생이 아주 가녀리게 자신을 드러낼 것만 같은 순간들이 바로 그런 때였다. 그럴 때 가끔 내게 하늘이 홀연히 열리고 이루 말할 수 없는 평화 같은 것이 가슴으로 쏟아져 내렸다. (11쪽)
수도원의 모든 일과는 종소리로 시작되어 종소리로 끝난다. 특별히 허락을 받지 않는 한 하루 다섯 번 모여 기도했다. 실제로 이 새벽의 기상이 너무 힘겨워서, 조금은 분주해 보이는 기도 일과 때문에 끝내 수도원을 떠나는 지망생들도 있었다. 나로 말하자면, 힘들다고 해서 그 종소리를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나는 그 종소리를 사랑하고 있었다. 새벽하늘, 푸르스름한 빛 속에 종탑이 우뚝 솟아 있고 종소리가 퍼져가고 있었다. 새벽의 찬 기운을 피하려고 검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올려다보면 그것은 이 지상에 유일하게 허락된 영원에의 통로, 야곱이 보았다는 그 사다리가 소리를 타고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만져볼 수도 붙들 수도 머물 수도 없으나 분명히 거기 있는, 그런. (22쪽)
“예전에요, 요한 수사님, 우리 엄마 살아 계실 때 그러셨어요. 언제든 엄마는 내가 옳다고 하셨죠. 사춘기 들어서 제가 한번 엄마한테 물었죠. 엄마 말은 믿을 수가 없어. 엄마는 맨날 내가 옳다고 하잖아? 하니까 엄마가 그러셨어요. 그러니? 미안하구나. 하지만 난 언제나 네가 옳은 거 같아. 난 솔직히 뭐가 옳은 건지 잘 모르겠다, 안젤로. 하지만 혹여 네가 잘못한다 하더라도 네가 옳다고 해주고 싶어. 그래야 네가 정말 잘못했을 때 혼자 잘못한 듯 외로워지지 않을 거잖아……. 저 그 후로 엄마 말 많이 생각했어요. 내가 미카엘 수사님한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그냥 같은 편이 되어주고 싶어요. 혼자만 잘못한 것 같이 너무 외롭지 않게.” 그날 그 순간 나는 안젤로의 그 말을 다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아빠스님의 침묵이 엄청난 분노를 뜻한다는 것을 감지한 초조함 때문에, 아이를 꾸짖지도 못하는 한 엄마에 대한 한가한 회고담 같은 것이 마음에 다가오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나는 가끔 안젤로의 이 말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이 그리워질 때면 혼자, 울었다. (65∼66쪽)
마음과는 달리 몸은 땅속으로 녹아들듯 피곤했기에 나는 씻을 생각도 없이 쓰러져 침대에 누웠고 불을 껐다. 불을 끈 바로 그 순간, 환한 빛 같은 것이 어렸고, 피곤한 내 의식이 문득, 내가 불을 끄지 않은 건가, 착각하려는 바로 그 순간, 그 하얀빛이 그녀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그것을 다 의식할 새도 없이 그 하얀 얼굴이 내 갈비뼈를 열고 가슴속으로 쑤욱 밀려들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은 약간의 통증도 동반했던 것 같았다. 나는 경험에 비추어 이게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고, 상대방이 쏜 화살이 내 가슴으로 날아오는 그 시간까지 날아오는 화살이 나를 쓰러뜨릴 것임을 뻔히 보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으며, 지독하게 감미로워서 지독하게 쓰게 느껴지는 고통을, 그러면 안 된다고 아주 조그만 소리로 거부하면서, 기꺼이 느꼈다. “왜 사랑하나요?”라는 문장은 문법적으로는 옳다. “어떻게 그를 사랑하게 되었나요?”라는 질문도 문법적으로 옳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말들은 성립되지 않는다. 왜 사랑하는지 이유를 분명히 댈 수 있다면 이미 그건 사랑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먼 훗날 한 여자를 사랑했고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수도원을 떠났던 내 동료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A4 용지를 건네던 그녀의 손을 본 순간 사랑에 빠져버렸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건 A4 용지 때문도 그녀의 손 때문도 아니었으리라. 대답하자면 그건 그냥 사랑 때문이었으리라. (82쪽)
이상하다. 이 지상을 떠난 사람의 자취는 그가 남긴 사물에서가 아니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발견된다. 죽어서 삶이 더 선명해지는 사람이 있다. 죽어서야 비로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살아나는 사람이 있다. 살아 있었으면 그저 그렇게 내 곁을 스쳐 지나갔을 평범하고 시시한 한 사람의 생이 죽어서야 모든 이의 삶 속에 선명해지는 것. 아마 대표적인 이가 예수였겠지. 죽은 몸이 벌떡 일어나지 않아도 그것이 어쩌면 부활이 아닐까. (1
첫댓글 공지영 지음 /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13.10.28